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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삶-331화 (331/657)
  • < --  [새로운 시대의 유럽]  -- >진한 정사 끝의 나른함은 기분이 너무 좋았다. 마치 권력의 한 축을 잡고 무섭게 질주하다가 모두 놓으며 느끼는 허탈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최태욱은 땀으로 얼룩진 레베이카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드리, 앞으로 공연히 스테파니 이모를 자극하지 마. 난산 후유증으로 상당히 예민해 있으니까. 특히 나이가 많으니 여간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야.”“알았어요. 오빠, 그래도 약속했으니 저와 기회가 되면 약혼은 해줄 거죠?”“당연하지. 그래서 이번에 정식으로 너를 왕세자로 책봉했잖아. 아직도 네 후견인이고.”“알았어요.”베네룩스 왕국의 국민들 중에는 레베이카를 추종하는 왕당파들도 많았다. 그들은 룩셈부르크 출신들이 주축이다. 그녀가 대학교를 룩셈부르크에서 다니고 거처도 그곳 왕궁을 사용하기 때문에 좋아하고 있었다.회1/13 쪽등록일 : 12.12.23 00:01조회 : 3880/3896추천 : 76평점 :선호작품 : 4979(비허용)

    “오드리, 공연히 함부로 정치인들을 만나지 말고.”“알았어요. 저 정치인들 별로 만나지 않아요. 공식행사장 이외에 사적으로 만나는 일은 없어요.”“아무튼 잘못하면 패거리가 갈라지니 특히 조심해.”“예.”벨기에와 룩셈부르크 출신들은 혹시 네덜란드 출신들이 권력을 일방적으로 장악할까 염려했다. 그래서 그들은 슬며시 레베이카를 정점으로 뭉치고 있었다. 별로 잡음이 없이 빠르게 통합된 나라다. 하지만 여전히 출신지역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남아 있었다.최태욱은 여전히 훤하게 드러난 탐스러운 가슴에 달린 분홍빛의 작은 돌기를 슬쩍 건들며 말했다.“국왕을 오래한다고 해도 피닉스는 최고 15년을 하게 되니 너무 초조해 하지 말고. 그런 정도 나이가 돼서 국왕을 해야 하기가 쉽다고 생각해.”“알았어요.” 2/13 쪽

    3국출신 왕당파 정치인이나 귀족들은 처음 합치며 합의된 사안은 존속시켰다. 그래서 피닉스 여왕은 국왕으로 임기가 종신이 아닌 15년이면 끝나게 된다. 그리고 5년 마다 의회에서 과반의 결의로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 새로 헌법을 개정하며 네덜란드 출신들은 그런 조항을 7년 임기로 해서 21년을 할 수 있도록 개정하려고 시도했으나 부결되어 버렸다.국왕의 경우 국정에서 다소 책임성이 없으니 표가 나는 실정이 아니면 연임이야 가능하다. 왕당파 귀족들이나 정치인들은 국왕에게 일부 권력을 넘기며 장기 집권의 폐해를 조금은 막을 안전장치를 해둔 것이다.그렇게 되어 국회에서 새로 헌법을 만들며 레베이카를 차기 국왕인 왕세자로 확정했다. 결국 최태욱의 입장에서는 전과 같지만 차기의 여왕까지 손에 쥔 막후 실력자다.더구나 이제 왕위 계승서열 3위인 아들까지 있으니 베네룩스의 왕권이야 그에 손아귀에 있다고 봐야한다. 막상 자신이 왕위를 차지하려고 하면 어떤 반발이 의외로 생길지 모른다. 굳이 국왕을 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권력이야 언제고 행사할 수 있으니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레베이카는 최태욱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저는 오빠가 저를 버리지만 않으면 국왕을 꼭 하고 싶지는 않아요. 국왕으로 살면 명3/13 쪽

    예롭기야 하겠지만 사실 무척 힘들어 보이더라고요.”“이제는 총리가 나라 경영을 다하니 어렵지는 않잖아?”“그렇지 않아요. 오빠야 아예 공식 행사에 잘 참석하지 않으니 편한지 몰라도 매번 여러 행사를 찾아다녀야 하는 저는 힘이 들더라고요. 힘들고 짜증이 나고 싫어도 항상 웃어야 하고요.”“그거야 어쩔 수 없지.”레베이카는 매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저도 요즈음 들어서야 오빠가 왜 자꾸만 높은 자리를 준다고 해도 피하는 이유를 알 것 같더라고요. 평범한 삶이 부러워 보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러니 스트레스도 풀 겸 내가 자주 여행을 다니자고 하잖아.”“알았어요. 힘들어도 제가 할 일이야 해야죠.”레베이카가 힘든 이유는 피닉스가 출산 이후에 아들의 양육을 전념하자 많은 공식 행사로 레베이카를 보내기 때문이다. 4/13 쪽

    삶이란 사실 어떤 분야에서 지내던 나름의 어려움은 있었다. 고귀한 신분으로 사는 여왕이나 대공주로 살아 마냥 행복할 것 같아도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개인의 사생활이 거의 없어 상당히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았다.다음날 대학교를 다니기 위해 레베이카가 룩셈부르크로 떠나고 있었다.“가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시간 있으면 아프리카에 대해 알아보고.”“알았어요.”다음에는 아프리카의 오지를 여행 다닐 생각이라 체력을 기르라는 당부다. 그녀가 떠나고 나자 최태욱도 안트베르펜을 떠나 에인트호벤으로 가게 되었다. 에인트호벤이라면 최태욱이 전생에 살면서 익숙하게 듣던 도시다. 한국에게 월드컵축구의 4강이라는 성과도 거두게 해준 히딩크 감독이 연상되고 있었다.‘지금 히딩크 감독은 뭐하며 살까? 지금도 흑인인 여자와 파트너로 지낼까?’축구 감독 이외에 히딩크에 대해 아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최태욱은 그런 것 보다 오늘 아주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에인트호벤으로 방탄 리무진을 타고 국도를 따라 5/13 쪽

    천천히 가고 있었다. 그의 뒤를 왕실경호원들이 탄 리무진 2대가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이거야 원, 바람피울까 따라 다니라고 하나 뭐 하러 왕실경호원을 싫다고 해도 굳이 보내나 모르겠네.”“대공, 안전을 위해 그러는 거니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전자회사나 잠깐 들리면 되는데.”최태욱이 에인트호벤으로 가는 이유는 전자회사 때문이다. 한국에서 486 컴퓨터를 생산하는 SG 전자와 에인트호벤에 자리한 필립스 전자와 합병하는 업무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다. 사실 전자 산업은 투자가 많아야 되는 분야다. 최태욱은 한국에 SG 전자회사를 설립했지만 더 이상 규모를 늘리지는 않았다. 이유는 자칫해 한국의 내수 시장을 두고 다른 전자회사와 마찰이 심하게 일어날 것을 염려해서다.‘잘 돌아가는 기업이야 놔두는 것이 좋지.’이런 기본 적인 생각으로 자신이 그쪽 분야로 진출을 애써 자제하고 있었다. 어차피 6/13 쪽

    나중에야 삼성전자에서 유럽으로 진출하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으로는 요원한 일이다. 그래서 필립스 전자의 일부시설을 인수하거나 합병을 통해 유럽 공략을 나서기로 결정한 것이다.보좌관인 윤민규에게 최태욱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필립스 전자가 배짱을 많이 부리겠군요.”“아마 그렇겠죠. 미국 휴즈 사와 협력해 스팅거 미사일을 생산해 돈을 많이 벌었으니까요.”“전병훈 사장이 협상을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대공, 그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조금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그렇군요.”리무진을 타고 이동하며 두 사람은 잠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면도를 깔끔하게 한 윤민규를 보며 최태욱이 슬며시 물었다.“보좌관도 필립스에서 생산한 면도기를 쓰나요?”7/13 쪽

    “예, 면도기하면 필립스가 제일 유명하죠.”최태욱은 여전히 턱에 수염이 전혀 나지 않은 동안이다. 그래서 면도기가 전혀 필요 없었다. 하지만 필립스 회사가 성장한 배경에는 면도기가 큰 역할을 해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인구가 약 20만명인 에인트호벤은 베네룩스의 중심에 위치하고 동쪽으로 독일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시다. 이미 필립스 전자의 주식 20퍼센트는 매입한 상태다.‘눈 딱 감고 먹어버려?’자꾸만 먹어 버리고 싶은 불같은 욕망이 생기고 있었다. 소액 주주도 많아 주식의 약 40퍼센트를 인수하면 경영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최태욱은 그런 욕망을 애써 누그러트리고 있었다.‘욕심이 너무 과하면 안 돼.’최태욱은 막강한 권력도 가지고 있고 재력도 엄청난 규모로 가지고 있다.  SG 그룹에서 처음으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려고 했다. 그러자 미국으로 투자하는 바람에 자금이 대부분 고갈된 상태인 필립스 전자에서는 기겁하게 되었다.8/13 쪽

    절묘한 타이밍에 타이거 대공이 기업을 삼키자고 덤비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타이거 대공이 자신들의 기업을 노리자 겁에 질려 버렸다. 자신들이 타이거 대공의 심기를 건드렸나 매우 걱정했다. 아직 그런 사실은 드러나지 않아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고 판단했다. 서로 협상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SG 전자의 전병훈 사장이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윤민규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대공, 그냥 인수를 시도하지 그랬어요? 하시려고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상태인데요.”“남이 죽게 키운 회사 거저먹다가는 나중에 나도 똑 같이 뒤치기 당하는 수가 있어요. 그리고 국민들이 나를 비난하면 결국 기업도 살아남지 못하고.”“인수해서 더 잘 운영하시면 되지 않나요?”“그러려면 내가 필립스 회사에 목을 매고 집중해야 하니 그건 힘들죠. 나야 달리해야 할 일들이 많으니 그렇게 하기는 어려워요.”9/13 쪽

    “그렇군요.”적대적 인수합병은 상대기업의 동의 없이 강행하는 기업의 인수와 합병을 뜻한다. 통상 공개매수나 위임장 대결의 형태를 취한다. “대공, 공개로 매수한 20퍼센트 주식 이외에 얼마나 더 가지고 있죠?”“대략 10퍼센트 주식도 매입한 상태죠.”“많군요. 그렇다면 우호적인 사람만 모으면 경영권 인수야 쉽겠군요.”“그렇다고 봐야죠. 그러니 필립스 회사에서 협상하자고 하는 것이고요.”공개매수는 단기간에 의도한 가격으로 대량의 주식을 공시해 매집하게 된다. 인수대상 기업도 적극적으로 맞대응하게 되므로 그 과정에서 주가가 오른다. 그리하여 시세차익을 노리는 공개매수도 생기게 되고, 주식을 매집한 후 대주주를 협박하며 이미 매집한 주식을 비싼 값에 되파는 그린메일도 있을 수 있다. “대공, 주식은 산다면 파실 생각입니까?”“아니, 반드시 일부 시설은 인수할 생각이죠. 이번에 만나서 협상이 잘 안되면 위임장 10/13 쪽

    대결을 벌여 경영권을 차지해 분리 매각하고 나머지만 다시 돌려주던지 해 봐야죠.”위임장 대결이란 주총에서 의결권을 갖고 있는 위임장을 보다 많이 확보해 현 이사진이나 경영진을 자신이 의도한 대로 갈아치우는 방법이다.적대적 M&A에 대항하기 위한 방어책은 인수자의 매수자금에 부담을 주는 방법이 있다. 또는 재무적인 전략, 회사정관을 이용한 전략 등이 있다. 에인트호벤의 필립스 전자회사에 도착하자 사장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대공, 어서 오세요.”“처음 만나는 군요.”“예, 저희들이야 자주 봤지만 이렇게는 처음입니다.”최태욱은 안내를 받아 필립스 전자의 사장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 전병훈 사장이 급하게 보고하고 있었다.“대공, 대공께서 원하는 그대로 전자회사의 컴퓨터 생산 분야와 통신 분야는 저희 쪽으로 넘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연구 인력도 마찬가지고요.”11/13 쪽

    “그래요? 그렇다면 잘 협상이 되었는데 왜 전화를 안했어요?”“스텐 궁으로 전화하니 이미 이곳으로 오기 위해 출발했다고 해서 그냥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최태욱은 필립스 전자 사장을 보며 말했다.“내가 필요한 분야는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그 시설에 대한 인수 가격을 말해 주세요.”“그럼, 저희 회사 주식은 그냥 보유하고 계시려고요?”“예, 잘 되어가는 회사의 주식이니 가지고 있을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경영권을 달라고 요구는 안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필립스 전자회사의 전체를 날름하려고 하나 걱정했다. 의외로 컴퓨터의 본체만을 생산하는 시설만 인수한다니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렇다면 회사의 이름은 어떻게?”“필립스에서 좋다고만 하면 SG 필립스 전자로 바꿀 생각입니다. 내가 주식을 2-30 12/13 쪽

    퍼센트 가지고 있으니 회사명을 그렇게 정해도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PC의 브랜드 명인 스타게이트를 여기서도 생산할 생각입니다.”“아, 그런 이유로 주식을 사신 것이군요.”“여기에 별도로 전자회사를 세우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또 과잉투자도 염려되어 인수해 키우는 방법을 선택한 겁니다. 그러니 그 분야만 넘기시고 지금처럼 반도체와 모니터는 생산해 공급해 주면 됩니다.”“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자금이 고갈되어 걱정하던 터에 회사의 일부분만 매각해 많은 자금이 생기게 되었다. 필립스 전자는 다른 전자제품 생산이나 반도체 분야에 투자를 더 할 여력이 생기게 되었다.13/13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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