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7장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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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곧 마법이었다.
괴물의 붉은 눈동자에는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용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영혼의 창인 눈동자를 통해 전해진 스카자하의 마력을, 그 기억을 눈꺼풀 아래 가두었다.
어둠이 세상을 물들였다. 하지만 길지 않았다. 온통 새카맣게 변한 세상을 새로운 색들이 물들이기 시작했다.
스카자하의 마력만이 아니었다. 그간 투기장에서 흡수한 마몬의 마력이 호응했다. 마력에서부터 일어난 기억들이 빈 공간을 하나 둘 메워나갔다.
용호는 스스로를 잊었다. 오감이 서서히 무뎌졌고, 종국에는 시각과 약간의 청각만이 남았다.
검은 세상이었다.
먹구름이 가득한 잿빛 하늘은 재앙과도 같았다.
무너지고 부서진 성문 주변에는 시신들이 널려 있었다. 모두 심하게 훼손된 시신들이었다. 육편과 피가 아무렇게나 뒤엉켜 서로를 구분치 못하게 했다.
파괴는 성문에 국한되지 않았다. 먼 곳에서부터 불어왔을 것이 분명한 바람에도 시체 썩는 냄새가 배여 있었다.
고요했다. 도처에 널리고 널린 것이 시신이었건만 까마귀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모두 도망친 것이었다. 죽음의 향취가 진해도 너무 진했다. 산 것들은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이의 것이 분명한 팔이 길 한 가운데 가로 놓여 있었다. 두려움을 달래고자 꼭 움켜쥐었을 낡은 곰 인형에는 피와 육편이 묻어있었다. 아이의 것인지, 아니면 이 도시에서 죽은 누군가의 것인지 구분할 도리는 없었다.
하늘이 잿빛이라 하여 세상 모든 것들이 그 색을 잃는 것은 아니었다. 참혹한 파괴의 광경이었건만 도시는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듯 여러 색들을 담고 있었다.
파란 지붕과 하얀 벽, 붉고 푸른 커튼, 회색에 가까운 다리. 죽음만이 가득한 이곳에서도 초록을 간직한 풀들.
용호는 알 수 있었다.
이 도시는 마계의 것이 아니었다. 다른 어딘가, 용호 자신의 고향인 인계와 마찬가지로 이계라 불러야 할 곳이었다.
아이의 손에 쥐어진 곰 인형을 누군가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푸른 머리칼 아래 감춰진 물빛 눈동자에는 우울함이 가득했다.
그녀, 기억의 주인인 스카자하는 끝내 곰 인형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거칠어진 숨을 달래며 도시의 중심을, 이 모든 죽음의 원인이 자리한 곳을 노려보았다.
그런 스카자하의 곁에 구시온이 섰다. 투기장에서 보여주던 호쾌한 한량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노여워하고 있었다. 그 분노가 어찌나 강렬한지 구시온의 양 주먹으로부터 발산된 마력이 주변의 대기를 일그러트릴 지경이었다.
엘룬은 그런 구시온을 말리지 않았다. 붉은 띠로 두 눈을 가렸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 땅은 전장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서로가 서로의 적의를 맞부딪힌 공간도 아니었다.
그저 학살이 자행된 땅.
무의미한 죽음의 향연.
엘룬은 침묵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극도로 분노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검은 털의 기사가 그런 세 사람 사이를 파고들었다. 켄타우로스인 그는 은빛의 갑주를 걸쳤고, 양팔에는 각기 동그란 방패와 커다란 활을 나눠쥐었다.
그는 세 사람처럼 노여움을 표출하지 않았다. 차가운 눈으로 도시 한 가운데를 노려볼 따름이었다. 약간의 주름이 더해진 장년의 얼굴에는 표정이랄 것이 없었다.
“가자.”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은 이내 앞장서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왕의 뒷모습으로 자신의 권속들을 인도했다.
용호는 그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읽어낼 수 없었다.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들릴 것 같은 목소리였다.
어떤 이는 저 목소리에서 분노를 느낄 터였고, 어떤 이는 평온함을 느낄 터였다.
도시의 중심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죽음의 냄새가 짙어졌다. 잿빛 하늘 아래에서도 자신의 색을 잃지 않았던 만물들이 모두 어둠으로 물드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의 근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시체의 산은 죽음의 화신에게 옥좌가 되었다. 그 위에 올라앉은 검은 괴물은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다리를 씹으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산양을 연상시키는 머리였다. 새카만 털로 뒤덮인 육신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근육으로 가득했다.
검은 괴물이 머리를 흔들었다. 거대하고 흉악한 두 개의 뿔로 허공을 찌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대했다. 그리고 강대했다.
용호는 숨이 멎는 것을 느꼈다. 구시온이나 아몬의 압박과는 달랐다. 경매장에서 느꼈던 칼날같은 마력들과도 상이했다.
끈적한 그것에는 적의가 묻어있지 않았다. 오직 순수한 살의만이 가득하였다.
구시온이 사납게 웃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스카자하가 평소의 그녀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흉포한 표정을 지었다. 엘룬은 말없이 자신의 대태도 위에 손을 올렸다.
검은 괴물이 더욱 크게 웃었다. 미치광이 교주가 자그마치 일만 여명의 신도들을 인신 공양 해 만들어낸 죽음의 화신은 스스로의 죽음까지도 기꺼워했다.
괴물이 거대한 낫을 거머쥐었다. 깨어난 이래 그가 거둔 죽음은 이미 수십만을 넘었다. 어쩌면 백만에 육박할지도 몰랐다. 수많은 죽음을 수확한 그는 이제 죽음 그 자체라 해도 좋았다.
검은 털의 켄타우로스가 손을 들었다. 활의 시위를 당기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멈출 것을 요구했다.
켄타우로스의 밝은 갈색 눈동자는 검은 괴물을 비추지 않았다. 말없이 선 왕의 뒷모습만을 마주하였다.
용호는 마몬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스카자하가 그러했던 것처럼 오직 그 뒷모습만을 봐야만 했다.
마몬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세상 전체를 찍어 누를 것 같던 검은 괴물의 살기가 부서지고 흩어졌다.
홍련의 불길이 일어났다. 마몬의 손에서부터 비롯된 그것은 죽음을 살라먹었다. 한 번 휘둘러 천지를 불태우고 바다를 증발시키는- 그 위대한 힘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
검은 괴물이 포효했다. 죽음을 토하며 돌진했다. 마치 태산이 무너지는 것 같은 위압감이었다.
하지만 마몬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면에서 닥쳐오는 죽음의 화신을 향해 아몬을 휘둘렀다.
“엿보는 것은 여기까지.”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순간 세상 전체가 빛으로 물들었다. 다시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허억!”
눈을 떴다. 잊고 있던 감각들이 일시에 돌아와 혼란을 야기했다.
용호는 마치 숨쉬는 법을 잊은 사람마냥 몇 번이나 꺽꺽거리다 겨우 다시 숨을 쉬었다. 겨우 기능을 회복한 두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푸른 머리칼과 아름다운 물빛 눈동자였다.
“스카자하.”
“미안, 썩 좋은 꿈은 아니었지?”
스카자하가 우울한 미소를 지었다. 가만히 손을 뻗어 용호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하지만 기분 좋은 차가움이었다.
“그건…….”
“바포메트와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이야. 놈은 자신이 태어난 세상을 온통 죽음으로 물들이고 있었어. 그는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 태어난 죽음의 화신이었으니까.”
죽음의 화신.
정확한 표현이었다. 그리고 어째서 스카자하가 바포메트를 12 사역마 가운데 최악이라 말했는지도 이해했다.
“마몬의 12 사역마는…….”
“그래, 맞아. 우리는 마계의 존재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아. 당장 내 친구 엘룬도 다른 세상 출신인걸. 마계가 뒤죽박죽인 건 요즘도 그렇지?”
용호는 천천히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용호 자신부터가 인계출신이었고, 휘하 사역마 중에서도 이계 출신인 버그림이 있었다.
“왕께서는 그날 바포메트를 제압하셨어. 하지만 놈을 그 근원이라 할 수 있을 죽음으로 돌려보내지는 않으셨지. 굴복시켜 사역마로 삼으셨어.”
스카자하는 쓸쓸하게 웃었다. 이미 천년도 더 지난 먼 과거의 일이었지만 지금도 그때의 결정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용호는 다시 눈을 감고 숨을 길게 토했다. 바포메트가 토해내던 죽음이 새삼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바포메트의 죽음조차 압도한 홍련의 불길을 잊지 않았다.
마몬의 손에서 발휘된 홍련의 마창 아몬의 진정한 힘.
용호는 다시 눈을 떴다. 저도 모르게 스카자하에게 물었다.
“마지막 목소리는 스카자하 네 것이었어?”
“마지막 목소리라니?”
스카자하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엿보는 것은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여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유쾌함이 어린 남자의 목소리였다.
‘뭐지? 설마 마몬이 내게 말을 건 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진짜 과거로 간 것이 아니었다. 스카자하의 기억을 엿본 것에 불과했다.
극도의 긴장 때문에 용호 자신이 환청을 들은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스카자하의 기억을 보조한 마몬의 기억들에서 뭔가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도련님?”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착각한 것 같아.”
스카자하다 다시 용호의 뺨을 어루만졌다. 다정하면서도 차가운 손길이 용호의 머릿속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우리 자기… 구시온은 몇 번이나 놈을 죽여야 한다고 말했어. 그만큼 위험한 놈이야. 이 세상에서 놈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왕뿐이실 거야.”
그런데 그런 바포메트의 인정을 받아야 했다. 더욱이 그는 심층도 아닌 2층의 사역마였다.
스카자하의 물빛 눈동자에 다시금 미안함이 어렸다. 스카자하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태생부터가 악인 놈의 인정을 받는 법은 하나밖에 없어. 힘으로 놈을 꺾는 거야.”
가능하냐는 물음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의 용호에게 바포메트는 너무나 벅찬 상대였다.
하지만 스카자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용호의 뺨을 살짝 꼬집으며 말을 이었다.
“가능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지금 당장은 어려울지 몰라도 조금만 더 강해지면 해낼 수 있을 거야. 바포메트는 지금 굉장히 약해진 상태니까.”
구시온이나 아몬에 비해서는 말을 아끼지 않는 스카자하였지만, 그런 그녀도 마몬의 죽음과 탐욕의 미궁이 무너지던 그 날의 일에 대해서만은 입을 열지 않았다.
바포메트의 약화는 분명 마몬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된 일련의 사태와 연관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스카자하는 이번에도 말을 아꼈다. 대신 다른 것들을 이야기했다.
“바포메트는 분명 약해졌어. 하지만 그래도 놈이 괴물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아. 혼자서는 힘들 거야. 예속 사역마들과 함께 해. 예속 사역마가 된 순간 그들은 이미 너와 한 몸이라 할 수 있어. 그들과 함께 싸우는 것은 결코 흉이 아니야.”
정론이었다.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용호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예속 사역마들과 함께 싸울 것을 당부하는 스카자하의 목소리로부터 깊은 슬픔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어째서일까. 스카자하는 왜 당연한 말을 하며 저리 슬퍼하는 것일까.
스카자하는 다정한 미소로 슬픔을 감췄다. 다시 장난치듯 용호의 뺨을 꼬집었다.
“놈을 격파해야만 3층 아래로 내려갈 수 있어. 도련님에게 꽤나 큰 시련이 되겠지만, 난 도련님이 해낼 수 있다고 믿어.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도련님이니까. 나랑 우리 자기가 인정한 도련님 말이야.”
꾸며낸 명랑함이었다. 용호는 굳이 그 명랑함 속에 감춰진 감정을 헤집지 않았다. 짓궂은 얼굴로 합을 맞춰주었다.
“그래야 네 자기도 여기 데려오고?”
“역시 우리 도련님이라니까?”
스카자하가 까르르 웃으며 용호의 뺨에 연신 입술을 맞췄다. 놀랄만치 부드러운 감촉에 용호는 다리에 힘이 쭉 빠졌지만, 다행히 파란 액체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바닥에 주저앉거나 하는 추태를 부릴 염려는 없었다.
‘구시온 거야. 구시온 거!’
마음속으로 소리친 용호는 시트리와 마주할 때 마냥 카타리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상상 속에서도 열심히 파닥거리는 카타리나의 귀가 용호의 심신을 안정시켰다.
겨우 한숨 돌린 용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스카자하, 이미 죽은… 12 사역마들의 인정은 어떻게 받지?”
마몬의 12 사역마 모두가 생존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스카자하의 슬픔을 자극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기에 용호는 조심스러웠고, 스카자하는 그런 용호의 배려에 호감을 느꼈다. 짐짓 힘차게 웃으며 답해주었다.
“그들의 자리에 가면 알 수 있을 거야. 안배를 남겨둔 녀석도 있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녀석도 있어. 안배가 있으면 그에 따르면 되고, 안배고 뭐고 없으면… 날로 먹는 거지 뭐.”
스스로가 생각해도 엉터리 같은 이야기인지 스카자하는 혀를 베 내밀었다. 뒤로 몇 걸음 물러서 용호와의 거리를 벌렸다.
“아무튼 이제 그만 일어날까? 우선 우리 호위 기사님부터.”
스카자하의 말에 용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카타리나를 볼 수 없었다. 파란 액체가 용호의 두 눈을 뒤덮었기 때문이다.
‘아까 옷 벗을 때 눈 돌아가더라? 아무리 예속 사역마라도 그러면 못 써.’
스카자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용호는 침묵했고, 스카자하는 다시 까르르 웃었다.
카타리나는 깜박 잠들기라도 했는지 이렇다 할 소리를 내지 않았다. 벗길 때처럼 마법으로 옷을 입히는지 사르륵사르륵 천이 피부를 스치는 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용호의 시각이 해방되었다.
“눈 감고 할게.”
스카자하는 보란 듯이 눈을 꽉 감았고, 용호는 해방감과 시원함을 동시에 느꼈다. 파란 액체 대신 옷감이 허공에 둥둥 뜬 용호의 피부를 자극했다.
옷 입기가 모두 끝나자 용호는 다시 두 발로 바닥을 딛고 섰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파란 액체로 만들어진 물침대 위에 세상 모르게 잠든 카타리나가 보였다.
‘진짜 잠 하나는 잘 잔다. 잘 자.’
용호는 뺨을 꼬집어주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감각을 날카로이 했다. 스카자하의 기억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끊어져 있던 루시아와의 연결이 다시 이어졌음을 깨달았다.
[주인님.]
[예속 사역마 엘리고스는 주인님이 잠드신 사이에 일터로 복귀했습니다.]
[더불어 탐욕의 미궁 1층의 영역들 가운데 주인님께서 탐사하셨던 곳 모두를 장악해 두었습니다.]
[불사의 마녀 스카자하의 거처인 생명의 정원은 완벽히 장악하지 못했지만, 지금처럼 연결을 유지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 잘했죠?]
[마음것 칭찬해 주셔도 돼요.]
간만에 각 잡고 보고한다 했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다시 평소의 루시아였다.
용호는 육성 없이 잘 했다는 뜻을 전하고자 했다. 그런데 스카자하가 한 발 앞서 입을 열었다.
“어머나, 무척 귀여운 아가씨네? 앞으로 좋은 말동무가 될 것 같은걸?”
[지금 제 목소리가 들리세요?]
루시아도 꽤 놀란 것 같았다. 본체가 위치한 던전의 심장 방이라면 모를까, 그 외의 곳에서 용호 외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은 빛의 문자를 투사하는 것 하나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스카자하는 명랑하게 답했다.
“이 방은 탐욕의 왕께서 내게 하사하신 나만의 공간인걸. 이 방에서 내가 모르는 것은 없어. 당연히 네 목소리도 들리지.”
[와- 제 이름은 루시아에요. 주인님께서 직접 지어주셨어요.]
“예쁜 이름이네. 우리 도련님이 감각이 좀 있으신 걸?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는 스카자하라고 해.”
살짝 윙크한 스카자하는 루시아와 본격적인 수다를 시작했다. 용호는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드는 대신 다른 것들을 생각했다.
‘던전의 심장 방을 다시 옮겨야겠어.’
탐욕의 미궁 1층을 손에 넣었으니 주요 시설들을 심층으로 옮기는 것이 맞았다. 적어도 던전의 심장 방과 마왕의 방만이라도 이동시켜야 했다.
‘그리고…….’
아직 마지막 일정이 남아 있었다. 숨을 고른 용호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스카자하와 카타리나 모두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자연스럽게 오른 손을 들어올렸다.
스카자하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흥분해서 떠들던 루시아 역시 침묵했다.
용호는 그런 둘에게 작은 미소를 보인 뒤 눈을 감았다. 스카자하의 기억에서 보았던, 저 탐욕의 왕 마몬의 손에 쥐어져 있던 아몬의 본 모습을 떠올렸다.
홍련의 불길이 일었다. 대기를 불태우며 치솟은 그것은 이내 한 자루 창의 형태를 갖추었고, 용호의 손에 안착했다.
[나의 어린 주인이여.]
아몬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용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진화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천지를 불태우고 바다를 증발시키는 아몬의 힘을 기억했다!
다섯 개의 뿔이 절로 개방되었다. 탐욕으로부터 일어난 녹색의 불꽃이 홍련의 불꽃과 하나 되었다.
왼손의 마장 역시 반응했다. 스카자하의 축복을 받은 그것이 브리가다로써의 힘을 발했다.
마몬의 12 사역마를 상징하는 열 두 개의 자리.
그것들 가운데 하나가 다시 빛을 찾았다. 붉고 붉은 그것은 아름답고 현란한 홍련의 색이었다.
용호는 눈을 떴다. 불꽃 사이에서 다시금 새로운 형태를 갖추는 아몬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한 줄기 창. 하지만 동시에 불꽃. 과거 마계를 호령했던 강대한 마인.
기억 속의 마몬처럼은 아직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용호는 미소 지었다. 홍련의 불길 대신 격렬한 녹염을 불태우는 아몬을 움켜쥐었다.
아몬이 응답했다.
거대한 존재감이 생명의 정원을 진감시켰다.
제 37장 - 생명의 정원 끝, 제 38장 - 전초전으로 이어집니다.
< 제 37장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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