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또 다른 삶-24화 (24/657)
  • < --  [격동의 80년도 태동]  -- >정부에서 삼청교육대로 폭력배 단속에 나서는 가운데 전주는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졌다. 기존 방식과 비슷하지만 처음부터 많은 자금이 동원되어 만들어진 조직이다.전국으로 퍼져있던 해운대 조직의 잔존 세력 중 일부가 전주에서 둥지를 틀고 있었다. 전주에서 활동하던 기존 조직들이 삼청교육대로 인해 잠시 몸을 사리는 동안 그 틈을 타고 새로운 세력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와글와글.전주 횟집의 개업식에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기사 식당 단골들이 다들 손에 뭔가를 들고 이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전주 횟집은 35살가량의 서울 출신인 배종란이 운영하게 됐다.배종란은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고 횟집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연신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었다.“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축하합니다.”회1/17 쪽등록일 : 12.09.09 05:05조회 : 3473/3484추천 : 28평점 :선호작품 : 1915(비허용)배종란 역시 신애란이 필요에 의해 불러들였다. 그녀는 해운대 파로 서울 지역에서 마약 공급 조직을 담당하던 핵심 조직원이다.이제는 해운대파인 마약 밀수조직 자체가 와해됐다. 조직이 와해되자 살아남아 있는 핵심 조직원이 먹고 살도록 돕기 위해 전주로 불러들여 전주 횟집 운영을 맡긴 것이다. 전영희는 자기 업소 이층으로 오게 된 배종란 마담을 단순히 신애란에 의해 발탁된 운영 마담 정도로 알고 있었다. 물론 주변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다 그렇게 알았다.전주 횟집의 개업으로 인해 오랜 만에 덕진 건설회사의 홍철민 회장이 찾아왔다.전영희의 부탁으로 횟집 개업식을 돕는다고 와있던 20명의 나이트클럽 웨이터들이 줄지어 직각으로 절하며 외치고 있었다.“회장님! 오셨습니까?”“······”홍철민 회장은 아무런 응수도 없이 이층에 오르고 있었다. 그는 점점 신흥 폭력 조직의 보스로써 권위가 생기고 있었다. 회집에 들어오자 별실로 칸막이가 된 곳에 가더니 큰 목소리로 회를 주문했2/17 쪽다.“여기 광어 좀 큰놈으로 골라서 두 마리만 가지고 와.”“예!”   덕진 건설의 전무인 50대 남자와 40대인 상무들과 같이 와서 축하를 겸해 식사했다. 홍철민은 식사를 하며 전무와 상무에게 지시했다.“앞으로 건설 회사의 회식이나 대인 접대는 무조건 이집에서 하세요.”“알겠습니다. 회장님!”하는 사업이 많다가 보니 접대할 건수가 많았다. 대부분 관급 공사를 하기 위해 관계 공무원과 접촉해 물밑 교섭을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덕진 건설의 경우 홍철민은 지금 같이 있는 전무와 상무에게 거의 일임하고 있었다. 홍철민은 조직 기반을 탄탄하게 키우는 것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너무 나이 어린 회장이라 관공서 출입은 약간 거북했다. 이곳저곳 접대나 교섭할 사람과 만나 서로 대하기도 약간은 불편했다.이 지역 출신이라 선후배 관계 등 불편한 점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모든 건설 3/17 쪽전무가 나서 대답을 하자 홍철민은 다시 상무에게 지시했다.“공사가 있건 없건 평소에 서로 자별하게 지내도록 노력하세요.”“예!”“다른 곳에서 먼저 입질한 공사는 과감하게 양보하세요. 아직은 무리한 이유가 없어요.”“알겠습니다.”횟집에서 나와 자기 승용차 뒷좌석을 타고 나서 홍철민은 그가 바로 최경필 회장의 집에서 본 사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됐다.‘그래 그때 본 사람이야.’주방장은 아무래도 자기 느낌에 부산 해운대 파 조직에서 청소부 역할 하던 전문적인 칼잡이 출신 같아 보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홍철민은 전에 신애란이 한 말이 떠올랐다.두 사람을 회사에 대려다 주고 바로 신애란의 숙소로 찾아 갔다.5/17 쪽다소 복잡한 작은 도로와 접해 있는 골목길······. 주변에는 많은 유흥업소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작은 건물은 전에 여관을 하다가 이제는 전주 횟집과 식당의 종업원들의 숙소다.2층인 이곳에는 주로 타지에서 이곳으로 오게 된 여자들이 묵는 곳이다. 제일 구석에 있는 커다란 방이 임시로 신애란이 묶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숙소가 전주에만 두 개가 따로 있었다. 안전을 위해 수시로 숙소를 옮기면서 조심스럽게 활동했다.자기를 찾아온 홍철민을 보며 신애란이 조용하게 말했다.   “더 이상 내가 동생의 사업에 손을 대는 일이 없도록 하게, 빠른 시간 안에 투자한 기업의 50프로 지분에서 30퍼센트는 자금을 만들어 돌려줘.”“알겠습니다.” “홍 회장, 내가 가진 자금은 내가 관리는 하지만 나 혼자의 돈이 아니라는 것만 명심해.”“예!” 결국 부산의 마약 조직인 해운대 파의 잔존 세력이자 핵심 세력이 결국 모조리 6/17 쪽신애란의 통제 범위 안에 있다는 이야기다.어떤 조직이건 자금을 쥔 사람이 실권을 지니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신애란은 전에 모시던 보스의 내연녀로 아들을 양육하고 있다. 자연히 남은 조직은 신애란이 총괄 관리한다는 것이 새삼 다시 느껴진 것이다.해운대 파는 부산에 근거를 두었지만 전국적인 조직망이 있던 터라 자기의 위치에서는 감히 어찌 해볼 조직은 아닌 것이다. 외부로 드러난 해운대 조직은 보스의 구속으로 완전히 와해되었지만 실직적인 핵심 조직원들은 모두 신애란에 의해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신애란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홍 회장, 빨리 성장해 독립하면 별도의 조직으로 인정하고 간섭 안한다는 것은 잘 알지. 그게 안 되면 동생의 조직이 없어지는 거야.”“예, 잘 알죠.”“그러니 부지런히 뛰어 다니라고. 그래야 나도 손 털고 여기를 떠나지.”“알겠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신애란의 휘하 방계 조직으로 자기가 직접 관리한다는 경고다. 심각하게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자 홍철민은 회사로 돌아가게 됐다.7/17 쪽건설 회사의 사장실에 앉아 여직원이 가져온 커피를 마시면서 중얼거렸다. “후! 빨리 돈을 벌어 빌린 돈을 모두 갚아야 되겠어, 안 그러면 도로 졸병 신세 못 면하게 생겼어.”전주로 와서 자신의 조직을 만들고 보니 이제는 남의 휘하에서 부하로 지내기보다는 독립된 조직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독립하려면 많은 자금을 돌려 줘야 하니 조금 답답하지만 빨리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꾸물거리다가는 해운대 조직의 잔존 세력에 완전히 흡수되게 생겼다.홍철민은 그 때문에 전무를 불러 급하게 지시했다.“전에 우리 회사에 투자해본다는 퇴직 공무원 만날 수 있나요?”“예, 있습니다.”“그럼, 오늘 저녁에 그 사람과 만나 어떤 조건이면 되는지 협상해 보세요.”“예!”8/17 쪽“내가 가진 지분 일부를 팔 생각이니 잘 조절을 해보세요.”이날 이후로 홍철민은 주변에 재력이 있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자기 지분을 조금씩 나누어 주게 됐다. 그래서 끌어 들이는 사람들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렇게 해 마련된 많은 자금은 사채 이자를 계산해 모두 신애란에게 들어가게 됐다.신애란은 전주 지역에 풀어놨던 사채 자금 중에 큰 덩어리는 그냥 두고 작은 덩어리의 사채는 대부분 회수됐다.최대한 빠른 시기에 비자금을 회수해 다른 곳으로 재투자하기 위해 신애란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전주에서 떠나자고.’ 전주의 조직이 어느 정도 결성되고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됐다. 일단 안정적으로 기반을 잡게 되자 신애란 전주를 거점으로 움직이던 행동반경이 변화를 가져왔다. 자신이 챙겨야 할 조직원들은 대부분 챙겨서 자리를 잡게 해준 셈이다. 이제는 해운대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해줘야 할 일은 끝난 셈이었다.전북 지역에 활동하던 일을 이제는 대폭 줄이게 되고 그녀의 행보는 충남 지역회9/17 쪽으로 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주 보다는 충남지역이 활동하기가 편하다고 판단했다.이런 결정을 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아무래도 마음에 담고 있는 최태욱이 있는 지역으로 가서 지내고 싶었다.‘충청도가 조용하고 좋아.’이제 학교를 다녀야 하는 아이 때문에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정착해야 한다. 활동 지역을 옮길 생각으로 신애란은 주로 인근인 강경과 논산 그리고 부여에 서서히 자기의 영향력이 미치는 조직을 만들었다.무슨 폭력 조직이 아니라 사채 시장에서 활동하는 여자들을 서서히 끌어들였다. 그와 더불어 대전에도 서서히 활동을 시작했다.대전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려는 이유는 중앙에 위치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거점으로 삼으면 아무래도 행동반경 폭도 넓어지고 다양해진다.최태욱은 여름방학을 기해 천인교 신도들과 같이 전국 명산 투어를 하며 스케치 작업을 끝내고 대전으로 돌아오게 됐다. 학교의 미술과 작업실 구석에 커다란 합판에 전지를 펼치고 그림을 그렸다. 결국 제일 잘 알고 여러 번 그려본 곳이 제일 잘 그릴 것 같아 계룡산 전경을 화폭에 담았다. 2학년 2학기에 접어든 최태욱은 미술과 교수가 추천해주자 동양화를 국전에 출품했다.10/17 쪽그리고 서예 작품도 만들어 대회에 출품하게 되었다. 전에는 이런 서예대회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졸업 후에 진로가 마땅치 않으니 적당한 곳에서 서예학원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운 좋아 입선하면 학원은 차릴 수 있어.’출품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어 제출하고 나자 최태욱은 하숙집을 다름 곳으로 옮기기 위해 대동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일 년 반을 넘게 있던 하숙집을 옮기는 이유는 임숙영 때문이다. 최태욱이 국전 출품을 위해 동양화 그리는 작업을 하자 미술과 학생들과 자주 접촉했다.그러자 최태욱의 동양화 그리는 솜씨에 반한 것인지 또다시 임숙영 마음을 바꾸어 자기에게 접근을 시도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옆에서 얼쩡거리고 자기 하숙집으로 등교를 같이 하자고 매일 찾아왔다.“에이, 모질게는 말을 못하겠고 차라리 하숙집 옮기면 당분간은 편하겠지.”조금 후비지고 임숙영이 사는 곳보다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을 돌아다니게 됐다.쉽게 하숙집을 찾을 수가 없어 한 시간이나 돌아다니고 있었다.“하숙칠 집도 없는데 괜히 나온다고 한 것 아냐?”11/17 쪽그러다 하숙을 치는 집으로 보이는 주택의 대문에 작게 하숙생모집 광고 글이 보였다.최태욱은 반가운 마음에 얼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실례합니다.”“누굴 찾으세요?”자기 또래로 보이는 처녀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저! 하숙생 찾는 모집광고 보고 왔습니다.”“그래요. 어서 오세요.”기본적인 집 구조는 전에 살던 하숙집과 같았다. 다만 하숙방은 한쪽에 2개와 한쪽에 1개가 있었다.의외로 방 3개에 모두 하숙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최태욱은 하숙생이 하나도 없어 다소 이상해보여 물었다. “하숙생이 하나도 안보이네요.”12/17 쪽

    “우리가 충북에서 새로 이사 와서, 어제야 대문에 광고를 써서 그래요.”“그렇군요.”최태욱은 결국 두 개의 방이 있는 쪽의 안쪽에 방을 차지하기로 결정하고 하숙집의 짐을 옮기게 됐다.짐이라고 해야 별것이 없기 때문에 혼자서 두 번 다녀서 옮긴 것이다.하숙집을 옮기고 나자 이제 10월이 다가오고 있었다.학교에서 하숙집으로 돌아오자 새로운 하숙생이 이사 오기 위해 짐을 옮기고 있었다.‘누가 이사 오는 모양이네.’다른 사람이 이사를 오면 조금은 조용하던 하숙집이 다소 복잡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숙집은 70에 가까운 할머니와 손녀딸인 오영자와 둘이 산다.어떤 사연이 있어 손녀와 둘이서 사는지 잘 모르나 아무튼 다른 가족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다른 가족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세 사람이 살고 있으니 아주 조용하고 번잡한 일이 전혀 없었다.최태욱은 남의 일에 공연히 간섭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대문에 많은 짐이 13/17 쪽쌓인 상태에서도 그대로 자기 방에 들어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누워 있었다.그러자 이내 뒤 따라 온 듯이 노크 소리가 나서 문을 여니 처음 보는 여자가 서있었다. 여자 얼굴을 보자 놀랄 정도로 미인이다.‘엄청 미인이네.’자신이 너무 놀란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하며 최태욱은 멋쩍은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저, 미안한데 제 짐을 같이 좀 날라 주세요.”처음으로 예쁘다는 느낌이 드는 얼굴이었다.그런 이유에서 인지 아니면 같이 사는 처지라 그런지는 모르나 최태욱은 그 여자의 짐을 모두 날라 방에 넣어 주었다.용달 트럭으로 날라 온 짐은 한방 가득할 정도다.‘신혼살림을 가지고 오나?’무슨 하숙하러 오면서 짐을 이리도 많이 가져오나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쓰는 14/17 쪽방은 반대편에 있는 아주 큰 방이다.부엌도 따로 딸려 전에는 한 가족이 전세를 살던 방이다.최태욱은 이방이 자기 방의 세 배는 되는 큰 방인 것을 짐을 날라다 주면서 처음 알게 됐다.‘방이 크다.’그래서 처음 하숙방 값을 물었을 때, 이 방을 쓰면 두 배의 하숙비를 내야 한다는 뜻을 이제야 알게 됐다.여자는 침대도 있고 작은 비키니 옷장도 있고 커다란 책상도 있었다. 잡동사니도 많고 옷가지와 책을 가지고 이사를 왔다.결국 집에 남자가 혼자라 안도와 줄 수가 없었다. 최태욱은 용달 기사와 같이 침대며 옷장 책상을 모두 방안으로 나르고 진열까지 해주게 됐다.이런 일이 끝나게 되자 여자는 용달 기사에게 이건 짐을 방에 넣어준 수고비라고 하며 돈을 넘겨주었다.“수고 많았어요.”“그럼 가보겠습니다.”여자는 용달차 기사에게 돈을 주며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15/17 쪽이삿짐을 모두 날라준 최태욱은 세면장에서 세수 하고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와 누었다. 이제 학교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지나고 보니 2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난 것 같았다.“호오!”담배를 피워 물고 입으로 연기를 내품어 동그라미 만드는 연습하고 있었다. 입을 모아 계속 시도해보지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쉬운 게 하나도 없어.”그러면서 방바닥에 누어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저녁 밤을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며 기다리나 주인 할머니가 도무지 밥 줄 생각을 안 했다. 이삿짐을 날라주는 바람에 힘을 써서 그런지 배가 출출하니 허기가 졌다. 때가 되도 밥줄 생각을 안 하자 투덜거렸다.“이거야 원 굶겨 죽일 참인가?”최태욱은 여전히 운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때가 되면 반드시 식사를 해야지 조금만 늦어도 매우 허기져 하고 있었다. 배가 고픈 가운데에도 처음 만난 여자16/17 쪽

    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고 있었다.여자의 얼굴이 떠오르기는 신애란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17/17 쪽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고 있었다.여자의 얼굴이 떠오르기는 신애란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런 소리를 하며 불만을 토하는 중. 주인할머니가 방문 앞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학생! 안방으로 와서 식사해.”“예?”안방에서 식사를 하라니 주인 할머니의 말에 최태욱은 약간 놀랐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안방으로 가서 식사를 해본 적이 없어 처음 있는 일이라 다소 의아했다.배가 고파 밖으로 나가 빵이라도 사먹을 판국인데 밥을 먹으라는 소리에 반가웠다.최태욱은 얼른 일어나서 안방에 들어갔다. 안방에 들어서던 최태욱은 눈이 커질 정도로 매우 놀랐다. 그의 눈에 하숙집 밥상에는 한 번도 오르지 않은 닭이 통째로 있었다. 소고기국에 돼지고기 두르치기도 있고 마치 생일상이나 혹은 잔칫상같이 거창하게 차려진 밥상이 보였다. 상 옆에는 할머니와 손녀 그리고 아까 짐을 날라준 여자가 같이 앉아 있었다. 최태욱은 슬며시 상에 앉으며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물었다.회2/16 쪽등록일 : 12.09.09 10:46조회 : 3518/3528추천 : 27평점 :선호작품 : 1915(비허용)“오늘 누구 생일입니까?”그러자 손녀가 이내 답해 주었다.“언니가 입주 턱한다고 고기를 사와 차렸어요.”대답을 듣는 순간 조금 전에 고맙다고 인사도 안 해 내심 싹수가 없다고 생각하던 자기의 좁은 속이 조금은 미안해지는 순간이다.이제 한집에 살게 된 네 명은 안방에서 모여 밥을 먹었다.최태욱은 배가 고픈 판이라 자기 앞에 놓인 밥을 국에 말아 빠르게 먹고 있었다. 너무 급하게 먹는다 싶어서 그런지 손녀가 부드럽게 말했다.“오빠. 고기도 먹으며 천천히 먹어.”처음에는 또래로 보이던 손녀는 사실 자기보다 두 살 어린 이제 만 16살이라 최태욱을 오빠라고 부르고 있었다.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 여자로 상당히 귀엽게 생겼다. 평소에 애교도 많고 말소리도 매우 상냥하고 때로는 최태욱을 보며 눈웃음을 살살 쳤다.딱히 무슨 의도가 있다기보다 본래 천성이 애교가 많아서 그리 행동하는 것 같았다.3/16 쪽최태욱은 손녀의 말과는 상관없이 빠르게 밥을 먹고 나서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했다.“잘 먹었습니다.”그러자 새로 이사 온 여자는 이내 답했다.“서로 인사나 하고 지내죠.”“아! 예, 저는 ○○전문대학 2학년인 최태욱입니다.”인사나 하자는 말에 최태욱이 이내 자기소개를 정확하게 하자 여자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그럼, 나보다 동생이네. 난 ○○대학 간호학과 강사야. 이름은 한희정!”“그러세요. 반갑군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뭘 부탁할 생각인지 모르며 그저 인사로 말을 던지고 최태욱은 서둘러 안방에서 나왔다. 4/16 쪽

    식사를 끝낸 최대욱은 자기 방으로 돌아와 방문을 활짝 열고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있었다. 식후에 먹는 담배 맛은 아주 좋았다.담배를 한 대를 거의 필터까지 탈 정도로 끝까지 피우고 방문을 닫으려고 몸을 일으켰다.이때 새로 이사 온 한희정이 슬며시 방문 앞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동생, 미안한데. 내 방에 가서 침대 좀 옮겨 줄래?”“예?”“침대 위치를 조금 옮기려고 하는데 혼자는 무거워서·······.”한희정의 이런 부탁에 최태욱은 자기 방에서 나와 반대편에 있는 그녀의 방으로 가게 됐다.방으로 들어가자 야릇한 향기가 났다. ‘이게 무슨 냄새지?: 화장품인가?’아무튼 담배 연기로 찌든 자신의 방과는 전혀 다른 야릇한 향기가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5/16 쪽아까 대충 정리해 놓았던 물건들이 일부 제자리를 찾아 잘 정돈되어 있었다. 최태욱은 아까 대충 구석에 밀어 놓았던 침대를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려놓게 됐다.삐거덕!더블 침대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옮겨지고 있었다. 이런 정도를 혼자서 못하겠다는 여자가 조금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긴 바짝 마른 체구에 단 한 번도 무거운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어 보이게 여러 보였다. 침대를 옮기고 나자 최태욱은 침대 위에 앉아 슬슬 구르면서 흘리듯이 말했다.“쿠션 좋네. 여기서 한번 자보고 싶네.”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아주 오래전 이런 쿠션 좋은 침대에서 격하게 정사를 벌였던 기억이 잠재적으로 남아있어 토해내는 말 같았다.무심히 던진 말이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이상한 말을 토하고 있었다. 최태욱의 이런 말에 한희정은 옷가지를 정리하다 슬쩍 바라보고 나서 고개를 돌리며 못 들은 척했다.철제로 만든 긴 옷걸이에 3-40벌은 되어 보이는 옷을 걸고 있었다. 옷을 정리하는 한희정의 모습을 보며 최태욱은 속으로 중얼거렸다.6/16 쪽‘옷 장사해도 되겠어.’잘은 모르지만 옷들은 상당히 고가로 보이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상식으로는 화장품이나 모든 용품은 누나가 사고 싶어 하고 부러워하던 그런 물건들이었다.‘집이 부자인 모양이네.’   잠시 이런 생각을 하며 최대욱은 다시 침대를 출렁거리도록 몇 번 굴러보았다. 계속 여자 방에서 앉아 있기도 쑥스러운 생각이 나서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그러면서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무슨 여자가 혼자 살면서 하숙집까지 더블 침대를 가지고 오질 않나? 아무튼 이상한 여자야.”처음 보는 여자인데 유달리 신경이 써지고 있었다.다시 방에 돌아와 자리에 누운 최태욱은 방금 만나고 나온 여자를 생각했다. 눈에 확 띠는 미인인 한희정의 얼굴이 떠오르자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7/16 쪽“에고야. 아무리 예쁘면 뭐하냐. 나이도 나보다 많고 강사라니 석사 학위는 가진 여자인데.”공연히 잡념이 생기자 최태욱은 슬며시 방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만화방으로 가서 만화를 한보따리 빌려와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일찍 자는 이유는 내일부터 새벽에 일어나서 대동 조기 축구회를 나갈 생각이기 때문이다.자양 국민학교 운동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오늘 조기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이유는 일요일하게 되는 신흥동 조기축구회와 친선경기를 하기 위한 사전 준비 때문이다.양쪽 동에서 모두 4팀이 참가해 경기하기로 결정했다.청년팀, 장년팀, 일반팀, 택시회사로 구분하기로 해 하게 되는 친선 경기다. 민병호 회장이 모인 사람들과 출전할 선수를 발표하고 있었다. 각 팀의 엔트리는 모두 15명씩으로 총 60명이 선수 명단에 들어가고 있었다.동에 있는 조기회들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조기회가 조금씩 구분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다만 각 선수명단 중에서 2명은 무작위로 어떤 팀이던 합류해 뛸 수 있게 되어있었다.이런 2명의 명단을 발표하려고 하던 민병호 회장이 축구공을 드리블하며 운동장에 들어는 최태욱을 보며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8/16 쪽“자네가 웬일인가?”“형님, 오랜 만입니다.”“그래, 다시 공을 차기로 했나?”“예, 이제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아 대전에서 떠나는 처지라 처음 운동장에 와서 축구하던 생각이 나서 다시 나온 겁니다.”“잘 왔네. 그렇지 않아도 자네 하숙집에 찾아가보니 이사했다고 해 만나지 못해서 실망하던 차에 정말 잘 왔어.”“무슨 일로 저를 찾아요?”민병호는 신흥동과의 경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나서 선수로 출전해 달라고 부탁했다.“형님, 말씀은 고마우나 저는 내일 집에 내려 가야합니다. 하숙비를 가지고 와서 밥 얻어먹고 삽니다.” 하지만 민병호 회장이 사정사정하는 바람에 결국 하숙비는 일단 민병호 회장이 빌려주는 것으로 하고 경기에 출전하기로 했다.결국 최태욱은 2명의 풀타임으로 뛸 자격이 있는 선수 명단에 포함되었다. 또 9/16 쪽다른 한명은 골키퍼를 하는 사람으로 정해지게 됐다.아무래도 골키퍼의 역량에 따라 팀의 전력에 차이가 많이 나니 하게 된 조치다.조기회는 내일 경기를 위해 대부분 간단하게 몸을 푸는 정도였다. 혹은 포지션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공수 작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조금 일찍 끝나게 됐다.민병호 회장과 최태욱이 운동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최태욱이 전과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자 민명호가 말했다.“전에 살던 하숙집과 방향이 많이 달라졌군.”“예!”이사한 하숙집은 의외로 민병호 회장의 집과 같은 방향이었다. 이들은 내일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대전 여고 앞으로 지나가게 됐다.이때 두 사람 앞으로 짧은 치마의 테니스 운동복 차림의 여자가 보였다. 운동복 차임인 한희정이 최태욱을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했다.“어머! 동생, 여기서 만나네.”10/16 쪽“테니스 치려고요?”“응! 내가 건강이 안 좋아서 운동 좀 해보려고.”“어디 아프신데요?”“아니, 어디가 아픈 것이 아니고 몸이 본래 약해서.”한희정은 키가 크고 너무 바싹 마른 뼈만 남은 형태의 체격을 지녔다. 너무 가냘픈 몸매라 조금 강한 바람에라도 불면 훅 날아 갈 정도로 매우 허약해 보였다.“그렇구나.”옆에 있던 민병호가 한희정의 미모에 매우 놀라며 슬며시 옆구리를 툭 치며 눈짓했다. 도대체 누구이며 어떻게 아는 사이냐는 뜻이다.“저와 같은 하숙에서 지내는 누나로 대학 강사에요.”“아하.”11/16 쪽한희정은 아주 가벼운 고개 짓으로 민병호에게 인사하고 다시 최태욱을 보며 말했다.“하숙집 할머니가 이제 식사는 모두 안방에서 먹자고 해서 내가 그러자고 했는데.”결론적으로 말해 자기가 운동을 끝내고 하숙집으로 돌아가야 아침밥을 먹는 다는 이야기다. 일찍 사봐야 천장만 바라보며 기다려야 될 판국이다. 민병호도 금방 그런 뜻을 이해를 하고 나서 최태욱을 보며 말했다.“최 코치, 그럼 잘됐네. 지금 우리 집에 같이 가자, 하숙비 지금 가지고 가라.”“내일 만나도 되잖아요?”“아니지, 내일은 아침 새벽에 모여 같이 식사하고 움직여야 하니 돈을 가지고 운동장에 다니는 것은 안 좋지.”“그러네요. 지금 가죠.”한희정은 바로 여학교 안으로 들어가고 최태욱은 민병호의 집으로 가게 됐다.민병호 집에 가서 하숙비에 해당하는 돈을 받아 호주머니에 넣고 나서 다시 되12/16 쪽돌아 하숙집으로 향했다. 발걸음을 하숙집 쪽으로 급하게 옮기던 최태욱은 대전 여고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게 됐다. 테니스를 친다고 여학교로 들어간 한의정의 운동 실력이 조금 궁금해졌다. 어차피 혼자가야 아침밥도 먹지 못하니 잠시 구경하다 같이 돌아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테니스 얼마나 잘 치나 볼까?”운동이라면 뭐든 조금씩 하니 오랜만에 테니스 치는 모습도 구경할 겸 발길을 돌려 여학교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운동장 구석에 있는 테니스장에는 30여명이 모여 있었다. 3개의 테니스 코트에서 경기를 하거나 혹은 경기장 밖에서 삼삼오오 모여 구경하고 있었다.최태욱은 테니스 코트장 밖에서 어슬렁거리며 한희정을 찾으나 쉽게 눈에 보이지 않았다. 테니스 코트 장 구석까지 눈길을 돌리게 됐다. 제일 구석지고 후비진 곳에서 한희정이 젊은 청년의 코치를 받으면서 스매싱 자세에 대해 연습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최태욱도 6개월 테니스와 축구를 아침 운동으로 동시에 한 적이 있었다. 조금은 테니스를 칠 줄을 아는 터라 다들 폼들이 너무 엉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13/16 쪽등록일 : 12.09.09 10:46조회 : 3518/3528추천 : 27선호작품 : 1915(비허용)다.“완전 왕초보로군.”아마 처음 잡아 보는 라켓 같았다. 라켓 잡는 방법도 자세하게 알려 주는 것을 봐서 그렇게 보였다.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 최태욱이 테니스장 옆에 있는 계단식 벤치에 슬며시 앉아 있었다. 벤치에 앉아 멍하니 남자들이 열심히 경기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나 경기하는 남자들도 다들 어설픈 폼에 서브도 넣기에 버거울 정도의 허접한 실력들이다. “다들 폼생폼사로 모인 사람들이군.”“그러는 자네는 축구는 잘하시는가?”언제 와서 뒤에 서있었는지 한희정에게 테니스를 가르쳐 주던 청년이 불쾌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뒤로 고개를 돌려 보자 남자의 나이가 20대 후반으로 보여 최태욱은 얼른 사과했다.14/16 쪽“죄송합니다. 제가 말을 잘못한 것 같네요.”정중하게 사과를 했지만 청년은 그런 사과보다는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처럼 응수하고 있었다. 완전히 시비를 거는 투로 말을 거칠게 토해냈다.“젊은 사람이 건방지게 남들 운동하는 것을 숨어서 보며 비웃기나 하고.”“예? 숨어서 보다니요?”이때 한희정이 다가오면서 두 사람 사이에 끼면서 급하게 말했다.“왜, 그러세요?”최태욱이 별로 입씨름하기도 싫어 뒤로 돌아 학교 정문으로 향하고 했다.“어이, 어린 친구, 자네는 라켓이나 잡을 줄 아나?”“예, 잡을 줄은 압니다.”“그럼, 나와 한게임 하려나?”졸지에 이야기가 이상하게 변하고 있었다. 결국 이런 약간의 시비 끝에 두 사람은 테니스 코트에서 게임을 했다.15/16 쪽경기를 끝내고 나서 최태욱은 코트 구석에 벗어 놓은 축구화를 신고 하숙집으로 향했다.16/16 쪽

    경기를 끝내고 나서 최태욱은 코트 구석에 벗어 놓은 축구화를 신고 하숙집으로 향했다.경기를 끝내고 나서 최태욱은 코트 구석에 벗어 놓은 축구화를 신고 하숙집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