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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삶-288화 (288/657)
  • < --  [사랑과 환희]  -- >[사랑과 환희]곧게 뻗은 침엽수가 가득한 숲에 매복한 최태욱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스나이퍼 훈련을 받은 터라 매복하고 기다리는 행동은 아주 자연스러웠다.소음저격소총을 들고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동안 멀리서 총소리가 들렸다.탕! 탕!연달아 쏘는 양국철의 엽총소리와 함께 아주 멀리에서 급하게 뛰는 모습이 보였다. 긴 뿔을 가진 사슴이 사방 30미터 정도 되는 개활지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넓은 초지가 없이 숲과 숲으로 이어지는 환경으로 인해 사격할 시간은 아주 짧았다. 스코프에 눈을 대고 매복한 상태로 기다리던 최태욱은 사슴을 향해 지그시 방아쇠를 당겼다.푸식! 푸식!연달아 당기는 사격방법으로 개활지를 가로 질러 다른 숲으로 들어가려던 사슴 두 마리가 짧은 신음을 토하며 그대로 풀숲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두 마리 모두 머리를 관통당해 죽었다.회1/13 쪽등록일 : 12.12.07 15:28조회 : 4130/4146추천 : 71평점 :선호작품 : 4978(비허용)

    “사격 끝!”특수부대원들이 사용하는 이어폰을 통해 말하자 쓰러진 사슴 주변으로 대원들이 급하게 모여 들었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피닉스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머나, 사냥을 너무 쉽게 하네요.”“왜? 이상해?”“대공께서 사격을 잘하는지 알고 있지만 너무 쉽게 사냥을 하니 신기하죠.” 세계 최고들이 모이는 올림픽 경기의 금메달 출신답게 최태욱의 사격 솜씨는 그야말로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두 사람은 매복한 지점에서 사슴이 쓰러진 곳으로 다가왔다.머리가 바수어진 사슴을 보던 피닉스는 너무 처참하게 죽어 있는 모습에 고개를 슬며시 옆으로 돌리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사슴이 너무 불쌍하네요.”2/13 쪽

    아마 너무 쉽게 사냥당해서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 있으니 그런 생각이 더 심하게 가슴을 울린 모양이다. 그러나 양국철을 비롯한 대원들은 빠르게 사슴피를 마시거나 뿔을 잘라내고 있었다.사삭 사삭.빠르게 두 마리의 사슴을 해체하며 양국철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대공, 몇 마리까지 잡을 수 있어요?”“본래는 두 마리인데. 특별히 나에게는 10마리를 잡아도 된다고 하더군.”“아! 그럼 다음에 쏘실 때는 배를 겨누세요.”“그건 왜요?”“사슴을 박재로 만들어 보려고요.”“알았어요, 다음에 잡을 때는 그렇게 하지요. 기왕이면 제일 큰 놈으로 사냥해 박재를 만들어 봐야겠군요.”3/13 쪽

    “사슴머리는 요트에도 치장하면 좋을 겁니다.”유럽에서는 몸 전체를 박재하기도 하지만 머리만 잘라서 박재로 만들어 벽걸이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양국철의 생각에는 두 가지 방법으로 몇 개의 박재를 만들자는 의견이다.두 마리 사슴을 모두 해체하고 나자 최태욱 일행은 야영장으로 돌아왔다.산길이 나있는 야영장에는 대형인 원형텐트 3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하나는 최태욱이 사용하고 두 개는 대원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불에 구워진 사슴 고기를 먹으며 최태욱이 양국철에게 물었다.“박재를 만들려면 시간이 걸리죠.”“예,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그럼, 사냥은 내일 끝내기로 합시다. 그러니 양 원사도 저격 소총을 준비해요.”“알겠습니다.”최태욱은 어차피 모든 것을 잊고 이곳에서 휴가를 보낼 생각으로 찾아왔다. 그러니 4/13 쪽

    급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으나 박재를 만들 생각을 하니 조금 빨리 사냥을 끝낼 생각이다.이날 밤 피닉스는 진한 정사를 벌이고 곤하게 잠을 자다가 화들짝 놀라 깼다.“으아악!”나란히 누워 잠자던 최태욱은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놀라 깨어나 물었다.“왜? 뭐에 놀란 거요.”“그냥요.”피닉스는 낮에 잡은 사슴이 마치 붉은 악마로 변한 것처럼 몸 전체를 붉은 피로 뒤집어쓰고 자기에게 달려들자 놀라 깬 것이다. 더구나 피로 얼룩져 흉측한 사슴의 얼굴이 때로는 최태욱으로 변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너무 끔찍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피닉스는 두려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대공, 사슴 사냥은 양 원사에게 맡기고 우린 낚시질이나 하죠.”5/13 쪽

    새 생명이 태어나길 간절하게 바라는 피닉스로는 살육장면을 본다는 것이 정말 싫었다. 신이 자기에게 복을 주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최태욱은 피닉스의 표정을 보고 대략 왜 이러는지 짐작했다.‘진짜 아이를 간절히 원하고 있군.’ 지금은 피닉스를 위해 일부러 모든 것을 잊고 휴가를 보내는 중이다. 그러니 최대한 그녀가 원하는 바를 들어줄 생각이라 슬며시 물었다.“왜, 피를 보는 것이 싫소?”“예, 사슴사냥은 너무 잔인한 것 같아서 보기가 싫어요.”피닉스가 이렇게 답하자 최태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생각을 말했다.“당신이 싫다면 사냥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우리는 다른 일을 하며 지냅시다. 나는 내일부터 그림이나 그려볼 생각이오.”“어머, 그림을 그리려고요.”“그렇소. 나도 그림을 그려 본지 오래 되어 그림을 그려볼 생각이요.”6/13 쪽

    너무 바쁘게 살았다는 생각으로 휴가를 보내기로 했으니 사슴 사냥 대신에 그림이나 그리며 지내는 것이 오히려 좋다고 판단했다. 새롭고 아름다운 자연이 잘 보존된 풍경들을 보니 화폭에 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최태욱이 특히 그리고 싶은 장면은 이곳에서만 나타나는 오로라 현상에 매료 되어서다.“뭐를 그리려고요?”“유화로 오로라를 한번 그려볼 생각이요.”“어마, 오로라를 그리려고요?”오로라를 그려 본다는 말에 피닉스는 얼굴이 환해지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어려서 부모 손을 잡고 오로라를 보던 기억이 떠올라 너무 좋아했다.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오로라 현상은 너무도 진기한 광경이다. 하지만 너무 순간에 지나가는 장면이라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빠르게 움직이는 오로라를 과연 그릴 수 있을까?’오로라는 태양에서 방출된 플라스마의 일부가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로 진입하7/13 쪽

    면서 공기와 반응하여 빛을 내는 현상이다. 북반구와 가까운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오로라의 색과 모양은 자연현상으로 일어나서 매우 다양했다. 가장 보편적인 색은 녹색 혹은 황록색으로 때로는 적색, 황색, 청색과 보라색이 보이기도 한다. 오로라(aurora)는 새벽이란 뜻이다.최태욱이 오로라를 그린다는 소리에 피닉스는 자신의 과거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 슬며시 말했다.“대공, 부부가 아이의 손을 잡고 오로라를 바라보는 장면을 그리는 것은 어때요?”“왜? 그런 그림을 가지고 싶소?”“예, 제가 아마 그런 어려서 추억이 있어서 그런지 그런 그림이 제일 좋아 보여서요.”피닉스는 자신이 어렸을 때 제일 행복해하고 처음 오로라를 보며 감격에 겨워하던 기억을 떠올려 작품을 그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지금 현재 자신이 바라는 어떤 모습도 가미해 조심스럽게 말했다.“기왕에 그리는 그림이니 부모 손을 잡고 있는 아이는 사내애로 그려 주세요.”8/13 쪽

    “알았소. 그럼 그렇게 해봅시다.” 최태욱은 양국철에게 사슴사냥을 전담시키고 나서 유화로 오로라를 그리게 되었다. 먼저 부부가 사내 아이를 가운데에 놓고 오로라를 바라보는 장면에 대해 스케치를 하고 오로라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흔하게 보이던 오로라는 의외로 쉽게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필요하면 없다더니 며칠을 지켜봐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최태욱은 화폭의 1/3만 대략 그려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최태욱 보다 피닉스가 더욱 초조해서 말했다.“이상하군요. 오로라가 나타나지 않으니.”“기다리다 보면 나타나겠지.”드디어 기다리던 오로라 현상이 일어나기는 했다. 그러나 자신이 그리고 싶었던 장면이 아니고 뭔가 장엄한 모습이 아니라 실망하고 말았다.“에이, 저건 그냥 석양빛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네.”세상은 이렇게 흔하게 보이던 것이 필요할 때는 나타나지 않는 현상을 ‘개똥도 써먹9/13 쪽

    으려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최태욱은 지루한지 모르고 하늘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서 기다리라면 힘들지 모르지만 사랑으로 가슴이 충만한 피닉스가 옆에서 지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같이 있으니 지루한 줄을 몰랐다.사랑이란 폭풍같이 갑자기 밀려와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봄에 내리는 이슬비와 같이 몸이 젖는지도 모르는 가운데 촉촉하게 젖어들어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한국사를 전공한 피닉스는 많은 한국의 전래동화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제일 좋았던 동화는 뭐요?”“저는 심청전과 흥부전을 좋아해요.”“그렇소? 그래서 한국어 교과서에 넣고 판소리 명창들도 자주 초청하는 거요?”“예, 심청전은 효를 말하고 흥부와 놀부야 권선징악이나 형제간의 우애를 나타내니 그렇죠.”“지금 한국에서는 놀부전이 유행인데.”10/13 쪽

    일부에서 흥부는 요행수나 바라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그려지고 놀부는 실리를 중시하는 합리적인 사람으로 그려진 놀부전이 유행하고 있어 해보는 소리다. 그러자 피닉스는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사람들도 있고 추구하는 목표가 서로 다르니 그런 의견들도 있겠죠. 하지만 세상이란 사람이 살아가면서 근본적으로 탐욕스럽게 살기보다는 선하고 남에게 베푸는 것을 더 중시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교육해야 되죠.”       이렇게 말하던 피닉스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킥킥거리며 웃었다.“큭! 큭!”“갑자기 왜 그렇게 요상하게 웃는 거요?”“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 준 제비가 떠올라서요. 한국에서는 제비를 달리 표현한다면서요. 여자를 잘 꼬이는 남자를 강남제비라고.”“아, 그거요. 본래 강남지역에 유흥업소가 많아지자 춤을 추려고 오는 돈 많은 여자들의 돈을 노리고 접근하는 남자를 제비족이라고 하는 거요. 본래 춤을 추기 위해 입는 연미복의 뒷모습이 제비꼬리처럼 둘로 갈라진 것도 상징하기도 하는 터라 그렇게 불11/13 쪽

    리는 거요. 그래서 그중에 여자를 잘 꼬이고 돈도 잘 후리는 제비를 왕제비리고 부르기도 하죠.”이렇게 진지하게 설명하자 피닉스는 더욱 크게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쿡! 쿡! 쿡! 그만 웃겨요. 너무 웃겨서 배가 아파요.”도통 왜 웃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얼굴을 자꾸 힐끗 거리며 바라보더니 계속해서 크게 웃으니 너무 이상해 물었다.“왜? 자꾸 내 얼굴을 보며 그렇게 웃는 거요.”“약간 틀리기는 해도 당신도 여자가 주변에 너무 많으니 어쩌면 당신이야 말로 진짜 왕제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뭐요? 왕제비라뇨? 나는 사교춤이라면 전혀 출지 모르니 제비족은 절대로 아닙니다. 당신이야 말로 내가 보기에는 꽃뱀이라고 봅니다.”“어머, 저를 꽃뱀이라뇨? 꽃뱀은 남자를 꼬이는 어린 여자들을 칭하는 말인데요.”피닉스는 한국어를 잘해 매일 한국 신문이나 방송을 보기 때문에 이런 용어에 대해 12/13 쪽

    잘 알고 있었다. 그러자 최태욱이 즉시 다른 말을 추가했다.“본래 진짜 꽃뱀은 나이가 30살이 넘어 많은 편이고 당신처럼 사회적 신분이나 학벌도 학사나 석사는 되어 비교적 높은 법입니다.” 전 같으면 이런 대화 자체를 나눌 시간도 없고 서로 어색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서 그런지 별로 꺼리지 않고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오로라를 기다리며 가볍게 농담도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최태욱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촉촉하게 스며든 피닉스의 사랑으로 흠뻑 젖어들고 있었다.이런 모습을 보는 양국철 원사는 은근히 걱정이다. 둘이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지켜본 요트의 함장은 매우 흐뭇하고 만족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13/13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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