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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삶-184화 (184/657)
  • < --  [추락 사건의 여파]  -- >동양권에서 흔히 왕조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부계로 계승해야 한다면 네덜란드나 룩셈부르크의 왕가는 끝났다. 더구나 모계나 여자로 계산해도 거의 전멸이다.‘다 죽었네.’족보의 촌수가 어찌 되는지 모르지만 네덜란드의 왕위 계승 순위로 스테파니가 1위로 올라 있었다. 그리고 룩셈부르크의 왕위 계승순위 3위로 레베이카가 올라 있었다.벨기에의 경우 필립왕자가 1위로 되어있고 안나카에르가 2위로 올라와 있었다. 기도 안차는 사태가 유럽의 왕국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세 왕국의 왕족이 완전히 전멸해 버렸군.”유럽의 왕가 명맥은 왕족끼리 아주 복잡하게 혼인해 뒤엉켜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면 머리가 어지러운 지경이다. 족보 따지기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최태욱은 스테파니가 네덜란드의 왕위 계승권자가 됐다는 사실에 제일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놀람과 동시에 인상이 찌부러지고 있었다.회1/16 쪽

    ‘잘못하면 엿 되게 생겼어.’자신과 깊은 관계를 맺은 여자가 여왕으로 등극하게 되니 하등 나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최태욱은 이런 현상에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여왕의 남편이 되면 대공에 오르니 표면적으로 좋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태욱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물론 정사를 벌인 파트너라고 해서 결혼을 꼭 한다는 보장이나 뭐는 없다.‘일 참 요상하게 꼬였어.’스테파니가 여왕으로 오르고 설사 자신과 결혼해도 좋을 이유가 별로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왕의 남편이란 사실 별 볼 일 없는 자리다.더구나 입헌군주제인 유럽 왕국에서는 특히 그렇다.복잡하게 의전 행사에 여왕이나 졸졸 따라 다녀야 하고 별로 자유가 없다. 그렇다고 다른 여자와 어떤 은밀한 관계를 공개적으로 유지할 위치도 아니다. 흔한 말대로 그냥 명예만 그럴싸하게 있는 바지저고리에 불과하다.평범한 사람이라면 감지덕지할 자리인지 모르지만 자신은 절대로 아니다. “찜찜하게 됐어.”2/16 쪽

    최태욱은 돈도 가질 만큼은 충분히 가지고 있고 나이도 젊다. 세계 어디를 가던 육상계의 황제로 불리며 유럽의 왕족 이상의 예우는 이미 받을 수 있을 정도다.최태욱은 안나카에르가 벨기에 왕국의 왕위계승권 2위로 오른 사실로 인해 자신이 사는 백작성도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짐작했다.‘안나카에르가 급부상하게 돼서 견제가 필요했던 모양이야.’그녀와 자신이 깊은 사이라는 것은 필립 왕자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보드엥 국왕도 알고 있으니 안나카에르의 애인인 자신을 보호할 필요성을 느껴 이런 조치를 했다고 판단했다.‘그랬군. 국왕 자신이나 필립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나카에르가 여왕에 오르게 되니 나를 감시하면서 동시에 보호하려고 군대를 보낸 것이야.’아무리 실권이 없는 국왕 자리지만 권력의 속성이란 이런 것이다.최태욱은 신문들을 밀쳐놓고 혼자서 중얼거렸다.“이런 판국에야 먹튀가 제일 좋지.”공연이 남의 나라 권력 싸움이나 혹은 정치권의 구설수에 휘말릴 이유가 없다고 판단3/16 쪽

    했다. 더 이상 왕위나 그런 허울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전제왕권을 행사하는 시절 같다면 이런 현상을 놓고 큰 야심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절은 그저 머리만 어수선하니 복잡할 뿐이다. 최태욱은 침대 옆에 있는 인터폰을 들고 강호철을 불렀다.“강 비서, 올라 와!”잠시 시간이 지나자 강호철이 침실로 들어와 침대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회장님, 무슨 일로?”“경호원은 모두 어떻게 되었나?”“다들 외부로 취업해 나가고 지금은 정예요원 20명만 저와 같이 있습니다.”“알았어. 정문의 위병은 누가 서나?”“하인즈 소령의 부하들이 정문 경비를 담당합니다.”최태욱은 병사의 수는 적지만 연대라는 군대가 주둔하니 그에 따른 문제를 물었다.4/16 쪽

    “연대에서 보관하는 무기는 뭐가 있나?”“보병중대 화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정문에 대공화기를 장착한 장갑차 4대가 배치되고 기관총을 장착한 트럭이나 지프차가 배치된 것만 조금 다릅니다. 그들이 사용할 탄약은 본체 지하실에 있습니다.”본체 지하실에 무기고가 있다고 하자 급하게 물었다.  “무기고 관리는?”“백작님, 본체 지하실의 사격장 옆에 무기고가 있어 당연히 본체의 경비를 책임지는 저희가 담당합니다.”“알았어. 무기고의 실탄은 내 허락 없이 일체 반출하는 일이 없도록 해.”“알겠습니다.” 지하실인 무기고이자 사격장으로 통하면 본체로 출입은 가능했다. 지상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나 연대본부 사무실은 별도의 건물에 있었다. 그곳에서 왕실 제2 근위단의 작전상황실을 운용하니 통신 및 보안시설이 있었다.최태욱은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아 지시했다.5/16 쪽

    “강 비서. 앞으로 정문 위병소는 하인즈 부대원들은 성 밖에서 위병을 서게 하고 성 안에는 경호원을 2명씩 보내 근무하도록 해.”“알겠습니다.”정문 출입구는 마치 옹성(甕城)처럼 두터운 성벽 외부에 차단시설이 있는 위병소가 있고 내부에도 차단시설이 위병소가 있었다.“통신실에도 경호원이 근무하게 하고.”“그건 이미 2명이 담당하고 있습니다.”경호를 책임지는 강호철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자기 관할에 갑자기 다른 군대가 들어오게 되자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이미 마련해 두고 있었다. “회장님, 한방병원의 간호사들도 모두 유사시 경호원으로 쓸 군 출신으로 배치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내부의 주방이나 시녀도 마찬가지고요.”“알았어. 너무 표 나게 하지 말고 천천히 교체해.”6/16 쪽

    “넷!” 아무튼 뭔가 유럽의 왕가가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으니 시국은 조용한 것 같지만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런 상태에는 몸조심을 해서 나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이때 경호실의 차장인 팀장이라고 볼 수 있는 양인복과 유한호가 찾아왔다.“무슨 일인가?”“회장님, 정문에 안나 백작부인이 와 있습니다. 들어오라고 할까요?”“알았어. 들여 보네.”“넷!” 잠시 뒤에 안나카에르가 침실로 들어왔다. 그러자 강호철이 슬며시 방에서 나가며 최태욱에게 말했다.“회장님, 복도로 가 있겠습니다. 언제고 버트만 누르세요.”7/16 쪽

    “알았어.”몽블랑 산에서 보호하지 못한 책임도 있어 강호철은 전보다 경호 방법이 달라졌다. 그래서 그런지 내연관계인 안나카에르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문 밖에서 기다린다는 소리다.강호철도 뭔가 자꾸만 유럽의 정치권과 최태욱이 복잡하게 엮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조심하고 있었다.강호철이 밖으로 나가자 안나카에르는 이내 침대로 폴짝 올라오며 말했다.“침대 어때요? 제가 고른 것인데.”“아, 그랬소.”“예, 여기 시설은 제가 폐하께 전에부터 부탁해서 고치게 된 거에요.”“전에 벌인 일이라고?”“예, 당신이 여행 중에 집을 수리하려고 시작한 일이죠. 그런데 공교롭게 되느라 마침 몽블랑에서 항공기 사고가 났고요.”8/16 쪽

    최태욱은 굳이 집을 수리하라고 한 사실이 궁금해 물었다.“왜? 굳이 집을 고치라고 했어?”최태욱의 물음에 안나카에르는 쉽게 답했다.“그야 제가 자주 올 집이니 고치라고 한 거죠. 더구나 필립 왕자가 국왕에게 이미 말해 우리 사이를 아니 숨길 이유도 없고요. 뭐 그게 당신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야 크게 욕이 되는 일이 아니고요.”안나카레르 생각은 아주 펴놓고 대중 앞에서 둘이 끼고 돌아 다니지만 않으면 된다는 뜻이다. 그저 조용히 숨어 들어와 즐기는 정도야 험이 아니라는 생각이다.최태욱은 안나카에르의 위치가 전과 다르게 변했으니 그에 대해 말했다. “안나! 이제 전과는 신분이 다르잖아?” “그야 그렇지요. 항공기 폭파 사고 이후 유럽의 왕족들이 전멸해 제 위치가 전과 달리 조금은 이상하게 변하긴 했네요. 여기 와서 직접 보니 보드엥 국왕은 제가 당신과 무슨 무서운 음모라도 꾸밀까 의심이 가는지 이상하게 군대를 보냈네요.”안나카에르는 보형물을 차고 있는 오른쪽 다리를 보더니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물었다.9/16 쪽

    “안 아프세요?”“아프지는 않아. 그냥 불편할 뿐이지.”“다행이네요. 휠체어 타고 있는 당신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이런 대화를 나누던 안나카레아는 침대 옆의 신문들을 슬쩍 흘겨보며 말했다.“당신도 신문을 봐서 알겠네요. 지금 베네룩스 3국은 완전히 줄줄이 망했다는 소리가 나오는 중입니다. 솔직하게 말해 당신이 아니었으면 왕조는 문 닫았을 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두 여자를 살려오는 바람에 겨우 명맥은 유지하게 됐어요.”“그런가?”“그렇죠. 그러니 대충 30위권이 넘던 제가 2위로 올랐으니 왕족은 다 죽었다고 봐야죠. 필립 왕자도 죽을 운명인데 제가 살린 셈이죠.”갑자기 필립왕자를 자기가 살렸다는 말에 최태욱은 이상하게 생각해 물었다.“어떻게?”10/16 쪽

    “사실은 필립왕자 부부도 부모님과 같이 로마로 가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당신 문제를 만나 상의하자고 해서 브뤼셀에 남아 결과적으로 살아났으니 내가 그 사람을 살린 격이죠. 안 그랬으면 벨기에는 왕조가 완전히 망하던가 아니면 그리스 공주인 제가 나중에 왕위로 오르던가 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을 겁니다.”“당신이 왕위에 오르면 왜 황당한데?”“그야 벨기에 왕가나 귀족 그리고 정치인들은 모두 그리스에서 쫓겨 난 나나 그리스 왕가를 완전히 거지 취급했으니 그렇죠. 꼴 보기 싫은 저를 여왕으로 만들 수는 없고 그렇다고 영국에서 또 사람을 데려와 왕위를 이을 수도 없고. 아마 군주제는 폐지됐을지도 모르죠.”안나는 자세하게 설명하며 슬퍼하거나 하나도 안타까워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아주 신이 나서 묻지도 않는 말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유럽의 많은 왕족이 죽어서 서열이 올라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을 거지 취급하다가 왕조가 망해 버리게 생기자 전에 당한 섭섭한 점 때문에 고소하게 생각하는 것이다.최태욱은 자신이 보기에 그리 못된 성품의 여자는 아닌 것 같아 슬며시 물었다.11/16 쪽

    “안나, 전에 많이 핍박을 받은 모양이군.”“예, 사실은 제가 결혼할 때 몸에 걸칠 폐물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도 공주인데 완전히 아무것도 안 찰 수가 없어 폐물을 잠시 빌리러 왔던 적이 있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폐물 그냥 일주일만 빌려달라고요.”“그때는 상당히 어려웠던 모양이군.”“예. 어려운 때였죠. 왕족들이 가지고 있는 폐물을 빌려주기 어려우면 보석상에 빌릴 수 있도록 주선이라도 해달라고요. 그때 저를 다들 거지 취급하더라고요. 왕족들은 아무도 만나지도 뭇하고 문전박대만 당했죠.”“그런 일이 있었어?”최태욱은 더 속 깊은 내막이야 모르지만 안나카에프가 유럽의 많은 왕족들에게 매우 섭섭하기는 했겠다고 생각됐다.안나카에르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속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공주인 제가 너무 가난해 폐물을 차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은 보석상이 빌려 준다고 했었어요. 하지만 벨기에 왕족들은 그렇게 하면 앞으로 왕가와의 거래는 끝낸다고 협박해 그것도 방해했죠. 그러니 거지 취급당한 저야 그런 수모는 평생 잊을 수 없지12/16 쪽

    요.”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안나카에르는 이내 다소 슬픈 표정을 지었다.“왜? 또 무슨 일이 있어?”“예, 망한 왕조지만 그리스 왕가도 이제 저 하나만 남고 다 죽었어요.”“뭐?”“영국에 있던 국왕 일족이 항공기에 같이 타고 있었어요. 이미 알다시피 모조리 죽었습니다. 그래도 저와 제일 가까운 친족들인데.”유럽은 입헌군주제인 나라들이 많다. 이번 사고로 인해 왕족들이 200명이나 죽었다니 베네룩스 3국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 큰 타격을 주고 있었다.안나카에르는 다시 항공기추락 사고에 대해 말했다.“왕족들이 죽어서도 소란스럽지만 범인들 때문에 유럽은 지금 아주 복잡해요.”“아, 범인이 잡혔나?”13/16 쪽

    “예, 범인 일당이 잡혔어요. 물론 일부는 중동으로 달아났고요.”“그래? 범인은 누군데?”“내일 신문에 발표될 예정인데. 제가 프랑스 정보부를 퇴직한 사람을 통해 정보를 입수했어요. 범인은 즉 마지막으로 폭탄을 항공기에 넣은 주범은 에어프랑스 직원인 프랑스 사람으로 공항의 화물 담당입니다.”“뭐? 항공사 직원이?”“예, 그래서 프랑스 정부나 에어프랑스는 지금 난리도 아니죠.”“공범이 있나?”“예, 공범인지 그놈들이 주범들인지는 법원에서 판정을 내리겠지만 독일인도 관련이 있어요.”“그래?”“나치당원인 독일인과 레바논 출신 아랍인들이 사제폭탄을 제조해 에어프랑스 직원을 시켜 사제폭탄을 항공기의 화물칸에 실었던 겁니다.”14/16 쪽

    안나카에르의 자세한 설명은 계속되었다. 요약하면 나치당원과 아랍테러 조직이 연결되어 대량으로 사제폭탄을 독일에서 제조했다. 범인 일당들은 에어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 항공기를 동시다발적 공중 폭파하는 방법으로 공격하려고 했다는 것이다.독일인인 범인이 사고 직전에 잡혔다. 그러나 그가 독일정부의 고위관료 아들이라는 이유로 이웃나라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했다. 많은 사제폭탄이 배포되어 회수되는 중이었다. 그중 하나가 이미 에어프랑스 직원에 의해 실려 추락사고가 났다는 것이다.자세하게 설명을 들은 최태욱은 항공기 폭발사고로 인해 여러 나라가 매우 복잡하게 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여러 나라가 머리 좀 아프겠어.’안나카에르는 이야기를 멈추고 계속 부러진 다리를 바라보더니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치를 보아하니 벗고 한바탕 하고 싶지만 아픈 다리를 보니 조금 꺼리는 것 같았다.최태욱도 하려고만 하면 아무 상관이야 없지만 굳이 아픈 상태에서 하고 싶을 정도로 절박하지는 않았다.15/16 쪽

    이미 유럽에서 만나 깊은 관계를 맺은 여자들은 졸지에 신분들이 만만치 않게 변했다. 항공기폭발 사고로 인해 전과 전혀 달리 평범한 위치가 아니다. 골치가 아프게 생겨 이미 먹튀를 생각하는 처지로 자중해야 된다고 생각했다.‘당분간은 접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아.’어찌 변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자신과 그녀들과 관계가 외부로 드러나면 그 파장 또한 크다고 판단했다. 달리 더 하고 싶은 말은 없는지 안나카에르는 자신의 앞으로 행보에 대해 말했다.“저는 왕궁으로 들어가 폐하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마르세유 별장으로 가서 지낼 거예요.”“알았소.”“혹시, 여기서 지내기가 너무 불편하면 그리로 오세요.”“그렇게 하지.”안나카에르는 최태욱의 입에 가볍게 키스하고 서둘러 침실에서 떠나고 있었다. 그녀가 너무 빠르게 집에서 떠난다 생각하니 혹시 전보다 달라진 신분으로 인해 헤어질 16/16 쪽

    가 너무 빠르게 집에서 떠난다 생각하니 혹시 전보다 달라진 신분으로 인해 헤어질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조금 달라지기는 했어.’16/16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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