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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삶-11화 (11/657)
  • < --  [하룻밤의 열정]  -- >학생 수에 비해 그래도 공 좀 차는 애들이 많았다. 한 학생이 제안을 했다.“야. 오후에만 모여 축구를 하면 어디 실력이 늘겠냐? 뭐 좋은 방법 좀 찾아보자.”“그래, 아침에도 모여 연습하자.”이야기는 급진전되어 결국 남학생들이 주로 대동이나 자양동에서 하숙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대동과 자양동 경계에 있는 자양 국민학교에서 아침에 모여 축구 연습을 하기로 결정했다.“아침 6시에 자양 국민학교에 모이자.”“공은?”“각자 하나씩 사서 가지고 다녀.”“알았어.”회1/19 쪽등록일 : 12.09.06 21:55조회 : 4882/4897추천 : 27평점 :(비허용)평점 :(비허용)선호작품 : 1915거처하는 동이 다른 남학생들이 대부분이라 많은 인원은 모일 수가 없고 5명만 모일 수 있었다.결국 30명이나 되는 인원이 축구부 동아리에 가입하기로 하고 운동장에서 일어나 다들 하교했다.대전 대동의 하숙집은 거의 전문으로 하숙한다고 할 정도로 많은 방이 있었다. 대지 중앙에 있는 단층 건물은 방이 세 개인 주택이다.주택 양편에는 대문 쪽으로는 방이 네 개가 있고, 반대편 부엌 쪽에는 방이 두 개가 있었다.주택 정면으로 작은 목욕탕이 있었다. 목욕탕 앞에는 수도 시설이 있으며 벽돌로 쌓아 만든 정사각형의 수조가 있었다. 단수를 대비한 1미터 폭의 높이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수조다.왼편 대문 쪽으로 작은 화단이 있으며 그 반대편 목욕탕 옆으로는 두 칸으로 나뉜 화장실이 있었다. 대지 측면에 철 대문이 있는 구조다.골목길 쪽으로 길게 이어진 네 개의 하숙방이 있다. 대문에서 제일 안쪽에 있는 방에 최태욱이 하숙생활을 하고 있었다.최태욱은 이제 ○○전문대학 생활을 시작한지 2개월이 지났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됐다.그것은 하숙집에 하숙비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2/19 쪽“에이! 집에 가기 싫은데. 축구부 때문에 안 갈 수도 없고.”오늘 학교에서 축구부를 결성하자 월요일부터 자양 국민학교에서 조기 축구를 하기로 약속했다.현재 자기는 축구화도 없다. 계속 조기 축구를 하려면 운동복도 여유롭게 있어야 되니 집을 다녀와야 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어차피 내일 일요일에 아침에 출발해 다녀와도 되는 일했다.좁은 방에는 허름한 나무 책상 하나만 놓여 있고 옆에는 얇은 이불과 요가 놓여 있었다.“태욱 학생!”방문 바로 앞에서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문을 열었다.“편지 왔네, 여학생!”“아, 예. 친척 누이동생입니다.”“그래? 그렇데 봉투가 꽃봉투야.”3/19 쪽편지를 넘겨다 주면서 하숙집 주인아주머니는 호기심어린 얼굴로 최태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여자 애들은 다 그렇죠.”대충 이렇게 변명하고 하숙집 아주머니가 방문 앞에서 멀어지자 최태욱은 편지를 열고 내용물을 보았다.그림이 인쇄된 엷은 분홍색 편지지엔 가지런한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논산에서 여고 3학년을 다니는 장미란으로부터 온 편지다.그녀가 늘 사용하는 문장은 꽃이 어떻고 날씨가 어때서 무척 보고 싶고 오빠는 공부 잘하고 건강하냐는 내용이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냐는 내용으로 마무리됐다.최태욱은 부여에서 일어난 사건 이후로 그녀를 자기 졸업식에서 아주 잠깐 만나고 전혀 만나지 않고 있었다.다른 여자와 뜨거운 밤을 보낸 사실도 있었다. ‘끝내는 것이 좋아!’공부 잘한다고 늘 조금 과시하는 장미란이 별로 탐탁하지 않았다.4/19 쪽그러나 이미 진한 키스도 한 처지로 매정하게 그만 사귀자고도 못하고 그저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장미란은 그런 최태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과는 달리 적극적인 내용의 편지를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 보내고 있었다.추신에 적힌 내용을 읽다 최태욱이 피식하고 웃었다.‘오빠, 만나면 오빠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줄게 만나줘요.’아마도 농도 깊게 진행하려다 자신이 거절해 최태욱이 떠나려는 것으로 알고 이런 글을 쓰지 싶었다.“이거 순 내숭덩어리야.”편지를 다시 한 번 정독으로 읽고 나서 내용을 음미하며 최태욱은 내일 일찍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했다.부모님이 만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바로 손위의 누나가 하숙비 주는 것도 아깝다는 식으로 항상 투덜거리기 때문에 영 그게 못마땅했다.누나가 자기에게 이러는 이유는 조금은 짐작이 갔다.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상고에서 공부를 조금 잘하는 여학생이던 누나를 부모님이 대학에 보내주지 않았다. 그런데 남자라는 이유로 공부도 형편없는 남동생을 전문대학에 보내 주는 부회5/19 쪽등록일 : 12.09.06 21:55조회 : 4882/4897추천 : 27선호작품 : 1915(비허용)모의 처사에 불만이 많았다. 그런 불만을 모두 남동생인 최태욱에게 풀었다.더구나 집에서 주유소의 카운터 일하며 살림해 돈을 벌어 남동생 뒷바라지나 해야 하는 불평등에 대해 불만이 아주 많았다.그래서 늘 입버릇처럼 누나가 하는 말이 있었다.‘식충이 자식만 과외 공부시키고 나는 왜 대학에 안 보내 주는 거야.’어려서야 그러려니 했지만 점차 그런 소리가 마치 비수와 같이 자기 가슴을 휘젓고 있었다.“시팔! 공부를 잘하긴 상고에서 조금 중상위권이던 주제에······. 더구나 허구한 날 그 타령이야. 대학 공부하고 싶으면 방송 통신대도 있고, 길은 많더구먼.” 말은 그렇지만 조금 미안한 누나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계속해 면박을 주는 누나와 사이가 좋을 수는 없었다.더구나 아버지가 최태욱에게 전문대학을 보낸다고 하자 누나는 운전을 배워 주유소에서 기름 배달 차나 끌어야 제격인 녀석이라고 면박을 주었다.“에이!”6/19 쪽집에 갈 생각을 하니 짜증부터 났다. 누나를 만나서 또 무슨 소리 듣기가 싫은 것이다.사실 자기 집은 두 자녀 모두 잔문대학을 못 보낼 정도의 집은 아니다. 부친이 연로해 집의 세금 신고며 혹은 주유소 카운터 일은 하시질 못한다.그렇기 때문에 누나가 그런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또한 그것을 기화로 누나는 돈을 빼돌려서 따로 적금을 들고 있었다.물론 부친이 월급을 주는 것은 따로 모으고 있었다.아무리 깡통으로 다닌 상고지만 최태욱은 집에 있는 주유소 장부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생각보다는 어수룩한 녀석이 아니었다.“저는 도둑질 안하나. 나만 가지고 지랄이야.”그런 누나를 아버지나 어머니 모두가 살림꾼이라고 칭찬이 대단했다. 그래서 누나는 집안에서 발원권도 아주 센 편했다.“아무튼 잘 살기는 할 거야. 돈이라면 귀신이니까.”이런 누나에 비하면 최태욱은 부잣집 아들들이 흔히 그렇듯이 돈을 별로 중시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이유야 있으면 다 털어 쓰고 없으면 어머니에게 또 졸라서 타내서 쓰면 되기 때문이다.7/19 쪽“흠! 흠!”최태욱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 앞에서 기침 소리가 들리자 얼른 일어나 문을 열었다. 저녁상이 들어왔다.밥상에는 멸치 복음, 튀긴 두부 두 조각, 미역국, 밥 한 공기, 두부찌개와 김치가 놓여있었다.최태욱을 조금 부실한 밥상을 보며 투덜거렸다.“어휴! 이걸 먹고 어찌 내가 사누.”한 창 먹을 것이 당기는 나이인 그로써는 반찬까지 사그리 긁어 먹어야 양이 겨우 차는 부실한 밥상이다. 더구나 운동을 많이 하는 최태욱이라 더욱 그렇다.그래서 하숙집 앞에 있는 구멍가게로 가서 수시로 팥빵을 사서 먹으면서 지냈다. 저녁을 모두 먹은 최태욱은 밥상을 들어 하숙집의 마루에 가져다 놓고 화장실에 급하게 들어가게 됐다.삐거덕, 덜컹!뭐를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갑자기 설사가 났다.아마 낮에 학교에서 먹은 맥주와 닭튀김 때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8/19 쪽좌르르.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대변을 보는 최태욱이 귀가 쫑긋해 귀를 기울이게 됐다.으으음.최태욱은 공교롭게 본의는 아니나 바로 옆 화장실에서 힘들게 힘을 주는 여자의 신음 소리가 들었다. 반대편에서 하숙하는 여학생 같았다.분명히 소리는 대변을 보려는 소리지만 목소리 자체가 묘한 신음 소리로 들리면서 정신을 어지럽게 했다. 부여에서 자기 품에 매달려서 여자가 토하던 신음 소리와 비슷한 소리로 들렸다.‘참으로 황당하군. 하필 변소에서.’조금 황당하게도 그런 신음 소리에 주책없는 밑에 달린 물건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어휴! 쪽 팔려. 요즈음 들어 시도 때도 없이 이러네.’속으로 이런 소리를 토하며 얼른 휴지로 뒷마무리하고 급하게 화장실에서 나오게 됐다. 수돗가에서 비누칠해 손을 닦았다.9/19 쪽여전히 묘한 신음을 토하며 대변을 보던 여자가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 누군지 모르지만 아마도 심한 변비가 있는 것 같았다. 서로 얼굴을 마주 쳐야 자기도 설사를 요란하게 한 처지라 마주쳐야 민망할 것이 뻔해 최태욱은 얼른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에이, 지랄 같네.’그런데 한번 반응을 보인 물건이 도통 사그라지지 않고 있었다. 입고 있는 운동복을 뚫을 듯이 솟아올랐다. 그러자 최태욱이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똘똘이, 제발 참아라, 그러다 사고 치것다.”주문 외우듯이 하는 효과가 있었는지 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최태욱은 그래도 돈을 많이 주고 다니는 전문대학이라 공부하는 시늉이라도 내야했다. 낙제는 면해야 되는 터라 영어 교수가 내준 영어 숙제를 했다.“아휴! 이걸 다 해석해 리포터로 작성해 오라니 미치겠군.”최태욱은 겨우 두어줄 대충 영어 사전을 보며 앞뒤 통 밥을 지어 대충 해석하다가 도저히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10/19 쪽“에이! 소설이나 빌리러 가야지.”최태욱이 한창 흥미를 느끼는 것은 역사 소설과 소위 깡패가 조직을 거느리는 폭력물이다. 그저 흥미 위주로 보지 추종하는 성품은 아니라 대충 보고 있었다. 김두한이나 시라소니, 그리고 유지광 등을 주인공으로 하는 주먹세계를 다룬 소설이다.또한 흥미를 느낀 역사 소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다.하숙집에서 나와 근처 만화방에 가서, 서서 보는 상태로 만화를 두어 권 공짜로 실실 보고 있었다.20대 중반으로 조금 바람기가 있어 보이는 미니스커트 차림의 주인 여자가 그를 자꾸 올려다보며 입을 실룩거렸다.아마 고르는 척하며 서서 공짜로 만화를 보기 때문 같았다.최태욱의 시선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녀의 봉긋한 가슴에 멈추고 슬며시 살피고 있었다. 시선이 의식된 여자가 조금 황당한 표정이나 의외로 전혀 싫지 않는 기색이다.최태욱은 그런 주인 여자를 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단골인데 봐줘요.”11/19 쪽“·····.” 여자는 다시 말하지 않지만,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을 최태욱에게 보내고 있었다.최태욱은 조금 무안하기도 해 그제야 책장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책 중에서 급하게 한권을 빼서 빌려오게 됐다.소설 제목이 거지왕 김춘삼이다.하숙집의 자기 방에 오게 된 최태욱은 방바닥에 누워 소설을 빠른 속도로 읽어 가면서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책은 그저 살기 어려운 거지들을 모아 살 터전을 만들어 준다는 내용이다. 간혹 결투를 벌이는 장면도 나오는 그런 소설로 크게 감명을 주지는 않았다.“에이! 무협지나 빌려올 걸 별로 재미도 없네.”거의 책을 다 보게 된 상태에서 졸린 눈을 억지로 비비고 책을 보고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전기 스위치를 내리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최태욱의 대전에서 보내는 대학 생활과 하숙 생활은 항상 이런 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안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허송세월 하듯이 시간만 때우는 정도의 학교생활이 지속되고 있었다.12/19 쪽장차 뭐를 꼭 해야겠다는 확신이 없으니 공부에 대한 열정이 전혀 없었다.강경의 백강 주유소 옆에 있는 단독주택······.아주 넓은 대지에 한옥으로 지어진 주택은 누가 봐도 부잣집으로 보이는 큰 집이다.최태욱은 하숙비를 가지러 내려와 누나와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누나, 이 용돈으로 어떻게 한 달을 지내라는 거야.”“웃기고 있네, 이 정도면 충분해.”부친이 이번 달부터 최태욱의 용돈 문제도 누나에게 일임하는 바람에 벌어진 사태다.누나는 다달이 주던 용돈을 반으로 줄여버렸다.“나, 그럼 학교 못 다녀.”“말 잘했다. 다니기 싫으면 학교 그만둬. 너 공부도 안하는데 뭐 하러 비싼 하숙비 내고 학교를 가냐? 아주 잘 생각했다. 그만 두고 싶으면 관둬라 말리지 않는다.”13/19 쪽“아휴!”“왜? 그만 두기는 싫으냐? 너는 고생을 해봐야 정신 차려.”누나가 주는 돈으로는 좋아하는 소설 빌려보는 것도 포기해야 한다. 지금 막 배운 줄 담배도 완전히 끊어야 한다. 절약하고 절약해야 한 달을 겨우 버틸 용돈이다.그러니 용돈으로 술을 마신다던가 아니면 여학생들과 미팅 한번 해볼 자금도 없게 됐다. 하긴 여대생들과 미팅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이유는 여자에 별로 관심도 없지만 전문대학생과 미팅하려는 여대생이 전무하기 때문이다.말을 더 이상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는 최태욱은 화를 버럭 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너, 또 술 퍼마시러 가냐?”“술 먹을 돈이라도 줘보고 그런 말해.”“저게 누나에게 반말이야.”최태욱은 자기 방에 들어가서 유니폼과 추리닝 그리고 벽에 걸려 있던 새 축구공 2개 챙겨 커다란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축구화와 운동용품을 챙겨 작은 가14/19 쪽방에 넣었다.그런 최태욱을 보며 방문 앞에서 누나가 또 핀잔을 했다.“지랄하네, 체육 대학도 못가는 주제에 축구 선수라고 폼이나 잡고, 더구나 축구 선수라는 자식이 싸움이나 해 잘리고.”“별것 다가지고 시비야.”“내가 원망스럽고 미우냐? 나는 네가 정말 싫다. 건방지게 나설 때나 안 나설 때나 나서 남의 신세 망치는 녀석이.”“또 그 이야기야?”누나가 화를 내서 크게 외쳤다.“그래, 이 자식아. 네가 뭔데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패고 그랬냐.”“그래, 말 잘했다. 그럼, 아버지에게 가서 사실 대로 말해 볼까. 그자식이 어떤 놈인지. 누나야 남자에 눈이 멀어서 모르지만 그 자식 순 도둑놈에 사기꾼이야 대학은 무슨 대학, 중학교 나온 녀석이 사기 친 거야.”15/19 쪽“그래, 말 잘했다. 중학교 나온 사람을 내가 좋아하면 무슨 죄가 되냐, 그런데 왜 네가 나서 나서길.”“그거야, 누나 말이 맞는다고 하자고, 그런데 그 자식이 누나 돈도 가로 채서 다른 여자 선물 사준 녀석이잖아.”“그러거나 말거나, 네가 왜 나서 지랄 하냐는 거야.”“에구! 내가 말을 말지.”두 남매의 대화 내용은 바로 누나가 사귄다던 명문대 법대생이라던 녀석에 대한 이야기다.우연히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최태욱이 그 남자를 만나 좋게 말하고 헤어지라고 했었다.그런데 문제는 그 남자가 오리발을 내밀고 더구나 누나는 이미 자기와 잠을 잔 깊은 사이라고 떠들어 화가 치밀어 패버렸다.그 남자는 온몸이 거덜 나도록 주어 터지자, 경찰서 가서 최태욱을 폭력범으로 고소했다.더구나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한 사실이 있었다.일이 이렇게 커지자 명문대학교의 법대생이라던 남자가 사기꾼이라는 전말이 강경 전역으로 퍼지게 됐다. 누나는 그 일로 개망신을 당했다. 그런 일은 1년 16/19 쪽전으로 사실 누나는 그 일로 인해 대학 진학을 못했다.순진해서 인지 아니면 남자에 미쳐서 그런지, 경찰서에서 그런 사실을 확인시켜줘도 누나는 그 남자가 한 말을 믿었다.그러다 결국 최태욱이 거액을 요구하는 그 남자의 뒤를 조사했다. 그 남자가 이미 비록 혼인신고를 안 했으나 아이도 하나 있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일이 있었다. 그래서 누나는 충격으로 기절해 병원에 입원했다. 그 바람에 누나는 한동안 정신과 치료도 받는 바람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런 자기 잘못은 모두 최태욱에게 돌려서 구박하는 누나다.그래서 사실 누나의 행동에 반항심만 가지고 있었다.그때 자기 은사인 최도술 관장과 자기가 그 남자의 뒤를 정확하게 조사하지 못했으면 집문서 하나는 고스란히 날라 갈 위기였다.하지만 이상한 것은 누나의 마음으로 지금도 그 남자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동생인 최태욱이 나서지 않았으면 모두 잘되었을 것이라는 말했다. 아무튼 그런 누나라 최태욱은 그저 사람이란 혼이 빠지면 온통 똑똑한 척을 다해도 맹한 구석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두 사람의 싸움을 말린 것은 어머니로 어머니는 최태욱을 조용히 집의 정원 구석으로 불러 슬며시 용돈을 두둑하게 주면서 말했다.“태욱아, 누나하고 싸우지 마. 여자란 본래 그런 거야. 남자인 네가 이해해. 17/19 쪽나는 너를 믿는다. 그때 너 큰 돈 벌은 거야. 내가 알아주면 되지, 시집갈 누나가 무슨 상관이냐.”“알았어요.”“주유소나 집안 살림이 그냥 보기 보다는 복잡해, 그러니 너도 공부해. 그래야 아버지 사업 물려받아 재산을 지키고라도 살지.”“알았어요.”“너, 지금 가려고 하냐?”“예!”어머니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우리 장남 다 컸네, 집보다 다른 곳이 좋다니, 장가보내도 되겠어.”“엄마는.” “엄마는 똑똑한 여자보다 유순하고 참한 여자가 좋다. 무슨 말인지 알지.”18/19 쪽“예!”“너는 여자를 사귀데 누나 같은 실수는 절대하지 마라. 여자에게 못할 짓해도 안 되고.”“알았어요.”최태욱은 이런 모친의 다독임에 그제야 마음을 진정하고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게 됐다. 아직도 주유소에 가지 않고 자기 옆에서 감시의 눈길을 보내는 누나에게 말했다.“누나 미안해. 그러니 마음 풀어. 나 간다.”“자식이 말만 번지르 해 가지고.”최태욱은 그런 누나에게 손을 흔들고 급하게 집을 나섰다.19/19 쪽최태욱은 그런 누나에게 손을 흔들고 급하게 집을 나섰다.19/19 쪽최태욱은 그런 누나에게 손을 흔들고 급하게 집을 나섰다.

    최태욱은 그런 누나에게 손을 흔들고 급하게 집을 나섰다.결국 전화를 받게 된 장미란을 근처 공원으로 나오게 했다.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온 장미란은 최태욱을 만나자 골이 잔뜩 나서 투정부리는 말투로 쏘듯이 말했다.“그 여자 누구야?”“누군 누구야, 다방 아가씨지.”“어떤 사이인데.”매번 사용하는 경어도 아닌 반말로 하는 참으로 기도 안차는 앙탈을 부렸다.“내가 미쳤지.”“뭐가 미쳐요? 난 태욱씨가 다른 여자와 말만 해도 싫은데.”“······”“말을 못하는 것을 보니 찔리는 구석이 있나보네.”회2/19 쪽장미란은 그동안 많이 생각한 듯이 자기 속에 있는 말을 모조리 토했다. 좋은 말이 아니고 딴 여자와 사귄다는 식으로 하는 투정이다.그녀의 주된 레퍼토리는 장차 명문대에 갈 것이고 명문대학교 다니는 대학생들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식의 끝없는 자기 자랑을 했다.한참이나 혼자서 떠들다가 최태욱이 아무 말도 안하자 조금 기분이 이상해진 장미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오빠, 왜 안말 안 해?”“미란아. 우리 그만 만나자.”최태욱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장미란은 얼른 풀죽은 목소리로 항의했다.“뭐라고요? 지금 뭐라고 말한 것에요?”“우리 그만 사귀자고, 너무 잘난 너를 내가 감당 못하것다. 만나기만 하면 명문대학 타령하는 너에게 겨우 전문대학이나 겨우 다니는 내가 너에게 뭐라고 할 말이 있겠냐?”“오빠, 그건 꼭 오빠가 명문대학 가야 된다는 말이 아니잖아요?”3/19 쪽등록일 : 12.09.06 22:33조회 : 4743/4757추천 : 26평점 :선호작품 : 1915(비허용)“나는 공부와는 담 싸고 사는 사람이라, 네가 하는 이야기 들으면 피곤하고 짜증난다. 그러니 그만 만나자.”단호하게 결별을 선언하는 최태욱의 말에 장미란은 금방 눈물을 머금으며 말했다.“오빠, 오빠가 하자는 대로 다할게요, 그러니 헤어지자는 말만 하지 마. 응.”“나는 이제 네가 싫다. 나를 만나면 내 기분이 어떤지는 모르고 항상 공부 잘한다는 이야기나 하고 명문대학교 타령하는 네 이야기 들으면 자존심만 상하고 아무튼 그만 헤어지자고.”이렇게 말하고 최태욱은 뒤도 안돌아 보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고 있었다.너무 충격을 받았는지 장미란은 얼빠진 표정으로 최태욱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하니 이렇게 갑작스럽게 최태욱이 일방적으로 결별 선언을 할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더구나 부여에서 사건 이후로는 최태욱에게 이미 푹 빠진 상태다. 생각 못한 이별의 말이라 충격은 더욱 큰 것이다.  최태욱은 강경의 집에 와서 누나와 다투고 나서 그 화풀이를 결국 장미란에게 하고 떠난 격이다.4/19 쪽최태욱은 대전으로 올라와 다음날부터 아침에는 자양 국민학교에서 조기축구를 했다. 방과 후에는 다른 대학생들과 축구 동아리 활동을 하며 지내게 됐다. 그럭저럭 학교생활과 처음 하는 객지 생활에 적응해 살고 있었다.○○전문대학의 2층 미술과 강의실로 최태욱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축구 동아리 활동을 하는 미술과 학생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미술과 강의실에 자연스럽게 찾아오게 됐다.천인봉이 그를 보며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했다.“왔냐?”“응!”미술과의 강의실은 경영학과 강의실과 다르게 실기 실습장도 겸해 커다란 책상으로 되어 있었다. 20여명의 학생들이 한참 도안을 실습하고 있었다.천인봉은 미술 교수가 내준 숙제를 하고 있었다.“오래 걸 리냐?”5/19 쪽보아하니 포스터 칼라 물감을 팔레트에 잔득 풀어 놓고 이제 막 시작하려는 것을 보아 하는 질문했다.“조금 오래 거리는데.”“그러냐. 천천히 그려라.”최태욱은 천인봉이 그리는 도안을 조금 보다가 너무 세밀하게 그리자 구경하기가 조금 답답했다. 다른 학생들의 그림을 보며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자신도 중학교와 교교 시절에 각종 미술 실기 대회에 나가서 그림을 그려서 특상도 받은 경력이 있었다. 그 때문에 그림에 조금 관심은 있어 구경했다.최태욱이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는 본시 한문 때문이다. 처음 만 4살 무렵에 부친이 그에게 나이가 많은 한문 선생을 집에 독선생으로 들여서 배우게 했다.그래서 일찍 천자문을 배우고 어설프게 붓글씨도 배웠다. 그 한문 선생이 본시 붓글씨도 잘 쓰도 동양화도 조금 그리는 편이다. 줄 곳 옆에서 선생이 그리는 동양화를 구경하다가 조금씩 따라하게 되어 동양화를 배운 것이다. 그래서 만 5살이 되자 한글을 깨우치고, 천자문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최태욱을 국민학교에 입학시켰다.유치원 대신에 누나와 같이 학교에 다닌다는 최태욱의 성화에 억지로 조기입6/19 쪽학을 시킨 것이다.그런데 학교에서 보는 시험에서 매번 동급생 중에서 1등 하게 되자 그대로 학교를 다니게 됐다. 그는 또래인 동급 학생들보다 사실 한 살이나 두 살이 그리고 심하면 세 살 정도 나이가 적었다.한문 선생은 그가 국민학교 4학년까지 집에서 같이 살았었다. 그러니 5년간 독선생을 두고 한문과 붓글씨 그리고 동양화를 배웠다.그런 이유로 초등학교 시절에는 무슨 붓글씨 대회나 미술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특선을 받아 오는 일이 자주 있었다.한문선생이 떠나고 나서 친척인 최도술 관장이 총각으로 그에 집에 들어와 같이 살았다. 그로부터 태권도나 기타 격투기 그리고 축구를 배웠다.부친이 이런 배려를 한 것은 너무 이른 나이에 학교를 보내는 아들이 혹시라도 다른 큰 아이들에게 매를 맞을까 염려해 하게 된 대비책이었다. 또한 운동을 배우게 하는 이유도 있었다. 최태욱은 어려서 심한 병을 앓아 체구도 작았다. 조금 다른 애들보다 연약한 아들을 튼튼한 몸으로 키우기 위한 배려다.중학교에 들어와서 축구부에 들어가고 미술반 활동을 하다가 보니 자연히 다른 공부와는 멀어졌다.최태욱은 하얀 도판지에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은 보다 어디서 많이 본 여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어 의혹에 찬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7/19 쪽‘누구지? 많이 본 얼굴인데.’이름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아는 얼굴에 자꾸만 눈길이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제일 구석진 곳에서 둘이 같이 그림을 그리는 두 여학생 모두가 눈에 상당히 익은 얼굴이다. 그러자 슬며시 가까이 가서 두 여학생의 그림을 구경하며 얼굴을 자세하게 보게 됐다.이런 최태욱의 시선이 의식이 된 듯 두 여학생은 조금 얼굴이 붉어지며 그리던 그림을 멈추었다.최태욱이 자기들의 못 그리는 그림을 보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줬으면 하는 시선을 보냈다.“아! 알았다.”한참 생각해 겨우 두 여학생의 얼굴이 기억난 것이다.두 여학생은 모두 강경 출신의 여학생으로 한명은 자기보다 1년 선배인 누나와 동급생이다. 현재는 동급생이라고 해도 한 명은 누나와 친구가 된다. 또 한명은 고향의 한참 선배가 되는 터라 최태욱은 고향 누나를 만난 기분이 들어 얼른 인사했다.“안녕하세요.”8/19 쪽“아! 그래요.”여학생들 입장에서는 고향후배인 최태욱이 이제는 동급생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반말하기도 경어를 쓰기도 어벌쩡해 말을 더듬으면서 조금 부끄러워했다. 한 명은 1년을 재수해 들어온 것이고 한 명은 여고 졸업 후 수년 뒤에 초급대학 미술과를 들어왔다. 사실 두 명 모두 미술과 학생들 중에서 그림 실력이 뒤떨어진 실력이라 그렇다.두 여학생이 그런 어색한 기색을 보이자 최태욱도 더 이상 옆에서 그림을 보는 것이 무안해 다른 곳에 시선을 돌렸다.최태욱은 강의실에서 복도로 나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서 피워 물었다.“후우!”두 여학생의 가정이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했다.일 년 선배인 누나 친구는 자기 기억이 맞는다면 채운면에서 작은 채석장과 비석공장을 운영하는 오배덕 사장 딸인 오인숙이다.그것을 아는 이유는 고교 2학년 때 부친을 따라 조상들의 묘를 치장하러 비석 공장에 가서 비석을 흥정하러 따라 갔었다.9/19 쪽그때 집 옆에서 풍경화를 그리는 모습을 봤다. 기억나기는 무척 진지하게 풍경화를 그리기는 하나 자기가 보기에 영 아닌 그림 실력이다.나이가 자기보다 네 살이나 많은 다른 여학생은 이미영으로 강경에서 강경택시 회사를 하는 이찬혁 사장 딸이다.부친의 택시회사에서 경리를 했었다. 회사 택시들이 외상으로 사용한 기름 대금 결제를 위해 백강 주유소로 찾아오는 바람에 가끔 보기도 했다.아무튼 두 여학생 모두 고향 선후배 사이지만 이제는 초급대학 동급생이 됐다.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 운동장이나 갈까 하던 최태욱은 미술 실기실에서 두 여학생이 이젤과 화판을 들고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됐다.아마도 풍경화를 그리려고 학교 정원에 내려갈 생각 같아 보였다.최태욱은 막상 하숙집에 돌아가기도 그렇고 오늘은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축구 동아리 활동도 없기 때문에 무료한 처지다.그래서 두 여자 뒤를 따라 2층에서 내려오게 됐다.본시 교정 자체가 별로 크지 않은 전문대학이라 학교 정원이라고 해야 별로 볼 것도 없는 아주 작았다.그래도 기본적인 구색은 잦추어야 하는지 정원 가운데에 작은 분수대가 있었다. 분수에서는 하얀 물줄기가 포물선을 그리고 있었다.최태욱은 2층에서 내려와 학교 정원의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10/19 쪽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이곳저곳에서 풍경화를 그리는 미술과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그림이나 계속 그렸으면, 나도 저러면서 학교를 다닐 덴데.’경영학과에 들어와 있는 상태로 다른 공부는 그런대로 학점 딸 정도로 따라 갈수는 있었다. 영어 과목이 큰 문제다.교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여학생들을 따라 다니기도 했었다. 부여에서의 사건 이후로는 도통 또래나 후배인 여학생들에게 관심이 사라졌다.그리고 최태욱은 졸업이후 한 달간 여러 번 부여에 찾아갔었다. 부여의 백양 다실로 찾아가 그 여자를 수소문도 해보았다. 혹시 하고 미친놈처럼 부여 시가지를 헤매면서 찾기도 했다. 때로는 술을 많이 먹으면 미칠 것 같이 그 여자가 떠올랐다. 애절한 표정을 보이며 거의 울먹이던 그 여자의 불쌍한 모습이 떠올랐다.그럴 땐 사무치게 그리운 마음으로 꺽꺽거리며 울기도 하는 심한 사랑의 열병을 겪기도 했다.‘잘 살고 있으려나?’이제는 그런 심한 열병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수시로 그 여자를 생각하는 마11/19 쪽음이 쓰리는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이런 저런 지난 일로 상념에 잠겨 있던 최태욱이 분수대 옆에서 그림을 그리는 고향 선배인 여학생들 곁으로 가서 슬며시 뒤에서 구경했다.기웃기웃.두 명 모두 분수대와 학교 전경을 배경으로 하는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다.영 그림 그리는 솜씨가 어설퍼 보였다.최태욱이 뒤에서 자기들의 그림을 유심히 본다는 것을 의식하자 그리던 그림을 그만두고 뒤로 돌아섰다. 나이 많은 여학생이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너무 못 그리지요.”“누나들 편하게 반말로 말하세요.”“아! 그래요”대답을 하면서도 도저히 반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풍경화도 그려 제출해야 되나 보네요.”12/19 쪽“응!”“미술과 다니는 것도 쉬운 일 아니겠군요. 저는 경영학과만 힘든 줄 알았더니 데생도 그려야 하고 디자인도 하고 별 과목 다해야 하네요.”이렇게 세 사람이 자연스럽게 말이 오가다가 두 여자가 너무 오래 풍경화의 채색을 망설이고 있는 모습에 조금 답답한 마음에 최태욱이 말했다.“그림 그냥 그려 숙제로 제출만 하면 되지요?”“응!”“누님들 그럼 대충 그려 제출해도 되잖아요.”“그거야 그림 실력 좋은 네가 하는 생각이지, 우리는 너무 힘든 과제물이야.”“제가 조금 그려 줘도 될까요?”두 여학생은 그 말에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해달라는 눈빛이다.그림 실력이 남에 비해 뒤떨어진 두 여학생의 입장에는 그림을 제출하라는 많은 실기 숙제가 버거웠다.13/19 쪽다른 학생들이야 그런대로 그림 그리는 솜씨가 있으니 과제물 제출을 잘도 하고 있었다. 두 여자는 부족한 그림 실력으로 어느 정도 그림을 그려서 제출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많은 과제물이다. 미술과 교수가 거의 매일 한 장씩 그려 내라는 많은 실기 숙제는 다른 학생들과 같이 따라서 제출하기가 버거워 사실 고민이다.최태욱은 일 년 선배 여학생의 그림을 먼저 손보기 시작했다.본시 동양화를 그리던 솜씨라 수채화 그리는 속도가 빠르다. 어설프게 그려졌던 수채화는 최태욱의 붓 칠 몇 번으로 너무도 쉽게 그림 꼬락서니가 됐다.“어머나, 진짜 잘 그리네. 소문에 대단한 그림 솜씨라고 하더니 사실이야.”“별로죠.” “너는 대회만 나가면 특선을 받았잖아.”두 여자들이 말하는 그대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그림을 잘 그리는 솜씨다.보다 정학하게 표현한다면 최태욱의 미술 실기 실력은 풍경화의 경우 미술과 14/19 쪽학생 중에서 최고라고 할 정도다. 데생은 중간실력, 도안이나 디자인은 상위 실력에 속할 정도다. 그러니 미술 과에서 최하위 수준인 여학생들의 그림이 졸지에 중상위급에 속하는 그림이 되어 버렸다.단 20분 만에 두 개의 풍경화를 완성했다. 어느새 매점에 다녀온 것인지 4년 선배인 여학생이 빵과 우유 그리고 과자를 사들고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최태욱의 도움으로 쉽게 과제물 하나를 끝낸 두 여학생은 안도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잔디에 앉아 대화했다.“너는 왜 미술과에 안 오고 경영학과에 들어왔어?”“아버님이 초급대학 경영학과라도 나와야, 나중에 사업 물려주신다고 해서요.”“아! 그렇구나. 그럼 나중에 사업하며 살려고?”최태욱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몰라요. 아직 뭐하며 산다는 계획이 없어요. 그런데 누나는 왜 늦게 학교에 15/19 쪽들어 왔어요?”“시집 잘 가려고.”“예?”“너도 알다시피 내가 혼기가 찬 나이잖아. 선을 보면 조금 마음에 드는 학벌 좋은 남자들이 하나 같이 내가 대학 나온 여자가 아니라고 퇴짜를 놓는 거야.”“설마요. 누나는 얼굴도 예쁘고 집도 부자이고 참하다고 소문난 분인데.”“세상 살다가 보니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 내가 남자를 고르는 눈을 조금 높이 잡은 탓도 있지만.”“그렇군요. 학벌 좋은 남자를 결혼 상대자로 선택하려면, 딴은 그런 조건 남자로는 여자에게 그런 정도 조건을 내세울 수가 있겠네요.”이렇게 말하고 다른 1년 선배를 바라보자 그 여학생도 순순히 자기가 미술 대학에 들어온 이유를 말했다.“나는 예비고사는 통과했으나, 실력이 딸려서 공주 교대 시험에서 떨어졌어, 16/19 쪽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은 되고는 싶고, 그래서 좋아하는 미술 선생이 되려고 들어온 거야.”“그래요? 여기 졸업하면 미술 선생을 할 수가 있나요? 교사는 사범대학을 나와야 하지 않나요?”“물론 사범대 졸업을 하면 정교사 자격을 주고, 다른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교생 실습 받으면 중등 교사 준교사 자격증 준다고, 공립으로는 채용이 안 되고, 사립학교에는 근무가 가능해. 그게 어려우면 초급대학 졸업 후에 4년제 미술대학으로 편입해 2년간 더 다니면 되고.”“그렇군요. 저는 그런 것도 몰랐네요.”  “너도 이 학교를 졸업해 편입하면 시험을 보지 않고도 4년제 경영학과 졸업이 가능해.”“그렇구나. 난 그런 방법이 있는지도 몰랐네요.”각자 어떤 목표를 향해 부족한 실력이라도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두 여학생을 보며 최태욱은 아무 미래에 대한 목표도 없는 자기가 참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17/19 쪽그는 이런 생각은 잠시이고, 이내 두 여학생을 보며 말했다.“누나들이 싫어 하지만 않으면 제가 숙제를 대신 해줄게요.”“정말?”“예, 서로 다 아는 처지라 하는 말이지만, 누나들 그림 실력으로는 실기 숙제에 치어서 다른 공부를 전혀 못하겠네요.”“그래, 네 말이 맞아. 미술과라 불어도 해야 하고, 영어공부도 해야 하고, 미술사 공부도 해야 하는데, 실기 과제물 제출 때문에 진짜 미치겠더라. 이러다 우리 미술 실기에서 낙제하게 생겼어.”“아무튼 제가 시간 내서 숙제는 다 해줄 것이니 걱정 마세요. 그리고 대신 제 영어 숙제는 두 분이 해주어야 합니다.”“알았어. 아주 어려운 숙제 아니면 그건 우리 둘이 해줄게요.”세 명 사이에는 숙제를 교차해 대신 해주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해 두 여학생은 미술 실기에서 수월하게 과제물을 제출했다. 최태욱은 영어 숙제를 두 여자가 해주자 수월하게 제출해 별 탈 없이 낙제는 면할 길이 열렸다.숙제만 잘 제출하고 수업 시간에 빠지지 않으면 설사 중간고사나 기말 고사에18/19 쪽서 백지를 낸다고 해도 교수님들이 성의를 봐서라도 D 학점은 주기 때문이다.막막하고 무료하기만 하던 대학 생활이 이번 일로 인해 할 일도 생기고 조금 재미있게 변했다.19/19 쪽막막하고 무료하기만 하던 대학 생활이 이번 일로 인해 할 일도 생기고 조금 재미있게 변했다.19/19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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