< -- [나비효과] -- >[나비효과]강원도 태백산맥 동쪽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평균 적설량을 웃도는 많은 눈이 내리자 곳곳에는 교통이 두절되거나 고립되는 마을들도 많았다.“하필 이동하려고 할 때 눈이 오는군.”최태욱은 민박집에서 나서다 눈이 너무 내린 상태라 걱정했다. 그러자 트레블이 얼른 답해 주었다.“택시기사들에게 물어보니 국도는 모두 정상적으로 재설 작업해 다닐 수 있다고 하더군요.”“그렇다면 이동해도 되겠군.”이렇게 답하고 나서 최태욱은 경호원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스키장에서 스키를 즐기는 동안 경호원들은 혹한기 훈련을 해 다들 얼굴이 엉망이었다. ‘얼마나 둥글렸는지 다들 얼굴에 딱지가 생길 지경이군.’회1/13 쪽등록일 : 13.01.02 11:38조회 : 3671/3687추천 : 81평점 :(비허용)평점 :(비허용)선호작품 : 4979
조금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경호원들에게 말했다.“그동안 고생했으니 바닷가로 가서 쉬다가 가면 되겠군.”“헉!”경호원들은 입을 떡 벌리며 다들 기겁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다시 바다로 가서 지낸다니 이 추운 겨울날 새해 초부터 자칫하면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가게 생겨서다.‘녀석들 겁을 먹었어.’최태욱은 두려운 표정인 경호원들을 보며 트레블에게 지시했다.“팀장,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으니 앞으로 더 이상은 극기 훈련을 하지마시오.”“넷!”태백산 스키장에서 레베이카 공주와 스키를 즐기며 뭔가 앞으로 진로에 대해 구상하던 최태욱은 연말이 되자 떠나게 되었다. 아스팔트인 국도는 모두 재설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도 눈길이 얼어붙어 매우 미2/13 쪽
끄러웠다. 방단리무진을 타고 천천히 국도를 따라 동해의 정동진으로 오게 되었다. 정동진의 바닷가에 도착한 일행은 작지만 아담하게 지은 민박집을 완전히 통째로 빌렸다. 따뜻한 온돌방으로 들어간 최태욱은 크고 오래된 화로를 보며 말했다. “밤을 구어 먹으면 딱이네. 나 박으로 나가 먹을 것을 사오지. 이불을 펴놓고 기다려.”“알았어요.”레베이카는 두툼하고 푹신한 솜이불을 펴며 마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오늘 드디어 자신이 좋아하는 말 타기를 해보게 생겨서다. 스키장의 민박집은 경호원들이 바로 옆방에서 자서 밤이면 그저 손잡고 잠만 잤었다.민박집에서 나온 최태욱은 노점상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노점상들은 해맞이 행사를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들이다. “생밤도 파나요?”“군밤을 사가죠?”3/13 쪽
“아뇨, 직접 구워 먹어 보려고요.”“그렇게 하세요. 가격은 같아요.”관광 시즌이라 이건 분명 바가지에 해당된다. 그러나 추운 겨울날 먹고 살기위해 떨며 쪼그리고 앉아 있는 노점상을 상대로 가격 흥정할 비루한 못난이야 아니다. 오히려 후하게 돈을 주며 말했다.“많이 파세요.”“고마워요. 대공.”자신을 알아보는 아주머니의 말에 최태욱은 미소를 지으며 노점상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밤이며 각종 먹을 것을 사서 온돌방으로 들어왔다.장작을 때서 만든 화롯불에 밤들을 구워 레베이카에게 넘겨주었다. 맛있게 군밤을 먹으며 레베이카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좋아?”“예, 너무 좋아요. 오빠 직접 구워주니 더 맛있어요.”4/13 쪽
태백산 스키장에서도 민박하며 이런 식으로 화롯불에 밤이나 감자 등을 구어 먹었다. 이번에는 흰 가래떡도 사왔기 때문에 구워 먹고 있었다. 더구나 설탕 대신 토종꿀을 찍어 먹으니 더욱 맛있었다. 레베이카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사소한 행동에 마냥 행복해 하는 모습이라 최태욱의 마음도 풍요로워지고 있었다. 이것이 어쩌면 살아가면서 느끼는 행복감이 아닌가 싶었다.웅성웅성.밖이 소란해 문을 열고 바라보았다. 마당에는 커다랗게 모닥불을 피워 놓고 경호원들이 주인아저씨와 같이 고구마를 구워먹고 있었다. 최태욱과 레베이카는 얼른 박으로 나와 경호원들과 어울렸다. 일행은 동해에서 잡은 생선을 구워놓고 소주를 마셨다. 최태욱은 경호원들에게 일일이 술잔에 술을 따라주며 치하했다.“그동안 고생했어. 오늘 술 좀 마시고 푹 쉬면 모든 피로가 풀릴 거야.”“넷!”경호원들은 가끔 최태욱이 이렇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경우가 있어 힘든 생활이지만 보람이 있었다. 5/13 쪽
민박집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잠이든 최태욱 일행은 이른 새벽이 되자 모두 바닷가로 나가고 있었다. 레베이카는 두툼한 스키복을 입고 따라 나서며 말했다.“오빠, 날씨가 며칠 춥더니 이제 맑고 따뜻해져서 좋네요.”“한국은 삼한사온 기온이라 그래.”“그렇군요.” 며칠간 날씨가 무척 흐리고 추웠다. 눈이 많이 내리더니 날씨가 개어 하늘에는 많은 별들이 보이고 있었다. 별들을 바라보던 레베이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저기 다비흐 별이 보이는 것 같아요.”“그래? 날씨가 너무 맑아서 보이나? 견우성은 겨울에는 안 보일 건데?”레베이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다비흐 왕자가 보고 싶지 않느냐는 뜻이다. 레베이카는 처음에는 질투 나고 자신도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를 낳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듯이 이상하게 임신이 되질 않고 있었다.6/13 쪽
‘이런 정도면 된 거야.’요즈음은 그저 자신이 아직 어려서 그런다고 편하게 마음먹었다. 사실 아직 아이를 꼭 낳아서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렇게 대공과 편하게 자주 여행도 다니니 너무 행복해.’동해의 푸른 바다는 아직은 검은 빛만 가득해 보이고 있었다. 최태욱은 점점 먼 바다가 붉어지며 하늘이 밝아지자 속으로 빌었다.‘올 한해도 다들 건강하고 무사하길.’주변사람들의 건강이야 늘 해보는 생각이다. 하지만 무사하길 비는 이유는 다도해에서 벌어진 두 번의 해전 때문이다. 세상일이란 돌발 변수가 너무 많이 발생한다. 그 사건의 후유증으로 혹시 한국이 큰 곤욕을 치르는 사건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와! 와!”드디어 동해에서 붉은 해가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닷가에 모여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종교나 직업을 초월해 다들 손을 모아잡고 합장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와중에 뭔가 간절하게 소원을 비는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그들 7/13 쪽
중에 어떤 사람은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작게 부르는 선창에 주변사람들도 따라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최태욱도 그런 다소 엄숙한 분위기로 젖어 작게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경호원들도 같이 부르고 있었다. 다들 한국말도 잘하고 밤이나 새벽에는 대부분 근무를 서며 TV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애국가를 자주 듣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되었다.작년에 있었던 거대해전 때문이라 그런지 붉은 해를 바라보는 마음은 자꾸만 두근거려지고 있었다. 뭔가 강한 기가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최태욱은 자신도 모르게 길게 숨을 토하며 자기를 향해 품어져 오는 강한 기를 흡수하고 있었다.‘그래 일본에게 꿀릴 것 하나도 없으니 나부터 자신감을 가지자고.’드디어 둥근 해가 하늘로 높이 오르자 최태욱은 1991년이 비로써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늘었다. 점점 하늘로 높이 오르는 환한 해를 바라보며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올해는 신미년이라 좌우가 딱 대칭이군.’신미(辛未)년이란 한자도 가운데를 나누면 좌우로 대칭을 이룬다. 1991이란 수도 좌8/13 쪽
우 대칭이라 그저 토해보는 말이다.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다만 세상일이 그저 어느 한쪽으로 치중되지 않고 잘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게 된 새해에 대한 평이다.그러나 최태욱의 바람과는 다르게 작년 말에 벌어진 ‘경오왜란’으로 인해 한국이나 일본 그리고 주변국과 세계는 요동치고 있었다. 이제 지구촌은 어느 한쪽에서 사건이 터지면 그 여파는 의외로 크게 나타나기도 한다.‘세계가 크게 요동치고 있어.’이런 현상을 두고 흔히 나비효과라고 한다. 작은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멀리까지 영향을 주어 허리케인으로 변한다는 이론으로 많은 분야에 적용되고 있었다.경제대국인 일본 그리고 새롭게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가파르게 상승세를 타고 있는 한국과의 전쟁 상황은 지구촌을 온통 긴장 속에 몰아넣고 있었다. 두 나라 모두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 파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지고 있었다.‘양국의 기세 싸움으로 결판날 확률이 높아.’호칭이 주는 의미는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아주 크고 넓었다. 한국 정부에서는 다도해에서 벌어진 사건 이후에 모든 공식 비공식 서류에 ‘경오왜란’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추자도 해전, 거대 해전으로 승전이라고 명시했다. 일본 정부9/13 쪽
에 대해 단교하겠다는 국회의 결의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대통령이 시행하지는 않고 결재를 미루고 있었다. 주일 한국대사는 소환되고 주한 일본대사는 추방형식으로 떠나게 되었다.‘정부에서 너무 표면적으로 강하게 나가는 것 아닌가?’최태욱은 강경한 태도로만 일관하는 정부의 조치에 조금 염려되고 있었다. 이런 일에는 강약 조절이나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최태욱은 스스로는 모르지만 이제는 적어도 세계의 판세를 놓고 어떤 구상을 하는 습관이 들고 있었다.‘아직은 해군력이 너무 약해.’일본과 전쟁을 벌일 정도로 국방력이 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일본과 정면승부로 대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유엔에서 적절히 처리할지 모르겠군.’한국 정부는 유엔에서 모든 진상을 밝혔다. 일본은 잠수함에 들어 있던 많은 기뢰를 이용해 부산항, 진해항을 봉쇄하고 추자도에서 격침된 잠수함은 광양 항을 봉쇄하려는 군사작전을 펼치다 실패했다. 증거로는 잠수함 3척, 기뢰, 전쟁포로인 승무원 증언, 잠수함에 있던 많은 기록들이다.10/13 쪽
레베이카는 어젯밤에 경오왜란으로 밤이 깊도록 고심하던 타이거 대공의 모습이 떠올라 걱정했다.“오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모가 필요하다면 북해 기동함대도 보낸다고 했으니 일본은 함부로 확전을 꿈꾸지는 못할 겁니다.”“그랬어? 언제 연락했는데?”“어제 스키장 떠나며 전화해 보니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다비를 생각해서라도 일본에 지면 절대로 안 된다고 하더군요.” “왜 다비와 관계가 있다는 거야?”“어머, 오빠는 지휘함인 상륙함이 다비흐 함인지 모르세요? 장차 왕위에 오를 왕자의 이름을 딴 상륙함인데 패전을 하면 안 되죠.”날이 온화해 졌다고는 하나 바닷가라 그런지 찬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볼이 시린지 레베이카의 얼굴이 벌게지고 있었다. “추운데 방으로 들어가 눕지?”11/13 쪽
“그래야겠네요. 온돌방이라 그런지 밖에 보다 방에 있는 것이 더 좋더군요.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출출하니 방으로 들어가서 밤이나 구워 먹어야겠네요.”“칼집 잘 내서 구어. 밤이 터져 전처럼 경호원 놀라게 하지 말고.”“알았어요.”레베이카는 종종걸음으로 얼른 민박집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최태욱과 스키장에서 지내며 특별히 민박인 온돌방에 투숙해 보고 나서 레베이카는 온돌방의 마니어가 되었다. 더구나 화로를 방에 놓고 구워 먹는 밤이나 감자, 그리고 흰떡과 같이 먹는 인삼 동치미의 맛에 푹 빠져 버렸다. 더불어 타이거 대공에 대한 사랑도 깊어지고 있었다. 최태욱은 특별한 연락이 없어 새해라 베네룩스로 전화해 피닉스 여왕과 통화했다.“몸은 어떻소?”“아주 좋아요. 그런데 언제 오세요?”“아무래도 이번 사건이 어느 정도 끝나야 갈 것 같소.”“알았어요.”12/13 쪽
할 말이 많은 것 같아 통화했지만 의외로 막상하고 보니 별로 대화가 없었다. 통화를 끝내고 나자 최태욱은 문뜩 어른 들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 다는 것이 바로 대화가 단절되면 정이 사라진다는 깊은 뜻이었어.’소통, 서로 간에 격이 없이 나누는 대화만이 인간들이 진짜 인간답게 살아가는 기본이 아닌가 생각했다. 소통이 안 되면 서로 상대방의 진솔한 마음을 모르니 오해나 분란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그래 나라간의 외교도 소통이 제일 문제야.’13/13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