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111화 (111/227)
  • < 제 36장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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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일격을 어떻게 막았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단 한 번의 황홀한 미소는 용호의 경계를 무너트렸고, 단 한 번의 진각은 십여 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제로로 만들었다. 가슴 쪽으로 날아든 첫 수- 검격을 막아낸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아니, 기적 같은 것이 아니었다.

    실력이었다. 용호의 감은 결코 미소 하나에 무너지지 않았다. 수십, 수백 번을 죽으며 쌓은 죽음의 감각은 더 없이 날카롭게 반응했다.

    카이완이 검을 휘두른 그 순간 마장이 용호의 왼팔을 뒤덮었다. 검과 마장이 충돌했고, 용호의 하체는 머리의 명령을 기다릴 것도 없이 강하게 땅을 박찼다. 카이완의 공격 방향으로부터 가해진 힘에 저항하지 않고 몸을 맡겼다. 시간을 만들고자 거리를 벌렸다.

    물러나는 와중에 홍련의 불길이 일었다. 카이완의 시야를 순간이나마 현혹했고, 불길이 가셨을 때는 이미 용호가 아몬을 움켜쥔 뒤였다.

    카이완과의 거리는 고작해야 오 미터 남짓.

    경과한 것은 눈을 두어 번 겨우 깜빡일 정도의 시간.

    동시에 지면을 박찼다. 용호와 카이완은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용호의 자세는 높았다. 위에서 아래로 아몬을 크게 휘둘렀다.

    카이완의 자세는 낮았다. 거의 바닥을 기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 검을 쥔 손을 겨드랑이 사이로 바짝 당겼다.

    용호는 집중했다. 그로써 시간을 나눴다. 순간, 찰나를 느꼈다.

    아몬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다. 그 궤적의 사이에는 카이완이 존재했고, 카이완은 용호에게 닿기 전에 아몬에게 상체를 허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웅!

    시간이 흐른 그 때 아몬은 카이완이 아닌 허공을 격타했다. 분명 아래를 향해 내리찍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펼쳐진 것은 수평 베기였다. 아몬의 불길이 카이완의 잿빛 머리칼 위 허공을 불태웠다.

    ‘공간 왜곡!’

    단순히 방패를 만드는 수준이 아니었다. 카이완은 용호의 공격이 펼쳐지는 공간 그 자체를 왜곡해 아몬의 공격을 엉뚱한 곳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본인은 용호의 품에 파고들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배후로 돌아가며 즐거이 재잘거렸다.

    “벌 받을 시간이야!”

    검이 용호의 육신을 휘감았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일이었다.

    흔히 말하는 사복검이었다. 채찍처럼 변한 칼날이 용호의 몸을 뱀처럼 옭아맸고, 카이완은 거칠게 팔을 휘둘렀다. 용호를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상상 이상의 충격이 등을 강타했다. 더욱이 사복검의 칼날이 용호의 육신을 파고들었다. 독이라도 들어 있는지, 아니면 칼날을 타고 흐르는 카이완의 마력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지 아찔한 감각이 등줄기를 관통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카이완은 괴력을 발해 십여 미터 이상 늘어난 사복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당연히 사복검 끝에 매달린 용호는 몇 번이나 지면과 입맞춤을 해야만 했다.

    고작해야 십여 초.

    하지만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투기장에 도전한 이래 지금처럼 크게 타격을 입은 적은 없었다. 아니, 포라스와의 싸움 이후로 이 정도 부상을 입은 적 자체가 없었다.

    “크앗!”

    용호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온 몸이 다 아픈 가운데 녹염을 일으켰다. 카이완의 마력을 불사르며 네 개의 뿔을 모두 개방했다.

    사복검이 강대한 마력의 발산을 버티지 못하고 용호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용호는 안심할 수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시야에 있던 카이완이 사라져 있었다.

    한기가 폭발했다.

    그야말로 반사적인 대응이었다. 왼쪽 측방으로 파고들던 카이완은 한기를 정면에서 뒤집어썼다.

    아니, 이번에도 틀렸다. 넓게 펼친 왜곡의 방패가 한기를 비껴냈다. 카이완은 그대로 돌진하며 용호에게 검격을 가했다.

    “크억!”

    단단히 하나로 뭉쳐진 검이 마치 둔기처럼 용호의 허리를 가격했다. 순간 다리가 꺾일 뻔한 용호였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다시 한 번 아몬을 휘두르며 녹염의 파도를 내뿜었다!

    허나 놓쳤다. 카이완은 이번에도 사라졌다. 녹염의 불길은 왜곡의 방벽에 막혀 헛된 곳으로 흘러갈 뿐이었다.

    “농락당하는군.”

    한참 동안 말없이 지켜보던 구시온이 말했다. 전투의 흐름은 예상한 그대로였다.

    객관적으로 보면 카이완은 용호보다 부족한 구석이 많았다.

    뿔은 똑같이 네 개였지만 마력이 질과 양이 달랐다. 용호가 뿔 다섯 개에 근접한 네 개였다면, 카이완은 가까스로 세 개를 벗어난 네 개 초입에 불과했다.

    체력이나 내구력 또한 그러했다. 환골탈태라 해도 좋을 변화를 경험한 용호의 육신은 어느 모로 보나 카이완보다 우수했다.

    마력을 감지하는 능력 역시 용호가 앞섰다. 마력을 감지하다 못해 아예 직시하는 용호였다. 더욱이 용호는 두 가지 이상의 속성력 또한 자유자재로 다뤘다. 카이완은 겨우 한 개의 속성 밖에 다루지 못했고, 마력을 보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마력, 육체의 종합적인 성능, 감각 모두 용호가 우월했다. 카이완이 용호와 대적 가능한 것은 기껏해야 싸움에 대한 재능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카이완이 더 강했다.

    애당초 싸움이란 서로 똑같은 것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었다. 각자의 강점으로 상대의 강점을 격파하는 것이 싸움이었다.

    카이완은 용호보다 근소하게 빨랐다.

    수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투기장에서 자신의 권능을 갈고 닦았다.

    용호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검술의 소유자였다.

    저 세 가지면 충분했다.

    카이완은 용호에게 ‘패배’란 게 무엇인지 가르쳐 줄 터였다.

    [하지만 기대하고 있군.]

    아몬이 나직이 말했다. 구시온은 아몬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내 쓰게 웃었다. 사실을 인정했다.

    용호가 패배를 배우기를 바랐다. 이 싸움으로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을 돌아보기를 원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기대했다.

    이 시련조차 뛰어넘기를. 카이완을 쓰러트리고 투기장이 열린 이래 최초로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10층을 돌파하기를.

    “가능할까?”

    구시온이 물었다. 아몬은 바로 답하는 대신 홍련의 불길을 일으켰다. 투기장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이끄는 시선이었다.

    [어쩌면- 아니, 반드시.]

    구시온 역시 투기장을 보았다.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에 일어난 광경에 눈을 크게 떴고,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크게 광소했다.

    “내가 이래서 작은 나리를 좋아한다니까!”

    다행히 용호는 들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구시온은 더욱 크게 웃었다. 움켜쥔 주먹으로 허공을 내찔렀다.

    아몬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용호를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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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시온이 고개를 돌렸던 순간, 연달아 용호를 두드린 카이완이 다시 거리를 벌리고자 뒤로 크게 물러선 그때.

    카이완은 연달아 지면을 박찼다. 숨 가쁜 고속 기동으로 다시 한 번 용호의 시선을 분산시킬 요량이었다.

    카이완 자신의 공격은 유효했다. 원거리 혹은 범위 공격은 왜곡의 권능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근접전은 지금까지의 싸움이 보여주듯 카이완 자신이 훨씬 더 유리했다.

    이대로 전투를 지속한다. 일방적으로 두드려 용호를 쓰러트린다.

    처음에 한 말은 진심이었다. 고마웠다. 너무나 고마웠기에 카이완 자신의 전력을 다 보여줄 생각이었다.

    구시온은 용호에게 패배를 알려주라 말했다. 그것이 용호를 더 강하게 하는 것이라고, 그가 진정 탐욕의 왕으로 우뚝 서게 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카이완도 동의했다. 그렇기에 더욱 더 사납게 마력을 일으켰다. 네 개의 뿔 모두로부터 강한 마력이 발산되었다.

    이번에는 배후를 노린다. 이번에야말로 다리를 꺾어 주저앉게 한 뒤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다.

    카이완은 용호에게 심한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조속히 결말을 이끌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용호는 순순히 질 생각이 없었다.

    용호의 배후를 노리던 카이완에게 다시 한 번 녹염의 파도가 덮쳐왔다. 더욱이 이번에는 기존의 것과 달랐다. 정면에서 밀려오는가 싶더니 이내 더 큰 파도가 머리 위에서부터 쏟아졌다.

    해일. 피하지도, 왜곡하지도 못하는 거대한 공격.

    카이완은 이를 악물었다. 왜곡의 권능을 전신에 둘렀다. 공간의 방벽으로 바닥 쪽을 제외한 모든 방향을 방어했다.

    녹염이 왜곡의 방벽을 뒤덮었다.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 타올랐다. 마치 카이완의 움직임을 봉쇄하겠다는 듯 위에서부터 끊임없이 마력이 쏟아져 내렸다.

    분명 막강한 힘이었다. 카이완은 왜곡의 방벽을 펼치고 버티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너무 무식한 공격이었다. 아무리 용호의 마력이 강하다고 해도 이건 너무 과했다.

    이대로 소모전 양상이 되면 패배하는 것은 카이완 자신이 아니라 용호였다.

    저 불꽃의 폭포를 과연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기껏해야 십여 초? 길어야 이십 초 남짓?

    카이완은 몸을 작게 웅크렸다. 그럼으로써 왜곡의 방벽을 축소해 마력의 소모를 줄였다.

    싸움은 자신의 강점으로 상대의 강점을 치는 것이었다. 허나 용호는 지금 우를 범했다.

    ‘차라리 잘 되었어.’

    이제 용호를 더 괴롭힐 필요도 없었다. 미친듯이 마력을 쏟아 부은 용호가 제풀에 지쳐 쓰러지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고작 몇 초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뭐야?’

    카이완이 고개를 들었다. 저도 모르게 자신의 양 어깨를 끌어안았다.

    주변이 진감하고 있었다. 카이완의 몸속에 흐르는 탐욕의 왕 마몬의 피가 거칠게 소리쳤다.

    녹염의 폭포는 건재했다. 카이완은 감히 왜곡의 권능을 해제할 수 없었다. 온통 녹색인 시야 너머를 꿰뚫어보는 것도 불가능했다.

    다시 몇 초.

    카이완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용호의 마력이 강해지고 있었다.

    미친 듯이 마력을 쏟아 붓고 있음에도 그 힘이 점점 더 강해졌다.

    ‘밖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미지의 공포가 카이완을 자극했다. 카이완은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이번에는 카이완 자신이 무리를 해야 할 때였다.

    카이완은 여력을 남기지 않았다. 녹염의 파도의 억누르는 힘에 맞서 왜곡의 방벽을 굳건히 했다. 그대로 정면으로 내뻗어 녹염의 파도를 갈랐다.

    그야말로 찰나.

    금방이라도 닫힐 것 같은 폭포의 틈바구니를 향해 카이완이 질주했다. 가까스로 녹염의 폭포를 빠져나와 용호를 보았다.

    그리고 이해했다.

    용호가 무엇을 했는지.

    어째서 녹염의 폭포로 카이완 자신을 묶어 두었는지!

    용호의 두 눈에서부터 녹색의 안광이 번쩍였다. 폭포를 조종하듯 앞으로 뻗은 오른손과 달리 왼손은 용호 자신의 가슴팍 위에 올라가 있었다.

    발동한 것은 진화의 권능.

    카이완이 녹염의 폭포에 붙잡힌 몇 초 동안 행한 것은 마력 특화 진화.

    미친 짓이었다.

    마력을, 그것도 전력을 다해 발산하는 와중에 진화의 권능을 사용해본 적은 없었다.

    적을 눈앞에 두고 할 만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용호는 했다.

    티그리우스와의 결투. 5층에서 9층까지 돌파하며 쌓은 경험.

    거기에 연이어진 카이완과의 싸움.

    전투 도중 진화 숙련치가 최고치에 도달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평소였다면 전투 후로 미뤘을 진화였다. 평소였다면 말이다.

    용호 역시 싸움을 알았다.

    자신의 강점으로 상대의 강점을 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용호는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자신보다 객관적으로 더 강할게 분명한 적들을 격파해왔다.

    용호 자신이 카이완보다 우세한 것은 마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마력으로는 카이완을 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답은 간단했다.

    강점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마력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린다!

    “으아아아아!”

    용호가 포효했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투기장 전체가 진감했다. 강대한 마력이 용호를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녹염의 폭포가 사라졌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인지할 수 없었다. 그보다 훨씬 더 강렬한 존재감이 용호로부터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용호의 이마를 꿰뚫고 다섯 번째 뿔이 돋아났다. 벽을 넘은 순간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마력이 발산되었다.

    더욱이 이변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투기장을 감싼 방벽 너머로부터 또 다른 포효가 울려 퍼졌다. 카타리나가 가슴을 움켜쥔 채 고통과 환희에 찬 비명을 토했다.

    카타리나의 귀 위로 네 번째 뿔이 돋아났다. 용호가 강해진 그 순간 예속 사역마인 카타리나 역시 벽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그 강화는 다시 한 번 용호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카이완은 더 주저할 수 없었다. 압도되지 않고 돌진했다. 불굴의 표상이라 해도 좋을 그녀다운 돌진이었다.

    하지만 닿을 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휘두른 검격을 왜곡의 방패가 가로막았다. 검은 마력이 실린 녹염이 순식간에 카이완의 주변을 에워쌌다.

    용호는 숨을 헐떡였다. 전투 도중의 진화는 과연 힘겨웠다. 하지만 미소 지었다. 왼손에서부터 시작된 왜곡의 방패 너머로 고양이과 맹수처럼 앙칼진 카이완의 눈을 마주했다.

    “2라운드, 시작이야.”

    카이완은 대답하지 못했다. 용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탐욕의 마력을 한 곳에 집중시켰다. 왜곡의 방패를 무시무시한 크기로 확장시켰다!

    카이완의 가냘픈 몸이 순식간에 튕겨져 나갔다. 용호는 그런 카이완을 추적하는 대신 오른손을 길게 뻗었다.

    “카타리나!”

    부름에 응답하는 검은 마력이 폭발적인 기세로 뻗어나갔다. 흡사 거인의 손과 같은 그것이 카이완을 움켜쥐었다.

    카이완은 급히 왜곡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카이완이 왜곡의 권능을 발동시켰을 때는 이미 거인의 손이 바닥을 내려치고 있었다.

    “커헉!”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용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카이완의 왼팔로부터 일어나는 바람의 마력을 놓치지 않았다. 검은 거인의 손으로 카이완을 바닥에 찍어 누른 채 다시 한 번 녹염을 일으켰다.

    녹염이 검은 마력을 타고 불타올랐다. 마치 도화선을 따라 타들어가는 불꽃처럼 순식간에 카이완에게 도달했고, 카이완이 애써 일으킨 바람의 마력을 집어삼켰다. 왜곡의 방패로 스스로를 보호한 카이완을 통째로 집어삼킨 뒤 검은 마력으로 전신을 두들겼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다. 브리가다를 통해 카타리나의 마력을 끌어 쓰고 있음에도 부족함을 느꼈다.

    소모전이었다. 용호는 사납게 일갈하며 다시 한 번 오른팔을 휘둘렀다. 거인의 팔로 녹염에 휩싸인 카이완을 몇 번이고 바닥에 내리찍었다.

    카이완은 왜곡의 방패 덕분에 조금의 외상도 입지 않았다. 하지만 그 충격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세 번째 내리찍었을 때, 용호 역시 이제는 한계라 생각한 그 때 카이완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왜곡의 방패가 깨졌다. 충격을 견디지 못해서가 아니라 카이완이 모든 기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용호는 서둘러 마력을 거두었다. 그러자 무지막지한 피로감이 용호를 엄습했다. 마력을 너무 끌어다 쓴 탓에 손발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보이진 않았지만, 카타리나가 관중석 바닥에 주저앉아 헐떡이는 것 역시 느껴졌다.

    하지만 용호는 주저앉는 대신 발걸음을 내딛었다. 바닥에 큰 대자로 쓰러진 채 꿈틀 거리는 카이완에게 다가갔다.

    카이완은 의식을 잃기 직전이었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그녀는 용호의 얼굴을 보더니 아주 작게 웃었다. 마지막 기력을 쥐어짜 욕지거리를 토했다.

    “나쁜… 새끼.”

    용호는 웃었다. 카이완도 웃으며 의식을 잃었다.

    혼절한 카이완의 몸 위로 마몬의 마력이 형성되었다. 용호는 그 어느 때보다 기쁜 마음으로 마몬의 마력을 움켜쥐었다. 짜릿한 승리의 쾌감을 만끽했다.

    그리고 그 직후.

    용호의 눈앞에 빛의 상자들이 떠올랐다.

    구시온이 말했던 특별한 보상.

    용호는 이번에도 손을 뻗었다. 가장 왼쪽에 있는 빛의 상자를 개방했다.

    제 36장 - 왜곡의 마왕 끝, 제 37장 - 생명의 정원으로 이어집니다.

    < 제 36장 #3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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