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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삶-202화 (202/657)
  • < --  [여인의 질투]  -- >진짜 가슴 저린 슬픔은 소리가 없는 법이다. 어머니가 평소에도 아주 건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방에서 누어있을 정도로 허약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혈색도 없고 쉽게 자리를 털고 외출하기 힘들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저러면 돌아가시는데.’한의약에도 어느 정도 경지는 달해 있으니 상태가 심각한 것 정도는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최태욱은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히고 머리가 띵하며 그저 눈물만 터져 나왔다. 주르륵.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또 다른 삶을 사는 최태욱은 집안의 가족들과 이상하게 정이 안 갔다. 그래서 일찍 독립해 따로 살았다. 그러다 결국 혈혈단신으로 먼 타국까지 날아가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모르지만 항상 추구하던 것이 있었다. 최태욱이 보기에 어머니는 몸이 허약하기도 하지만 다른 마음에 병이 깊어서다. 집과 회1/17 쪽

    멀어지고 있는 장남을 보는 어미의 쓰라린 마음이 어느새 화병으로 변했다. 이것은 어미로써 자식을 대하는 끝없는 사랑이었다.때로는 지극히 단순한 욕망에 의해 여자를 탐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가족들과의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했었다.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사랑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크윽!”터져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그저 바싹 마른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있었다. 자식은 부모의 고혈로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최태욱은 가녀린 손의 굻은 주름과 굳은살에 눈물이 저절로 흐르고 있었다. 부자라고 해서 여인들이 고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어머니가 살았던 시대가 여인에게 끝없이 고통을 감내하게 하는 시절이다. 눈물을 흘리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가 부드럽게 말했다.“왜 울고 그래, 다 큰 녀석이.”슬픔은 어린아이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나이가 많건 적건 상관없이 깊은 슬픔이 다가 오면 눈물이야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2/17 쪽

    후회와 자책감까지 밀려오자 최태욱의 눈물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한참을 눈물을 흘리던 최태욱이 조금 진정하자 어느새 들어 왔는지 아버지가 기침을 토했다.“험! 그만 나가봐라.”“예.”최태욱이 눈이 벌게서 나오자 마침 방위 근무복을 입은 동생인 최태수가 집안으로 들어오다 놀라 크게 외쳤다.“형!”“그동안 잘 있었냐? 어머니가 아프면 전화하지.”“아버지가 하지 말라고 하시니 못하죠. 엄마도 형이 걱정한다고 하지 못하게 해서.”“알았어. 다음에는 꼭 전화해.”“예.”3/17 쪽

    방위 근무복을 입고 있는 동생을 보며 최태욱이 물었다.“너 몇 개월짜리 방위냐?”“1년요.”본시 자신과 달리 형제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유약한 동생이다. 그리고 자신은 키가 190센티미터나 되지만 동생은 170센티미터를 겨우 넘는 정도의 평범한 키다.그래도 군대에 안갈 정도로 허약하지는 안아 물었다.“너 어떻게 방위냐?”“아, 형이 날 잘 모르네. 저 안경도 써요. 지금은 안 쓰고 있어서 그렇지.”아무래도 여러 가지 요인으로 군대를 가지 않고 방위로 근무하는 것 같았다. 최태욱이 자신도 방위에 해당하니 웃으며 말했다.“나도 방위 출신인데········. 너까지 방위냐?”“형이 왜 방위에요. 지금 군 복무 정식으로 다 하는 것 같은데.”4/17 쪽

    하긴 병역 혜택을 받아 6주일만 교육 받아 끝낼 사안인데 지금도 현역으로 근무하니 이상한 군 복무다. 두 사람은 군에서 훈련 받았던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족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게 되었다.최태욱이 참게를 많이 사오자 그것으로 찜을 해서 맛나게 먹고 있었다. “오랜만에 참게 찜을 먹어 보네요.”최태수의 말에 아버님이 웃으면 답했다.“전에는 강경은 참게가 너무 흔해 그냥 버릴 정도였는데.”최태욱이 참게 뚜껑에 밥을 넣어 비벼 먹으며 답했다.“많이 사왔으니 아주머니에게 말해 간장게장을 만들어 드세요.”“그렇지 않아도 함열 댁이 벌써 담고 있다.”원 역사보다 산업화가 빨라질수록 그로인한 환경 오염문제는 아주 심각해지고 있었다. 더구나 대형 공사가 전국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으니 더욱 그랬다.5/17 쪽

    전에는 그리도 흔하던 미꾸라지나 붕어도 사라지고 참게도 사라졌다. 논에서 메뚜기를 구경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백마강에서 흔하게 잡히던 강조개도 사라진지 오래다.문뜩 이런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하굿둑에 최소한 여수로는 내야 하는 것 아닌가?’자신도 기업하는 사람으로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너무 환경에 치우치다가는 치열한 국제무역 경쟁에서 버티기 힘든 산업 구조인 한국이라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최태욱을 식사를 마치고 나자 바로 홍삼을 가지고 동생과 같이 지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귀한 홍삼을 받은 노인들이 입을 떡 벌리며 좋아하고 있었다.“이 귀한 걸·······. 고맙네.”“지금처럼 앞으로도 제 가족 잘 부탁합니다.”“그럼, 걱정하지 마.”6/17 쪽

    부잣집이라 딱히 도와줄 일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주변에 혼사(婚事)가 있으면 동생이 운영하는 예식장으로 가라고 권하는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이렇게 답하고 있었다.최태욱이 바쁘게 지인들의 집을 돌아다니다가 대충 거의 다 돌았다 싶었는지 최태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형! 홍삼 남으면 나도 좀 줘!”“왜? 누구 가져다 줄 사람 있냐?”“응, 사실은 나 사귀는 여자 있어.”“그래? 누군데?”누구냐고 묻자 최태수가 조심스럽게 답했다.“초등학교 선생이야. 집은 부여 초촌이고.”“그러냐? 어디 초등학교?”“논산 반월이라 집에서 출퇴근하지.” 7/17 쪽

    “언제부터?”“몇 년 됐어. 나 방위 끝나면 바로 결혼할거고.”자신은 아직도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쉽게 버리기 어려운 수많은 여자를 탐색하고 다니는 중이다. 그러나 동생은 한 여자를 오래 사귀며 결혼한다니 조금은 이질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세상의 삶에 방식이 친형제라고 해도 너무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이러고저러고 간섭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궁금해 물었다.“결혼하면 너 어디서 살고?”“그야 살림집으로 들어와 살아야죠. 엄마도 아픈데요.”“여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어떻게 하고?”“약혼만 하면 퇴직하기로 약속했어요. 예식장 운영도 나 혼자서 하기 힘들고 그래서.”8/17 쪽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동생은 나름 확실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태욱은 혹시 동생이 필요한 것이 있나 생각해 물었다.“태수야! 너 혹시 내가 들어 줄 일이 있냐?”“정말요?”도와줄 일이 있냐고 묻는 말에 최태수는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즉시 요구할 것이 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형! 나 좀 도와줘. 사실은 우리 집은 좋다고 하는데 그 여자 집에서 우리 결혼을 심하게 반대해.”“왜?”“우리 집안 남자들은 타고난 바람둥이라고.”“뭐라?”전에 아버님이 전화로 이런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여러 여자와 자신이 계9/17 쪽

    속해서 스캔들을 일으키다가 보니 생긴 문제 같았다.“나 때문이냐?”“형도 조금 문제는 있지만 사실 아버님도 젊어서 소문난 한량으로 살았었나봐. 할아버지는 할머니 두 분과 사시고. 물론 자손 많이 낳는다고 그렇게 했지만 결국 아버님 혼자만 있잖아.”씨 도둑질은 못한다고 하더니 자신의 바람기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특별한 유전자 때문 같았다. 물론 어디 그게 조상 탓이냐 하지만 조금은 근거가 있기는 했다. “그래서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그 여자 할아버지가 훈장 하시던 분인데 형 붓글씨는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거야. 그러니 형이 그 여자 할아버지 만나서 족자 하나 선물하면 잘 될 것도 같아서······.”붓글씨야 당장 써도 되지만 선물로 주려면 표구해야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된다. 바쁜 일정으로 돌아다녀야하는 자기로는 동생 일이지만 무조건 오래 시간을 소모할 수는 없었다.‘어떻게 해결하지?’10/17 쪽

    잠시 생각을 하던 최태욱은 천인교에서 자신이 전에 만들었던 서예나 동양화 작품을 모두 회수해 놓아 보관 중이라는 것이 떠올랐다.최태욱은 일단 그런 작품 중에서 평풍 하나와 족자를 넘겨주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와 사랑방에서 쉬고 있는 강호철에게 지시했다.“강 비서, 천인교 총단을 다녀오지.”“예? 지금요?”“응, 내가 급하게 필요해서 그러니 족자 하나와 12폭 평풍 하나를 여기로 가져와.”“넷! 하지만 회장님이 전화는 직접 해줘야 합니다.”“우선 떠나라고 내일 아침에 당장 쓸 것이니까.”“넷, 출발하죠.”   최태욱은 강호철이 경호원 두 명과 같이 리무진을 타고 급하게 떠나는 것을 보고 천인교 총단으로 전화해 족자와 평풍을 반출하라고 지시했다.11/17 쪽

    다음날 평풍과 족자를 동생에게 넘겨주며 말했다.“내가 사돈 될 집으로 찾아가기는 곤란하니 네가 가지고 가서 선물로 주고 설득 시켜봐.”“알았어요.”최태수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최태욱은 즉시 강호철에게 지시했다.“우리, 군산으로 가지.”“넷!”어머님이 병환 중이지만 당장 어찌 되는 병은 아니라 최태욱은 당초 일정대로 움직이고 있었다.한편 멀리 네덜란드에서는 피닉스 여왕이 그동안 여러 권의 족보를 통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녀의 생각은 참으로 황당하면서도 어찌 생각하면 있을 수 있는 논리다.12/17 쪽

    네덜란드 출신 선원으로 조선국에 귀화한 박연의 자손인 박씨 여인이 최씨 가문의 남자와 결혼했다는 새로운 학설을 정리하고 있었다.매우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됐어. 일단 이런 정도 정리하고 적당한 사람에게 이런 논리를 슬쩍 주입시켜 그 사람이 소리 없이 주장하도록 하는 거야.’최태욱은 네덜란드와 관련이 많은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과거 조선국으로 귀화한 박연의 자손과 혼인한 혈통을 지녔다는 논리를 슬며시 확산시킬 생각이었다.하지만 자신이 이런 논리를 처음 만든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정말 큰일이다. 그러니 누구도 모르게 이 작업은 추진되어야 한다.‘조심해야 된다고.’그래서 마침 최태욱 주변에서 지내다가 이제 왕궁으로 들어와 자신의 경호원으로 근무하게 된 양인복을 조용히 불러 은밀하게 지시했다.이미 자신이 낳게 되는 최태욱의 아들을 국왕으로 만든다니 자신 편으로 완전히 돌아온 사람이다. 그러니 설득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대략 꼭 학설로 주장하지 않아도 되니 적당이 운은 떼고 물었다.13/17 쪽

    “양, 경호원, 이것을 몰래 멀리 퍼트릴 방법이 있나?”“있습니다.”“어떻게?”“제가 안태형 호법님을 만나면 됩니다.”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본 기억이 나는 인물이다. 가만히 떠올리니 몽블랑 산에서 자주 안 호법이 반드시 구하러 온다고 중얼거리기도 했었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그토록 믿던 사람이니 능력도 뛰어나고 충성심도 대단한 인물이 분명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능력이 뛰어난가?”“예, 그분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이런 정도는 아주 쉽게 퍼트릴 수 있을 겁니다.”“정말이지?”“예. 하지만 그분은 본시 백작님은 반드시 한국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분이라 이런 계획을 승낙할지가 걱정입니다.”14/17 쪽

    “내가 결혼을 한다는 것은 아니잖아.”결국 피닉스 여왕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진실을 탐구해야하는 역사 지식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고 있었다.피닉스 여왕이 남몰래 이런 작전을 추진하는 동안 모나코 공국에서 지내는 안나카에르는 그리스 국왕의 인장을 지녔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에게 특이한 논리를 설파하고 있었다.안나카에르는 여전히 망한 왕실인 그리스 왕국에 충성하는 선장에게 말했다.“선장, 아무리 생각해 봐도 타이거 백작님은 헤라클레스이 새로 현신한 것 같아. 무술도 뛰어나고 키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헤라클레스를 너무 닮았어. 그리스 왕국을 재건하라고 나타난 분이 틀림없다고.”“맞습니다. 저도 공주님 판단이 정확하다고 봅니다.”지나간 영광이 더 커 보인다고 잘 지내던 그리스 왕국 시절이 여전히 그리우니 별 요상한 논리에 쉽게 동조하고 있었다.“뭐 그렇다고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그런 말도 있잖아. 전생에 살던 사람이 이15/17 쪽

    생으로 와서 살기도 한다고.”“그렇죠. 티베트의 라마승들은 다들 그게 사실이라고 입증하고 있지요.”모나코의 몬테 카를로스는 사실 돈은 많고 할 일은 없는 호사가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다소 정신이 요상한 사람들이 도박이나 하며 지내는 장소다. 그러다 보니 도박으로 엄청난 재산을 말아 먹고도 여전히 도박장을 어슬렁거리는 진짜 이상한 사람도 많았다.약간의 돈만 생기면 도박장으로 달려가는 그들을 푼돈을 주고 포섭해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기는 아주 쉬웠다.“타이거 백작은 헤라클레스가 현신한 사람이 분명해.”“그런가? 듣고 보니 그렇게 생각도 되는군. 그 사람은 세계 최강이 아닌가?”할 일 없는 사람들이야 이야기를 꾸며서 하던 무엇이던 그저 재미만 있으면 되니 술을 마시며 이런 대화를 주변 사람들과 하고 있었다. 두 여자는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비슷하게 요상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라도 집중해서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 터질 지경이라 약간 무리수를 띠우고 있었다.16/17 쪽

    최태욱 두고 서로 간에 심한 질투심으로 인해 정신 구조가 점점 이상한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하긴 이런 정도야 심한 정신병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저 애절한 사랑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17/17 쪽

    최태욱 두고 서로 간에 심한 질투심으로 인해 정신 구조가 점점 이상한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하긴 이런 정도야 심한 정신병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저 애절한 사랑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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