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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147화 (147/227)

< 제 50장 - 던전 돌파 >

제 50장 - 던전 돌파

압도적인 대승이었다.

마몬 가의 사상자는 불과 서른 명 안팎에 불과했다. 반면 동부 군은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목숨을 잃었고, 남은 절반 가운데서도 부상자의 숫자가 수백을 헤아렸다.

일선 지휘관 대부분이 살아남았던 엠브리오의 군대와 달리 동부 군은 지휘 체계 자체가 박살이 났다. 때문에 패잔병들에게는 구심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가루처럼 부서져 흩어졌으니 더 이상 어떠한 위협도 되지 못했다.

전투는 완전히 끝났다. 하지만 여전히 전장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죽은 동부 군으로부터 전리품을 획득하는 일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북부 원정을 통해 부를 쌓은 동부 군의 무장은 꽤나 준수했다. 각종 무구와 갑주들을 회수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금액이 될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개중에는 제법 값비싼 물품들을 소지한 녀석들도 있었다.

용호는 자잘한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전장에서 나온 물품들은 거의 대부분 병사들의 몫으로 분배할 생각이었고, 이미 비슷한 내용의 공지를 전투 이전에 내린 바가 있었다.  원정군- 특히 자유도시 소속 군사들의 사기를 고양시키기 위함이었다.

살라미가 불꽃의 날개를 펄럭이며 지상에 착지했다. 모두가 전리품 획득에 열중인 와중에도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유지 중인 스컬 부대 앞이었다.

부케팔로스가 제일 먼저 눈짓으로 아는 척을 해왔다. 기분 좋게 히힝 웃는 얼굴에는 제법 감정이 풍부했다. '내가 싸우는 거 잘 봤냐. 멋지지 않느냐-' 대충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살라미는 코웃음을 쳤지만 잠깐 뿐이었다. 숙명의 라이벌이자 악우인 부케팔로스에게 꽤나 흡족한 시선을 되돌려 주었다.

“스컬스컬.”

이제는 마몬 가의 자랑이라 할 수 있을 죽음의 해골기사- 스컬이 망치 창을 곧이 세우며 용호에게 예를 표했다. 아직 동기화가 풀리지 않은 이백여 스컬 부대 전원이 마찬가지로 예를 표하자 실로 장관이 펼쳐졌다.

용호는 솔직하게 기뻐했다. 초등학교 시절 교장 선생님이 왜 연단에만 올라가면 그토록 말이 길어지셨는지도 알 것 같았다. 수백 개의 시선이 모두 용호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짜릿한 쾌감이 등줄기를 꿰뚫는 기분이었다.

등 뒤에서 카타리나의 귀와 꼬리가 파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금의 광경에 신이 난 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너지기 직전의 초라하고 작은 마몬 가는 이제 정말 옛 말이었다.

용호는 살라미가 그랬던 것처럼 흡족한 시선을 모두에게 돌려주었다. 예를 표하는 일이 끝났기에 스컬 역시 껄껄 웃었다. 전투 내내 지속하고 있던 동기화를 풀고 마음 편히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똑같네, 똑같아.’

방금까지만 해도 빠릿빠릿하게 예를 표하던 이백 여 스컬 부대 역시 한껏 풀어진 모습이 되어 제자리에서 어슬렁거렸다. 개중 몇 마리는 스컬처럼 바닥에 주저앉거나 심지어는 바닥을 굴러다녔다. 아무래도 동기화를 통해 전해진 것은 스컬의 전투 기술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용호 역시 가볍게 왼쪽 가슴을 두드려 전투 내내 지속하고 있던 의식을 해제했다. 순간 가슴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내 편안함이 찾아왔다.

마신왕의 심장.

인계에 남겨져 있던 마몬의 유산은 평범한 브리가다가 아니었다. 탐욕을 다루는 방법에 관한 노하우는 그야말로 덤에 불과했다.

왼쪽 가슴에 박힌 일곱 개의 파편- 마신왕의 심장은 마몬의 12 사역마를 통해 완성되는 탐욕의 신기와는 달랐다. 오직 하나의 의식만을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었다.

소유자의 영육을 마신왕에 가깝게 하는 것.

물론 영구적인 것이 아니었다. 일시적인 도핑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절대적이었다.

파편 하나가 발동했을 때 상태를 일마라 불렀다. 일마가 발동하면 파편이 가슴 깊이 파고들며 의식이 시작되었다. 브리가다 파편은 마력 흐름의 중심이라 할 수 있을 정수를 직접 자극해 마력의 흐름을 보다 강하고 빠르게 했다. 암시를 통해 평소라면 발휘되지 않을 육신의 잠재력을 강제로 개방했다. 컴퓨터로 치면 오버 클록을 하는 셈이었다.

마력을 집중시킬 시간이 엠브리오 전에 비해 극히 짧았음에도 그럭저럭 녹색 태양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역시 일마를 발동시킨 덕분이었다.

마신왕의 심장을 구성하는 파편은 모두 일곱 개였다. 당연히 의식의 단계는 칠마까지 존재했다.

의식이 한 단계 진척될 때마다 증가되는 힘 역시 더 커지는 구조였기에 칠마를 모두 개방했을 때의 상태는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름 그대로 마신왕의 경지에 오르게 될지도 몰랐다.

물론 위험했다. 당장 일마만 하더라도 몸에 적잖은 무리가 갔다. 더욱이 사마 이상의 단계부터는 힘을 증폭시키는 방식 자체가 일마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브리가다로 정수를 자극한 것 이상의 일을 요구했다.

용호가 뒤늦게나마 마신왕의 심장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카이완을 예속 사역마로 삼은 덕분이었다.

브리가다에 남아있던 마몬의 마력이 대략적인 사용법과 위험성을 알려주었다. 아마 소유주의 마력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지 않으면 아예 발동하지 않는 종류의 아티팩트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여러 경험들과도 일치하는, 실로 마몬다운 안배였다.

용호는 일마를 해제한 뒤 보다 편안해진 얼굴로 예속 사역마들을 마주했다.

“붙잡은 가주들 여기 있어. 구워먹든 튀겨먹든 우리 가주 님 맘대로 하세요.”

카이완이 사복검에 묶어 질질 끌고 온 가주 하나를 바닥에 풀어놓았다. 연이어 엘리고스와 오필리아 역시 각자 짊어지거나 묶어 온 동부 가주들을 척척 내려놓았다.

하나같이 상태가 좋지 못했다. 팔 다리가 각각 하나씩 부러진 녀석이 그나마 멀쩡한 축에 속할 지경이었다.

마계의 싸움, 특히 가주들 간의 전투에서 몸값을 받고 포로를 풀어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가주는 가주의 정수를 먹어 힘을 키울 수 있었다. 더욱이 가주의 죽음은 곧 던전 방어력의 급격한 저하를 의미했다. 때문에 가주는 붙잡는 족족 죽이는 것이 여간해서는 이득인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주를 굳이 포로로 붙잡는 경우가 몇 가지 있었다.

하나, 인질로서 가치가 높을 때.

둘, 가주를 부하로 삼고자 할 때.

셋, 가주가 알고 있는 정보를 캐내려 할 때.

바닥에 나자빠진 동부 군의 가주들은 대체로 뿔이 세 개. 많아봐야 네 개였고, 그나마도 마력 수준은 네 개 초입에 불과했다. 마력의 격차가 워낙 크다보니 지금의 용호에게는 먹어봐야 별반 이득이 안 될 작자들이었다.

동부의 가주들을 죽이지 않고 생포한 것은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임시 감옥과 고문실을 설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동부에 대한 모든 것들을 토해내게 만들 터이니 맡겨만 주십시오.”

엘리고스가 간만에 생기가 도는 눈으로 말했다. 온 몸이 적병의 피와 살점으로 물든 상태였기에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박력이 있었다.

카타리나는 미간을 좁혔고, 용호는 쓰게 웃었다. 몇 번을 봐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 엘리고스의 취미였다.

‘뭐, 가끔은 괜찮겠지.’

더욱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이번 전투에서 동부 군의 수뇌인 스트라바디와 사르가타나스를 잡지 못했으니 다음 전투를 대비해 정보를 모아야 했다.

오필리아마저도 약간은 질린 표정을 짓는 가운데 엘리고스는 희희낙락하며 다시 동부 군 가주들을 챙길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그럴 필요 없소.”

동부 군 가주 가운데 그나마 제일 멀쩡한 자가 입을 열었다. 뱀의 심장과 혀를 가졌다 전해지는 종족인 나가라쟈 출신의 가주였다.

“모두 말하겠소. 원하는 것이라면 전부 알려드리리다. 아니, 알려드리겠습니다.”

체념한 투가 아니었다. 목소리에는 분함이 묻어났다. 엘리고스가 다급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수작질을!”

“스트라바디와 사르가타나스가 먼저 우릴 버렸습니다! 우릴 배신했단 말입니다!”

나가라쟈 가주가 빠르게 소리쳤다. 목소리에 묻어났던 분함은 용호가 아닌 스트라바디와 사르가타나스를 향한 것이었다.

동부 군이 박살이 나는 와중에도 스트라바디와 사르가타나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가라쟈 가주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동부 군의 두 수장들이 자신들을 희생양 삼아 도망쳤다는 뜻이었다. 싸움 한 번 해보지 않고 말이다.

나가라쟈 가주는 필사적인 눈으로 용호를 바라보았다.

잠자코 있던 카이완이 거들고 나섰다.

“거짓말 같진 않은데? 저 녀석이 도망친 놈들에게 딱히 신의를 지킬 이유도 없을 것 같고.”

“저도 동의합니다. 더욱이 그는 뱀의 심장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나가라쟈. 동부 군의 주력이 붕괴한데다가 배신까지 당한 상황에서도 신의를 지킬 것 같지는 않습니다.”

카이완에 이어 말을 보탠 오필리아는 마지막에 용호에게 살짝 눈짓을 보냈다. 여차하면 자신이 한 번 검사를 해보겠다는 뜻이었다.

카타리나 역시 딱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귀와 꼬리의 움직임을 보니 두 사람과 뜻을 같이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어보지.”

용호가 결정했다. 나가라쟈 가주는 작게나마 안도의 숨을 토했고, 엘리고스는 홀로 시무룩해져 어깨를 늘어트렸다.

&

[던전 장악을 시작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신호가 잘 안 잡히는 휴대폰 통화음처럼 소리가 좀 멀기는 했지만 분명 루시아의 목소리였다.

마몬 가의 군대가 동부 군의 주력을 격파한 뒤 하루가 지났다.

동부로 진군을 거듭한 용호는 항복한 나가라쟈 가주의 던전을 접수해 전진 기지로 삼았다.

엠브리오가 불러온 난세 와중에 가주들의 숫자가 크게 줄어든 것은 동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가라쟈 가주의 설명대로라면 스트라바디와 사르가타나스의 휘하에 남은 동부 군 가주는 이제 겨우 두 명에 불과했다.

동부 군이 재차 동원 가능한 병력은 대략 일천 남짓이었다. 북부에 남겨둔 병력이나 여러 던전에 분산해둔 병력까지 모조리 긁어모아도 이천 정도가 한계라 했으니 상상도 못한 규모의 대군을 마주할 걱정은 없었다.

나가라쟈 가주의 정보는 생각 이상으로 양질이었다. 심지어 그는 스트라바디와 사르가타나스의 권능까지 알고 있었다.

스트라바디의 권능은 근거리 공간 도약이었고 사르가타나스의 능력은 단순한 육체 강화였다.

둘 모두 근접전에 능했는데, 나가라쟈인 스트라바디는 마법에도 제법 소양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껄끄러운 상대가 될지도 몰랐다.

용호는 뱀의 두상이 조각된 낯선 옥좌에 앉아 가만히 수를 헤아렸다. 머릿속에 동부의 지도를 그려보았다.

현재 위치한 던전은 동부에서도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북동쪽으로 이동하면 스트라바디의 던전이 나왔다.

티그리우스와 리쿰, 오필리아는 입을 모아 다음 전투는 회전이 아닌 던전 전투가 될 것이라 말했다. 타당한 의견이었다. 당장 용호 자신도 식탐의 왕을 회전이 아닌 던전 전투로 맞상대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가주가 가장 강해지는 것은 자신의 던전에서 싸울 때였다.

던전 상회 덕분에 마계는 인계와 보급의 개념 자체가 달랐다. 던전 상회 가상공간에 접속할 수 있는 던전과 충분한 금전만 확보할 수 있다면 적진 한 가운데서도 불완전하게나마 보급을 할 수 있었다.

용호는 스트라바디에게 시간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폭풍 같은 기세로 동부를 먹어치울 심산이었다.

아가레스를 쓰러트렸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 때는 시간에 쫓겼다. 주변 다른 가주들을 경계하느라 급히 던전의 심장 정수만 취하고 동부를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던전의 재보와 자원, 사역마, 심장의 정수.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제대로 먹어치울 생각이었다.

정말 제대로 확실하게, 그야말로 탐욕의 왕답게!

[던전 장악이 완료되었습니다.]

[던전 상회 가상공간에 접속하실 건가요?]

탐욕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이전보다 훨씬 더 크고 탐스럽게 피어오른 탐욕은 옥좌 옆에 선 카타리나와 카이완을 휘감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넓게 퍼져나갔다.

용호는 눈을 감았다. 던전 상회 가상공간에 접속했다.

&

< 제 50장 - 던전 돌파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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