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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136화 (136/227)

< 제 45장 - 준비 >

제 45장 - 준비

엠브리오가 죽었다.

남부 공백지에서 그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는 각별했다.

그는 공백지에서 가장 강력한 가주였고, 또한 가장 호전적인 존재였다.

엠브리오의 죽음이 전쟁의 끝을 의미할 거라 생각하는 자는 드물었다. 그의 죽음은 새로운 전화의 시작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았다.

엠브리오가 벌려놓은 판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남부 공백지 전체가 기수 잃은 마차처럼 폭주할 수도 있었다.

남부 공백지의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웠다. 엠브리오의 잔당들은 살아남을 길을 모색했고, 동부의 가주들은 새로이 부각된 마몬 가의 힘에 안절부절못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가주들이 아니었다. 전쟁에 휩쓸려 반상 위의 기물이 되어야만 하는 민초들 역시 자신들의 미래를 놓고 불안한 망상을 이어나갔다.

허나 이 모든 것들은 그저 남부 공백지 내에서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엠브리오의 죽음.

마계 전체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것은 그리 큰 사건이 아니었다. 찻잔 속의 폭풍이란 표현이 제격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식탐의 왕은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팔을 들어 만찬을 즐겼다. 대식가인 동시에 미식가인 그는 먹고 마시며 궁리했다.

기다리던 전쟁이 시작되었다. 오만의 왕은 마침내 질시의 왕의 영지를 향해 군대를 진군시켰다. 오만의 왕다운 선전포고 역시 수반되었기에 이번 싸움을 지금까지와 같은 소소한 국지전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없었다. 전면전이었다. 죄악과 신기를 가진 왕들간의 전면전 말이다!

식탐의 왕이 음식을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격노의 왕의 영지에서 납치해온 나찰들이 서둘러 새로운 음식들을 내왔다. 식탐의 왕의 미희이자 음악가인 간다르바들 역시 주인의 먹는 속도에 맞춰 보다 빠른 음악들을 연주했다.

식탐의 왕은 비천한 아귀 출신이었다. 오우거나 트롤같은 대형 몬스터들에게 간식거리로 잡아먹히기 일쑤인 작고 연약한 잡귀말이다.

때문에 식탐의 왕은 바닥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날 때부터 고귀했던 다른 왕들과 달리 참고 인내할 줄 알았다.

오만의 왕은 분명 강했다. 아마 현존하는 여섯 왕들 가운데서 가장 강한 존재일 터였다. 하지만 질시의 왕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색욕의 왕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왕이었다. 저 위대한 탐욕의 왕 마몬과 같은 시대를 거닐었던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둘의 싸움은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식탐의 왕 자신은 그 사실을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

정보를 통제한다. 엠브리오의 죽음과 관계 된 여러 사실들을 축소한다.

본 드래곤? 전쟁터에서 도망친 뜨내기들의 망상이다. 소문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커지고 또 커진 것에 불과하다. 그저 와이번의 언데드. 그 정도가 딱 좋았다. 그것이 곧 사실이 될 터였다.

왕들이 남부에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북부를 쳐다봐야만 했다. 식탐의 왕 자신도 그런 시늉을 할 생각이었다. 이미 군사들을 북부와 서부 국경지대에 전면 배치했다.

남부에 손을 쓰는 것은 북부의 싸움이 충분히 커진 이후여야 했다. 모든 왕들이 남부 공백지를 머릿속에서 지웠을 때가 바로 남부를 먹어치울 때였다.

‘마몬 가의 가주.’

인상적이었다. 엠브리오에게 붙여놓은 감시자 녀석이 죽는 바람에 명확한 정보까지는 얻을 수 없었지만 까마귀의 눈을 통해 먼 곳에서나마 관찰한 전황과 본 드래곤에 이어 엠브리오를 격퇴했다는 사실 정도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갑자기 강력한 가주가 태어났다?

불가능하진 않았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식탐의 왕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바닥에서부터 기어오른 것이라면.

탐욕의 죄악이 사라진 지 천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식탐의 왕은 잠시 멈추었던 손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걸스럽게 눈앞의 음식들을 먹어치웠다.

&

경험의 힘은 위대했다. 두 번째 세상간 이동은 첫 번째 세상간 이동보다 훨씬 더 나았다.

용호는 주저앉는 대신 똑바로 서서 마중 나온 식솔들을 마주하였다.

“어서 오세요.”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유리아가 사역마들을 대표해 인사했다. 용호는 두 손 가득 들고 온 짐들을 내려놓고 유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귀엽게 환영하는 것은 유리아만이 아니었다.

[돌아오시길 손꼽아 기다렸답니다!]

[환영합니다, 주인님. 고향에는 잘 다녀- 어어어?]

발랄하게 말하던 루시아가 돌연 목소리를 높였다. 깜짝 놀란 용호가 고개를 번쩍 들자 유리아는 물론 다른 사역마들도 당황해서 용호를 쳐다보았다.

루시아가 다시 소리쳤다.

[뭔가 달라지셨어!]

[뭔가 달라지셨다고요!]

[으으… 아, 앙돼.]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흑흑.]

[구경했어야 하는데.]

마지막 말이 제일 중요했다. 당황 속에 어설프게 웃던 용호는 눈매를 날카로이 했고, 루시아는 일부러였다는 듯 까르르 웃었다.

[하아, 우리 주인님이 남자가 되셨어.]

[순수함을 잃으셨지만 그게 또 매력이죠. 이왕 더럽혀 지신 거 이김에 나쁜 남자가 되시는 거예요.]

용호는 더더욱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하니 루시아가 자신 외에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어휘 사용이 나날이 발랄해지고 있었다.

“그 정도로 하고.”

작게 말한 용호는 유리아에게서 손을 떼고 다른 사역마들을 보았다. 예상 밖의 인물이 서 있었다.

“오필리아?”

“엔델리온의 딸 오필리아가 위대한 마몬 가의 가주 님을 뵙습니다. 자유도시로 향하기 전에 잠깐 들린 차였습니다.”

어설픈 유리아와 달리 멋지게 예를 표한 오필리아는 허리를 바로 세운 뒤 가만히 눈동자를 굴렸다. 용호의 등 뒤에 꺼벙하게 서 있는 카타리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흐으음.”

참으로 여러 가지 의미가 뒤섞인 침음이었다.

카타리나는 오필리아의 노골적인 시선에 귀를 축 늘어트리더니 입술을 움츠렸다. 결국엔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오필리아는 싱긋 웃었다. 카타리나 정도는 아니지만 어색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 된 용호에게 말했다.

“즐겁고 보람되며 유익하기까지 한 휴가가 되셨던 것 같네요. 축하드립니다.”

시선만큼이나 의미심장한 인사말이었다.

아버지 정도는 아니었지만, 역시 오필리아에게 뭔가를 감추는 것은 무리였다. 용호는 그저 웃고 말았다. 그런 용호의 반응에 저만치에 엎드려 있던 살라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가져오신 것들이 많네요.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좋은 신하의 여러 표본 가운데 하나인 오필리아는 주군을 곤경에만 빠트리지 않았다. 적절하게 화제를 전환하였다.

용호가 바로 답했다.

“어, 빈손으로 오기 뭐하니까. 이왕 다녀오는 김에 이것저것 챙겨 왔지.”

정말로 짐이 한 가득이었다. 용호와 카타리나 모두 보기와는 달리 괴력의 소유자였기에 운반이 가능했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장정 네다섯 명이 달려들었어야 겨우 들 수 있었을 터였다.

용호와 가장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던 유리아 역시 짐들에 관심을 보였다. 카타리나처럼 꼬리나 귀가 파닥이진 않았지만, 대신이라도 되듯 마치 더듬이처럼 솟아 있는 머리칼 두 줄기가 귀엽게 파닥였다.

어느새 유리아 옆에 자리한 바둑이 역시 코릉 킁킁 거렸다. 괜히 개가 아닌지 냄새를 제대로 맡은 것 같았다.

“일단 치킨. 자, 유리아. 이게 치킨이란 거야.”

용호는 괜히 시간을 끌지 않았다. 짐 제일 위에 있던 종이 상자들 가운데 하나를 열어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양념 치킨을 공개했다. 용호와 마몬 가의 사역마들을 위해 아버지께서 열과 성을 다해 튀기신 치킨이었다.

마계에 요리로서의 ‘치킨’은 없었지만 닭과 거의 흡사한 생물은 있었다. 유리아와 바둑이는 본능적으로 용호가 꺼낸 것이 ‘고기’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바둑이는 벌써부터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유리아는 군침을 꿀꺽 삼켰다.

용호는 이번에도 애를 태우지 않았다. 바로 닭다리 하나를 종이에 감싼 뒤 유리아에게 건네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배운 대로 인사부터 한 유리아는 닭다리를 덥썩 깨물었다. 그리고 이내 지금까지 한 번도 짓지 않았던 표정을 보여주었다.

황홀경 그 자체.

이제는 침을 흘리다 못해 자기 침에 익사할 지경이 된 바둑이가 안절부절 못했다. 용호는 바둑이에게도 치킨 한 조각을 건네준 뒤 흐뭇한 얼굴로 둘을 관찰하였다.

마계 전체가 그런지 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남부 공백지 내에서라면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남부 공백지의 식문화는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다.

고기는 생으로 굽거나 삶는 것이 전부였고, 야채는 거의 대부분 생으로 먹거나 물에 푹 끓여 먹었다. 곡식으로 만드는 빵 역시 미진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나마 알을 섞어 만든 팬케이크가 가장 맛있는 음식에 속할 지경이었다.

물론 이런 남부에도 나름 진수성찬이란 것이 있었다. 오필리아의 선술집에서는 제법 먹음직한 요리들을 팔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맛있다고 하기는 애매했다. 평균치가 워낙 낮아서 상대적으로 맛있게 느껴지는 것뿐이었다.

남부 공백지의 식문화가 영국 요리 뺨을 칠 정도로 미진한 이유는 역시나 식량 사정 때문이었다.

워낙에 황량한 땅이다 보니 제대로 된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주변에 바다가 없으니 해산물도 귀했고, 숲에서 나는 열매들은 대부분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 마디로 먹을 것이 귀했다. 이런 와중에 요리가 발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장 먹을 것도 부족한데 어떻게 요리 같은 걸 연구하고 있겠는가.

그나마 지금 수준으로나마 요리가 발달한 것은 모두 던전 상회 덕분이었다.

던전 상회가 염가에 기초 식료품들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남부 공백지의 인구는 지금의 절반 이하가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사정을 지닌 남부 공백지의 음식만 먹다가 현대 사회의 음식을 접한 것이었다.

생존을 위한 요리와 오직 식도락만을 위한 요리의 격차.

순식간에 닭다리 하나를 먹어치운 유리아는 잔뜩 흥분한 나머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무언가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은데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바둑이는 그런 유리아 옆에서 아예 뼈까지 씹고 있었다.

시범 케이스라 할 수 있을 둘의 반응이 이토록 격렬하니 자연 공간의 문 근방에 모여 있던 사역마들 역시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미 치킨 냄새만으로도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용호는 그중에서 가장 무심한 ‘척’을 하고 있는 사역마에게 치킨 한 조각을 내밀었다.

“자, 오필리아도 먹어봐. 맛있어.”

용호에게 치킨을 건네받은 오필리아는 제법 우아하게 한 입을 깨물었다. 카타리나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그런 오필리아를 바라보았고, 이내 귀를 파닥거렸다. 오필리아의 꼬리가 격렬한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맛있지?”

“흠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요.”

오필리아는 바로 다시 한 입 깨물고 싶은 자신을 최대한 억눌렀다. 나름 이 근방 최고의 ‘요리집’이라 할 수 있을 선술집의 여주인이었다. 고작 먹는 것 하나에 수선스런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솔직하지 못한 모습이었지만 용호는 만족했다. 카타리나가 따로 눈짓해주지 않아도 사정없이 흔들리는 오필리아의 꼬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용호는 일단 몇 상자를 더 열어서 공간의 문 근방에 모여 있던 사역마들에게 치킨을 나눠주었다. 다들 즐겁게 한입 베어 무는 가운데 음식을 먹지 못하는 트리엔트가 가지를 축 늘어트렸다. 누가 봐도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챙겨온 것들을 알려줄게.”

엘리고스에게 줄 한 박스를 몰래 챙기던 오필리아는 당황하며 돌아섰다. 용호는 굳이 무안을 주는 대신 자연스럽게 치킨 바로 밑에 쌓아둔 박스를 가리켰다.

“이건 콜라. 음료수야. 차갑게 해서 마시면 정말 최고지.”

바라만봐도 기분이 좋은 용호였다. 그런데 오필리아는 조금 달랐다.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조심스런 어조로 물었다.

“어… 가주 님. 설마 먹을 거만 가져오신 건가요?”

“그런데?”

오필리아의 어여쁜 눈썹이 팔八자를 그렸다. 안타까움과 약간의 한심함이 더해진 눈빛에 용호는 껄껄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용호는 카타리나와 유리아, 오필리아 등 몇몇 사역마들에게 줄 요량으로 사온 옷 상자들을 치운 뒤 그 밑에 깔린 것들을 가리켰다. 커다란 포대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종자를 좀 사왔어.”

“종자요? 작물을 키울 종자 말씀이신가요?”

“맞아. 던전 상회에서 공급하는 곡식들도 괜찮지만… 아무래도 품종 개량이 덜 된 녀석들이니까. 생명의 정원에서 제대로 키우기에는 이 녀석들이 더 나을 거야.”

인계에도 감자가 있고, 마계에도 감자 비슷한 작물이 있었지만 둘은 달랐다. 마계의 감자는 작고 볼품 없는 데다가 맛도 인계의 감자만 못했다.

품종개량의 차이였다.

인계의 감자는 더 크고, 맛있고, 많이 생산되는 방향으로 개량되었다. 품종개량을 거치지 않은 야생의 옥수수와 농장에서 자란 옥수수를 비교해보면 그 낟알의 숫자 차이가 수십 배 이상이었다.

던전 상회의 작물들은 아예 야생의 것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역시나 인계의 것들에 비하면 부족했다. 그렇기에 가져온 종자들이었다.

생명의 정원은 단순히 비옥하기만 땅이 아니었다. 스카자하의 생명력으로부터 비롯되는 성장 촉진의 아우라가 있었다. 이 정도 양이면 몇 달 안에 몇 배나 되는 종자를 모을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이건 농사에 관한 책들이고. 요리 책도 일단은 가져와 봤어.”

인계의 문자를 모르는 오필리아였지만 안에 어떤 지식들이 담겨 있을 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놀랄 만치 뛰어난 제책 방식과 인쇄 양식에 솔직한 감탄을 표한 뒤 용호의 의견에 동조했다.

“확실히 양질의, 그것도 맛있는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면 사역마들의 사기가 크게 오를 겁니다.”

결국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었다. 더욱이 작금의 마계처럼 즐길 거리가 부족한 땅에서는 먹는 낙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괜히 군대에서 전투 식량의 맛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었다.

치킨이나 콜라, 몇 가지 기호품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남은 짐 전부가 농사 관련 물품이라 해도 좋았다.

인계행 자체가 워낙 갑자기 결정된 일이기도 하였고, 머문 기간도 워낙 짧다보니 그 외의 것들을 떠올리거나 챙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역마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마지막 미공개품인 유리아와 오필리아 등에게 줄 옷 선물을 꺼내기도 뭐했던 터라 용호는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쪽은 어땠어? 나 없는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고?”

“힘을 회복하는 일 자체는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엘리 오라버니와 스컬은 스컬 부대와 함께 마몬 가로 귀환 중이고요. 아마 내일 아침쯤에는 도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둘 모두 부상을 회복하느라 출발이 늦었습니다만 이제는 모두 건강합니다.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오필리아는 거기서 말을 잠시 끊었다. 한 차례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란돌트 가는 티그리우스의 지휘 하에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자유도시에는 제가 내일 돌아가 볼 예정이고요. 그리고… 본 드래곤의 뼈 역시 창고 안에 안전하게 보관했습니다. 버그림이 본 드래곤의 뼈로 작업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더군요.”

가만히 보고를 듣던 용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그냥 쳐다만 보고 있다는 거야?”

“예, 본 드래곤의 뼈는 귀중한 자산이니까요. 가주 님의 허락 없이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딱 잘라 말한 오필리아는 남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서부에서는 예상대로 잔당들 간의 싸움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며칠 내로 난민들이 밀려오지 않을까 추측 중입니다. 북부와 동부의 경우엔… 죄송합니다. 아직 정보를 수집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동부도 지금쯤이면 엠브리오의 사망 소식을 접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늦어도 모레까지는 공성이든 수성이든 어느 한 쪽을 택할 것 같습니다.”

“괜찮아. 거리가 머니까 어쩔 수 없지. 패잔병들은?”

“남부 곳곳으로 도망친 패잔병들은 아직까진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새매의 마왕 로터스는 우려와 달리 서부 쪽으로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꽤나 괜찮은 흐름이었다. 당장에 걱정할 것은 없어 보였다.

“준, 남은 치킨들은 식당으로 가져가서 다른 사역마들에게도 나눠줘. 다른 짐들은 모두 마왕의 방으로 옮겨주고.”

엘리고스 대신 집사 역할을 수행 중인 고블린 레인저의 홍일점 준이 꾸벅 고개를 숙인 뒤 명을 수행했다. 존과 론, 욘 세 사람이 준의 손발처럼 움직이는데 분명 셋인데도 마치 한 몸인 것처럼 동선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주인님, 여독도 쌓이셨을 텐데 바로 움직이시려고요?]

루시아가 눈치 빠르게 묻자 용호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이틀 동안 푹 쉬다 왔으니까. 그리고 내가 자리를 비운 이틀 동안 애타게 기다린 사람도 한 둘이 아닌 것 같고.”

용호는 머릿속으로 몇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카타리나가 그런 용호에게 다가섰다. 평범한 예속 사역마 이상으로 용호와 깊은 유대를 가진 그녀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어느 쪽부터 찾아가실 생각이신가요?”

“글쎄, 어느 쪽이 나으려나. 역시 그쪽이 좀 더 기다리고 있겠지?”

돌려서 말했지만 카타리나는 단박에 알아들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뜻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쪽.

카타리나가 입술을 살짝 움츠렸다.

&

[번뇌의 힘이 사라지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군.]

[번뇌의 힘이 오히려 더 강해졌다.]

< 제 45장 - 준비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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