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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삶-286화 (286/657)
  • < --  [보이지 않은 힘]  -- >진한 정사로 인애 완전히 힘이 소진되어 너부러진 피닉스의 모습을 보던 최태욱이 그녀의 눈가를 보고 놀랐다.‘눈에 주름이 보이네.’최태욱은 나이가 만으로 27살이 되었어도 여전이 이제 막 20살 정도로 보이는 동안(童顔)이다. 피닉스 대공주 역시 동안이라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하지만 피닉스의 잠든 얼굴은 분명 전과는 달리 조금은 나이가 더 들어 보이고 있었다.‘나이는 결국 속이지 못하나?’피닉스 대공주가 나이를 속였다는 것이 아니다. 얼굴 아무리 어리게 보이는 동안(童顔)이라도 나이가 점점 들어가며 생기는 ‘몸속의 변화는 감출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다. 어쩌면 그동안 있었던 눈가에 잔주름은 항상 화장한 얼굴이라 발견 못했을 수도 있었다. 피닉스는 진한 화장은 안하지만 잠자리에 들 때도 생얼로 자신과 같이 지낸 경우가 거의 없었다.최태욱이 그런 피닉스 얼굴을 보며 자신에게 나타난 동안(童顔) 현상을 두고 깊이 생각했다.회1/13 쪽등록일 : 12.12.06 19:07조회 : 3989/4002추천 : 69평점 :(비허용)평점 :(비허용)선호작품 : 4978

    ‘나도 어리게 보이다가 갑자기 늙어 보이면 기분이 별로인데.’남의 일이 나에 일이다. 지금은 너무 어려보이는 자신에 모습이 때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천천히 늙어 보이는 것이 좋지.’잠시 이런 생각을 해보지만 최태욱은 아무래도 피닉스 대공주의 약간 변한 얼굴모습은 건강 때문 같다고 판단했다. 그녀의 건강이 이상하게 변한 것은 무엇보다 임신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로 인한 상상임신의 후유증이다.세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으니 의사의 진단대로라면 세 번이나 낙태한 정도의 심한 후유증이 그녀의 몸속에서 일어난 것이다.‘뭐 하러 그렇게 아이에 대해 집착하는지 모르겠어.’아무리 같은 침대를 사용하는 깊은 사이라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태욱은 피닉스가 왜 집착하는지 겉으로야 잘 알고 있지만 그녀의 내면에 깊이 자리한 속까지는 알 수 없었다. 최태욱은 그저 눈가에 작은 잔주름이 생긴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얼굴을 쓰다듬어 주다 피닉스를 품에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2/13 쪽

    최태욱이 깊이 잠든 그 시간에 피닉스 대공주는 무서운 악몽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이상한 동물에 몸이 칭칭 감겨 꼼짝도 못하고 그저 비명만 지르고 있었다. 머리에 뿔이 달린 모습이고 날개까지 달린 괴상한 동물이었다. 악몽을 꾸면서도 피닉스는 자신의 몸속에 뭔가 크게 요동치는 그런 느낌이 좋았다.“아아아악!”가끔은 배가 요동치는 어떤 희열로 인해 괴성을 작게 지르며 잠꼬대를 연신 토해냈다. 때로는 커다란 별똥별이 자신의 몸으로 떨어지는 광경도 경험했다.  다음날 이런 꿈이 너무 이상해 피닉스는 타이거 대공에게 물었다.“그런 괴물이 다 있나요?”“아, 잘 모르나 보군. 그건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드레곤이 아니야?”“어머, 그러네요.”“그런 꿈은 한국에서는 본시 태몽이라고 하는데. 태몽은 본시 다른 사람이 꾸어 주는 경우도 많은데 당신이 너무 간절하니 직접 그런 꿈을 꾼 모양이군.”3/13 쪽

    “어마, 태몽요.”사실 최태욱도 이상한 꿈을 꾸기는 했다. 그런데 꿈에 자기 몸에서 황용이 튀어나와 멀리 사라지는 꿈이라 그게 영 찜찜해 말하지 않았다.‘태몽이면 용이 내 몸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그것이 도망갔으니 아닐 지도 몰라.’피닉스야 기독교 신자고 뭐고 지금 임신할 수만 있다면 종교라도 바꾸고 싶다. 한국에서 용하다는 박수무당이라도 찾아가 푸닥거리라도 하고픈 절실한 심정이다. 피닉스는 급하게 네브소냐를 불렀다.“실장, 집시점성가를 찾아가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해봐. 뭐라고 하는지.”“예, 알아보죠. 하지만 제가 아는 상식으로도 그건 태몽이 틀림없어요. 별동별을 보면서 소원을 말하면 다 들어 준다고 하잖아요.”“그런가? 빨리 한국 대사관으로 연락해서도 알아봐.”동양학을 전공하고 한국사를 전공했으니 태몽으로 인한 전설도 많이 안다. 그러나 자신의 일이다 보니 함부로 단정하기가 어렵다. 4/13 쪽

    며칠 뒤에 아침 마주앉아 한국 궁중요리인 한정식으로 식사하던 피닉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공, 저와 여행 좀 가실래요?”“여행? 어디를 가고 싶은 거요?”피닉스는 어제 북두칠성이 보이고 그와 동시에 온천지가 환해지는 백야 현상을 꿈꾸게 되었다. 갑자기 어려서 봤던 백야를 떠올리고 그곳을 다시 가보고 싶었다.“노르웨이요. 저 백야를 보고 싶어요.”“노르웨이를 자주 가는 것 같던데 아직도 백야를 구경하지 못했어요?”“예, 아주 어려서 한번 부모님과 같이 백야를 본 기억은 있지만 그게 너무 어려서 일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해요. 그리고 전에는 여왕신분이라 사실 구경을 시간도 없었고요. 대공만 좋다면 요트를 타고 가보고 싶네요.”전과 달리 조금은 허약해진 모습으로 이렇게 말하자 최태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5/13 쪽

    “알았소. 얼마나 여행을 가려는 거요?”“시간은 정하지 않고 그냥 당신이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좋지요. 그곳으로 가면 관광도하고 때로 사슴 사냥도 하며 즐기면 시간이야 얼마든지 보낼 수 있죠.”이제 여왕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으니 한가하게 둘이 여행을 다니자는 소리다. 물론 직접 챙기려고 한다면 피닉스나 최태욱은 모두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단 놓아버리려고 하면 지금이 제일 한가한 때라고 볼 수 있었다.최태욱은 자신도 어디 푹 처박히고 싶은 심정도 있어 이내 답했다.“알았소. 그럼 떠나도록 합시다.”“정말요?”“다 잊고 푹 쉬다가 옵시다.”최태욱이 이렇게 답하자 힘없이 있던 피닉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벌떡 일어나 급하게 방문 밖을 향해 크게 외쳤다. “실장! 빨리 여행 준비해.”6/13 쪽

    “넷!”피닉스가 바쁘게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최태욱도 준비하게 되었다. 사슴사냥도 할 수 있다니 소음저격 소총도 준비하고 엽총도 준비했다. 오래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니 윤민규에게 지시해 동행할 경호원들도 보강하게 되었다.아무리 한가해서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두 사람의 신분은 장기여행이 그리 간단치는 않았다. 윤민규의 연락을 받은 해군에서는 기회에 노르웨이왕국으로 해군의 기동훈련으로 같이 떠나기로 정했다. 그래서 호위함인 프리기트 함정을 노르웨이로 급파하기로 결정했다.500톤급 호화요트는 전에는 네덜란드의 피닉스 여왕 개인 소유였다. 그러나 이제는 왕실 전용이자 연합왕국의 해군 1호 함정이다. 3국이 통합하는 과정에 피닉스는 많은 부분을 모두 버렸다. 왕위도 버리고 차기1순위도 양보했다. 개인소유인 많은 재산도 서슴없이 왕실 공동재산으로 넘겼다.피닉스가 요구한 것은 오직 타이거 대공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위치만 바랬다. 아니 그것도 어렵다면 타이거 대공의 자손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명분이 있는 위치만을 바란 것이다.암스테르담의 부두에는 많은 왕당파나 다른 정파의 정치인들이 여행을 떠나는 두 사람을 배웅하고 있었다.7/13 쪽

    “전하, 감축 드립니다.”왕당파 정치인이 이렇게 말하자 피닉스 대공주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이제야 여행을 떠나게 됐네요.”“저희들이 무능해서 이제야 성사되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늦게라도 가게 됐으니 된 거죠.”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이번이 신혼여행을 떠나는 것이라고 의미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출항하는 호화요트와 프리키드 함정에는 오색테이프와 풍선들이 달려 있었다.서서히 부두를 떠나는 두 척의 함정을 바라보던 정치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자네, 점성가 만나 봤나?”“그래, 집시 점성가도 만나고 한국에서 점쟁이도 불러 이미 알아 봤어. 분명이 이번에는 공주님이 생긴다고 하더라고.”8/13 쪽

    “뭐? 그렇게 고대했는데 공주님이야?”두 사람은 귀한 정보를 네브소냐 비서실장에게 들었다. 피닉스 대공주가 계속해서 태몽에 해당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하니 나름 자신들의 가문의 미래를 생각해 알아보고 있었다.그 결과 다들 태몽이라니 이들은 상당히 기대가 커진 상태다. 전에는 워낙 다급한 입장이라 공주라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항상 욕심이 늘어나는 법이다. 확실하게 임신된다는 점성가의 예언에 기왕이면 왕자라면 더 좋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쉿! 떠들지 말라고.” “알았어.”사실 점성가 말에는 아들인데 그것을 미리 떠들면 천기누설이라고 했다. 공주라고 해야 아들을 낳는다고 말해 공주를 낳게 된다고 하고 있었다.호위함으로 따라가는 프리키드는 최고 속도가 32노트까지 나가는 최신형 함선이다. 그리고 프리키드 함정은 최태욱과 약간 관련이 있었다. 최태욱이 그려준 스텔스 기능을 지닌 함정 디자인을 처음으로 도입해 건조한 함선이다.베네룩스 왕국은 이제 앞으로 건조되는 모든 함정은 최태욱이 그려준 함정 디자인을 9/13 쪽

    바탕으로 스텔스 기능을 지닌 함정으로 교체하게 된다.첨단 장비에 대한 아이디어나 디자인을 넘겨주며 최태욱은 항상 조건을 붙였다. 자신이 알려준 디자인이나 어떤 기술은 반드시 한국 정부와 공유해야 된다고 했다. 그로 인해 한국도 자연스럽게 베네룩스와 똑 같은 형태의 함정을 건조하고 있었다.  은장 무공훈장을 받은 양국철 원사도 최태욱의 경호를 겸해 특별히 특공부대의 부하들과 같이 호화요트를 타고 있었다. 일종에 보상 차원에서 휴가를 같이 떠나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을 떠난 두 척의 함정은 어느새 북해 유전지대로 들어서고 있었다. 양국철은 갑판에 서서 멀리 보이는 거대한 유전의 시추선을 바라보고 있는 최태욱에게 슬며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대공, 너무 과한 영광입니다. 같이 여행을 가다니요.”“다친 다리는 어때요?”“거의 다 나았습니다.”“후유증은 없고요?”10/13 쪽

    “예, 전혀 없습니다. 휴가 끝나면 정상적으로 업무에 복귀할 수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이제 나이도 있고 그러니 훈련교관들 감독만 하세요.”“넷!”      최태욱은 주변에 한국 출신들만 모이자 조용히 낮게 입을 열었다.“사실, 이번에 훈장은 내가 일부러 눌러서 은장과 동장으로 결정됐어요. 그러니 이해하세요.”“아, 그랬나요. 저희는 더 이상은 사실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모두 대공 덕분인데요.”최태욱은 이제 정식으로 대공으로 오르게 되었다. 긴 이름인 카리브 캉커러 타이거 최 코리아 카이저 대공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국빈이나 국가원수로 방문이 아니라 어떤 의식 절차는 없다. 다만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두 사람의 방문이라 노르웨이 국경인 해역으로 들어서자 노르웨이 해군에서도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호위함이 두 척이나 되는군.”11/13 쪽

    “대공의 막강한 힘이 그만 하다는 것이죠.”“그렇지는 않아요. 앞으로 어디서고 나의 직위를 놓고 함부로 논하지 마세요. 세상사란 보이는 힘이 전부가 아닙니다. 안 보이는 힘이 더 크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요.”“넷!”보이는 힘이란 자신이 표면에 드러난 대공이란 직위를 놓고 말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힘은 여전히 최태욱은 타국인으로 배척하는 국민들도 많으니 그들의 반발을 살 언행을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는 뜻이다.최태욱은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었다.“세상은 크건 작건 어떤 조직이던 보통 좌가 3이면 우도 3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중간층이 4가 됩니다. 또 그래야 그것이 정상적인 사회고요. 내가 말하는 것은 어떤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대략 그렇게 뭐든 패거리가 생긴다는 겁니다.”먼저 이렇게 서두를 꺼낸 최태욱은 보다 쉽게 다시 말했다.“자, 여기 10명의 사람이 작은 모임을 해요. 그런데 회비로 술을 먹자고 누가 발언했12/13 쪽

    어요. 그런데 이런 경우 술을 먹고 싶은 사람이 반드시 3명은 있어요. 그리고 술을 먹기 싫거나 아니면 바빠서 그냥 집으로 가야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3명은 존재한다는 겁니다.”“그렇겠군요.”“그러면 결정은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4명이 결정권을 가지는 겁니다. 그들이 먹자고 하면 먹는 것이고 안 먹고 싶다면 그냥 끝나는 겁니다. 그래서 흔히 정치권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부동층이라고 칭하지요.”“그리 생각하니 그렇군요.” “그래서 비밀 투표인 선거라는 형태가 벌어지면 어느 나라건 어떤 모임이던 부동층을 자기편으로 끌어드리려고 하죠. 내 생각에는 세상의 일이란 좌측도 아니고 우측도 아닌 중간계층이 결정하는 것으로 봅니다. 중간계층이란 평소에 말도 없고 크게 자기주장도 없으며 좌우 양쪽에서 보기에는 너무 답답하고 한심해 보이는 어중간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말하는 보이지 않은 힘이라고 칭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힘을 말하는 겁니다.”13/13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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