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222화 (222/227)
  • < 제 75장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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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부 군이 약속의 땅으로 향했다.

    남부 군이 약속의 땅으로 향했다.

    천하고 수백 년 전 천계의 문이 열렸던 땅.

    그 날의 대전 이후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땅.

    남부 군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팔부중이었다. 이미 집결해 있던 군대에 다시 격노의 영토 곳곳의 병력들이 모이니 그 수가 근 육 만에 달했다.

    용 군단은 창단 이래 가장 강력한 전력을 보유했다. 드래곤의 숫자는 백 삼십여 마리에 달했고, 그 가운데서도 완전히 자란 에인션트 드래곤의 숫자가 스물 셋이나 되었다. 용 군단을 따르는 날짐승들과 비행형 몬스터들의 숫자는 다시 일만을 헤아렸다.

    시트리와 사마엘에게서 공급받은 던전 상회의 전력을 주축으로 하는 마몬 가의 공중 함대가 용 군단의 뒤를 받쳐주었다. 비공정 스물 세 척이 동시에 하늘을 누비며 내뿜는 위용은 드래곤 일백여 마리가 하늘을 누비는 와중에도 결코 희석되지 않았다.

    약속의 땅이 멀지 않았기에 스컬 부대와 블랙 오크 전대는 적색거룡 티아메트에서 내려 남부 군과 함께 기동했다.

    스컬을 등에 태운 부케팔로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부케팔로스의 영원한 맞수이자 악우인 살라미는 하늘에 없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을 위해 적색거룡 티아메트에서 대기 중이었다.

    부케팔로스는 이번 전투의 작전 개요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의 친애하는 주인 스컬이 언제나처럼 스컬스컬거리며 무언가 설명해주었지만 늘 그랬듯이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부케팔로스 자신의 역할은 언제나와 같았다. 등에 주인을 태우고 질풍같이 전장을 질타하면 되었다.

    부케팔로스는 푸득푸득 소리를 내었다. 살라미에게 보내는 인사였다.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부케팔로스는 자신의 뜻이 살라미에게 전해졌다고 확신했다.

    살라미는 작은 소리를 토하며 웅크린 몸을 살짝 움직였다. 적색거룡 티아메트의 격납고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간의 경험이 알려주고 있었다. 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싸움의 때가 이제 정말 멀지 않았다.

    살라미는 몸을 조금 더 웅크렸다. 지상에서 행군하고 있을 부케팔로스를 떠올리며 힘을 비축했다. 부케팔로스에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30분 뒤에 1차 집결지에 도착합니다.]

    [북부 군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양측 모두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약속의 땅에 접어들 것 같습니다.]

    남부 군과 북부 군은 적이었고, 언제 어디서 싸우자는 약속 한 마디 나눈 바가 없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이끌렸다. 기동 속도를 조절해가며 때를 맞췄다.

    하나로 집결한 북부 군의 숫자는 이십 만에 육박했다. 남부 군의 총합의 근 두 배에 달하는 대병력이었다.

    그런 북부 군의 회전 요청에 남부 군이 응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막지 않으면 저들이 격노의 영토를 유린할 것이기에.

    둘째, 천계로 인해 싸움을 길게 끌 시간이 없기에.

    셋째, 이쪽 역시 승산이 있기에.

    [그래도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루시아가 브릿지에 모여 있는 모두에게 말했고, 구시온이 코웃음을 쳤다.

    “난 안 두렵다.”

    “나도.”

    “저도 두렵지 않습니다.”

    카이완과 엘리고스가 각각 말을 보탰다. 스카자하와 오필리아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작게 웃었다. 구시온이 껄껄 웃는 가운데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카타리나가 살짝 쳐져 있던 귀와 꼬리를 세우며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저도요.”

    모두가 웃으며 자신감을 표하는 가운데 함장석에 앉아있던 용호는 시선을 살짝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시트리와 눈이 마주쳤다.

    시트리는 무어라 말하는 대신 그저 눈웃음을 한 번 지은 뒤 용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작은 동작이었지만 힘이 되었다.

    약속의 땅이 가까워졌다.

    싸움의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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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노의 왕은 다시 한 번 뿔피리를 손에 쥐었다.

    다른 12 사역마들과 달리 그녀는 지상에 자리했다. 12 사역마이기 이전에 팔부중의 왕인 그녀는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선봉에 설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냥 앞장서서 싸울 수만은 없었다. 이번 전투에서 격노의 왕은 오직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팔부중은 행군을 멈추고 도열해 있었다. 이토록 많은 팔부중이 군대를 한 자리에서 마주한 것은 격노의 왕 또한 처음이었다.

    모두가 격노의 왕을 바라보았다. 하늘과 땅을 모두 헤아려 칠만 개가 넘는 시선들이 격노의 왕을 뒤덮었다.

    격노의 왕은 숨을 크게 골랐다. 갖가지 감정들이 고양되었다. 모두의 시선에는 두려움과 용기와 경의와 애정이 뒤섞여 있었다.

    남부 군은 침묵했다. 입을 꾹 다문 채 격노의 왕의 말을 기다렸다. 어느새 남부 군의 호흡은 거짓말처럼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대군의 숨결이었다.

    키르티무카가 가슴을 크게 펴며 팔부중의 깃발을 들어올렸다. 가르디문디 역시 그 옆에서 격노의 왕을 상징하는 왕의 깃발을 세웠다.

    마침내 격노의 왕이 입술을 열었다. 기막힌 침묵 속에 작고 여린 몸에서 나왔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벽력같은 목소리를 던졌다.

    “팔부중의 전사들이여!”

    찌릿찌릿한 전율 속에 팔부중들이 응답했다. 저마다의 무기를 들어 올리며 하나 된 목소리를 토했다. 격노의 왕이 계속 소리쳤다.

    “환상의 수맥을 올곧이 이은 일자왕의 후예들이여! 남부에 거하는 모든 마계의 전사들이여!”

    용 군단이 격노의 왕을 주시했다. 마몬 가와 던전 상회에 속한 사역마들이 눈을 빛냈다.

    대군의 환호 속에서 격노의 왕은 고민하지 않았다. 일부러 멋진 말을 만들어내고자 고심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솔직하게 그녀의 말을 토했다.

    “적이 저곳에 있다. 다 함께 물리쳐 마계를 구하자. 우리의 삶을 지켜내자.”

    북부 군을 물리치고 천계의 문을 닫는다. 여기 모인 모두의 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를 구한다.

    남부 군에서 다시 한 번 천지를 뒤흔들 것 같은 환호가 터졌다. 격노의 왕은 그대로 돌아섰다. 이제는 저 멀리라고도 할 수 없을 곳에 자리한 북부 군을 노려보았다. 뿔피리를 입에 물었고, 망설임 없이 크게 불었다.

    모두가 뿔피리 소리를 들었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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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측에서 쏘아올린 화살의 비가 하늘을 뒤덮었다. 마동포에서 발사된 마력 탄들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불태웠다.

    그 모든 것들을 머리 위에 둔 채 남부 군이 돌진했다. 북부 군 또한 돌진했다. 가루라왕 비류박차는 허공에서 수만 명이 돌진하는 모습을 보았다. 용 군주 앙카블로사는 저만치서 괴수들이 몰려옴에도 용 군단에게 대기할 것을 명했다.

    남부 군과 북부 군 사이의 거리가 시시각각 좁혀졌다. 이제 고작 몇 초 후면 충돌할 터였고, 그 찰나의 순간에 수십, 수백을 헤아리는 목숨들이 산화될 터였다.

    부케팔로스가 질주했다. 스컬이 바포메트의 낫을 크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적색거룡 티아메트의 갑판에 서서 전장을 내려다보던 시트리가 움직임을 개시했다. 던전 상회가 마계에 탄생하던 날 함께 만들어진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던전 상회를 만든 것은 시트리였지만 그녀는 던전 상회를 홀로 지배하지 못했다. 시트리 홀로 관리하기에는 마계가 너무 넓었고, 시트리에게는 천계의 독을 치유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중간 중간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백 년씩 치유의 잠에 빠져든 사이 던전 상회를 운용할 자들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시트리는 다섯 이사 제도를 만들었다. 시트리는 다섯 이사 가운데 하나로 스스로를 격하시키는 대신 마몬이 구상한 여러 가지 복지 방안들을 유지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다른 이사들과 그녀의 관계는 평등에 가까워졌다.

    때문에 시트리는 던전 상회를 만들 때부터 한 가지 수를 준비해두었다. 비록 이후 이어진 천 년의 세월이 그녀를 안일하게 만들었지만, 천 년 전의 그녀는 배신을 당한 직후였다.

    던전 상회의 마스터 키. 이날 이때까지 아끼고 아껴온 단 한 번의 수.

    시트리가 지팡이에 마력을 주입했다. 던전 상회의 주인으로서 던전 상회를 거쳐 간 모든 것들에게 명령했다.

    “정지하라.”

    짤막한 명은 곧 현실이 되었다. 마스터 키에서부터 발산된 마력이 전장 전체를 뒤덮었다.

    아브라삭스가 북부의 창고에서 꺼낸 각종 사역마들은 명령에 복종했다. 이제 지척이라 해도 좋을 거리에 남부 군이 도달해 있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정지했다.

    하늘을 누비던 괴수들 가운데 절반가량이 날갯짓을 멈추었다. 스스로의 존재를 유지하던 초능력의 사용 역시 그만두었다. 중력에 몸을 맡겨 지상에 추락했다.

    오만, 질시, 색욕, 식탐 네 왕의 사역마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한 번은 던전 상회를 거쳐 간 존재들이었다. 네 왕의 문장 아래 아직도 남아있는 던전 상회의 문장이 그들의 움직임을 저지했다.

    오직 한 번.

    사용하는 순간 마계 전체가 알게 될 것이기에 두 번 다시 사용할 수 없는, 두 번 다시 이러한 기능을 심어 넣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할 폭거.

    북부 군 전체가 얼어붙었다. 아직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지만 주변 모두가 얼어붙었기에 그들 역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부 군은 멈추지 않았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가운데도 의식은 살아있는 북부 군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선두에 섰던 북부 군은 두려움에 떨었다. 바로 코앞에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현실은 어마어마한 공포감을 낳았다. 죽음의 각오 따위는 공포에 말소되었다.

    최선두에 선 스컬이 바포메트의 낫을 크게 휘둘렀다. 리쿰과 블랙 오크 전대가 저마다의 무기로 무방비 상태인 북부 군을 내려쳤다.

    남부 군의 선두가 북부 군을 정면을 강타했다. 돌진하던 기세를 조금도 늦추지 않고 북부 군을 부수고 밟고 파괴했다. 폭발하듯 터져나간 북부 군 선두의 시신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북부 군은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눈앞에서 터져나가는 아군의 시신이 그들의 정신을 더욱 더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피와 육편이 북부 군의 얼굴을 뒤덮었고, 연이어 남부 군의 창칼이 북부 군의 육신을 유린했다.

    북부 군 전체를 통솔하던 비프론즈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직감했다. 그렇기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 어째서 지난 번 전투에서는 이러한 힘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알았다. 동시에 그의 오랜 벗이 비프론즈의 귓가에 속삭였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북부 군이 죽어가고 있었다. 지금의 정지 상태가 이어지면 불과 수십 분 만에 북부 군 전체가 문자 그대로 ‘전멸’할 수도 있었다.

    비프론즈는 이를 악물었다. 비로소 자신이 누구를 배신한 것인지를 절감했다.

    시트리. 나태의 왕이기 이전에 던전 상회의 이사인 그녀. 던전 상회를 이 세상에 만든 그녀!

    아브라삭스가 격노를 토했다. 미쳐 발광하며 몸부림쳤지만 얼어붙은 북부 군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들의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자가 있어도 누구 하나 위험을 알리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아니, 설사 마스터 키가 발동하지 않았더라도 북부 군은 그녀를 포착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녀- 던전 상회 최속의 날개 사마엘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눈으로도 쫓기 힘든 속도로 날아 아브라삭스에게 돌진했다. 던전 상회의 힘을 휘두르는 아브라삭스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은 마스터 키를 가진 시트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아브라삭스도 사마엘을 보았다. 일곱 개의 뿔을 곧이 세우며 던전 상회 최강의 마력을 발산했다.

    사마엘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브리가다로부터 주인의 힘을, 탐욕과 식탐과 격노의 힘을 이끌어냈다. 던전 상회의 이사이던 시절보다 훨씬 더 강맹한 힘을 휘둘러 아브라삭스의 마력을 파괴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카롯을 비롯한 모두의 복수를 행할 때였다.

    비프론즈는 쓰게 웃었다. 그의 앞에도 마몬 가의 12 사역마들이 나타났다. 적색거룡 티아메트로부터 탄환처럼 발사 된 두 레드 데몬은 착지와 동시에 야수와 같은 기세를 내뿜었다. 엘리고스와 오필리아. 탐욕의 왕의 두 야수. 더욱이 그들의 뒤에는 티그리우스가 서 있었다.

    여섯 개의 뿔을 가진 세 예속 사역마 앞에서 비프론즈는 포기하는 대신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최후를 직감했기에 오히려 이 순간을 즐겼다. 발악하듯 마법을 자아냈다.

    시간의 흐름은 저마다 느끼기 나름이었다. 모두가 잠깐이라 느낄 몇 초가 시트리에게는 참으로 길게만 느껴졌다.

    마스터 키는 결코 절대의 권능이 아니었다. 시트리가 북부 군 전체를 정지시킬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겨우 이십여 초 밖에 남지 않았다. 고등한 사역마일수록, 오만의 왕이나 색욕의 왕의 지배를 강하게 받는 사역마일수록 마스터 키의 정지 명령에서 벗어나는 속도가 빠를 터였다.

    그 이십여 초 만에 이십만이 넘는 북부 군을 전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때문에 시트리의 노림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대군을 거느린 오만의 왕은 지난 번 전투에서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때보다 더 많은 군사를 거느린 지금 역시 그러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오만의 왕은 자신 외의 모든 것들을 도구로 생각하는 자였다. 수만 대군을 죽이는 대가로 탐욕의 왕과 격노의 왕을 지치게 할 수 있다면 그에 만족할 자였다.

    오만의 왕의 위치를 특정지어야 했다. 그를 찾아내 이 싸움을 대군과 대군의 싸움에서 왕과 왕의 싸움으로 변화시켜야 했다.

    시트리는 북부 군의 정지 상태가 이십여 초밖에 이어지지 않을 것을 알았다. 하지만 비프론즈와 아브라삭스도 그 사실을 알까? 오만의 왕과 색욕의 왕이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까?

    상상도 못한 상황을 마주한 가운데 그들은 행동해야만 했다. 뭐가 되었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스스로를 노출시켜야만 했다.

    시트리는 마른 침을 삼켰다. 일초를 영원처럼 느끼며 전장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을 인지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력이 폭발했다. 아니, 폭발적인 마력의 기운에 대기를 비롯한 모든 것이 비명을 질렀다. 북부 군의 너머였다. 그곳에서 오만의 왕이 힘을 발했다. 여덟 개의 뿔을 모두 곧이 세우며 오만과 질시의 죄를 발했다. 질시의 죄의 힘인 지독한 검은 감정의 거인이 중앙에 자리한 북부 군의 머리 위에 형성되었다.

    색욕의 왕 또한 더 이상 스스로의 위치를 감추지 못했다. 색욕의 신기를 곧이 세워 스스로의 위치를 드러냈다. 북부 군의 좌익이었다.

    바로 지금이었다. 오직 이 순간만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던 자들이 일시에 행동을 개시했다.

    용 군주 앙카블로사와 스물 두 마리 에인션트 드래곤들이 입을 벌렸다. 정지해버린 괴수들을 노리는 대신 지상을 향해 드래곤 브레스를 내뿜었다. 스물 세 개의 빛줄기가 거대한 하나가 되어 북부 군을 가로질렀다. 움직일 수 있는 자들과 그러지 못한 자들을 가리지 않고 일소했다.

    앙카블로사와 오만의 왕 사이의 거리는 멀었다. 더욱이 사이에 있던 북부 군을 휩쓸며 지나간 드래곤 브레스였기에 오만의 왕 앞에 당도했을 때는 그 위력이 처음에 절반도 되지 못했다. 검은 질시의 거인은 오만의 빛을 휘둘러 드래곤 브레스를 단번에 걷어냈다.

    허나 그것으로 족했다. 용 군주 앙카블로사의 목적은 애당초 길을 여는 것이었다.

    살라미가 포효하며 불꽃의 날개를 펼쳤다. 그 등 위에 올라탄 용호와 카타리나와 구시온은 살라미의 등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작렬하는 드래곤 브레스를 바짝 따라붙었다. 불꽃의 잔흔이 대기를 불살랐다. 검은 질시의 거인이 드래곤 브레스를 걷어낸 그 때 살라미는 질주를 멈추었다. 검은 질시의 거인을 수십여 미터 앞에 둔 채 용호의 명에 따라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이제 정지의 시간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검은 질시의 거인이 솟구치는 살라미를 보았다. 색욕의 왕 또한 살라미의 기묘한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다시 정면을 볼 수밖에 없었다.

    “색욕의 왕!”

    북부 군 사이를 가로지른 격노의 왕이 노호성을 토했다. 유혹의 힘을 지닌 색욕의 왕과는 우군 사이에서 싸울 수 없었다. 적진 사이에 있는 그녀를 공략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격노의 왕의 역할은 색욕의 왕의 저지였다. 색욕의 왕이 지닌 유혹의 힘을 온전히 견뎌낼 수 있는 이는 남부 군 내에서 오직 그녀 하나뿐이었다.

    카이완이 사복검을 크게 휘두르며 격노의 왕 주변의 북부 군을 일소했다. 그녀가 이번에 맡은 역할은 격노의 왕의 보조였다. 카이완은 왕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재차 사복검을 휘둘렀다. 색욕의 왕을 똑바로 보는 대신 용호가 날아오른 하늘을 보았다.

    남부 군의 수뇌는 애당초 이번 싸움을 대군과 대군의 싸움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 단순히 회전을 펼치기에는 북부 군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북부 군을 지배하는 오만의 왕 하나를 꺾는 것만으로도 이 싸움에서는 이길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북부 군의 전멸이 아닌 오만의 왕의 말살이었다.

    격노의 왕 홀로 색욕의 왕에 맞서는 것은 어려웠다.

    용호 홀로 오만의 왕에 맞서는 것 역시 그러했다. 오만의 왕의 마력은 여전히 용호를 상회했다.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한 수.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남부 군 전체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

    살라미가 충분한 높이로 솟구친 그때 용호는 마몬의 신기인 마장을 높이 들어올렸다. 12 사역마를 상징하는 열 두 개의 빛을 일시에 내뿜으며 명령했다.

    “오라! 탐욕의 미궁이여!”

    탐욕의 미궁 최심층인 13층의 비밀 방에서 발견한 것.

    진정한 탐욕의 미궁의 주인이 되었기에 할 수 있는 일.

    대지를 질타하는 마그나돈은 분명히 말했다. 자신이 탐욕의 미궁을 옮겼다고. 표면의 마몬 가 아래에 탐욕의 미궁을 숨겼다고.

    그렇다면 그 역은 어떠할까. 다시금 탐욕의 미궁을 옮기는 것은 가능할 것인가!

    루시아가 호응했다. 천 년의 세월동안 완성된 상상을 초월하는 대마법이- 대이적이 이루어졌다. 공간과 공간 사이를 거대하고 거대한 던전이 뛰어넘었다!

    열 세 개의 층을 가진 던전이었다. 그 높이는 수백 미터에 달했고, 그 넓이 또한 상상을 초월했다. 거대하고 거대한 기암 덩어리가 북부 군 한 가운데 소환되니 공간도약의 여파만으로도 근방에 있던 북부 군이 부서지고 파괴되었다.

    “탐욕의 미궁!”

    오만의 왕이 비명처럼 외쳤다. 색욕의 왕 또한 끝내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격노의 왕이 쇄도해왔지만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탐욕의 왕 마몬의 던전.

    천하고도 수백 년 전 그날, 오만과 질시와 색욕의 세 왕이 파괴했다고 믿은 바로 그 던전!

    탐욕의 미궁 위에서 살라미가 크게 홰를 쳤다. 용호는 탐욕의 미궁 깊은 곳에 자리했을 때와 같은 안정감을 느꼈다. 다시 한 번 루시아에게 명했다.

    “탐욕의 미궁이여! 주인을 보좌하라!”

    가주가 강해지면 던전 역시 강해졌다.

    던전이 강해지면 가주 또한 강해졌다.

    던전의 힘은 곧 가주의 힘이었다. 그렇기에 가주는 던전과 함께할 때 가장 강한 힘을 발했다.

    탐욕의 미궁으로부터 거대한 힘의 아우라가 발생했다. 아우라 안에 든 마몬 가의 사역마들뿐만 아니라 남부 군 전체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마치 전장 전체가 탐욕의 미궁이 된 것만 같았다.

    던전이 던전의 사역마들과 함께 호흡했다. 던전의 주인에게 가장 거대한 힘을 전해주었다.

    용호는 살라미의 등 위에서 도약했다. 카타리나의 힘인 검은 마력의 날개를 크게 펼치며 탐욕의 미궁으로부터 받은 힘을 전신에 둘렀다. 탐욕의 신기와 하나 된 아몬을 움켜쥐고 눈앞에 선 검은 질시의 거인을, 그 안에 자리한 오만의 왕을 노려보았다.

    “탐욕의 왕.”

    오만의 왕이 노여움을 토했다. 마주한 순간 그는 직감했다. 심장의 두근거림을 헤아릴 필요도 없었다. 눈앞의 존재에게서 마몬의 환영을 보았다. 탐욕과 식탐과 격노라는- 그 옛날 마몬이 손에 넣었던 세 개의 죄악을 느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오만의 왕의 이성을 증발시켰다. 참을 수 없는 분노 속에 몰아넣었다.

    “오만의 왕.”

    용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계 역사상 가장 강대한 마력을 지닌 오만의 왕을, 오만의 왕가를 마주한 채 가지고 있는 기량을 모두 이끌어냈다.

    단숨에 육마가 발동하였다. 탐욕과 식탐과 격노의 죄가 용호의 영혼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오만의 왕이 빛으로 된 여덟 개의 뿔을 곧이 세웠다.

    용호 역시 빛으로 된 여덟 뿔을 세웠다.

    오만의 왕은 여섯 장 광익을 펼쳤고, 용호는 검은 마력의 날개를 폈다.

    경천동지할 두 왕의 마력이 정면에서 충돌했다.

    &

    < 제 75장 #3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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