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202화 (202/227)

< 제 69장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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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의 가주들은 던전 상회를 통해 사역마를 거래했다. 마계에서 사고 팔리는 사역마의 구할 이상이 던전 상회를 거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모든 사역마들.

언제든 투입 가능한 최정예 병력들.

그들 모두가 온전히 던전 상회의 소유물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던전 상회가 그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색욕의 왕은 오만의 왕과 함께 했다.

식탐의 군세는 오만의 왕 앞에 무릎 꿇었다.

질시의 왕을 상대할 때처럼 비밀 엄수를 할 필요도 없었다. 던전 상회를 이용한 내부 침투는 분명히 효과적인 수단이었지만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었다.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때문에 오만의 왕은 최대한 성대하게 할 것을 명했다.

격노의 왕 휘하의 가주들은 질시의 왕의 수하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던전 상회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처럼 던전 상회를 환영했다.

격노의 왕이 격노의 군세와 함께 환호한 그 때.

격노의 영토 곳곳에서 학살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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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섬광이 되어 전장을 질타하는 격노의 왕은 아름다웠다.

그녀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규모 전투가 일어나자 언제나처럼 친위대를 이끌고 달려왔다.

색욕의 왕은 몸을 길게 늘어트렸다. 눈처럼 하얀 백발이 어깨를 지나 가슴을 스쳤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 사이로 붉은 눈동자가 도드라졌다.

그녀였다.

남녀노소 그 어떤 모습도 취할 수 있는 색욕의 왕에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날 때부터 타고난 색욕의 죄가 지닌 부가적인 효과였기에 태어날 때 모습으로 자신을 추정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때문에 색욕의 왕은 수많은 자신 가운데 하나를 진정한 자신으로 선택하였다.

천 년 전에 정한 모습. 색욕의 왕이 진정한 자신이라 생각하는 여인으로서의 인격.

색욕의 왕- 아스모데우스는 색욕의 신기를 살며시 움켜쥐었다. 천 년 전 그날 이후 이별했던 신기는 살가움으로 응답했다. 스스로의 모습을 단검에서 날이 가늘고 긴 장검으로 바꾸었다.

저 멀리서 격노의 왕이 싸우고 있었다. 오만의 왕에게 대적하는 무리들 가운데서 그녀는 특별했다.

나태의 왕에게는 죄악과 신기가 있었지만 세력이 없었다.

폭력의 왕에게는 세력과 신기가 있었지만 죄악이 없었다.

오직 격노의 왕만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색욕의 왕의 머리 위로 빛으로 된 일곱 개의 뿔이 돋아났다. 마계 제일의 검사라 불렸던 검마의 손끝에서부터 색욕의 죄가 그 힘을 발하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색욕의 왕은 격노의 왕을 느꼈다.

격노의 왕 역시 색욕의 왕을 느꼈다. 아직 수백 미터가 넘는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색욕의 왕이 있는 곳을 정확히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색욕의 왕은 서글픈 미소를 머금었다. 스스로에게 충실하고자 발걸음을 내딛었다. 격노의 왕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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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겠습니다.”

가르디문디가 부지불식간에 말했다. 반쯤은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그녀는 격노의 왕의 눈과 귀 역할을 수행하는 자였다. 동시에 가루라왕 비류박차의 외동딸이었다.

실시간으로 정보들이 전달되었다. 격노의 왕과 팔부중의 사원 양쪽 모두의 위급을 접한 그녀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혼자라도 돌아가 힘을 보태야만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마몬 가의 조력이었다. 하지만 가르디문디는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용호가 무언가 비밀을 갖고 있다고 확신했다. 믿을 수 없는 자에게 등을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격노의 왕과 팔부중 사원의 위급을 저도 모르게 발설한 것조차 실수로 여겨졌다. 가르디문디는 서둘러 돌아섰다. 그리고 용호가 그런 가르디문디의 팔을 붙잡았다.

용호는 시트리가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격노의 왕이 긴장한 얼굴로나마 조곤조곤 이야기했던 남부 동맹의 필요성을 기억했다.

오만의 왕이 적이었다. 그는 이미 행동을 개시했다. 던전 상회를 휘하에 넣었고, 색욕의 왕과의 협력을 이루어냈다. 왕을 잃은 식탐의 세력은 온전히 그의 수하가 되었다. 어쩌면 질시의 왕과의 싸움 역시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결착이 났을지 몰랐다. 마치 용호 자신과 식탐의 왕의 싸움처럼 말이다.

격노의 왕을 잃을 순 없었다. 그녀는 용호 자신의 동맹이었다. 오만의 왕에게 맞설 동지였다.

가르디문디가 용호를 돌아보았다. 용호는 말로 설명하는 대신 직접적으로 이해시켰다.

탐욕의 힘을 개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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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부중 사원은 던전이 아니었다. 평야 위에 세워진 사원에는 기기묘묘한 함정도, 시야를 뒤덮는 어둠도 없었다.

붉은 하늘 아래 검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날짐승들이 지상에서 펼쳐지는 학살을 목격하였다.

이계의 용사, 데스나이트, 뱀파이어 로드, 아크 데몬, 나이트 셰이드.

오성급 사역마들이 사방천지에서 저마다의 무용을 뽐냈다. 수장 회의를 위해 각지에서 모인 팔부중들의 시신으로 산을 쌓았다.

팔부중들은 격렬히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전투력의 강약을 비교할 것도 없이 수에서부터 상대가 되지 못했다.

덧없이 죽어가는 무리들 사이로 최강의 괴력 오로바스가 흥겨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의 두 주먹은 이미 마호라가왕과 가릉빈가왕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팔부중을 이루는 각 종족의 수장들이라 하여 모두가 강한 것은 아니었다. 오로바스가 두 왕을 죽이며 느낀 감정은 시시함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로바스의 기분을 상하게는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힘이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깨달음이었다.

참으로 오랜 세월 수련을 거듭했다. 단련을 멈추지 않은 결과 강해졌고, 던전 상회의 다섯 이사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죄악이 없는 자가 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개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늘 부족함을 느꼈다. 조금 더 강해지고 싶었다.

답보.

진전이 없는 상태. 어릴 적 이상이었던 남자의 힘은 뛰어넘었다 자평했지만 그렇다 하여 힘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로바스는 흥겨움 속에 몸을 놀렸다. 이계의 용사를 난폭하게 찢어발긴 야크샤왕 쿠베라이카를 향해 질주했다.

예속 사역마가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성장했다. 멈춘듯 진전이 없던 마력의 양이 증가하였고, 오로바스 자신은 더 높은 경지에 올랐다.

레드 데몬에게 있어 마력의 성장은 곧 육체 능력의 성장과 같았다. 오로바스는 어리석은 쿠베라이카를 이계의 용사와 똑같이 만들어주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그의 사지를 짓찢었다. 산채로 팔다리가 뜯겨나간 쿠베라이카는 끔찍한 비명을 토했고, 오로바스는 그의 머리를 짓밟아 터트리는 것으로 고통을 끝내주었다.

기습작전 한 번으로 격노의 왕의 세력을 말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수장들을 죽이고 주요 던전들을 파괴해 팔부중 전체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팔부중 수장 회의는 그야말로 하늘의 도우심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팔부중의 수장들을 몰살시키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터였다.

‘어쩌면 그 이상이 될 지도 모르겠지.’

오로바스는 야크샤왕 쿠베라이카의 피와 뇌수가 묻은 구두 밑창을 바닥에 비비며 서쪽을 돌아보았다. 어쩌면 오늘이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격노의 왕의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었다.

“아쉽군, 아쉬워.”

격노의 왕과는 한 번 붙어보고 싶었다. 예속 사역마가 되어 보다 강해진 지금은 더더욱 그러했다.

격노의 왕에게는 격노의 신기가 없었다. 그녀는 반쪽짜리 왕이었다. 나태의 왕과 같은 이적을 발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니 싸워 볼만 했다. 자웅을 겨뤄볼만 한 상대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에게 순번이 돌아올 것 같지는 않았다. 오로바스는 기꺼운 미소를 지으며 몸을 회전시켰다. 배후에서 기습 공격을 펼친 마호라가 전사의 머리를 붙잡아 그대로 으스러트렸다.

“영광으로 생각해라. 사상최강의 레드 데몬의 손에 죽은 것을.”

흥겨움에 평소 하지 않던 말까지 튀어나왔다. 근래 아브라삭스와 어울렸더니 저도 모르게 영향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떻단 말인가. 분명한 사실이었다. 오로바스 자신이야말로 사상 최강의 레드 데몬이었다.

어깨를 으쓱인 오로바스는 다시 발걸음을 내딛었다. 남은 팔부중의 수장들을 찾아 죽이기 위해 기감을 널리 퍼트렸다.

죽어가는 팔부중들이 느껴졌다. 흐느껴 우는 자도, 도망치는 자도, 절망적인 싸움에 몸을 던지는 자도 하나하나가 생생이 느껴졌다.

반경 오백여 미터에 불과했던 기감의 범위는 이제 칠백여 미터에 달했다. 오로바스는 구태여 사원의 입구 부근까지 기감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는 것이 느껴졌다. 팔부중도 아니었고, 오로바스 자신이 데리고 온 사역마들도 아니었다.

다른 존재.

그들과는 나란히 설 수 없는 자.

어쩐지 모를 불길함이 온 몸을 옥죄었다. 오로바스는 반사적으로 돌아섰다.

다가오고 있었다.

오로바스 자신과 같은 레드 데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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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노의 왕은 비명을 질렀다. 붉은 투기의 거인이 지상을 나뒹굴었고, 거대한 도끼는 두 동강이 나 허공을 맴돌았다. 매서운 검기에 격노의 왕 주변에 있던 식탐의 군세가 갈기갈기 갈려 바닥에 널브러졌다.

한 번 뒤집어졌던 전장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뒤집어졌다. 성난 노도와 같던 격노의 군세의 기세는 방파제에 부딪힌 파도마냥 산산이 조각나 흩어졌다.

격노의 왕은 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투기를 방출해 붉은 투기의 거인을 보강하는 한편 새로운 법보를 꺼내들었다. 방금 두 동강이 난 질풍부와 쌍을 이루는 벽력부였다.

수만 대군이 어울려 싸우고 있는 한복판이었지만 거짓말처럼 길이 만들어졌다. 너무나 강대한 왕의 힘을 피해 양측의 군사들이 몸을 피한 것도 있었지만, 반쯤은 눈앞의 여인에 의해서였다.

붉고 긴 검을 늘어트린 채 고고히 선 여인.

새하얀 머리칼을 가진 그녀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하늘과 땅이 갈라졌다. 그녀는 검기로 대군을 갈라 길을 만들었다.

격노의 왕은 거친 숨을 쉬었다. 이를 악물고 여인을 노려보았다. 빛으로 된 일곱 개의 뿔을 가진 그녀는 마치 격노의 왕이 일어서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쪽을 바라만 보았다.

‘색욕의 왕.’

이전에 마주했을 때와는 외양은 물론 성별까지 달라졌지만 색욕의 왕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일곱 개의 뿔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지막지한 마력. 수십 미터라는 거리가 있음에도 온 몸이 아려오는 매서운 전의. 하늘과 땅을 가르는 초월적인 검기.

색욕의 왕 밖에 없었다. 검마 아스모데우스 외에 누가 저 모든 것들을 갖출 수 있단 말인가.

격노의 왕은 여섯 개의 뿔을 곧이 세웠다. 머릿속에 떠오른 수많은 잡념들을 모두 지워버렸다.

식탐의 왕과 색욕의 왕의 연합 가능성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식탐의 왕에 대한 걱정 따위는 집어치웠다. 지금은 오로지 싸움에만 집중해야 할 때였다.

어느 순간 지면을 박차 돌진했다. 벽력부에 번개가 어렸고, 붉은 투기의 거인은 순식간에 수십 미터 거리를 가로질렀다. 색욕의 왕의 눈앞에 쇄도했다.

색욕의 왕은 그런 격노의 왕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격노의 왕은 노성을 토하며 벽력부를 휘둘렀다.

콰쾅!

벼락이 쳤다. 색욕의 왕의 바로 옆 지면이었다. 이제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공격이 빗나갔다.

색욕의 왕이 가벼운 걸음으로 공격을 피한 것이 아니었다. 공간이 왜곡되거나 보이지 않는 힘이 벽력부를 밀어낸 것 역시 아니었다.

격노의 왕은 욕지거리를 토했다. 격노의 왕 자신이었다. 격노의 왕 자신이 공격이 명중하기 직전에 벽력부의 궤도를 비틀었다.

맞추고 싶지 않아.

그녀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아!

미친 소리 같지만 진짜였다. 공격을 펼칠 때마다 그런 마음이 들어 제대로 명중시킬 수가 없었다.

색욕의 왕은 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붉은 투기의 거인에게 다가서며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검의 궤적 내에 있던 모든 것들이 갈라졌다. 격노의 왕은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지만 붉은 투기 거인의 왼팔이 잘려 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전하!”

“오지 마!”

키르티무카와 격노의 왕의 외침이 거의 동시에 연이어졌다. 격노의 왕 자신이기에 그나마 공격을 시도라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평범한 팔부중들은 색욕의 왕에게 공격하는 시늉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를 공격하려던 칼을 돌려 자신을 찌르는 자까지 있을 지경이었다.

격노의 왕은 지면에 꽂힌 벽력부를 뽑아들었다. 색욕의 왕이 그런 격노의 왕에게 재차 검을 휘둘렀고, 격노의 왕은 미련 없이 붉은 투기의 거인을 해제했다. 벽력부가 다시 바닥에 꽂히며 번개가 일었다. 바짝 자세를 낮춰 색욕의 왕의 검기를 머리 위로 스쳐 보낸 격노의 왕은 오른손을 놀려 벽력부의 번개를 색욕의 왕의 근방으로 튕겨 보냈다. 직접 공격이 무리이니 간접 공격이라도 해볼 요량이었다.

벼락이 튀며 지면이 폭발했다. 흙먼지와 더불어 벼락의 파편이 색욕의 왕을 덮쳤고, 색욕의 왕은 검을 빠르게 휘둘러 그 모든 공격을 차단했다. 격노의 왕은 진각을 밟아 색욕의 왕의 품에 파고들었다. 왼손에 잔뜩 모은 벼락을 다시 한 번 터트렸다.

격노의 왕은 가슴에 격한 통증을 느꼈다. 벼락이 폭발하는 순간 색욕의 왕에게 가슴을 차인 탓이었다. 십여 미터 이상을 날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전하!”

보다 못한 친위대가 격노의 왕 곁으로 모여들었다. 색욕의 왕은 벼락을 뒤집어썼음에도 옷이 조금 상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부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격노의 왕은 좌절하지 않았다. 방금 싸움으로 간접 공격은 통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었다. 오히려 전의가 일었다.

색욕의 왕은 그런 격노의 왕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화를 내거나 비웃는 대신 색욕의 신기를 들어올렸다. 죄악과 신기가 하나 되었기에 발할 수 있는 진정한 색욕의 힘 가운데 하나를 일으켰다.

주변 일대를 색욕의 왕의 마력이 휘감았다. 격노의 왕은 무의식중에 격노의 힘을 일으켜 색욕의 왕의 마력을 밀어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격노의 왕뿐이었다. 무방비한 상태로 색욕의 왕의 마력에 노출된 자들이 이변을 일으켰다.

격노의 왕 주변에 모여들었던 친위대가 격노의 왕을 향해 저마다의 무기를 들었다. 넋이 나간 얼굴로 격노의 왕을 공격했다.

“전하!”

친위대 가운데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예속 사역마인 키르티무카뿐이었다. 격노의 왕은 다급히 양팔을 놀려 마력을 휘둘렀다. 보이지 않는 힘으로 친위대를 밀쳐낸 뒤 색욕의 왕을 향해 노성을 토했다. 분노하면 분노할수록 강해지는 격노의 힘을 크게 키웠다.

색욕의 왕은 이번에도 무심했다. 친위대를 밀쳐내느라 생긴 틈을 노려 격노의 왕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검기로 격노의 왕의 목을 노렸다.

벼락이 일었다. 한 줄기 검기가 공간을 갈랐다.

그리고 그런 두 왕의 사이로 홍련의 마창이 쏟아져 내렸다.

콰가가가가가가강!

대기가 찢어지며 굉음이 일었다. 지면이 크게 뒤흔들렸고, 마창으로부터 일어난 녹염이 벼락과 검기를 모두 집어삼켰다. 벼락과 검기의 잔재가 처음과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며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다.

녹염에 휩싸인 홍련의 마창.

격노의 왕으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격노의 왕은 두근거림을 느꼈다. 창을 마주한 그 순간부터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색욕의 왕의 얼굴에 표정이란 것이 생겨났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창을 보았다. 창백하기까지 한 하얀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그녀는 저 창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녹염이 크게 일어 격노의 왕과 색욕의 왕 사이를 갈라놓았다.

격노의 왕은 저도 모르게 스스로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녹염이 가라앉은 순간 나타난 자의 뒷모습에, 홍련의 마창을 거머쥔 사내의 등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격노의 죄가 포효했다. 자신의 반쪽을 향해 강한 열망을 드러냈다. 죄악의 공명과는 무관한 또 하나의 두근거림이 격노의 왕의, 드리타라슈트라의 심장을 더욱 요동치게 만들었다.

색욕의 왕은 몸을 떨었다. 격노의 죄와 함께 포효하기 시작한 격노의 신기 때문이 아니었다.

눈앞에 선 자.

홍련의 마창 아몬을 움켜쥔 채 자신을 노려보는 자.

“탐욕의 왕!”

용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색욕의 왕을 향해 아몬을 휘둘렀다.

< 제 69장 #3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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