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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104화 (104/227)

< 제 34장 - 란돌트 가 >

* '라우라' 가의 이름이 '란돌트' 가로 변경되었습니다. 갑작스런 변경으로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제 34장 - 란돌트 가

“오, 좋아. 확실히 마력 컨트롤에 능해서 그런지 빨리 배우는군.”

대기실 의자에 걸터앉은 구시온이 짝짝 소리나게 박수를 쳤다.

용호는 숨을 가다듬었다. 집중을 깨트리는 구시온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다시 한 번 마력을 회전시켰다.

구시온이 용호에게 요구한 것은 마력을 끊임없이 흐르게 하는 것이었다.

이는 무척이나 쉬우면서도 어려운 요구였다.

마계의 마력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았다. 한 곳에 집중시킨 마력도 끊임없이 맥동하며 움직이기 마련이었다.

다만 그 움직임은 무질서했고, 기실 의미 없는 움직임일 때가 많았다.

구시온이 요구한 것은 그런 무의미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방향성을 가진 움직임.

육체의 움직임과 조화를 이루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마력의 흐름.

마력을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것 정도야 지금의 용호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쉬운 요구였다.

하지만 구시온이 추가한 단 하나의 조건이 요구의 난이도를 대폭 상승시켰다.

구시온은 무의식 중에 마력을 컨트롤하기를 바랐다.

사람들이 손을 움직일 때 뼈와 근육을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몸이 움직일 때 자연스럽게 마력이 따라 움직일 것을 요구했다.

그것이 기초였다. 일단 마계의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마력의 움직임 자체를 체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용호는 손을 움직여 보았다. 무식할 정도의 반복 수련이 효과가 있었는지 따로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마력이 움직였다. 단순히 손을 움직였을 뿐임에도 이전과는 다른 힘을 느꼈다.

“다르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었을 때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하는 게 좋겠군.”

구시온이 말했다. 용호의 상태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기에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과연 마몬의 12 사역마 가운데 하나.

용호는 쓰게 웃었다. 구시온이 대단한 존재라는 것은 잘 알았지만, 어쩐지 인정해주고 싶지 않았다.

처음처럼 악감정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친해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스카자하한테 줄 답장은 다 썼어?”

용호가 찌르듯이 물었고, 구시온은 움찔했다. 용호가 8층의 플로어 마스터와 싸울 때도, 대기실에서 홀로 수련을 할 때도 답장을 쓴다며 자리를 비웠던 구시온이었다.

마치 취조 받는 범인처럼 안절부절 못하던 그는 얼른 말을 돌렸다.

“네 귀쟁이 호위 기사 아가씨도 투기장에 도전한다고? 큰 결심을 했군.”

너무 눈에 보이는 회피인터라 용호는 즐거이 웃었다.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카타리나의 선택이니까. 그리고…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하니까. 내가 강해졌듯이 카타리나 역시 많이 강해졌어. 아무튼 그래서 답장은 썼냐니까?”

용호의 말이 길게 이어지자 안심하던 구시온은 마지막 말에 인상을 구겼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외투 안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다.

“여기 있다.”

촛농을 녹여 만든 봉인까지 붙어 있는 것이 옛스러운 느낌을 물씬 풍겼다.

용호는 스카자하게에 전해줄 답장을 받았다. 그런데 구시온이 손을 놓지 않았다. 여전히 편지를 붙잡은 채 용호를 바라보더니 진지한 얼굴로 목소리를 낮췄다.

“읽어보지 마라. 절대로.”

“안 읽어. 절대로.”

똑같이 진지하게 답한 용호는 휙하고 편지를 뺏었다. 품안에 잘 갈무리하며 말했다.

“스카자하가 자꾸 낭송을 해줘서 그렇지.”

구시온의 표정이 실로 다이나믹하게 변했다. 용호는 저 거대한 레드 데몬이 전력으로 편지를 뺏기 위해 달려드는 상황까지도 대비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구시온은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의자에 축 늘어졌다.

용호는 그런 구시온의 옆에 앉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스카자하가 어때서? 착하고 예쁘잖아. 너도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은데.”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스카자하는 12 사역마 가운데서 최고의 인격자라는 전설답게 성격이 좋았다. 시트리에 미치지 못해서 그렇지 눈부신 미녀인 것 또한 사실이었다.

물론 약간 푼수 끼가 있긴 했지만, 그 정도야 기분 좋은 싱그러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구시온은 허탈한 얼굴로 실실 웃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용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 좋지. 다 좋은데… 밤이 무섭다고 해야 할까.”

“뭐?”

구시온은 끌끌 혀를 찼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용호에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넌 아직 밤의 진정한 깊이를 모른다. 준비가 안 되었어. 넌 아직 애송이라고.”

[아예 시작도 안 한 것 같다만…….]

[하긴, 그래서 그토록 강한 번뇌와 갈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이제껏 잠자코 있던 아몬이 돌연 끼어들었다. 무겁고 진중한 아몬의 목소리에 이번에는 구시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시작도 안했다니?”

“아무튼! 다음에 올 때는 나 대신 카타리나가 1층에 도전할 거야. 내가 9층에 도전하는 건 그 후의 일일 거고.”

이번에는 용호가 급히 말을 돌렸다. 구시온은 미심쩍다는 눈으로 용호와 아몬을 번갈아보았지만 아몬은 이렇다 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용호 역시 필사적으로 구시온의 시선을 피했다.

고개를 몇 번 갸웃하던 구시온은 이내 의심을 버렸다. 용호의 말을 받았다.

“그래, 브리가다의 진정한 힘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네 권속- 예속 사역마의 강함 역시 중요하니까.”

“브리가다의 진정한 힘?”

“아직이야. 아직. 내 기준으로 다음 단계에 도달하면 알려주지. 걷기도 전에 뛰려고 하면 넘어지는 법이라고.”

호쾌하게 생겼고, 실제로도 호쾌한 구시온이었지만 이런 쪽으로는 꽤나 고지식한 면모가 있었다.

이번에는 용호가 순순히 받아들였다. 슬슬 투기장을 나설 시간도 되었기에 구시온에게 물었다.

“카이완은  좀 어때?”

“여전히 회복 중이다. 순조롭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구시온은 쓸데 없는 거짓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아마 정말로 순조롭게 회복 중일 터였다.

그렇다면 한 번 정도는 얼굴을 보여주어도 괜찮을 텐데.

용호 역시 미련을 버렸다.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좋아, 그럼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지.”

용호가 대기실 문을 열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짐승 가면의 사내가 나타났다. 옆에는 다른 대기실에서 수련 중이던 카타리나가 서 있었다.

날카로웠다. 카타리나라는 칼집 속에 숨겨져 있음에도 검은 마력이란 이름의 칼날이 서슬퍼런 빛을 내뿜는 것 같았다.

용호는 손을 뻗어 그런 카타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용호의 손길이 한 번씩 지날 때마다 바짝 독이 올랐던 검은 마력이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평소와 달리 잔뜩 굳어있던 카타리나의 표정도 다시 온화하게 바뀌었다.

“돌아가자.”

“네, 가주님.”

완전히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간 카타리나가 꼬리를 파닥이며 답했다. 용호 역시 기분 좋게 웃으며 그런 카타리나와 함께 발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막 대기실을 벗어나려는 그때였다.

“어이, 작은 나리.”

구시온의 목소리가 용호를 붙잡았다. 용호가 무슨 일이냐는 듯 돌아서자 구시온은 팔짱을 꼈다. 아주 약간의 침묵을 사이에 두고 말을 이었다.

“카이완은 10층의 플로어 마스터다. 그리고 10층의 보상 역시 특별할 거야. 벌칙 또한 그러하겠지만.”

용호가 현재 머물고 있는 층은 8층.

10층까지는 오직 하나의 층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

투기장의 긴 복도를 지나 카이완의 휴게실에 돌아왔을 때 용호는 마음속의 동요를 모두 떨쳐낼 수 있었다.

카이완의 대결이라 하여 특히 더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대전 상대가 카이완이라는 사실보다는 그 상벌의 특별함이었다.

아직 보상과 벌칙이 무엇일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평소보다 좀 더 각오를 다져야 할 것만은 분명했다.

[주인님. 투기장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안색이 나쁘세요.]

투기장을 나와 다시 연결이 이어지자마자 루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꽤나 걱정하는 투였기에 용호는 짐짓 밝게 답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조금 피곤해서 말이야. 던전에는 별 일 없었고?”

[란돌트 가에 사절로 갔던 예속 사역마 오필리아가 돌아 왔습니다.]

[항복 권고문의 답변을 받아온 것 같습니다.]

“빠르군.”

정말로 빨랐다. 오필리아의 임무는 항복 권고문을 전달하는 것이었지 답장을 받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답장을 받아왔다는 것은 그만큼 란돌트 가주의 답변이 빨랐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어쩌면 오필리아가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어느 정도 답변을 준비해뒀을지도 몰랐다.

“오필리아는 지금 어디에 있지?”

[예속 사역마 엘리고스와 대련을 하는 것으로 여독을 풀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회의실로 소집하도록 하겠습니다.]

엘리고스와의 대련이 여독을 푸는 것과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용호는 일단 안심했다.

뭔가 큰 일이 터졌다면 아무리 용호가 투기장에 있어 연락할 방도가 없었다고는 해도 엘리고스와 대련이라는 꽤나 여유로운 행동을 할 오필리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둘러야겠군. 가자, 카타리나.”

카타리나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용호와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

“란돌트 가의 가주는 이미 제가 올 것이라는 것을- 보다 명확히 말하면 마몬 가로부터 항복 권고문이 올 것이란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용호의 예상과 일치하는 이야기였다.

용호가 다시 물었다.

“그쪽의 반응은?”

“비교적 담담했습니다. 여기 이 편지가 란돌트 가 가주의 답장입니다.”

오필리아는 품 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구시온이 스카자하에게 보내는 편지 이상으로 엄중한 봉인이 되어 있는 편지였다.

오필리아는 편지를 용호에게 내미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가슴 쪽으로 잡아당겼다. 진중한 얼굴로 목소리를 이었다.

“아무런 마력이 깃들지 않은 평범한 편지입니다. 하지만 혹시나 독 같은 것이 발라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먼저 편지를 열어보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마법이 실존한다 하여 모든 함정을 마법으로만 설치해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편지 안에 독이 든 가루를 넣어놓았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편지지 한 귀퉁이에 독을 발라놓았을 수도 있었다.

언젠가 뉴스에서 보았던 탄저균 편지를 떠올린 용호는 마뜩찮은 얼굴이 되었다. 그런 위험이 있을지 모를 편지를 오필리아에게 대신 확인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오필리아의 표정은 단호했다. 용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한다.”

“감사합니다.”

오필리아는 나이프를 꺼내 편지봉투 자체를 가른 뒤 무척이나 세밀하게 서신을 살펴보았다. 용호에게 서신이 돌아온 것은 거의 10분 이상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결투 신청?”

서신 안의 내용은 참으로 간결했다. 얼마 없는 내용을 다시 짧게 간추리면 다음과 같았다.

수하들 없이 가주끼리 일 대 일로 결투를 벌이자.

굳이 서로의 목숨을 빼앗을 필요도 없다.

진 쪽이 이긴 쪽의 수하가 된다.

결투 장소는 마몬 가와 란돌트 가 사이의 황야라면 어디라도 좋다. 마몬 가 측이 장소를 선정해도 좋다.

결투 제안을 거부할 경우 란돌트 가는 전원이 옥쇄를 각오하고 던전을 지킬 것이다.

용호에 이어 서신을 검토한 엘리고스가 미간을 좁혔다.

“결투로 결판을 내자는 제안이군요.”

“대신에 거부하면 결사저항이라 이건가.”

란돌트 가주의 결투 신청은 예상 범위 밖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서신을 받아든 리쿰이 말했다.

“그저 가능성이긴 합니다만… 스스로의 면목을 세우기 위함이 아닐까요?”

“면목을?”

“예, 싸움 한 번 안 하고 맥없이 항복하는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못하니까요. 노가주의 자존심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정도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리쿰이 말한 방향으로 생각해보니 진 쪽이 이긴 쪽의 부하가 된다는 부분도 제법 납득이 되었다.

“오필리아 네 생각은?”

오필리아는 바로 답하기 앞서 아랫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다소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보이는 그녀의 버릇이었다.

숨을 길게 토한 오필리아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일전에 보고 드렸듯이 란돌트 가의 가주는 소심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자신의 던전에만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는 자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아무런 승산 없이 그저 면목만을 세우기 위해 결투를 신청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투를 신청한다는 것은 양날의 칼과 같으니까요. 분명 리쿰의 말처럼 면목은 세울 수 있겠지만 가주 님의 분노를 살 수도 있습니다. 진정 소심한 자라면 앞으로 자신의 주인이 될 자의 분노를 살 위험을 감수하느니 순순히 항복하는 쪽을 택할 겁니다.”

오필리아의 이야기 또한 타당했다. 말을 꺼냈던 리쿰은 고개를 끄덕인 뒤 의견을 추가했다.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결투를 통해 자신의 강함이나 쓸모를 증명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면목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쓸모를 증명하려는 것이다.

항장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리고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했다.

오필리아도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그럴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되었든 결투를 신청할 정도의 강단은 있는 자니까요.”

지금의 맥락대로라면 란돌트 가의 가주는 ‘질 것을 알면서도 결투를 신청했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용호는 선뜻 이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잠자코 지켜만보던 카타리나가 소심하게 손을 들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함정… 같은 것은 아닐까요?”

장소 선정을 마몬 가에 맡긴다는 문구 자체도 안심시키려는 함정일 수 있었다.

용호는 다시 한 번 란돌트 가 가주가 친필로 쓴 서신을 읽어보았다. 단아하면서도 힘 있는 문체에서 기품이 느껴졌다.

“아니면… 정말로 순수하게 결투로 판가름을 하고 싶을지도.”

결투로 깨끗하게 결판을 낸다.

무익한 피를 흘리지 않는다.

“오필리아, 란돌트 가 가주의 전투 스타일이나 강함은 어느 정도지?”

오필리아가 미간을 좁히며 답했다.

“워낙 자신의 던전에만 틀어박혀 있는 자라 크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오래 활동한 가주답게 단발적인 정보들이 꽤 있습니다. 확실한 것들만 추려본다면 뿔은 현재 세 개이며, 체술보다는 마법에 의존하는 스타일일 것 같습니다. 포라스나 융케라스보다는 강할 가능성도 있지만, 아가레스보다는 절대적으로 아래라고 생각됩니다.”

“마법사?”

“예, 그래서 어쩌면 가주 님에게는 더 손쉬운 상대일지도 모릅니다. 가주님께서는 마력의 흐름을 읽으실 수 있으시니까요. 아마 여간한 마법은 미리 읽어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만큼 회피나 방어, 혹은 훼방도 쉬우실 거고요.”

마력의 흐름을 읽는 것 자체는 마력에 능통한 자라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용호는 아예 마력의 색과 속성을 볼 수 있었고, 그러한 마력의 움직임을 전투 중에도 읽어낼 수 있었다.

평온한 상태에서 마력의 흐름을 읽어내는 것과 목숨이 위태로운 실전 중에 마력의 흐름을 읽어내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 차이라 해도 좋을 만큼 큰 간극이 존재했다.

“란돌트 가의 가주가 약속을 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몇 번을 검토해도 부족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지만, 직접 대면한 제 느낌은 그러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선술집 여주인의 평가였다.

용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결투는 분명 큰 위험을 동반했다. 더 큰 세력을 가진 용호가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무익한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었다. 큰 반발 없이 란돌트 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예속 사역마들의 감정이 전달되었다. 그들의 강한 신뢰가 느껴졌다.

용호가 무슨 선택을 하든 뒤를 단단히 받쳐줄 충성스런 수하들이었다.

용호는 결정했다. 눈을 뜨고 말했다.

“오필리아, 수고스럽겠지만 다시 한 번 란돌트 가에 다녀올 수 있겠어?”

“엔델리온의 딸 오필리아, 위대한 마몬 가의 가주 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오필리아 뿐만 아니라 카타리나와 엘리고스, 스컬 역시 예를 표했다.

용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의 뜻을 밝혔다.

&

< 제 34장 - 란돌트 가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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