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 다른 삶-335화 (335/657)

< --  [나를 찾아서]  -- >전에도 높았던 담이 더욱 높아져 마치 작은 성과 같이 변했다. 집도 전에 비해 커진 것 같았다. 최태욱은 자신의 저택이 이렇게 변한 모습에 놀라 말했다.“왜 이렇게 변했죠?”“대공, 보안 때문에 저렇게 증축했습니다. 외부에서 안이 모두 보이면 안 되게 생겨 고친 것입니다.”최태욱은 이미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자신의 집이 이런 식으로 변하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뭔가 새롭게 느끼려면 생활 방식부터 바꾸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저곳으로 들어가면 나를 찾는 시간이 오래 걸려.’문뜩 이런 생각이 들자 최태욱은 운전기사에게 지시했다.“서초동에 있는 남부 터미널로 가지.”“저택에 들어가시지 않고 시외버스를 타고 강경으로 바로 내려가시려고요?”회1/13 쪽등록일 : 12.12.24 13:20조회 : 3884/3901추천 : 76평점 :선호작품 : 4979(비허용)

“그래, 그러니 남부터미널로 가지고.”최태욱은 리무진이 서초동으로 향하자 베네룩스 대사에게 조용히 자기 생각을 말했다.“대사님, 나는 강경으로 내려가 조용히 지내고 싶습니다. 그러니 대사님께서 최대한 언론사에서 나를 취재하기 위해 강경으로 떼지어 찾아오는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물론 정부에서도 나를 찾는 일도 되도록 없도록 해주시고요.”“잘 알겠습니다.”최태욱은 리무진이 남부 터미널에 도착하자 대사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터미널의 대합실로 들어갔다. 가을이라 그런지 터미널에는 등산복 차림으로 어딘가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최태욱은 버스표를 사고 나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추동팔에게 말했다.“에이트, 버스 타고 가자!”“넷!”  2/13 쪽

최태욱이 시외버스에 오르자 무슨 일인가 하던 경호원들은 당황했다. 모여서 뭔가 대화를 나누더니 이윽고 두 명이 재빠르게 표를 사고 뒤 따라 오르고 있었다. 시외버스는 승객들이 비교적 적은 상태로 떠나고 있었다. 최태욱은 키가 너무 커 자리가 불편해 제일 뒷좌석의 중앙으로 이동해 앉고 추동팔에게 말했다. “승용차는 강경으로 내려가서 필요한 종류를 생각해 새로 구입할거니 그렇게 알아.”“알겠습니다.”이윽고 시외버스가 서울을 떠나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고 빠른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도심권을 완전히 벗어나자 누렇게 벼가 익은 들판이 보이고 있었다. 들판에는 수확으로 한창 바쁘게 움직이는 농부들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 경치를 보며 추동팔은 가끔 감탄하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경치를 보자 신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최태욱은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하고 있었다.‘뭐부터 시작하지?’한창 수확을 하는 시기니 어디 농촌으로 가서 트랙터를 몰고 일손 돕기나 해볼까 생각했다. 아니면 이제 단풍이 물드는 계절이니 등산이나 갈까 생각해보고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가끔은 고속도로 주변에 보이는 새로운 시설물들에 눈길을 주고 3/13 쪽

있었다.이윽고 시외버스는 연무대를 지나 논산 터미널에 도착했다. 최태욱은 논산에서 내리고 나자 서둘러 빵집으로 찾아가고 있었다. 오래전 가끔 여학생을 만나러 들렸던 곳이라 찾아가는 것이다.“어, 그대로 있네.”논산도 많이 변하고 새로 도로도 나고 그래 사라졌을지 모른다는 생각했지만 빵집은 그대로 있었다. 최태욱은 김이 모락모락 빵집으로 가서 젊은 주인을 보며 말했다.“장사 잘 됩니까?”“예.”전에는 나이 많은 주인이었다. 이제는 아주 젊은 주인이 가볍게 답하다가 최태욱을 알아보고 놀라 외쳤다.“태욱아!”“어? 너 진태가 아니냐?”4/13 쪽

빵집 주인은 의외로 고등학교 동기로 같은 반으로 있던 오진태다. 최태욱은 다소 이상해 물었다.“너희 집이 여기였냐?”“응, 본래 우리 집이 여기야.”최태욱은 빵집 안으로 들어가 추동팔과 같이 찐빵을 먹으며 오진태와 학창시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던 지난날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었다. 지난 어린 시절을 말하던 오진태가 불쑥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나는 지금도 태욱이 네가 너무 신기하다.”“왜?”“너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그저 그랬는데. 강경에서 물에 빠지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서 그렇지. 그래서 나는 가끔 네가 딴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그러냐?”겉으로야 태연하게 답하고 있지만 최태욱은 기겁할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최태5/13 쪽

욱은 왜 자신이 강경을 빨리 떠나고 가족과도 헤어져 살게 된 이유를 이제야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그랬군. 나도 모르게 과거의 나와 변한 나를 남들이 알아볼까 걱정되어 피해 버린 거야.’본래 몸 주인의 능력이나 생활 습성 등을 너무 잘 아는 사람들과 지내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제일 잘 아는 가족에게서 일찍 떠났다. 그리고 고향인 강경을 자주 찾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물에 빠지는 사고 이후 두 사람의 정신이 머리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큰 혼란을 가져왔다. 그로 인해 계룡산으로 들어가 쉽게 박동훈 교주와 친해질 수 있었다. 사이비 교주이던 박동훈도 다소 이상한 삶을 살던 분이라 서로 잘 통했던 것이다.최태욱은 다음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서 찐빵을 사서 들고 이내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강경으로 가게 되었다.이제 완전히 고택으로 변한 집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서 대나무 비를 들고 낙엽을 쓸며 서성이던 최도술이 매우 반겼다.“왔구나, 대사관에서 네가 온다고 전화했더라.”6/13 쪽

“아, 그래요. 아버지는요.”“근처로 잠시 출타 중이야. 얼른 안방으로 가봐라.”“예.”찐빵을 최도술에게 넘겨주며 말했다.“이거, 숙모님과 같이 드세요.”“고맙다.”최태욱은 사랑채를 지나 안채의 안방으로 들어가니 어머니가 혼자 누워 있었다. 전에도 아파서 누워 있더니 아직도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병인 당뇨가 아주 심해져서다.“어머니, 저 왔어요.”최태욱이 다가가 이렇게 조용히 말하자 누워있는 어머니가 손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당뇨가 심해 이제는 치유 불가능한 상태로 눈까지 심한 백내장으로 보이지 않는 7/13 쪽

상태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최태욱은 저절로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애써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며 손을 잡았다. 아들의 손을 마주 잡은 어머니가 작게 물었다.“견우는?”손자를 보고 싶은 마음에 견우에 대해 묻고 있었다. 그러자 최태욱은 혼자 왔다는 것이 너무 죄송스러워 급히 답했다.“어머니, 죄송해요. 저 혼자 왔어요.”최태욱이 이렇게 답하자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너, 네 아내와 싸웠냐? 왜 너 혼자 와?”결혼하지 않았으니 이미 손자까지 낳은 피닉스 여왕이라 어머니께서는 완전히 큰 며느리 취급을 하고 있었다. 아들의 결혼이 순탄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런지 어머니는 이런저런 소리를 하며 최태욱을 다독이고 있었다.“여자가 조금 섭섭하게 해도 남자인 네가 참고 이해해.”8/13 쪽

“알았어요.” 어머니의 주된 말씀이야 여자에게 많이 양보해 살라며 충고하고 있었다. 이미 아들이 장성해 크게 성공했다고 해도 항상 걱정스러운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이윽고 출타했던 아버지와 동생부부도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실로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게 되었다. 간장게장과 꽃게 찜을 먹으며 최태욱이 물었다.“간장게장을 계속 만드시네요.”“청양 장평에서 참게를 사와 담고 있어.”아버지께서도 견우를 데리고 오지 않고 혼자 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슬며시 물었다. “너 혹시 싸웠냐? 왜 견우와 같이 안 오고 혼자와?”“아뇨, 조금 바빠서 저 먼저 왔어요. 나중에 견우랑 같이 올 겁니다.”“정말?”9/13 쪽

“예, 같이 오려다 그냥 어머니도 보고 싶고 그래서 일찍 왔어요.”이런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끝내고 나서 안방에서 나왔다. 정원을 살피며 서성이고 있는 추동팔에게 조용히 물었다.“에이트, 밥은 먹었나?”“예, 행랑채에서 경호원들과 같이 먹었습니다.”“가서 봐야겠군.”최태욱은 경호원들이 지내는 행랑채로 가서 그들이 지낼 방들을 살피고 있었다. 모두 온돌방이고 침대가 없어 불편할 것 같아 물었다.“여기서 지내기 불편하지 않겠나? 식사가 먹기에 불편하지 않고?”“아닙니다. 아주 편하고 음식도 아주 좋습니다.”실재로야 어떨지 모르지만 경호 팀장인 트레블이 이렇게 답하고 있었다. 최태욱이 방안에 있는 장비들을 유심히 살피자 트레블은 조심스럽게 물었다.10/13 쪽

“대공, 여기서 계속 지내실 건가요?”“왜?”“위성 통신 장비 때문입니다. 대공께서 계속 여기서 지내시면 통신시설을 근처에 설치하려고요. 옆에 있는 전통예법체험관의 사무실을 이용할까 합니다.”“알았어. 그렇게 해.” 최태욱이 이렇게 답해 주자 경호원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차량이나 휴대용 위성통신 장비도 있지만 부피가 큰 고성능 위성통신 장비와 무전시설도 지니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최태욱은 자신이 아무리 다 놓아 버렸다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날 이후 최태욱은 새벽이면 근처의 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무술 수련과 조기축구를 경호원들과 같이 했다. 조기회 회원들은 처음에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더니 차츰 말을 걸고 있었다.“자네, 어쩐 일로 조기회를 다 나오나?”“당분간 강경에서 지내려고요.”11/13 쪽

“그럼, 계속 조기회를 나오나?”“예, 나와서 골키퍼나 해야죠.” 아침식사 후에는 경호원들과 같이 농촌지역으로 가서 수확을 돕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서 농민들과 대화를 통해 한국의 농촌 생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농촌에는 원역사보다 변한 점이 많았다. 한우의 경우 일찍 품종 개량되어 전보다 덩치가 상당히 커진 상태다. 양돈 사업도 품종 개량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생기고 있었다.그리고 농촌에는 인삼 재배 농가가 대폭 늘고 슈퍼옥수수 재배 농가가 늘었다. 산골에 있는 작은 논이나 밭은 뽕나무나 약용 식물들이 재배되고 있었다.주식인 쌀이야 자급자족이 되자 차츰 논에는 특용작물 재배가 많아지고 있었다.저녁이 되면 강경에서 사는 동창생들은 만나 지난 학창시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태욱아, 계속 강경에 있을 거야?”“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당분간은 강경에서 지낼 생각이야.”12/13 쪽

“그럼, 자주 만날 수 있겠네. 우리 어디 좋은 곳으로 단풍놀이를 가는 것은 어때?”“그러자고.” 가을이라 단풍놀이를 단체로 가자는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결국 최태욱이 경비를 모두 대기로 해 돈을 주게 되었다.친구들은 어린 나이에 워낙 거물이 되어 돌아온 최태욱을 처음에는 매우 어색하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어색함이 사라지고 다정하게 대하게 되었다.이제야 또래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실감하고 있었다.삶이란 사소한 것에서 행복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가끔은 자신 때문에 고심하는 여자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가족들과 같이 오붓하게 지내며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있었다.13/13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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