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145화 (145/227)
  • < 제 49장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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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 용호야. 낮이밤져라고 알아?]

    목에 건 통신기를 통해 전해진 카이완의 목소리에 용호는 헛기침을 토했다.

    아니, 이게 지금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내용은 둘째 치고 마계에도 그런 말이 있긴 한 건가?

    “저, 저도! 저도 낮이밤져할게요!”

    카이완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한 카타리나가 급히 말했다. 용호는 혼란 속에 손부채질로 얼굴에 열을 식혔다. 무슨 뜻인지도 모를 텐데도 묘하게 필사적이 된 카타리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뒤 통신기에 대고 말했다.

    “허튼 소리 그만하고 주위 경계나 제대로 해.”

    [우리 가주 님이 위에서 지켜보고 계신걸 뭐. 믿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카이완은 까르르 웃으며 통신을 끊었다. 발랄한 건 좋았지만 카이완이 가주이던 시절의 기록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 당혹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게 카이완의 본모습일지도 몰랐다. 어린 나이에 망해가는 가문의 가주가 되지 않았다면 눈매도 지금과 달리 표독스럽기 보다는 둥글둥글 장난스럽지 않았을까?

    동부 원정을 결심하고 사일.

    스컬 부대를 필두로 한 마몬 가의 군대는 동부를 향해 순조롭게 진군 중이었다.

    동원한 병력은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다. 스컬 부대 이백 오십과 블랙 오크 전대 일백이 본대의 전부였고, 나머지는 수송부대 약간과 수송부대의 호위와 예비대 역할을 맡을 기타 병력 이백여 명 정도였다.

    병력의 절반가량이 식사를 필요로 않는 언데드인 터라 수송부대의 짐이 부대 규모에 비해 무척이나 가벼웠다.

    동원한 병력의 수가 적은만큼 장수의 힘에 의존해야 했기에 이번에도 마몬 가의 예속 사역마들이 총출동하였다. 근래 들어 자신이 집사장인지 돌격대장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있는 엘리고스는 오필리아와 함께 제 1 독립 기동대를 맡았다. 말이 독립 기동 부대지 구성원은 달랑 두 사람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스컬과 리쿰은 각각 스컬 부대와 블랙 오크 전대를 지휘했고, 티그리우스는 후방에서 수송부대를 맡았다.

    제 2 독립 기동대의 대장이자 유일한 구성원인 카이완은 스컬의 옆에서 말을 달렸다. 가주 경력이 긴 그녀였지만 막상 대규모의 부대를 지휘해본 적은 거의 없었기에 엘리고스나 오필리아처럼 홀로 싸우는 쪽이 더 효율적이었다.

    용호와 카타리나를 태운 살라미가 하늘 높은 곳에서 날갯짓을 했다. 단순 진화가 아니라 ‘파이어 엘리멘탈 드래곤’으로 승급을 한 터라 그 모습이 이전과는 제법 달라져 있었다. 일단 덩치가 더 커졌고, 날개와 꼬리도 길어졌다. 도마뱀이나 도룡뇽 같던 머리에도 단단한 껍질이 더해져 이제는 제법 드래곤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살라미는 살라미였다. 등에 난 손잡이도 그대로였고, 용호와 카타리나, 거기에 더해진 카이완의 대화를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것도 똑같았다.

    용호가 하늘에 자리한 것은 단순히 첨병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용호가 신경 쓰는 것은 동부군 만이 아니었다.

    서부와 북부에서 정보 조작을 꾀한 식탐의 왕의 수하들이었다. 동부와 남부 어딘가에 숨어서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미 엠브리오와의 싸움에서 전력을 한 번 보인 바 있기에 아예 전투에 불참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밑천을 전부 드러낼 생각 또한 없었다.

    동부는 남부와 달리 거대한 기암과 산, 협곡이 많았다. 덕분에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음에도 그리 먼 곳까지 내다볼 수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회전을 벌일만한 곳은 물론 병력을 숨길만한 곳 역시 뻔하다는 이야기였다.

    용호는 통신기로 예속 사역마들에게 주의할 것을 명했다. 주변에 자리한 기암들의 형태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커다란 언덕이 정면을 가로막고 있었고, 좌우에는 각각 숲과 기암들이 퍼져 있었다. 수백은 물론이고 수천 단위의 병력도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숨길 수 있는 지형이었다.

    살라미 역시 무언가를 감지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카이완이 손을 들어 스컬과 모두를 제지했다. 티그리우스는 오히려 후송부대를 재촉해 본대를 급히 따라잡게 하였다.

    정면의 언덕에 매복해 있던 동부 군 병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좌측의 숲에서도 일단의 병력이 쏟아져 나왔다. 급히 달려드는 대신 마치 포위진을 형성하듯 천천히 움직여 티그리우스가 이끄는 수송대와 후위의 뒤를 점하고자 했다.

    나타난 동부 군의 숫자를 헤아릴 틈도 없었다. 살라미가 돌연 우측의 기암 지대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가 모든 것을 앞섰다.

    용호도 보았다.

    기암 지대를 거의 부수듯 돌진한 거대한 괴수가 성난 울음을 터트렸다. 마몬 가의 부대를 향해 똑바로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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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예병들과 함께 언덕 위에 자리한 스트라바디는 흡족한 미소를 그렸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마몬 가의 가주가 순박할 정도로 정직한 진군을 거듭해준 덕분에 이렇게 최고의 전장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마몬 가 가주가 아가레스와 어떻게 싸웠는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랜드 웜을 전장에 난입시켜 아가레스 군의 혼란을 유도한 것은 정말 기발하면서도 훌륭한 작전이었다.

    그래서 스트라바디도 똑같이 해주었다. 랜드 웜 따위가 아닌 보다 흉악하고 끔찍한 괴수를 전장에 불러냈다.

    키마이라.

    아주 오랜 옛날부터 동부에 서식한 끔찍한 괴물이었다. 사자와 그리폰, 드레이크의 머리에 비늘이 돋아난 곰의 몸과 뱀의 꼬리를 가진 놈은 거대하고 난폭했다. 어깨 높이만 근 십 미터에 달하는 터라 다 자란 랜드 웜조차도 놈 앞에서는 한 끼 식사거리에 불과했다. 던전 상회의 기준으로 한다면 못해도 5성 사역마에 랭크될 괴물이었다.

    자신의 둥지에서 곤히 자고 있는 놈을 여기까지 끌어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딱 적절한 순간에 난입시키기 위해 참으로 치밀한 계산을 해야만 했고, 적잖은 숫자의 사역마들을 희생시켜야 했다.

    하지만 결국 해냈다. 이제는 그 결과를 만끽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키마이라가 마몬 가의 부대를 헤집어 놓으리라. 물론 키마이라만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날거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키마이라가 죽는 순간 전후의 병력들을 진군시킨다. 키마이라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마몬 가를 포위 섬멸한다.

    병력의 숫자도 이쪽이 월등히 많았다. 전후에 자리한 병력의 숫자를 합치면 근 이천에 가까웠다.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전장이었다.

    키마이라가 다시 포효했다. 스트라바디는 물론이고 그 옆에 자리한 사르가타나스 또한 기꺼운 웃음을 터트렸다. 지축을 뒤흔들던 키마이라가 자신을 분노케 한 스타라바디의 사역마를 찢어발겼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눈앞에 자리한 마몬 가의 병력들을 노려보았다.

    흥분한 키마이라가 지면을 박찼다. 스트라바디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거대한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무지막지한 마력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개방됨에 따라 일어난 현상이었다. 공중으로 도약한 키마이라를 향해 붉은 야수가 뛰어올랐다. 회색 털로 뒤덮인 붉은 상체의 근육이 터질 것처럼 팽창했다. 한껏 당긴 주먹은 차라리 망치라 불러야 할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붉은 야수의 주먹이 키마이라의 상체를 후려쳤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십수 톤은 우습게 나갈 키마이라가 바닥에 내리꽂혔다. 주먹을 휘두른 붉은 야수 본인 역시 자신이 휘두른 주먹의 반발력을 이기지 못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야말로 상식을 초월하는 일권이었다.

    이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잿빛 머리칼의 여인이 질주했다. 키마이라가 지면에 충돌하자마자 경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사복검을 휘둘렀다. 마치 땅을 기는 뱀처럼 빠르게 나아간 사복검이 사자의 목을 휘감았다. 사복검이 다시 풀렸을 때는 살점과 피가 허공을 뒤덮었다. 거의 뼈가 드러날 정도로 갈려나간 사자의 목이 힘없이 늘어졌다.

    붉은 맹수가 하나 더 있었다. 처음 것보다 훨씬 작고 재빠른 그것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사복검이 흩뿌린 피를 일직선으로 갈랐다. 벼락같은 일각이 그리폰의 머리를 강타했다. 위력 역시 벼락과 같았다.

    머리 셋 중에 아직 하나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키마이라는 감히 일어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붉은 맹수는 연달아 드레이크의 머리를 걷어찼고, 잿빛 머리칼의 여자는 사복검을 휘둘러 뱀의 꼬리를 찢어발겼다.

    키마이라는 마몬 가의 본대를 헤집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닿지도 못했다. 마몬 가의 본대를 불과 십여 미터 앞에 두고 반죽음 상태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동부를 주름잡는 공포의 마수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계산이 틀어졌다. 지금이라도 작전을 중단해야만 했다!

    “장인!”

    사르가타나스가 다급히 외쳤다. 멍한 눈으로 키마이라를 바라보던 스트라바디는 깜짝 놀라 정면을 보았다. 마몬 가의 본대가 언덕 아래 세워둔 전열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스컬컬!”

    이미 말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검은 마수가 성난 울음을 토했다. 그 위에 탄 검은 갑주의 해골기사가 창대를 달아 길게 만든 상앗빛 망치를 휘둘렀다. 보랏빛 죽음의 기운이 불길처럼 피어올랐다.

    “돌진해라! 놈들을 포위해!”

    사르가타나스가 다급히 외쳤다. 돌진하는 언데드 부대의 위용에 순간 정신을 놓았던 스트라바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합리적으로 보자면 포위진을 완성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이 전장에 이미 합리란 존재하지 않았다.

    스켈레톤 부대가 폭풍처럼 돌진했다. 너무 빨랐다. 일반적인 스켈레톤들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더욱이 후위의 수송대 또한 이상했다. 후방의 적을 대비하기는커녕 마치 경주라도 하듯 마몬 가 본대의 뒤를 따랐다. 아군끼리 부대가 뒤섞여 진형이 무너질 우려 같은 것은 애당초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았다.

    스트라바디는 다시 혼란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이성적인 마몬 가의 움직임이 합리에 기반을 두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스켈레톤 부대와 충돌한 동부 군이 문자 그대로 박살이 났다. 스켈레톤 부대의 전투력이 비상식적으로 높았다. 선두에 선 검은 마수의 해골기사 하나의 강함이 문제가 아니었다. 스켈레톤 워리어가 아니라 스켈레톤 나이트의 군대라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단순히 진화의 권능 때문이 아니었다. 스컬 부대의 압도적인 전투력에는 스트라바디가 상상도 못할 이유가 숨어 있었다.

    무리를 통한 동기화.

    용호는 엠브리오의 늑대 무리가 구성하고 있는 정신적 네트워크에 주목했다. 티그리우스와 늑대 무리의 도움을 받아 네트워크 자체를 카피, 스컬과 스컬 부대로 구성된 새로운 무리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자아가 희미한 스컬 부대였기에 이백이 넘는 숫자가 무리 안에 포함될 수 있었다.

    무리를 유지하는 마력 거의 전부를 스컬 혼자 부담해야 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스컬과 스컬부대가 동기화를 이루었다. 스컬 부대는 정신적 네트워크를 통해 스컬의 전투기능을 일부나마 카피했고, 서로간의 전투 경험을 공유했다.

    하드웨어 자체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소프트웨어가 문자 그대로 혁신을 이루었다.

    전투력이 폭증했다. 스켈레톤 솔져는 스켈레톤 워리어에 준했고, 워리어는 나이트에 준했다. 스켈레톤 나이트와 용아병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더욱이 서로 간의 경험을 공유함에 따라 진화 숙련치를 쌓는 속도가 몇 배는 더 빨라졌다.

    스컬 부대가 동부 군을 찢어발겼다. 숲을 돌아 나온 동부 군이 수송부대의 꼬리를 잡기도 전에 동부 군의 전열이 무너졌다.

    이렇게 된 이상 포위섬멸은 이미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더욱이 동기화를 이룬 스컬 부대는 스트라바디의 상식을 넘어선 기동을 보여주었다.

    티그리우스가 이끄는 수송부대가 스컬 부대를 관통했다. 그대로 지나쳐 블랙 오크 전대와 함께 찢어발겨진 동부군의 전열을 마저 두드렸다.

    스컬 부대는 돌아섰다. 마치 수백이 하나인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공격 방향을 바꿨다. 포위진을 완성하기 위해 달려온 동부 군을 향해 소름끼치는 역주행을 개시했다.

    미칠 것 같은 현장을 목격하는 와중에도 스트라바디의 이성은 제 할일을 하였다. 저 미친 스켈레톤 부대에 곧 붉은 야수와 맹수, 잿빛 머리칼의 여자가 합류해 날 뛸 것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숫자는 여전히 이쪽이 많았다. 그것도 몇 배나 되었다. 하지만 이미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는 좀 더 큰 것이 필요했다.

    사르가타나스와 자신이 예비대를 이끌고 합류해야 했다. 전장에서 부대들을 지휘하고 있는 동부 군의 가주들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성이 말했다. 스트라바디 자신과 사르가타나스는 강했다. 북부의 가주들을 포식한 끝에 둘 모두 뿔 다섯 개에 도달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사르가타나스가 다시 한 번 괴성을 토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스트라바디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마몬 가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광경 때문에 완전히 잊고만 존재.

    스트라바디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녹색 태양이 작렬했다. 스트라바디와 예비대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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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49장 #2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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