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117화 (117/227)
  • < 제 38장 #3 >

    &

    탐욕의 미궁 1층인 ‘생명의 정원’은 이름 그대로 정원이었다.

    그렇기에 그곳은 개방된 곳이나 다름없었다. 적을 막기 위한 시설은 없었고, 오직 위대한 왕의 성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경관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2층인 ‘지옥의 문’은 달랐다.

    이곳부터가 진정한 마왕성의 시작이었다.

    아름다운 정원 끝에 자리한 최초의 문.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탐욕의 왕의 미궁에 발을 들이고자 하는 자라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땅.

    1층과 2층을 잇는 통로는 무척이나 거대했다. 스카자하의 방에서 정반대 방향에 위치한 방전체가 2층으로 통하는 통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무와 덩굴들, 색색의 꽃들로 꾸며진 거대한 아치문을 지나자 수십 명이 동시에 지나도 될법한 너비의 계단이 나타났다. 은은한 마력의 막이 1층과 2층 사이를 막고 있어 계단 밑에 어떤 공간이 있는지는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었다.

    용호는 최소한의 인원들만을 선별해서 데려왔다.

    용호 자신과 사인의 예속 사역마.

    살라미와 부케팔로스.

    스컬부대 내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네 명의 스켈레톤 나이트들.

    마몬 가의 던전 위에 자리한 거대한 산- 세계의 끝이라 불리는 ‘엔카트로 패그니움’의 영향으로 마몬 가에는 통상의 던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던전 몬스터들이 출몰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심층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더 심해졌다.

    2층에는 1층보다 더 강력한 던전 몬스터들이 자리하고 있을 터였다.

    더욱이 2층은 입구이기에 1층과 달리 함정들 역시 설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스카자하는 2층의 구조나 설치된 함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쓸데없이 다수를 동원하기보다는 정예부대만을 추려 내려가기를 권했다.

    10미터 남짓한 계단을 내려온 용호는 은은한 마력의 막 앞에 섰다. 계단은 막 아래로도 이어져 있었다. 마치 호수 아래로 뻗어있는 계단처럼 말이다.

    용호는 구태여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씩 웃어 보인 뒤 막 너머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물속에 발을 담근 기분이었다. 용호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단숨에 장막을 넘어 2층에 돌입했다.

    공기가 바뀌었다.

    1층의 상쾌함과는 달랐다. 커다란 방 안에 산과 들과 호수가 모두 들어 있어 그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던 생명의 정원과는 정반대였다.

    거대했다.

    참으로 거대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2층 전부가 하나의 공간이었다. 천장의 높이는 사십 미터가 넘었고, 바닥은 돌이 아닌 진짜 땅이었다. 자유도시를 연상시키는 황야 너머에는 참으로 거대한 성벽이 세워져 있었다.

    스카자하의 말대로였다.

    도저히 지금 서 있는 이 공간이 던전 내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무나 큰 스케일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맙…소사.”

    용호에 이어 장막을 통과한 카타리나는 입을 크게 벌렸다. 뭐가 나오든 놀라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설마 넓은 황야와 높은 성벽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단순히 기능만을 논하자면 마몬 가 1층에 있는 ‘집결지’와 같았다. 넓은 공간을 확보한 뒤 방어 시설의 도움을 받아 적들을 막아서는 전투 공간 말이다.

    다만 스케일에서 너무 차이가 날 뿐이었다.

    용호가 만든 집결지가 수십 명 대 수십 명 정도의 싸움을 전제로 했다면, 탐욕의 미궁 2층은 수천 명을 생각했다. 아니, 이 정도 규모라면 수만에 달하는 군세를 맞이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카타리나에 이어 장막을 넘은 엘리고스는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수십 년간 몸담아 온 마몬가 지하에 이런 공간들이 펼쳐져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하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냥 말 그대로 지하층들이 있는 줄 알았었다.

    더욱이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2층이었다.

    ‘13층.’

    소름이 돋았다. 천 년도 더 지난 먼 과거의 일이었지만, 과거 마몬 가가 얼마나 강대한 힘을 가진 가문이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가자.”

    압도될 때가 아니었다. 용호 자신은 2층을 정복하러 온 것이지 관광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생명의 정원에서 이미 당혹감에 빠져있던 살라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부케팔로스 역시 당황한 얼굴로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끝에서 성벽 까지는 대략 백 수십미터 정도 되는 황야가 펼쳐져 있었다. 성벽은 천장과 맞닿아 있었다. 때문에 성 안으로 들어서는 방법은 성문이나 성벽을 파괴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용호는 살라미의 등에 올라탄 뒤 시선을 멀리하였다. 뿌리내린 나무처럼 굳건해 보이는 회색 성벽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많았다. 원거리 공격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총안구가 잔뜩 설치되어 있었고, 높이만 이십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성문 좌우에는 험상궂게 생긴 거인의 석상이 세워져 있었다.

    가만 살펴보니 석상은 두 개 뿐이 아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거인이나 괴물의 형상을 한 석상들이 보였다. 일부는 훼손이 심해 그 형상을 짐작할 수 없었다.

    아직 제법 거리가 멀었지만 워낙에 거대한 석상들이었기에 이목구비까지 얼추 분간이 가능했다. 카타리나와 엘리고스는 다시 한 번 순수한 감탄을 표했다.

    그런데 용호는 달랐다. 석상을 본 순간부터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설마.’

    생각한 순간 다른 것이 보였다. 성벽에서부터 방출된 마력의 흐름이 석상들을 휘감았다.

    광활한 공간과 넓은 성벽.

    쳐들어오는 적들을 그저 원거리 무기로만 상대할 것인가. 성벽을 여는 것 외에는 백병전의 수단이 없는가.

    그 대답이 돌아왔다. 성문 좌우에 선 석상들이 거대한 한 걸음을 내딛었다.

    포효나 괴성은 없었다. 하지만 발걸음으로 이를 대신했다. 지면이 크게 울리는 소리가 연달아 울리니 그 소리가 지진이나 다름없었다.

    석상들이 동시에 용호를 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돌진을 개시했다!

    “간다!”

    용호가 소리쳤다. 후퇴명령이 아니었다. 살라미에게 불꽃의 날개를 펼치게 했다.

    움직이는 석상의 수는 모두 넷.

    이전이라면 무조건 도망쳤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저 거대하기만 한 석상으로는 용호 자신과 마몬 가의 예속 사역마들을 막을 수 없었다!

    살라미가 크게 홰를 쳤다. 예속 사역마들은 일시에 브리가다를 발동시켰다.

    카타리나가 검은 마력으로 만들어진 날개를 펼쳤다. 불꽃을 흩날리며 솟구쳐 오른 용호의 곁을 지켰다.

    엘리고스와 오필리아는 동시에 지면을 박찼다. 각기 주먹과 다리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포효하며 뿔을 개방했다.

    “스컬컬!”

    스컬이 전투망치를 들어올렸다. 버그림의 손에서 재탄생한 전투망치는 스컬의 뇌격을 단순히 저장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전투망치 자체에 걸려 있는 번개 마법이 스컬의 뇌격을 강화했다.

    부케팔로스가 돌진했다. 각자의 나이트메어에 탄 스컬부대원들이 자신들의 대장을 따라 저마다의 마법 무기를 들어올렸다.

    고작 백 수십미터였다.

    서로를 향해 질주한 그 순간 첫 번째 충돌이 일어났다.

    용호는 거인들을 무시하고 성문을 향해 날았다.

    솟구쳐 오른 직후 용호와 갈라진 카타리나는 왼쪽의 석상을 보았다. 욕망했다. 강하게 소망했다.

    용호의 곁에 서고 싶었다. 탐욕의 왕의 호위기사로서 그 옆을 당당히 지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힘. 언제나 나란히 걷기 위해 필요한 힘!

    탐욕의 어둠이 카타리나의 손끝에서부터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거대해진 그것은 검은 칼날이 되었다. 석상은 카타리나를 공격하지 못했다. 무지막지한 속도로 자신의 곁을 스쳐지나는 그녀를 돌아보는 것조차 무리였다.

    석상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거울처럼 깨끗한 절단면을 따라 미끄러진 그것이 땅에 닿는 그 순간 엘리고스와 오필리아는 각각 주먹과 일각을 내뻗었다.

    콰쾅!

    공격은 둘이었지만 소리는 하나나 다름없었다. 높이 뛰어오른 엘리고스의 주먹이 거인의 복부를 관통했다. 남두무영권의 정수가 실린 일격은 엘리고스의 주먹보다 수십 배 이상 거대한 파괴를 이루었다. 배에 구멍이 뚫린 석상은 무릎부터 무너져 내렸다.

    오필리아도 같았다. 그녀의 일각이 꽂힌 자리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친 자국이 생겨났다. 가슴에 구멍이 난 석상은 뒤로 나자빠졌다.

    “스컬컬!”

    스컬이 소리쳤다. 석상들이 무너지며 난 굉음을 돌파하며 시선을 높이 하였다.

    마지막 남은 석상이 스컬을 향해 검을 내려쳤다. 부케팔로스는 멀리 피하는 대신 오히려 검을 향해 질주했다. 스컬의 명에 따라 검신은 물론이고 석상의 팔을 타고 올랐다.

    그야말로 질풍이었다. 너무나 빠른 질주에 석상은 팔을 거둘 틈도 없었다. 팔을 세차게 흔들었을 때는 이미 부케팔로스가 석상의 어깨를 지나 쇄골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스컬의 오른팔에서부터 탐욕의 번개가 요동쳤다. 번개를 잔뜩 집어삼킨 전투망치가 석상의 턱을 강타했다!

    엘리고스나 오필리아와는 소리가 달랐다. 뇌격은 석상의 턱뿐만 아니라 대기를 폭발시켰다. 산산조각 난 석상의 머리가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스컬스컬!”

    부케팔로스가 허공을 밟았다. 발 닿는 곳에 어둠의 마력으로 만든 발판을 생성, 결과적으로 하늘을 달리는 상위 나이트메어 특유의 주행법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 석상이 무너지는 그때,

    용호는 아몬을 당겼다.

    눈앞에 쇄도하는 성문을 향해 녹염에 휩싸인 아몬을 내찔렀다!

    정면돌파.

    혼신의 랜스차징.

    그것은 더 이상 불꽃이라 말할 수 없었다. 거대한 탐욕이 검은 마력을 집어삼켰다. 아몬을 거대하고 거대한 발리스타로 변모시켰다.

    상상을 초월하는 물리력이 성문을 강타했다.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성문이 우그러졌다. 아예 견디지 못하고 성벽에서 분리되었다.

    성내로 진입한 살라미가 급히 불꽃의 날개로 홰를 쳤다. 무지막지한 일격의 여파 때문에 바닥에 추락할 뻔했지만 용케 균형을 잡아 추락을 착지로 바꾸었다.

    용호 역시 오른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에 신음했다. 하지만 동시에 단 일격으로 성문을 파괴했다는 사실에 진한 쾌감을 느꼈다.

    살라미의 등 위에서 용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부서진 성문 너머로 인공 태양의 햇살이 쏟아졌다. 예속 사역마들이 저마다의 마력을 발산하며 자신의 뒤를 따랐다.

    용호는 다시 앞을 보았다.

    멈출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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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벽 안쪽 역시 넓은 공간들이 연이어졌다. 아무래도 마몬은 탐욕의 미궁 2층 자체를 거대한 ‘집결지’들의 연속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대규모 교전을 위한 장소들.

    때문에 통로가 넓었고, 방 하나하나의 크기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용호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던전 몬스터들이 수십 마리씩 몰려서 나타났지만 용호와 예속 사역마들의 진격을 멈추지 못했다. 불꽃과 번개, 어둠이 휘몰아칠 때마다 던전 몬스터들이 뭉텅이로 소멸되었다.

    다행히 함정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오필리아의 말에 따르면 2층 곳곳에 거대한 마법진이나 함정의 ‘흔적’이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수명이 다하거나 심하게 훼손되어 파괴된 상태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몬 가가 탐욕의 미궁 2층을 잃은 게 벌써 수백 년 전의 일이었다. 그 긴 세월동안 제대로 된 마력을 공급받지 못했고, 곳곳에서 나타난 던전 몬스터들에게 함정의 마력을 소진했다.

    ‘어떻게 보면 던전 몬스터들 덕을 보는 건가?’

    다름 아닌 탐욕의 미궁의 함정이었다. 아마 제대로 발동했다면 던전 몬스터들보다 훨씬 더 큰 위협이 되었을 터였다.

    용호는 오직 정면으로만 나아갔다. 스카자하의 조언을 따르기 위함이었다.

    ‘바포메트는 2층 최후의 방벽인 동시에 수문장이야. 3층으로 통하는 통로는 녀석의 봉인지 너머에 있어. 거기까지는 그냥 앞만 보고 가면 돼. 왕께서는 무척 대범한 성격이셨으니까.’

    정말 그대로였다. 성문에 이어 커다란 방을 다섯 개 정도 지나니 쭉 뻗은 직선 통로가 나타났다. 카타리나의 힘을 빌려 어둠 너머를 꿰뚫어 보니 거대한 문이 보였다. 바포메트의 봉인지로 통하는 문임에 분명했다.

    지금까지 오직 돌진만을 계속하던 용호는 예속 사역마들에게 잠시 멈출 것을 명했다.

    ‘모두 강해졌어.’

    기대 이상이었다. 그간 용호 자신의 성장을 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 사이에 예속 사역마들 또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엘리고스였다.

    오필리아는 애당초 마몬 가에 들어올 때부터 용호의 머릿속에 ‘강자’로 인식되어 있었다. 카타리나의 경우에는 언제나 함께하다보니 힘의 성장조차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익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고스는 아니었다. 다른 예속 사역마들이 모두 전장에 설 때도 홀로 마몬 가를 지키고 있던 그였다.

    대련 때 보여준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대련 상대는 오필리아였고, 엘리고스 본인이 부인하든 말든 엘리고스는 오필리아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런 대상을 상대로 대련이라고는 하나 과연 ‘진심’을 보일 수 있을까?

    하지만 던전 몬스터를 상대로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엘리고스는 자신의 진짜 힘을 여과 없이 발휘하였다. 용호는 엘리고스의 다음 승급명이 어째서 ‘타이런트- 폭군’인지를 이해했다.

    그야말로 짐승. 굶주린 맹수나 야수라고밖에 표현 못할 맹공.

    엘리고스의 평상시 모습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었기에 그 갭에 의한 충격이 더 컸다.

    잠시 마몬 가 가주에 오른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를 떠올린 용호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매일 아침 물을 뜨러 나가던 왜소한 엘리고스의 뒷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용호는 연이어 스컬을 보았다. 단순 훈련량만을 논한다면, 마몬 가 내에서 스컬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사역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믿음직스러웠다. 더욱이 바포메트와의 전투에서 스컬은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스카자하는 이번 전투의 핵심요원으로 용호 자신과 스컬을 꼽았다. 이유는 바포메트의 특성 때문이었다.

    죽음.

    바포메트는 이계의 광신도들이 강림시킨 죽음의 화신이었다. 때문에 약해진 지금도 숨 쉬듯 자연스럽게 죽음의 기운을 내뿜었다.

    기가 약한 자들은 그 기운에 노출된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었다.

    강대한 자들도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에 그 전력이 약화되었다.

    바포메트가 내뿜는 죽음의 기운 앞에서도 온전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용호와 스컬뿐이었다.

    수백 번이 넘는 유사 죽음을 체험한 용호는 죽음의 기운을 견딜 수 있었다.

    언데드인 스컬은 이미 죽은 자였기에 바포메트가 내뿜는 죽음 속에서 오히려 평온함을 느낄 터였다.

    애당초 스카자하의 시험이 하필 임사체험인 것도 바포메트 때문이었다. 스카자하의 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한 자는 결코 바포메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용호는 언제 봐도 든든한 스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브리가다 없이도 느낄 수 있는 용호의 마음에 스컬은 껄껄 웃었다.

    “스컬스컬.”

    서두르지 않았다. 투기장에서 얻은 마력 포션을 예속 사역마들과 나눠마셨다. 스카자하가 만들어준 회복약도 톡톡히 제 역할을 해냈다.

    그렇게 대략 삼십 여분.

    숨이라면 이제 충분히 골랐다. 살라미와 부케팔로스, 스컬 부대에게 대기 명령을 내린 용호는 챙겨온 조명들을 통로에 뿌렸다. 어둠을 몰아낸 뒤 앞을 향해 나아갔다.

    거대한 청동 문이었다.

    용호는 2층의 이름이기도 한 ‘지옥의 문’이 이 문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에는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양각되어 있었다. 고통에 신음하고 울부짖는 비참한 모습들이었다.

    용호는 숨을 깊이 토하며 문고리를 잡았다. 홀로 괴력을 발해 아주 천천히 지옥의 문을 열었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볼 수 있었다. 느꼈다고 하는 것이 보다 명확한 표현이었다.

    넓은 공동 한 가운데 검은 괴물이 쓰러져 있었다. 사지뿐만 아니라 목에 커다란 족쇄를 달고 있었고, 개중 다리의 것은 지금도 바닥과 연결되어 있었다.

    문은 아직 반도 채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스산한 죽음의 기운이 거침없이 밀려왔다. 검은 괴물이 음산한 목소리를 토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웃고 있었다. 소름 돋는 웃음소리가 죽음의 기운을 따라 공동 안을 가득 채웠다.

    붉은 눈.

    스카자하의 기억에서 본 그것.

    검은 괴물이 어깨를 들썩였다. 손으로 바닥을 짚었고, 아주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어둠 속에 홀로 빛나는 붉는 눈으로 용호를 노려보았다.

    두려웠다.

    기억 속에서 본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놈이 약해졌다는 스카자하의 말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죽음이 온 몸을 휘감았다.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원망어린 원혼들의 울부짖음이 온 세상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용호는 문을 열었다.

    닫지 않았다. 어둠 속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브리가다가 일시에 발동하였다. 예속 사역마들은 과거 마몬의 12 사역마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들의 왕을 따랐다. 죽음의 공포에 매몰되지 않았다.

    더 이상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용호는 가만히 손을 들어올렸다. 기억 속의 마몬처럼 허공에서 피어난 홍련의 마창 아몬을 움켜쥐었다. 탐욕의 녹염으로 어둠뿐만 아니라 죽음의 기운을 몰아냈다. 마장에 자리한 미완성된 신기로부터 스카자하의 상징과도 같은 푸른 물빛이 뿜어졌다.

    바포메트가 광소했다. 그리고 광소는 이내 포효로 일변했다. 바포메트는 용호로부터 마몬을 보았다. 그렇기에 저주했다. 그렇기에 열광했다. 어둠으로부터 죽음의 낫을 거머쥐고 거칠게 돌진했다.

    쇄도하는 죽음 그 자체.

    용호는 마주 달려 나갔다.

    새로운 탐욕의 왕으로서 죽음의 화신을 맞이하였다.

    제 38장 - 전초전 끝, 제 39장 - 번뇌폭발로 이어집니다.

    < 제 38장 #3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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