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113화 (113/227)
  • < 제 37장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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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이지 심장에 안 좋아요!]

    [주인님이 투기장에 가실 때마다 제가 얼마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지 아세요?]

    [연락이 툭! 하고 끊기면 몇 시간이나 지나야 다시 연결되고!]

    [그렇게 강해져서 돌아오셨다고 제가 좋아할 거라 생각하시면 그건 정말 크나큰 오예!입니다! 최고예요! 던전의 마력이 크게 강화되었어요. 통제력도 마찬가지고요!]

    [내가 지금 뭐라는 거야?]

    [아무튼 심장에 안 좋다고요!]

    투기장을 빠져나오자마자 루시아의 잔소리인지 애교인지 모를 이야기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걱정 가득한 첫 목소리에 미안한 표정을 지었던 용호는 연이어진 재잘거림에 바보처럼 웃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루시아의 본체는 전부 다 심장 아닌가?’

    그럼 심장에 안 좋다는 건 본체 전부에도 안 좋다는 이야기가 되는 걸까?

    시답잖은 망상을 지운 용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카타리나는 걱정과 우려가 섞인 눈으로 용호를 바라보았다. 루시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카타리나이다보니, 투기장을 나서자마자 돌연 킥킥 웃는 용호가 이상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용호는 그런 카타리나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다. 카타리나의 의혹도 종식시킬 겸 육성으로 말했다.

    “그렇게 많이 강해졌어?”

    [많이 강해지고말고요! 어쩌면 지하 1층의 완전 장악이 가능할지도 몰라요.]

    [아니, 가능할 거예요. 분명히!]

    [대체 투기장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평소에도 제법 텐션이 높은 루시아였지만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아무래도 갑작스런 성장의 영향인 것 같았다.

    보이지 않았지만 용호는 느낄 수 있었다. 던전의 심장이 한 단계 더 성장했다. 머릿속에 그려지던 루시아의 이미지도 마냥 어린 소녀에서 이제는 제법 여자 티가 나는 십대 중후반의 소녀로 바뀌었다.

    용호는 가타부타 설명하는 대신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 한 가운데를 가리켰다. 마력을 거둬 뿔을 감춘 상태였기에 손끝에 닿는 것은 매끄러운 이마뿐이었지만 루시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다섯 번째 뿔!]

    [오, 맙소사. 우리 주인님께 다섯 번째 뿔이 생겼어!]

    뿔 두 개와 세 개 사이에는 현격한 격차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격차는 뿔의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더 크게 벌어졌다.

    루시아가 성장을 한 것도, 카타리나에게 네 번째 뿔이 돋아난 것도 당연했다.

    용호가 이번에 이룬 성장은 그만큼 극적이었다.

    “투기장에 가 있는 동안은 별 일 없었고?”

    [없었는데 이제 생겼습니다.]

    [예속 사역마 엘리고스의 마력이 강해졌습니다.]

    [예속 사역마 스컬과 오필리아는 현재 란돌트 가의 던전에 있어 명확한 상태를 확인할 수 없지만, 변화가 일어난 것만은 분명- 와, 세상에!]

    “루시아?”

    용호의 부름에 루시아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약간의 시간을 둔 뒤에야 감개무량한 목소리를 토했다.

    [예속 사역마 오필리아에게서 네 번째 뿔이 돋아났습니다!]

    뿔이 네 개인 가주조차도 겨우 손에 꼽을 정도의 숫자밖에 존재하지 않는 남부 공백지였다. 그런데 이제 오필리아에게 네 번째 뿔이 돋아났다.

    “기쁜 일투성이네.”

    흐뭇하게 웃은 용호는 무슨 일인지 몰라 궁금해 하는 카타리나에게 간략하게나마 루시아의 이야기를 전달해주었다. 카타리나 역시 오필리아의 소식에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런데 연이어 지은 표정이 살짝 오묘했다. 더욱이 귀 윗부분을 살짝살짝 어루만지는 손길 역시 묘하게 부자연스러웠다.

    용호는 이내 카타리나의 속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카타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루시아에게 말했다.

    “카타리나도 뿔이 네 개가 되었어.”

    [와, 정말요?]

    [갑자기 다들 강해져서 두근두근 거려요!]

    용호의 표정이 루시아의 반응을 대변했다. 뿔이 네 개가 되었다는 사실을 내심 자랑하고 싶었던 카타리나는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 꼬리를 가리기 위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용호는 그런 카타리나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은 뒤 한숨을 길게 토했다. 이래저래 텐션이 높아져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역시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루시아가 다시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용호는 카타리나에게 살짝 몸을 기대며 루시아에게 말했다.

    “엘리고스를 이곳- 아니, 지하 1층에 있는 스카자하의 방으로 오라고 전해줘. 나와 카타리나도 그쪽으로 이동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무리하시지 말고 현재 위치에서 기다려 주세요.]

    [훈련장에서 훈련 중인 클레이 골렘들을 이곳으로 부르겠습니다. 가끔은 탈 것을 이용하시는 것도 좋겠죠?]

    권유라기 보다는 강한 부탁이었다.

    용호는 이번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부탁할게.”

    용호는 카타리나와 함께 카이완의 휴게실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몇 분이나 기다렸을까. 쿵쾅 거리는 소리와 함께 클레이 골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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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꼴이 엉망이네. 여러 가지 의미로.”

    삐딱하게 선 스카자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클레이 골렘의 품에 소위 말하는 공주님 안기처럼 옆으로 안겨있던 용호는 마찬가지로 쓰게 웃었다.

    루시아는 현재 탐욕의 미궁 1층 전체의 장악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때문에 용호는 직접 골렘들에게 자신과 카타리나를 내려놓을 것을 명령했다. 엘리고스는 아직 내려오는 중인지 보이지 않았다.

    뒤뚱거리며 생명의 정원을 나서는 클레이 골렘들을 쳐다보던 스카자하는 시선을 다시 용호와 카타리나에게 돌렸다.

    “뭐, 설명은 됐고. 일단 회복부터 하자. 둘 다 숨 크게 쉬고, 몸에 힘 빼봐.”

    용호와 카타리나는 순순히 스카자하의 말을 따랐다. 그런데 막 숨을 내쉰 직후였다.

    위아래 할 것 없이 전신이 시원해졌다. 단순히 기분이 아니었다.

    “스카자-?!”

    말을 다 마치지도 못했다. 스카자하가 가볍게 손짓하자 용호의 옷이 속옷 하나 남기지 않고 홀라당 벗겨졌다.

    기묘한 해방감 속에서 용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눈동자를 옆으로 굴린 그 순간 이번에는 새파란 액체가 용호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것은 용호의 옆에 자리하고 있던 카타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카자하는 다시 허공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용호와 카타리나의 옷들이 차곡차곡 개어져서 바닥에 예쁘게 놓여졌다.

    “어때, 너무 편해서 저항할 마음도 안 들지?”

    파란 액체 덩어리에 온 몸을 파묻은 채 머리만 내민 꼴이 된 용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정말로 너무 편안했다. 카타리나는 아예 눈까지 감고 묘한 탄성을 토했다.

    뜨거운 온천수에 몸을 담은 것 같은 편안함이었다. 몸 안의 피로가 깨끗이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효과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불사의 마녀 스카자하의 생명력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파란 액체는 용호와 카타리나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다. 그 영혼 자체에도 영향을 끼쳤다.

    “뿔이 하나 늘어난다는 건, 마족에게 있어 보통 일이 아니야. 그냥 마력이 강해졌구나-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거지.”

    스카자하는 용호에게 다가섰다. 바닥에서 일어난 파란 액체의 일부가 스카자하의 다리를 휘감았다.

    “엘룬은 뿔이 하나 늘어나는 걸 ‘다시 태어나는 일’이라고까지 묘사했어.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해. 변하는 것은 외형만이 아니니까. 본질 그 자체의 변화라 할 수 있어. 그리고 이 변화는 뿔의 개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크지.”

    용호는 스카자하를 느낄 수 있었다. 예속 사역마인 카타리나나 엘리고스에게서 느껴지는 이어짐과 비슷했다.

    “둘 다 꽤 무리를 한 모양이네. 뿔이 늘어나자마자 바로 마력을 엄청나게 소모한 것 같은데? 이러다 탈 나. 다음부터는 자제하는 게 좋을 거야.”

    스카자하의 지적에 용호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전투 중에 진화의 권능을 사용한 것은 다시 생각해봐도 미친 짓에 가까웠다.

    “에구구,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너무 길었네. 나중에 너무 흉보지는 마?”

    루시아의 다정함과는 종류가 달랐다. 어머니와 같이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스카자하를 흉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용호는 눈짓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상의 안주머니 쪽을 뒤져봐. 구시온의 편지가 있을 거야.”

    스카자하의 표정이 바로 밝아졌다.

    “항상 고마워.”

    “별 말씀을.”

    스카자하는 수줍게 웃으며 구시온의 편지를 갈무리했다. 평소라면 바로 봉인을 뜯고 낭송을 시작했을 터였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편지 봉투를 바라보던 스카자하는 이내 표정을 고쳤다. 다시 용호를 마주하고 말했다.

    “당장 읽어보고 싶지만 오늘은 할 일이 많네. 특히 우리 도련님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어.”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다. 하지만 그 눈빛이 조금 전과는 달랐다.

    용호는 투기장을 떠나기 전 아몬이 했던 말을 기억했다.

    ‘스카자하가 해줄 이야기가 있을 거다.’

    어째서 지금일까. 뿔이 다섯 개가 되었기 때문에?

    “도련님도 브리가다와 일곱 개의 신기가 마신왕의 육의 파편이라는 이야기는 알고 있지?”

    스카자하의 이야기는 물음으로 시작했다. 용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브리가다를 손에 넣은 이후 이것저것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마계의 절대자.

    누군가는 마신왕이야말로 마계를 창조한 진정한 창조주라 말했고, 또 누군가는 그를 그저 상징적인 힘의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 보다 진실에 가까운지는 아무도 확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마신왕이 존재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마신왕의 영혼의 파편인 일곱 개의 대죄.

    육의 파편인 일곱 개의 신기.

    신기가 되지 못한, 마신왕의 잔재인 신의 금속 브리가다.

    스카자하는 칠대죄악이 아닌 신기와 브리가다를 언급했다.

    “신기는 거대한 브리가다의 덩어리라고도 할 수 있어. 브리가다가 불순물이 많이 섞인 합금이라면, 신기는 순수한 황금이지. 때문에 죄악의 힘과의 상승작용은 일반적인 브리가다와 비할 바가 아니야. 더욱이 각각의 신기에는 특별한 능력까지 깃들어 있어. 죄악의 힘을 가진 ‘왕’의 손에 들어간 신기는 그야말로 최강의 병기야.”

    현재 마계를 지배하는 여섯 왕에게는 모두 신기가 하나씩 있었다. 일곱 개의 대죄 가운데 하나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가 없는 것은 오직 용호뿐이었다.

    “신기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오직 같은 신기뿐이야. 하지만 지금의 마몬 가에는 신기가 존재하지 않아.”

    과거 탐욕의 왕 마몬은 일곱 개의 신기 가운데 넷을 소유했었다. 하지만 그의 사후 마몬 가에 남은 신기는 단 하나도 없었다. 모두 다른 ‘왕’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용호는 스카자하의 이야기에서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스카자하는 용호가 다른 왕들에게 대적해야 할 날이 올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어쩌면 단순히 미래를 대비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스카자하와 용호 사이의 거리가 좁아졌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나의 주인, 탐욕의 왕께서는 안배를 해두셨어. 언제고 돌아올 새로운 탐욕의 왕이 신기를 가진 왕들에게 당당히 맞설 수단을.”

    스카자하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파란 액체에 파묻혀 있던 용호의 손이 자연스럽게 따라서 올라갔다. 스카자하는 용호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자격을 가진 자, 12 사역마 모두의 인정을 받아 그 힘을 완성할지니.”

    옷이 모두 벗겨지는 와중에도 용호의 왼팔에 자리했던 마장이 절로 그 힘을 발하였다. 용호의 왼팔을 은빛 금속이 뒤덮었다.

    스카자하는 마장 위에 입맞춤했다. 용호의 손등에 새로운 마력을 불어넣었다.

    빛이 마장을 휘감았다. 마치 진화의 권능에 노출된 사역마처럼 마장의 형태가 변모했다.

    마장의 손등 위에 작은 원이 그려졌다. 원에는 마치 시계처럼 열 두 개의 홈이 존재했고, 그 홈 가운데 하나- 10시와 11시 사이의 홈에 맑고 푸른 보석이 자리했다.

    용호는 이해할 수 있었다. 마장에서부터 스카자하의 마력이 느껴진 그 순간 직감했다.

    “탐욕의 미궁을 정복해. 마몬의 12 사역마 모두로부터 새로운 왕으로서 인정을 받아. 그리한다면, 진정한 탐욕의 왕이 된다면-.”

    스카자하는 미소 지었다. 말끝을 잠시 흐린 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 용호와의 거리를 벌렸다. 처음 마주했던 그 날처럼 고풍스런 예를 갖춘 뒤 말을 맺었다.

    “새로운 신기가 완성될 거야. 기존에 존재했던 마신왕의 신기가 아닌, 탐욕의 왕 마몬의 신기가.”

    여덟 번째 신기.

    마신왕으로부터 유래한 일곱 신기 모두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것.

    “완성을 재촉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그래도 목표는 확실한 것이 좋겠지?”

    스카자하는 다시 손을 놀렸다. 그러자 그녀의 등 뒤로 새카만 그림자가 솟구쳐 올랐다. 두렵고 무서운 것의 형상을 갖추었다.

    용호는 그것을 본 적이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똑똑히 기억했다.

    마몬의 기억을 엿보았을 때 마주한 12 사역마 가운데 하나가 분명했다.

    “탐욕의 미궁 2층에 자리한 것은 염소좌- 학살의 악마 바포메트.”

    어둠 그 자체라 해도 좋을 흉포한 괴물. 거대한 낫으로 죽음을 수확하는 자.

    “마몬의 12 사역마 가운데서도 최악의 존재지.”

    불사의 마녀 스카자하는 결코 거짓을 고하지 않았다. 용호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스카자하의 등 뒤에 형성된, 검은 괴물의 붉은 눈을 직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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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37장 #2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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