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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212화 (212/227)
  • < 제 73장 - 대공습 >

    제 73장 - 대공습

    폭력의 왕이 스스로의 목숨을 소진해 만들어낸 빛은 서쪽 땅 일대를 이 세상에서 소멸시켰다.

    폭력의 왕의 레어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자리했던 산림도, 그 안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던 종족들도 모두 한줌 재조차 남기지 못한 채 세상으로부터 지워졌다.

    드래곤들은 구태여 모든 것이 사라진 그 땅을 다시 찾지 않았다. 인근에 터를 잡고 있던 드래곤들은 폭력의 왕의 마지막 유언을 따라 각기 북과 동으로 이동해 앞으로 있을 대전쟁에 대비했다.

    마계의 밤은 검푸른 빛이었다. 동쪽에서부터 밀려온 태양이 검정에 가까운 파랑을 붉은 빛으로 물들였다.

    햇살은 지워진 땅에도 닿았다.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작은 새조차 찾지 않게 된 그곳에 가득 찬 밤을 몰아냈다.

    햇살을 따라 동쪽에서부터 불어온 바람이 텅 빈 땅위에서 갈 곳을 찾아 맴돌았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작은 소용돌이가 되었다.

    아무 것도 없고, 아무도 찾지 않는 땅이었다. 그렇기에 바람이 만들어낸 작은 소용돌이가 이내 다른 무언가로 변모하는 것을 목격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뒤틀림이었다. 바람이 만들어낸 소용돌이를 따라 마력이 휘몰아쳤고, 본래라면 이어질 수 없는 곳과의 연결로가 만들어졌다.

    작은 뒤틀림에서는 마력만이 소용돌이치기 마련이었다. 그보다 조금 더 큰 뒤틀림에서는 연결로를 통해 다른 곳의 존재들이 강림하고는 했다.

    허나 이번에는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뒤틀림으로부터 새어나온 것은 마력도, 어떤 특별한 존재도 아니었다.

    마력과는 다른 무언가. 어떠한 힘이라고 불러야 할 것.

    뒤틀림 주변의 산재해 있던 마력이 변질되었다. 오염되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터였다.

    결코 범상치 않은 뒤틀림.

    오랜 옛날 마계 곳곳에서 나타난 바 있었던 그것.

    다시금 세찬 바람이 불었다. 더 이상 뒤틀림이라 부를 수 없는, 세상의 균열이 남긴 흔적을 스쳐지났다.

    &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이불 밖은 언제나 위험한 법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눈이 절로 떠졌다. 용호는 잠이 덜 깬 멍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용호의 침실은 탐욕의 미궁 1층- 즉 지하1층에 존재했고, 당연히 창문이나 햇살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 안은 환했다. 루시아가 정해진 시간에 딱 맞춰 방의 조명장치를 켰기 때문이다.

    [잠꾸러기 주인님, 기상 시간입니다.]

    [조금 더 주무실 거라면 말씀해주세요.]

    [구시온과 스카자하 등 예속 사역마들에게 오늘의 일정을 좀 더 미루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안 될 말이었다. 용호는 서큐버스의 유혹보다도 강렬한 침대의 유혹을 이겨내며 손을 놀려보았다. 달리기는 무리더라도 종합격투기 시합은 할 수 있을 것 같은 광활한 침대 한 구석에 카타리나가 담요를 둘둘 만 채 웅크리고 있었다. 아침잠이 유독 많은 그녀다웠다.

    용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워 카타리나의 반대쪽을 보았다. 카타리나와 달리 아침잠이 없는 카이완은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일찌감치 일어나서 씻으러 간 모양이었다.

    참으로 길고 길었던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아침.

    오만의 왕에 의해 세상이 뒤집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너무 그 사실 하나에만 매몰될 필요는 없었다. 싸우기 위해서는 휴식 역시 필요했다.

    용호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카타리나의 담요를 강제로 빼앗은 뒤 비몽사몽 비틀거리는 카타리나를 등에 업고 침실을 나섰다.

    하루를 시작해야 할 때였다.

    “오로바스라는 놈의 정수다. 아무래도 나보다는 나리가 먹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챙겨왔지.”

    용호와 예속 사역마들은 스카자하의 저택이 아닌 탐욕의 미궁 9층에 위치한 공간의 문 관제소에 모였다.

    구시온이 내민 영롱한 빛깔의 정수를 받아든 용호는 잠시 사마엘 쪽을 돌아보았다. 던전 상회의 세 이사들에게 피붙이 같은 예속 사역마들을 모두 잃은 그녀는 담담한 얼굴로 용호의 시선을 마주했다.

    대신 복수해준 것에 대한 감사라면 이미 구시온에게 표한 사마엘이었다. 용호는 더 망설이지 않고 오로바스의 정수를 움켜쥐었다.

    던전 상회 최강의 괴력이었던 오로바스의 뿔의 개수는 여섯 개.

    레드 데몬이었던 그가 가진 마력은 용호의 최대 마력보다 분명 한 수 아래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굉장했다. 똑같이 여섯 개의 뿔을 가진 카이완이나 카타리나의 마력보다도 훨씬 더 강한 힘이었다.

    참으로 먹음직스러웠다. 탐욕뿐만 아니라 식탐 역시 용호의 영혼 속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용호는 오로바스의 정수를 바로 취하지 않았다. 마몬의 신기에 깃든 유스티아의 힘인 ‘인내’를 발휘해가면서까지 유혹을 이겨냈다.

    갑자기 고행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단번에 큰 성장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용호가 정수를 쥐지 않은 오른 손을 들어 올리자 스카자하와 사마엘이 동시에 발걸음을 내딛었다. 두 여인은 용호의 앞에 무릎 꿇은 뒤 각각 손을 들어 용호의 손을 잡았다.

    [지금부터 스카자하와 사마엘의 예속 사역마 등록을 진행합니다.]

    [마몬 가의 예속 사역마들은 힘을 개방해 주인님을 도와주세요.]

    스카자하의 예속 사역마화는 오래 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사마엘의 예속 사역마화는 유스티아의 고사와 사마엘의 요청에 의해 성사된 일이었다.

    유스티아는 예속 사역마가 아닌 일반 사역마 상태로도 얼마든지 조언을 할 수 있다 말했다.

    복수를 갈망하는 사마엘에게는 힘이 필요했다. 던전과 예속 사역마 모두를 잃은 그녀에게 던전 상회 이사이던 시절보다 더 강한 힘을 부여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용호뿐이었다.

    던전 상회 이사는 죄악과 신기가 없을 뿐 그 외에는 왕과 동급이라 여겨지는 자들이었다. 용호의 입장에서도 최속의 날개 사마엘을 예속 사역마로 삼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마력이 격감한 지금도 여섯 개의 뿔을 가진 그녀였다.

    용호가 눈을 감았다. 예속 사역마 모두가 브리가다를 통해 힘을 공유했다.

    루시아가 스카자하와 사마엘을 동시에 예속 사역마로 등록시켰다. 그로 말미암아 용호의 마력이 증가하려는 그 순간 용호는 오로바스의 정수를 취했다.

    단순히 계산해도 이미 뿔 여섯 개분의 마력이 셋이었다.

    식탐은 그 힘 모두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탐욕은 아주 작은 힘의 유출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일어난 변화. 그리하여 얻게 된 힘.

    용호의 머리 위에 자리했던 여섯 개의 뿔이 일시에 사라졌다. 그리고 빛으로 된 일곱 개의 뿔이 돋아났다.

    색욕의 왕과 같았다. 용호의 마력이 단순히 뿔 일곱 개 분에 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일이었다.

    [힘이, 힘이!]

    [아아아아아-!]

    루시아가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비명을 질렀다. 용호 주변에 동그랗게 모여 선 예속 사역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중에서도 엘리고스와 오필리아, 티그리우스의 변화가 컸다. 세 사람의 머리 위에 돋아있던 다섯 개의 뿔 사이로 여섯 번째 뿔이 솟구쳐 올랐다.

    사마엘은 전율했다. 그녀는 던전 상회의 이사이던 시절보다 더 강한 힘이 자신의 육신 곳곳에서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이미 여섯 개의 뿔을 가지고 있던 카이완과 카타리나는 과거 마몬의 12 사역마들의 평균치에 근접하는 마력을 손에 넣었다.

    예속 사역마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얻을 수 있는 마력이 체감된다는 법칙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모두의 덕분이었다.

    구시온이 구해온 오로바스의 정수.

    동시에 진행된 스카자하와 사마엘의 예속 사역마화.

    식탐의 죄와 탐욕의 죄의 협연.

    티그리우스의 권능인 합체와 유호유안의 힘인 조화.

    브리가다를 통한 왕과 예속 사역마들의 마력 공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거친 숨을 토했다. 영원 같았던 순간이 지나자 공간의 문 관제소 안에 가득 찼던 마력이 저마다의 주인을 찾아 흩어졌다.

    카타리나와 카이완은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강인한 레드 데몬인 오필리아와 엘리고스조차도 무릎을 떨었다. 티그리우스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멀쩡히 서 있는 것은 스컬과 구시온 두 사람뿐이었다.

    사마엘이 땀에 젖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용호에게 다시 한 번 예를 표한 뒤 말했다.

    “제 영육의 주인이신 마몬 가의 가주시여, 식탐의 영토를 공격하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이미 어제 계획한 일이었다. 사마엘이 가진 유통로를 통한 기습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더욱이 이번 기습을 통해 오만의 왕 진영의 상황을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을 터였다.

    “허락하겠다. 마음껏 날뛰고 와라.”

    사마엘은 미소로 답한 뒤 공간의 문 관제소와 그녀가 가진 던전 상회 유통로를 마법적으로 연결했다. 그 사이에 멀찍이서 구경하던 유리아와 바둑이가 얼른 달려와 예속 사역마 모두에게 기력 회복 포션을 돌렸다.

    식탐의 영토 공격은 두 개조로 나누어 진행할 예정이었다. 구시온의 조에는 엘리고스와 오필리아가 속했고, 사마엘의 조에는 스컬과 스카자하, 티그리우스가 속했다.

    단순한 공간의 문이 아닌 던전 상회 유통로를 이용한 공격이었기에 다수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각 조에는 투기장의 사역마들과 스컬 부대뿐만 아니라 시트리와 사마엘의 창고에서 꺼내온 던전 상회의 사역마들이 포함되었다.

    부케팔로스에 탄 스컬을 필두로 하여 아몬과 카타리나, 카이완을 제외한 예속 사역마 일동이 탐욕의 미궁을 떠났다. 앞으로 이런 식의 출진이 몇 번이나 이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잘하면 오만의 왕과의 최종결전 이전에 다들 한 번씩은 진화를 할 수 있을 터였다. 합체 강화까지 고려한다면 아직도 더 강해질 여지가 있는 용호의 사역마들이었다.

    그들 모두를 배웅한 용호는 바로 다음 일에 착수했다. 카타리나와 카이완을 남긴 것은 함께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탐욕의 미궁 11층.

    마몬의 12 사역마 가운데 마지막 일인인 처녀좌의 유노가 지키는 곳.

    마몬 가의 대연회실과 각종 생활공간이 집결한 11층에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던전 몬스터들이 있었다. 더욱이 괜히 심층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가장 약한 것도 던전 상회의 기준으로 사성 사역마에 준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11층에 들어선 것은 탐욕의 왕과 그 수호기사, 그리고 왕의 반려였다. 과거 마몬 가의 가주들을 상층으로 몰아낸 던전 몬스터들조차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탐욕의 신기와 하나 된 아몬은 마계의 오랜 전설이 모두 사실이었음을 증명했다. 탐욕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녹염이 하늘과 땅을 모두 불태울 기세로 뻗어나가 던전 몬스터들을 불태웠다.

    카타리나와 카이완 역시 새로 얻은 힘을 아끼지 않고 발산했다. 검은 그림자와 검의 소용돌이가 던전 몬스터들을 휩쓸었다.

    단 세 사람뿐이었지만 11층의 던전 몬스터들을 일소하는 데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어쩌다보니 따라오게 된 살라미가 자신의 주인과 그 반려들을 다소 질린 얼굴로 쳐다볼 지경이었다.

    [사역마 유스티아의 정보입니다.]

    [처녀좌의 유노는 대연회장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쭉 직진하시면 대연회장의 문이 보이실 거예요.]

    과연 루시아의 말대로였다. 마몬이 12 사역마뿐만 아니라 마몬 가의 모든 사역마들과 함께 연회를 벌였다는 대연회장은 실로 방대했다. 문을 열자 생명의 정원보다 훨씬 더 크고 넓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 하늘과 녹색 그늘 아래 하얀 탁자와 의자들이 가득했다. 용호는 탐욕의 인도를 따라 그것들 모두를 가로질러 스카자하의 저택과 닮은 하얗고 작은 건물 앞에 섰다.

    동그랗고 파란 문이 절로 열렸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색색의 모자이크와 하얀 비둘기들이라도 쏟아져 나와야만 할 것 같은 아름다우면서도 우아한 내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용호와 카타리나, 카이완 세 사람은 모두 집안 한 가운데 눈을 감고 앉아있는 은빛 머리칼의 여인만을 바라보았다.

    전승은 사실이었다. 놀라울 만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용호가 살아생전 본 여인- 아니,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시트리와도 비교할 수 있었다. 시트리가 살아있는 아름다움이라면 눈앞의 여인은 마치 그림으로 그려낸 듯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신비함이었다.

    침묵하는 식탐과 달리 탐욕은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이에 호응하듯 여인이, 처녀좌의 유노가 천천히 눈을 떴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색을 달리하는 눈동자에 용호 일행을 담았다.

    저도 모르게 긴장한 카타리나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카이완 역시 입술을 꾹 닫은 채 여인을 보았다.

    여인은 눈을 깜박였고, 이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목소리를 토했다.

    “엘룬?”

    누구도 예상 못한 말이었다. 그랬기에 바로 반응하지 못했고, 자리에서 일어난 여인- 처녀좌의 유노는 카타리나에게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너도 참 어쩔 수 없구나. 이번에도 호구의 별 아래 태어난 거니? 취한 용의 가호도 받고? 거기다 이번에도 마몬 가의 수호기사?”

    “어, 으, 예?”

    카타리나는 당황했다. 유노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유노는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그런 카타리나를 똑바로 바라보더니 대뜸 카타리나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나는 별을 헤아리는 유노. 영혼을 간파하는 자. 너는 엘룬의 영혼을 타고났단다. 아스트랄 라인을 거친 영혼을 동일하다 평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넌 엘룬의 환생이라 할 수 있단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네 사정은 고려치 않고 허물없이 대한 것은 용서해주렴.”

    카타리나의 눈이 격하게 깜박거렸다. 카이완이 급히 끼어들었다.

    “잠깐, 잠깐만요. 카타리나가 엘룬 님의 환생이라고요? 그럼 카타리나의 전생이 엘룬 님?”

    카이완조차도 허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유노는 이번에도 차분히 말했다.

    “앞서 말했듯 별을 감싼 저 광활한 영혼의 바다- 아스트랄 라인을 거친 영혼을 거치기 이전의 영혼과 동일하다 평할 수는 없단다. 하지만 아스트랄 라인을 거친 뒤에도 남는 것이 있단다. 영혼의 본질이라 해도 좋을 것이지.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아이는 엘룬의 환생이 맞단다. 뭔가 너희가 생각하는 환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역시나 알아듣기 어려운 설명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이 카타리나의 심장을 강타했다.

    “내가 엘룬 님의 환생…….”

    카타리나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들어 발갛게 달아오른 자신의 뺨을 감싸 쥐었다. 다른 이가 말했다면 헛소리 말라 했을 터였지만 마몬의 12 사역마 가운데 하나인 유노의 말이었다. 신뢰했고, 그랬기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동경의 대상인 엘룬이 카타리나 자신의 전생이란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찌 흥분하지 않겠는가. 귀와 꼬리가 격하게 파닥거렸다.

    유노는 그런 카타리나를 무척이나 신기하단 얼굴로 쳐다보았다.

    “전생과 후생 모두 호구의 별에 취한 용의 가호라니. 이런 영혼은 나도 처음 본단다. 과연 호구기사 엘룬답구나.”

    한창 감격에 겨워하던 카타리나는 탐욕의 미궁 3층에서 마주했던 엘룬의 분신을 떠올렸고, 이내 뺨을 감쌌던 두 손으로 아예 얼굴을 덮어버렸다. 어쩐지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웠다. 파닥 거리던 귀와 꼬리가 축 늘어졌다.

    카이완이 다시 끼어들었다.

    “저기, 저는요? 제 전생은요?”

    평소의 카이완답지 않게 잔뜩 신이 난 얼굴이었다. 유노는 고개를 갸웃 기울인 뒤 답했다.

    “딱히 모르겠단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는 것 같구나.”

    사실 이게 정상이었다. 무심한 진실로 카이완의 기대를 격침시킨 유노는 마침내 용호 쪽으로 돌아섰다. 은빛 머리칼과 청초한 외모에 어울리는 새하얀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우아하게 예를 표했다.

    “경황 중에 인사가 늦었습니다. 새로운 탐욕의 왕이시여, 위대한 마몬의 계승자시여. 12 사역마 가운데 하나인 별을 헤아리는 유노가 인사드립니다.”

    유노의 차분함이 용호의 당혹스러움을 증발시켰다. 용호는 마지막 12 사역마를 바라보았고, 유노는 그런 용호를 색색의 눈동자에 담았다. 아련함과 아쉬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분을 무척 닮으셨군요.”

    < 제 73장 - 대공습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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