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177화 (177/227)

< 제 60장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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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디문디는 처음 왔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던전 입구 앞에 착지해서 마몬 가의 대응을 기다렸다. 지난번에 마몬 가가 공격 받은 것을 신경 썼기 때문인지 격노의 왕을 상징하는 커다란 깃발을 세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단은 비밀사절인 그녀였다.

던전 미어 캣들은 새로 만든 둥지 입구에 모여 서서 가르디문디를 바라보았다. 버그림의 지휘 하에 새로 만들어진 던전 입구는 이전 것보다 배는 더 크고 단단했다.

가르디문디를 마중하러 나온 것은 이번에도 마몬 가의 집사장인 엘리고스였다. 다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집사보 준을 포함해 말끔하게 차려입은 고블린 레인저를 대동하니 보다 격식을 차린 듯한 느낌을 주었다.

“환영합니다. 안으로 드시죠.”

“어라? 그냥 바로 말이오?”

엘리고스의 인도에 가르디문디가 당황해서 물었다. 아무리 격노의 왕과 마몬 가 사이에 우호적인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지만 아무런 방비 없이 던전에 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엘리고스는 부드럽게 웃으며 해답을 제시했다.

“입구를 새로 짓는 김에 몇 가지 시설을 추가했습니다. 알현실에서 가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르디문디도 이제는 대충 감을 잡았다. 마몬 가의 던전 입구가 괜히 커지고 단단해진 것이 아니었다. 아마 새로 만든 알현실은 여느 던전들이 그러하듯이 던전 입구에 위치한 모양이었다.

새로 만들어진 던전 입구 안쪽에 들어선 가르디문디는 짧게나마 감탄을 토했다. 고작 며칠 만에 이 정도 규모의 던전 입구를 신설했다는 것 자체가 마몬 가의 저력을 입증했다. 더욱이 새로 추가된 시설은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았다.

정찰병답게 가르디문디의 두 눈은 짧은 시간 동안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열두 번째 발걸음을 내딛었을 때 무언가를 포착해냈다.

‘특이종?’

던전 입구 상부에 위치한 둥지로 향하는 던전 미어 캣 하나가 특이했다. 아직 덜 자란 새끼 같았는데, 등 뒤에 작은 날개가 달려 있었다.

날개가 달린 던전 미어 캣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가르디문디는 열세 번째 발걸음을 내딛으며 기억을 더듬었고, 열네 번째 발걸음을 내딛었을 때는 던전 밖에 있던 던전 미어 캣들도 평범한 던전 미어 캣들과 다소 다른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일까. 단순히 특이종들만을 사서 키운 것일까?

해답을 추론하기도 전에 엘리고스의 걸음이 멎었다. 잘 꾸며진 방에 안내된 가르디문디는 바로 머릿 속에 떠오른 의문들을 지운 뒤 예를 표했다.

“격노의 왕 전하의 사자, 가루라 일족의 가르디문디가 인사 올립니다.”

팔부중 특유의 예법인 합장이었다. 용호는 푸근하게 웃으며 응답했다.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편히 앉으시죠.”

방 안에는 소파 두 개가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가주와 사절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허물없는 구성이었지만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가르디문디에게는 오히려 마음에 드는 요소였다.

용호의 맞은 편에 자리한 가르디문디는 이렇다 할 외교적 수사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자면, 격노의 왕 전하께서는 마몬 가 가주님께서 제시하신 조건을 수락하셨습니다. 회담의 장소는 공백지 북부. 구체적인 장소 역시 마몬 가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다만 회담 일은 마몬 가에서 제시한대로 격노의 왕 전하께서 결정하셨습니다.”

가르디문디는 말을 한 차례 끌었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다시 말했다.

“앞으로 스무날 뒤. 물론 앞뒤로 하루 이틀 정도는 여유가 있습니다. 장소를 확정하실 때 마몬 가 측에서 정확한 날짜 역시 지정해주셨으면 합니다.”

이 정도면 격노의 왕 측에서 많은 부분을 양보한 셈이었다.

루시아가 용호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밀당은 완전히 이긴 것 같죠?]

하지만 너무 빠른 판단이었다. 마치 루시아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가르디문디가 덧붙여 말했다.

“공백지 북부는 지금 사실상 무법 지대라 들었습니다. 격노의 왕 전하께서는 마몬 가의 품에서 가주님을 뵙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제법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도 멀리 돌아가는 외교적 수사와는 거리가 먼, 제법 직설적인 이야기였다.

용호는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래야지요. 격노의 왕 전하의 배려에 감사하는 바입니다.”

가르디문디 역시 밝은 표정을 유지했다. 그녀는 품에 간직해온 격노의 왕의 친필 서신을 용호에게 건네주었다. 지난번과 달리 용호에게 바로 읽어볼 것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용호는 직감적으로 오가야할 이야기가 거의 다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 예속 사역마인 오필리아가 쉴 곳을 안내해 드릴 겁니다. 답장을 준비할 동안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저 역시 마몬 가 가주님의 배려에 감사하는 바입니다.”

용호의 등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필리아가 알현실 옆에 위치한 휴게실로 가르디문디를 인도했다. 굳이 예속 사역마임을 밝힌 것은 그만큼 가르디문디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오필리아가 돌아오자마자 마몬 가의 작은 회의가 시작되었다.

“꽤나 직설적인데? 한 마디로 이십 일 안에 북쪽을 제압하는 기량을 보여 달라 이거잖아?”

카이완이 날카롭게 말하자 카타리나는 남몰래 눈을 껌벅였다. ‘그게 그런 이야기였어요?’ 라는 목소리가 당장이라도 들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카타리나는 얼른 시치미를 뚝 떼었고, 다행히도 그런 카타리나에게 집중하는 이는 없었다.

“언제나처럼 직설적이군요. 쓸데없는 외교적 수사를 피해줘서 고맙긴 하지만요.”

오필리아가 쓰게 웃었다. 비밀 회담이든 공개적인 회담이든 ‘외교’라는 것은 말이 오가는 것인 만큼 ‘돌려 말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말이라는 것에는 책임이 뒤따랐고, 말이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책임 역시 커지기 때문이었다.

공백지 북부는 서부처럼 완전히 초토화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가르디문디가 말했던 것처럼 현재 무법지대라 할 수 있었다. 동부의 패자였던 스트라바디가 마몬 가에 맞설 힘을 키우기 위해 북부를 점령하는 대신 유린한 결과였다.

“일단 서신부터 봐볼까?”

용호가 분위기를 환기하듯 격노의 왕의 친필 서신의 겉봉을 뜯었다. 서신을 펼치자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영상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꽤나 짧은 영상이었다. 묘하게 뺨이 상기된 격노의 왕이 이번 만남으로 단단한 동맹 관계가 구축되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힌 뒤 직접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하겠다고 말하는 게 다인, 어찌보면 인사치레에 가까운 영상이었다.

‘저거 아무리 봐도 수상쩍은데?’

가늘게 뜬 눈으로 격노의 왕의 상기된 뺨을 쳐다보던 카이완이 카타리나에게 눈짓을 보냈고, 카타리나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필리아가 말했다.

“작금 폭력의 왕과 격노의 왕, 식탐의 왕의 군사 배치를 보면 폭력의 왕과 격노의 왕은 이미 동맹 관계를 구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격노의 왕이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완벽한 남부 연맹을 구축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릅니다.”

폭력의 왕과 격노의 왕은 서로를 견제하지 않았다. 양측의 군대는 모두 식탐의 왕의 군세만을 노려볼 따름이었다.

시트리에게 들었던 순혈주의자 이야기를 떠올린 용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남부 연맹이 결성된다면 용호 입장에서 나쁠 것이 없었다.

“비단 격노의 왕과의 동맹 관계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루라도 빨리 공백지를 완전 제압할 필요가 있습니다.”

티그리우스였다. 그는 허공에 빛으로 된 마계 전도를 펼치며 말을 이었다.

“격노의 왕과 폭력의 왕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직 식탐의 왕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행동에 나서기 전에 공백지를 제압해 식탐의 왕의 영지를 주제로 한 각축전에 뛰어들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식탐의 왕과 그 심복인 십인중이 전멸했지만 식탐의 왕의 땅에는 아직 많은 군대가 남아 있었다. 그들을 상대하고 격노의 왕과 폭력의 왕에게 몫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이쪽 역시 만만찮은 군대를 보유해야만 했다.

“식탐의 왕의 땅을 전부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취할 것만 적당히 취하고 영토 자체는 격노의 왕이나 폭력의 왕에게 넘기는 것도 방법이죠. 구태여 북부와 국경을 맞댈 필요는 없으니까요. 격노의 왕이나 폭력의 왕의 세력을 방패막이 삼는 것 역시 나쁘지 않은 전략입니다.”

오필리아의 보충에 티그리우스가 동의를 표했다. 용호는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뒤 마계 전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연스럽게 말하였다.

“오필리아, 남은 왕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줘. 특히 오만과 질시, 색욕 이렇게 세 왕의 대한 정보가 필요해.”

북부의 세 왕은 너무나 먼 곳에 있었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져야 했다. 식탐의 왕을 쓰러트리고 여섯 왕과 같은 무대에 나선 지금, 용호가 맞상대해야 할 적들은 북부의 세 왕들이었다.

“가주 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오필리아가 바로 답했다. 꽤나 가슴 벅찬 표정이었다.

북부의 세 왕은 분명 부담스러운 강적이었다. 하지만 그들과의 싸움을 상정한다는 것 자체가 마몬 가의 성장을 반증했다.

강한 호승심과 자부심이 오필리아의 가슴을 꽉 채웠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북부 제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당장 제일 필요한 게 뭐지?”

용호가 알현실에 모인 예속 사역마들을 돌아보았다. 카이완이 용호의 오른편에 털썩 앉으며 답했다.

“운송 수단이겠지.”

카이완은 티그리우스가 마법으로 만든 마계 전도에 왜곡의 권능을 사용했다. 마몬 가가 자리한 공백지 남쪽 끝에서 격노의 왕과 국경을 맞댄 공백지 북족 끝까지 하나의 선을 이었다. 척 보기에도 제법 먼 거리였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북부는 사실상 초토화되었어. 마몬 가의 전력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막말로 여기 있는 예속 사역마 몇 명만 떠도 북부를 갈아엎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단순히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점령하고 지배하기 위해서는 보병이 필요해. 지금의 마몬 가에는 병력을 빠른 시간 내에 옮길 수 있는 운송 수단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카이완의 말마따나 파괴와 점령은 달랐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는 한계가 있었다.

“보통은 어떻게 병력을 이동시키지?”

누구에게랄 것 없는 물음에 오필리아가 답했다.

“수천 단위가 넘어가면 행군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수백 단위라면 거대한 비행형 사역마나 비공정 같은 운송 수단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그건가.”

짐작이라면 했다. 던전 상회의 카탈로그에 따로 운송수단 항목이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품 안에 수백 명 단위의 병력을 품을 수 있는 벌레와 파충류의 혼합체 같은 거대한 비행형 사역마.

등에 수많은 이들을 태울 수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하늘고래.

하늘을 날아다니는 범선인 비공정.

수단이라면 분명히 존재했다. 솔직히 전부 다 탐이 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이 예산이 문제였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를 하다보니 예산이 빠듯했다.

따로 말하지 않았지만 오필리아와 카이완은 용호가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는지 알았다. 그녀들 역시 똑같은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뜻밖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속삭이듯 들려왔다.

[예산 문제라면 해결책이 존재한다.]

모두의 시선이 허공에 피어오른 홍련의 불길로 향했다. 아몬이 용호에게 물었다.

[나의 주인이여, 그대는 탐욕의 미궁을 6층까지 확보하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시설에는 무엇이 있을 것 같은가?]

용호의 머릿속에 탐욕의 미궁의 각 층들이 빠르게 떠올랐다.

정원인 1층, 관문인 2층.

3층은 도박장이었고 4층은 작업실이었다. 5층과 6층은 각각 무기고와 감옥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시설은 무엇일까? 던전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시설이 아닐까?

“보물고.”

용호가 부지불식간에 말했고, 아몬은 기꺼운 웃음을 토하듯 불길을 보다 거세게 일으켰다.

[탐욕의 미궁 8층.]

[사자좌의 전사 리처드가 지키는 곳.]

[그곳에 다른 누구도 아닌, 위대한 탐욕의 왕의 보물고가 있다.]

마몬의 보물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모두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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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7층은 건너뛰고 8층이지?”

< 제 60장 #2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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