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 다른 삶-177화 (177/657)
  • < --  [몽블랑의 참사]  -- >자기들을 구하고 어처구니없는 일로 인해 산사태로 쓸려가 버린 모습에 다들 망연자실해 있었다. 생존자들은 모두 대형 눈사태가 난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한탄하고 있었다.“이럴 수는 없는 거야.”“훌륭한 사람을 이렇게 보내다니 하늘도 무심하지.”참으로 기가 막힌 사태가 벌어졌다. 안전하게 구하고 철수만 하면 되는 상황에 방송 헬기가 나타나 눈사태를 일으키게 되어 당한 사고라 너무 어이가 없었다.‘이건 절대로 신의 뜻은 아니야.’다들 이런 생각을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현실은 너무나 처참했다. 어쩌면 최태욱 말고 다른 생존자들이 있을 수 있는 상황에 산사태가 일어나 1킬로미터나 쓸려 내려갔으니 살릴 수 있는 사람도 모조리 죽은 것이 분명했다. 누구보다도 비통한 심정인 강호철이다. 멍하니 떠밀려 거의 1킬로미터 이상 멀어진 항공기 잔해를 막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회1/17 쪽

    대형 눈사태로 인해 항공기가 추락한 좁은 골짜기의 모습은 이제 완전히 변해 버렸다.조금 전까지 많은 눈이 쌓여 그런대로 넓고 평탄한 개활지를 이루고 있던 골짜기는 이제는 50미터 높이로 직각인 절벽만 까맣게 보이고 있었다.  ‘살아있기 힘들어.’아무리 생각해 봐도 항공기 잔해와 같이 있었던 최태욱이 살아 있기는 힘들어 보였다. 참담한 기분이지만 강호철은 힘없이 두 경호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어렵겠지?”“예. 저런 눈사태에서 살아계실 수는 없을 겁니다.”“이제 저쪽으로 갈 수도 없군.”“갈 필요도 없죠. 모두 아래로 내려갔는데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까만 절벽을 살피고 있었다. 그쪽으로 넘어갈 방법도 이제는 없었다. 아무래도 이쯤해서 포기하고 눈사태로 쓸려나간 곳으로 내려가서 찾아보2/17 쪽

    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강호철의 눈에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회장님!”슬픔이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이제부터 자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는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하기만 했다.강호철은 반대편 절벽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산악구조대원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그들은 산사태에도 무사한 생존자들을 보며 강호철에게 말했다.“다행이 무사하군요.”강호철은 침통한 표정으로 답했다.“아닙니다. 백작님이 눈사태로 인해 쓸려가 버렸습니다.”“뭐요? 같이 있지 않았어요?”“예.”3/17 쪽

    “구했다는 여자는?”“그들도 아마 같이 쓸려갔을 겁니다.”강호철의 대답에 산악구조 대원들은 기겁하며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산사람들이라도 빨리 안전한 곳으로 후송해야 되는 임무가 있었다.“자! 빨리 이동합시다.”“예.”강호철과 두 경호원은 서둘러 산악구조대원들과 협조해 생존자들을 급하게 이동시키게 되었다. “조심해서 가세요.”아직도 위험한 곳을 통과해야 하니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결국 산악구조대원들과 같이 생존자들을 양쪽에서 잡아 주는 형식으로 내려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그나마 다행한 것은 이미 위험한 곳에 길을 만들어 두어 생존자 20명은 조금은 빠르게 안전한 곳으로 이동되고 있었다.4/17 쪽

    그들이 모두 떠날 때까지 협조하던 강호철은 그래도 혹시 해서 무전기를 들고 다시 호출했다.“타이거 스리, 응답하라! 응답하라!”“응답하라!”그러나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는 그거 허공으로 흐트러지고 있었다. 무전으로 호출해도 응답을 안 하자 강호철은 구조대원이 휴대하고 있는 쌍안경을 빌려 반대편 절벽을 자세하게 살폈다.두리번두리번.쌍안경을 통해 아주 자세하게 살펴도 200미터 떨어진 반대편은 새까만 절벽만 보이고 있다. 어디에도 최태욱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때 하늘에서는 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남아 있는 사람들이 위험해 보이고 있었다.     산악 구조대원이 조심스럽게 권했다.“눈이 또 내리니 이제 그만 내려갑시다.”5/17 쪽

    “알았어요.”  여기서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강호철과 두 명의 경호원은 텐트를 철거하고 산악구조 대원들과 같이 철수하게 되었다.강호철이나 경호원들의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휴우! 이 일을 어쩌지? 내가 죽일 놈이야.’경호원으로 살면서 보호할 대상을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고 나니 허망했다. 진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비난이 두려워서 보다 강호철은 진짜 최태욱을 존경했다.그는 천인교 교인으로 최태욱을 신과 거의 동격으로 높이 추앙하던 처지라 더욱 그랬다. 강호철은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너무 넋을 잃고 있자 산악구조대원들이 옆에서 잡아주며 당부했다.“정신 차려요. 이러다 사고 나겠어요.”“예, 조심하죠.”6/17 쪽

    강호철은 대답을 건성으로 하며 계속 넋이 빠진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런 강호철을 산악구조대원들이 옆에서 잡아주어 위험한 곳에서 벗어났다. 산에서 내려온 강호철은 뒤를 돌아보며 자꾸 다짐하고 있었다.‘꼭 찾아야 해.’시신이라도 찾아야 된다고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산악구조대원들과 같이 베이스캠프로 돌아오자 강호철은 갑자기 두리번거렸다. 그는 산사태를 일으킨 두 대의 프랑스 TV 방송헬기를 찾았다. 그리고 멀리 두 헬기가 보이자 강호철이 급하게 내달렸다.“이 새끼들! 다 죽일 거야.”큰 소리로 외치고 헬기로 다가가 조종사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같이 헬기를 타고 추락지점으로 갔던 방송사 기자나 카메라 기자도 이미 어디로 사라지고 없었다.“이것들 어디 갔어?”“모두 조사 받으러 경찰서로 갔어요.”7/17 쪽

    “뭐요?”고의적은 아니라지만 구조단장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추락지점으로 날아간 그들은 이미 이탈리아 경찰에서 끌려갔다. 모두 눈사태가 일어난 진상 조사를 위해 끌려가 조사 받고 있는 상태다. 사소한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더구나 죽은 사람들이 모두 너무 중요한 인물들이라 철저히 조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구조단장이 조심스럽게 강호철에게 다가와 권했다.“우리와 같이 잔해가 있는 곳으로 가서 찾아보겠소?”“가야죠. 꼭 회장님을 찾아야 합니다.”“좋소. 대신 우리 구조 방식을 그대로 따르시오.”“그렇게 하죠.”강호철과 5명의 경호원들은 급하게 움직였다. 구조대원들이 가지고 있는 장비를 할당 받아 헬기를 타고 떠나게 되었다. 그들이 떠나고 나서 다소 늦게 많은 구조대원들이 도착하고 있었다.8/17 쪽

    우르르. 와글와글.하지만 그들은 이미 구조 작업이 모두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헬기 잔해가 쓸려 내려간 쪽으로 헬기를 타고 급하게 이동하고 있었다.구조작업을 벌이며 항공사에서는 실종자인 승객 명단과 생존자 명단을 발표하고 있었다. 실종자라고 하지만 사실상 사망자 발표나 같은 의미다.최태욱 일행은 300명의 승객 중에 그래도 기적적으로 20명은 구하게 되었다.항공기가 추락한 지점에는 또다시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조금만 구조가 늦었으면 그나마 20명의 생존자들도 모두 죽었을 상황이다.구조 활동을 하던 최태욱도 실종자 명단에 포함되어 발표되었다. 그러자 항공기 추락 사고로 놀라고 있던 유럽이나 세계인들은 또다시 크게 놀라고 있었다.“타이거 백작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다니.”“설마, 살아 있겠지. 그는 설인의 후예가 아닌가?”눈 속에서 생존력이 뛰어난 설인처럼 살아서 돌아오길 염원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9/17 쪽

    최태욱이 실종자 명단에 포함되자 한국은 완전히 난리가 나고 있었다.“최 회장이 죽다니.”“이럴 수는 없어.” 더구나 프랑스 방송 헬기가 일으킨 산사태로 인해 실종되었다고 알려졌다.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천인교는 실질적인 교주가 사라져 버렸으니 더욱 크게 분노했다. “살려내라!”“프랑스 정부는 사죄하라.”천인교 교당에서는 일제히 프랑스 대사관으로 몰려가 심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사실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화풀이는 하고 싶어 했다.시위대의 규모가 점점 커지자 프랑스 정부에서는 다급해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었다.   벨기에 국민들도 거의 한국 국민들 수준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프랑스 방송기자는 물10/17 쪽

    론 헬기 조종사를 구속해야 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프랑스 방송기자 놈들은 분명 고의적으로 눈사태를 유발시킨 거야.”“그 녀석들은 전에부터 타이거 백작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사태는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악화되어 버렸다. 프랑스와 벨기에 사이가 벌어지며 외교적으로 크게 문제가 생길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었다. 벨기에 분 아니라 네덜란드나 룩셈부르크에서도 이번 사건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그런 와중에 벨기에 왕국을 포함한 두 왕국에서는 급하게 사고 현장으로 많은 구조대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백작성에서 훈련 중이던 경호원들 30명도 포함되어 있었다.눈사태로 아래로 떠밀려간 항공기 잔해는 모조리 수거되고 있었다. 항공기 사고의 원인도 찾아야하고 280명의 실종자 유해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광범위한 지역에서 수색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컹! 컹!”수십 마리의 수색견이 동원되어 구조대원들과 잔해와 유해들을 찾고 있었다.   11/17 쪽

    유품이 찾아지거나 간혹 시신 조각이 발견되고 있었다. 실종자들의 신원이 밝혀지게 되자 사망자 명단은 늘어가고 있었다. 사고를 접한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에서는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두 왕국의 우호 친선을 위해 왕자와 공주를 포함한 많은 왕족들이 이탈리아의 로마로 가다가 사고를 당해서다.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로마 교황청을 방문하러 가다 항공기 추락 사고를 당한 것이다.“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거요?”“예, 구조된 생존자 중에 한 명도 없답니다.”“뭐요?” 강건하다는 네덜란드의 여왕도 사고 소식 이후 충격으로 쓰러져 버렸다. 자신의 자식들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왕족이 떼로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룩셈부르크 국왕이나 왕비 역시 왕족들이 떼로 죽었다는 소식에 마찬가지로 다들 충격에 쓰러져 버렸다. 모두 혈압이 터져 생명이 오락가락하게 변했다. 12/17 쪽

    아무리 입헌군주 국가로 정치적인 실권이 없는 국왕이라지만 그래도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는 여전히 국왕이다. 그런 왕국에서 후계자인 왕족들이 모조리 사망했다는 것은 국가에 큰 위기가 닥친 것이 틀림없었다.너무 큰 국가적인 위기라 이런 사실은 외부로 공개되지 않고 있었다. 두 왕국에서는 급하게 의회가 소집되어 뭔가 논의하고 있었다.“최대한 구조대를 많이 보내 찾아보시오.”“그럽시다.”그러나 구조대는 이제 항공기나 유해를 찾는 수색대로 변해 속속 참담한 소식만 알려오고 있었다.    부르르. 부르르.좁은 바위틈에서 두툼하게 담요를 깔고 덮고 곤하게 잠자고 있던 최태욱은 땅이 심하게 흔들리자 화들짝 놀라 깼다.“이게 뭐야?”13/17 쪽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심하게 흔들리더니 이어서 굉음이 울리고 있었다.우르릉! 우르릉!지축이 심하게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자 최태욱은 급하게 두 여자와 같이 모포로 둘러썼다. 두 여자를 품에 껴안으며 몸을 바싹 웅크렸다.콰과광! 과광!큰 소리가 울리며 안전하다고 생각하던 바위틈의 눈이 밀려들어 왔다. 그러자 입구가 막혀버리고 밀려들어온 눈으로 인해 작은 모닥불은 꺼져 버렸다.   순간 주변은 다시 까매지고 말았다. 최태욱은 순간 ‘이제 죽었구나?’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며 품에 안긴 여자들이 귀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자기들만 죽기 싫어 나를 끌어 들인 거야.’다른 생각은 전혀 없고 그저 ‘처녀귀신에 홀려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 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14/17 쪽

    칠흑 같은 어둠만 가득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깜깜한 어두움은 사람들을 쉽게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더구나 밀폐된 공간에서의 어두움은 더욱 두렵다.이제 날이 밝아지고 있으니 구조대에서 찾아와 구조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헬기 소리까지 나자 두 여자는 조금은 여유롭게 옷매무새나 얼굴들을 다듬고 있었다. 콰과광!지축이 흔들리고 무서운 굉음과 함께 산사태가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모포를 둘러쓰고 사내의 품에 안겨버린 두 여자는 완전히 넋이 나가 버렸다.아무 생각이 없고 이제 죽었다는 느낌만 들었다.달달달. 덜덜덜.쏴아아! 우당탕! 이들이 숨어 있는 좁은 바위틈 위로 커다란 항공기 잔해가 아래로 쓸려가며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 가득했다.‘이제 죽었어.’  15/17 쪽

    짧은 순간에 벌어진 눈사태지만 두 여자는 아주 오래 지속되는 느낌이 들었다. 항공기 추락 사고의 악몽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사태까지 당하자 완전히 패닉 상태로 빠져 버렸다.두려움만 전신에 가득해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당한 항공기 추락사고 때보다 지금이 더 무서웠다.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해 두 여자의 사고력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그저 살고 싶다는 본능만 남았다. 그나마 믿는 사내의 품으로 더욱 깊이 안겨 드는 수밖에 없었다.세 사람은 밀려오는 눈에 의해 제일 안쪽으로 처박히고 말았다.최태욱은 구석에 밀리며 공교롭게 바위에 부닥치자 잠시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죽었구나. 여기가 내 무덤인가 보군.’  최태욱은 그래도 뭔가 붙잡고 싶다는 본능의 욕구로 품에 안은 여자들을 손에 힘을 주어 잡아 당겼다. 물컹물컹.순간 정신이 흐릿해 지는 가운데에도 두 여자의 풍만한 가슴에서 어떤 느낌이 오고 있었다.16/17 쪽

    ‘여자 둘과 같이 묻혀서 죽는군.’젊은 여자 둘을 품에 끼고 죽게 된다고 생각하니 덜 억울하다는 생각이 왜 드는지 모른다. 최태욱은 두 여자의 풍만한 가슴을 양손으로 꽉 틀어쥐고 서서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17/17 쪽

    젊은 여자 둘을 품에 끼고 죽게 된다고 생각하니 덜 억울하다는 생각이 왜 드는지 모른다. 최태욱은 두 여자의 풍만한 가슴을 양손으로 꽉 틀어쥐고 서서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17/17 쪽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