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173화 (173/227)
  • < 제 58장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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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좋은 시기인 것 같긴 합니다. 얼마 후엔 다시 지독한 혼란기가 찾아올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식탐의 왕이 죽었다.

    오필리아나 티그리우스가 예상한 것처럼 식탐의 왕의 진영 쪽에서 그 사실을 숨긴다 해도 결코 오래 갈 수 없었다.

    강대한 힘을 가진 왕의 죽음은 곧 그 세력 전체의 와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 과거의 마몬 가도 탐욕의 왕 마몬 사후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지 않았던가.

    더욱이 지금은 북부의 전쟁 때문에 여섯 왕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상황이었다. 식탐의 왕의 갑작스런 부재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힘의 균형을 붕괴시키는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때문에 굳이 인계에 다녀와야 한다면 오필리아의 말마따나 지금이 딱 좋았다.

    격노의 왕과의 만남이야 며칠 후에 이루어져도 충분했고, 그 며칠 사이에 식탐의 왕의 죽음이 공개될 가능성은 낮았다. 북부의 전쟁이 갑자기 종결될 리도 없고 말이다.

    식탐의 왕의 부재를 노려 식탐의 왕의 진영을 공격한다는 계획은 일견 매력적이었지만 현실성이 없었다. 왕과 그 심복들이 죽기는 했지만 식탐의 왕의 강대한 세력 자체는 건재했다. 식탐의 왕을 죽였다는 사실을 숨기기로 한 마당에 얼마 안 되는 병력으로 북진을 개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작금의 마몬 가에 필요한 것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시간이었다.

    남부 공백지 전체를 완벽히 장악해야 했다.

    병력의 수를 늘려야 했고, 탐욕의 미궁과 투기장의 완전 공략도 서둘러야 했다.

    격노의 왕이나 식탐의 왕처럼 먼 거리를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이동 수단의 확보 역시 필요했다.

    격노의 왕과의 동맹은 저 모든 것들을 이루기 위한 ‘시간’을 만들어줄 터였다.

    격노의 왕이 용호에게 호의를 보이는 결정적인 이유가 ‘마몬 가는 왕가가 아니다’라는 사실이라면, 용호에게는 ‘시간’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용호가 아몬의 농담처럼 번뇌의 화신이라 청초한 미녀인 격노의 왕을 탐해서가 결코 아니었다. 호의에 호의로 응한 것은 이해타산의 결과였다.

    ‘물론 가능하면 싸우기 싫은 게 사실이긴 하지만.’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정일 뿐이었다. 마몬 가와 사역마들을 위해 칼을 뽑아야 할 때가 온다면 주저 없이 칼을 뽑아들 생각이었다.

    이야기가 인계에 다녀오는 쪽으로 흐르자 얼른 던전 상태를 점검한 루시아가 말했다.

    [공간의 문의 재사용 시간이 꽉 차는 데까지 앞으로 하루 남았습니다.]

    [정말로 시기가 적절하긴 하네요.]

    공간의 문을 통해 이계에 다녀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다량의 마력을 소모할 뿐만 아니라 재사용 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게임으로 치자면 쿨 타임이 무척이나 긴 셈이었다.

    그런데 그 재사용 시간 역시 딱 맞게 끝나가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용호에게 인계에 다녀오라며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바로 출발하실 생각이십니까?”

    엘리고스가 물었다. 용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듯 테이블 위로 손가락으로 딱딱 두드리다 답했다.

    “루시아의 말대로 하루가 있으니까… 그 사이에 정리할 것들은 다 정리하고 후딱 다녀오는 편이 낫겠지.”

    시간적 여유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격노의 왕이 갑자기 돌발 행동을 할 가능성은 낮았지만 어찌되었든 즉각 대응하기 위해서는 용호가 필요했다. 식탐의 왕의 진영도 생각처럼 식탐의 왕의 부재 사실을 잘 숨기지 못할 수도 있었다.

    다녀올 수 있는 기간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틀에서 삼일 정도. 그 이상 시간을 내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그 이틀에서 삼일이란 시간도 결코 짧다고 할 수 없었다. 오필리아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미소를 지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카자하의 의견이라면 어쩔 수가 없군요. 이왕지사 다녀오시는 거 푹 쉬고 오세요.”

    용호는 인계에 놀러 가려는 것이 아니었다. 마몬 가의 치유사인 스카자하의 진단에 따라 치유 목적으로 인계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예속 사역마 된 입장으로서 용호의 인계 행을 반대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 인계에 다녀올 생각에 카타리나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카이완 역시 꽤나 기대된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 더. 용호가 인계에 다녀온다는 이야기에 흥분하는 이가 있었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이건 제 심장 소리가 아니에요.]

    [다른 누군가랍니다.]

    루시아가 용호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말했고, 용호는 이내 심장 소리의 주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저만치 구석에 선 유리아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어려운 이야기는 잘 몰랐지만, 그래도 대강 어떤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지 흐름 정도는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용호가 인계에 다녀온다.

    지난 번에 다녀왔을 때는 놀랍도록 맛있는 치킨과 콜라를 가져왔다. 더욱이 그뿐이었는가? 유리아에게 있어 최고의 보물인 색색이 예쁜 공기돌까지 가져오지 않았던가.

    초롱초롱한 유리아의 눈을 마주한 용호는 귀여움이라는 것이 생존전략에 의해 파생된 것이라는 주장을 이해했다. 가벼운 손짓으로 유리아를 부른 뒤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물 사올게.”

    유리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용호는 저도 모르게 유리아의 뺨을 가볍게 꼬집은 뒤 어깨 너머를 보았다. 안달이 난 표정의 바둑이에게 말했다.

    “그래, 니꺼도.”

    “왈왈!”

    “낑낑!”

    서로 자기를 가리켰다고 생각했는지 바둑이와 새끼 던전 미어 캣이 각자 흥분했다.

    용호에게 꾸벅 배꼽 인사를 한 유리아는 바둑이와 새끼 던전 미어 캣을 데리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생각만 해도 좋은지 자꾸만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용호가 다시 사역마들을 보았다. 자연스런 파장 분위기였기에 엘리고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가주 님, 일단 식사부터 해결하심은 어떠십니까.”

    “역시 최고의 집사장이야.”

    하루 종일 굶은 셈이니까.

    용호는 기분 좋게 일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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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를 마친 용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던전 상회 가상공간으로의 접속이었다.

    식탐의 왕의 난입 덕분에 시트리와의 대화가 중간에 끊겼기 때문이다.

    ‘많이 걱정하려나?’

    하지만 왜인지 시트리가 걱정하는 모습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여유로운 얼굴로 용호 자신을 반겨줄 것만 같았다.

    ‘식탐의 왕을 쓰러트렸구나.’

    여섯 왕 중에 하나를.

    용호 자신의 탐욕을 탐하던 왕을.

    새삼 스스로가 해낸 일을 실감한 용호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천천히 눈을 떠 온통 하얀 세상을 마주했다.

    늘 그러했던 것처럼 시트리가 서 있었다. 하얀 하늘 아래 어깨가 드러나는 진한 보랏빛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단정히 서서 용호 자신을 마주했다.

    어쩐지 평소와는 달랐다. 용호는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고, 시트리는 그런 용호를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어색함이 시간의 길이를 길게 만들었다.

    시트리가 발걸음을 내딛었고, 용호는 그런 시트리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용호와 시트리 사이의 거리는 고작 한 걸음 밖에 남지 않았다.

    “사랑하는 고객님.”

    “시트리?”

    여자 치고는 훤칠한 시트리였지만 두 번에 걸친 환골탈태로 훌쩍 자란 용호보다는 훨씬 더 작았다. 때문에 시트리는 용호를 올려다보았다. 온기가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고객님을 한 번만 안아 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용호가 당황해서 대꾸했다. 시트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대로 한 걸음을 내딛어 용호를 꼭 끌어안았다.

    따뜻했다. 용호 자신보다 작은 시트리였지만, 오히려 시트리의 품에 안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탐욕의 왕.”

    시트리가 작게 말했다.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애달픔이 어린 한 마디였다.

    용호는 자신이 느낀 묘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알았다. 카타리나나 카이완을 안았을 때와 달랐다. 스카자하가 떠올랐다. 어머니처럼 자신을 보듬던 그녀의 온기와 닮아 있었다.

    용호는 눈을 감고 시트리를 마주 끌어안았다. 이번에도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시트리는 부드러운 손길로 용호의 가슴을 밀어냈다.

    “고마워요. 잠깐이었지만, 그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어요.”

    눈시울이 붉었다. 시트리는 다시 한 걸음을 물러서며 말했다.

    “그래도 역시 다르네요. 많이 닮았지만, 고객님은 고객님이세요.”

    용호는 시트리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았다. 그랬기에 그녀의 목소리에서 더욱 큰 애달픔을 느꼈다.

    시트리는 몇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던 용호는 어설프게 입을 열었다.

    “어… 저 식탐의 왕을 쓰러트렸어요.”

    용호의 말에 시트리는 아무 말도 없이 눈을 깜박였다. 어쩐지 모르게 부담스러워진 용호는 뺨을 붉혔다. 생각해보니 이건 마치 칭찬해달라고 자랑하는 것 같지 않은가. 어렸을 때 처음으로 학교 시험에서 백점을 맞았을 때가 떠올랐다.

    시트리는 말없이 계속 눈만 깜박였다. 괜히 초조해진 용호가 귓불까지 붉히자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사랑하는 고객님, 지금 너무너무 귀여우신 거 아세요?”

    용호가 식탐의 왕을 쓰러트렸다는 사실을 마주한 순간부터 간파하고 있던 시트리였다. 용호는 민망함에 헛기침을 터트렸고, 시트리는 그런 용호를 굳이 괴롭히지 않았다.

    “고객님을 위해 진지한 이야기로 돌아가죠.”

    시트리와 용호의 등 뒤에는 어느새 아늑하고 푹신푹신한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등받이 깊이 등을 묻은 시트리는 용호가 앉기를 기다린 뒤 말했다.

    “고객님, 제가 사랑하는 고객님을 뵌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말 기억하세요? 순혈주의자들을 조심하라던 말.”

    순간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던 용호는 이내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용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트리가 다시 말을 이었다.

    “고객님도 아시겠지만 이 마계는 뒤죽박죽이랍니다. 순수한 마계 태생들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고객님처럼 이계에서 온 자들도 잔뜩 머물고 있죠.”

    시트리의 손놀림을 따라 허공에 빛으로 된 그림이 그려졌다. 동그란 원은 마계를 상징했고, 원 안의 작은 사람들과 원 밖에서 커다란 화살표를 따라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각각 마계 원주민과 이계종을 의미했다.

    “순혈주의자들은 순수한 마계출신들만이 마계의 주인이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랍니다. 그들은 이계에서 건너온 이들은 모두 노예로 부려야 한다는 과격한 사상을 가지고 있죠.”

    일종의 파시즘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용호의 고향인 인계에서도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었다.

    “이계 출신이 그렇게 많나요?”

    “많죠. 당장에 격노의 왕의 백성들인 팔부중부터가 이계출신이랍니다. 식탐의 왕도 그렇고요.”

    식탐의 왕은 팔부중과 함께 마계에 넘어온 이계의 하급 마수 아귀 출신이었다. 그가 유독 팔부중과 연이 깊은 아프사라스들을 미희로 삼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물론 팔부중은 이계에서 넘어온 지 꽤 세월이 지났답니다. 벌써 몇 백 년도 더 지났으니까요. 하지만 순혈주의자들 입장에서 보기엔 어찌되었든 외부인- 노예로 부려야 할 하등한 종족에 불과하죠.”

    시트리가 다시 손가락을 놀리자 허공에 단순화된 용의 형상이 그려졌다.

    “폭력의 왕의 일족인 드래곤들 역시 이계종이랍니다. 물론 마계 출신의 드래곤들도 있지만요. 이들은 마룡족이라 따로 구분해서 부르죠.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셈이지만, 어찌되었든 그러해요. 사실 드래곤들은 이주해온 지 너무 오래 지나서 과연 이계종이라 해야하나 싶기도 하지만요.”

    용의 형상이 이번에는 마계 전도로 변하였다. 시트리는 가운데 부분에 새로운 선을 추가하며 말했다.

    “순혈주의자들은 북부로 갈수록 그 세력이 강하답니다. 오만의 왕과 질시의 왕이 대표적인 순혈주의자들이죠. 특히 질시의 왕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마계 태생인 오만의 왕과 색욕의 왕, 나태의 왕을 제하고는 아예 왕으로도 인정하지 않았던 걸로도 유명하답니다.”

    시트리가 그은 선 바로 아래에는 격노의 왕의 땅이 존재했다. 시트리는 그 부분을 가리켰다.

    “팔부중은 오랜 세월 북부에서 노예로 부려지던 종족입니다. 격노의 왕이 나타난 이후에야 비로소 지금의 안정된 삶을 시작했죠. 격노의 왕이 ‘지키는 왕’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죠.”

    빛이 흩어졌다. 시트리는 허공 대신 용호를 보았다.

    “앞으로 마계의 정세가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답니다. 하지만 격노의 왕이 그리고 있는 그림이 완성된다면 북부와 남부의 대립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겠죠. 그리고 그 대립의 골자에는 순혈주의자와 외부인들의 대립이 들어있을 거고요.”

    “남부 연합 전선의 형성은 필연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오만의 왕이 성공적으로 북부를 통합했을 때 이야기지만요.”

    시트리는 다리를 반대로 꼬았다. 평소의 그녀는 용호에게 간접적인 도움은 줄지언정 지금처럼 자발적으로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용호 자신이 식탐의 왕을 쓰러트렸다는 사실이 어떤 트리거를 발동시켰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점을 다시 가까운 쪽으로 돌려보죠.”

    다시 마계 전도가 허공에 그려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각각의 지역마다 서로 다른 엠블렘이 박혀 있었다. 용호는 금방 각각의 엠블렘들이 마계를 지배하는 여섯 왕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중 식탐의 왕을 상징하는 엠블렘이 사라졌다. 시트리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왕이 만들어낸 하나의 국가는 남부 공백지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고 체계적이랍니다. 아마 식탐의 왕의 수하들은 한동안은 식탐의 왕의 사망 소식을 숨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영원할 수는 없겠죠. 진실이 드러났을 때 식탐의 왕의 땅은 전쟁터가 될 겁니다. 그리고… 이건 제 개인적인 소망이지만, 그때가 왔을 때 사랑하는 고객님께서 큰 활약을 하셨으면 한답니다. 아직 세력을 기를 시간은 남아 있으니까요.”

    시트리에 시선에는 기대가 어려 있었다. 용호는 저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어려운 이야기는 이쯤 하죠. 고객님께서 부탁하신 물건을 구했다는 부분에서 이야기가 끊겼었죠?”

    “네.”

    “이번에야말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죠. 골라보세요.”

    시트리가 양손을 동시에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 카탈로그 두 개가 나타났다. 각각 마법기와 사역마들이 수록된 카탈로그였다.

    “네크로멘싱의 비의가 담긴 마검과 네크로멘싱에 특화된 리치. 선택은 사랑하는 고객 님의 몫이랍니다.”

    자동으로 펼쳐진 카탈로그 두 개가 용호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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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가 돌아갔다.

    시트리는 온통 하얀 공간에 홀로 남겨졌다.

    “탐욕의 왕.”

    시트리는 눈을 감았다. 용호를 배웅코자 지었던 밝은 미소는 애처로움으로 화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천하고도 수백 년 전.

    위대한 탐욕의 왕 마몬의 시대에 다섯 왕이 있었다.

    탐욕의 왕.

    오만의 왕.

    나태의 왕.

    색욕의 왕.

    질시의 왕.

    마지막 순간에 오만과 색욕과 질시는 탐욕을 배신했다. 나태는 세 왕처럼 적극적으로 배신하지 않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탐욕의 왕.”

    그때와 달랐다. 이제는 모두 지나간 일에 불과했다.

    시트리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품안에서 마몬이 죽던 날, 저 위대한 탐욕의 왕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얀 세상이 검정으로 물들었다. 어둠이 시트리를 감싸주었다.

    제 58장 - 탐욕 끝, 제 59장 - 금의환향으로 이어집니다.

    < 제 58장 #4 > 끝

    ⓒ 취룡

    작가의 말

    예속 사역마 7인

    카타리나, 엘리고스, 스컬, 오필리아, 티그리우스, 카이완, 아몬

    유리아와 리쿰은 예속 사역마가 아니라 일반 사역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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