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3장 - 물병 좌의 스카자하 (수정) >
제 33장 - 물병 좌의 스카자하
늑대 무리가 새벽을 거닐었다.
본래라면 필사적인 질주가 되었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늑대 무리는 진즉에 피 냄새를 맡았고, 그 냄새로부터 많은 것들을 추측해냈다.
그 냄새 속에는 아군보다 적군의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더욱이 그 비릿함 속에 낯선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늑대 무리는 자신들의 우두머리에게 대비해야 함을 알렸고, 우두머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기동 속도를 낮추고 충분히 대비하며 나아갔다. 그 움직임은 폭풍 전의 고요와 같았고, 모르는 이가 본다면 산보라 생각할 정도로 평온했다.
무리의 우두머리.
늑대의 마왕 엠브리오는 온 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 적들의 피였다. 서부 가주 연합에 소속된 가주와 그 충성스런 사역마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적이라도 감탄할 정도로 훌륭한 근성이었지만, 엠브리오는 평소와 달리 작은 짜증을 느꼈다. 그만큼 어려운 상황이었다.
서부 가주 연합이 선택한 전략인 ‘전장의 확대’는 효과적이었다. 그들은 엠브리오에게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끝낼 ‘결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작은 전투를 반복해 소모전을 유도했고, 엠브리오가 아닌 엠브리오의 세력을 깎아내는데 주력했다.
엠브리오는 강했고, 그의 군대 역시 강했지만 그렇다 하여 무적인 것은 아니었다. 서부 가주 연합은 엠브리오가 없는 전장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엠브리오는 하나였지만 가주 연합의 가주는 여럿이었고, 싸움이 반복될수록 엠브리오 측의 소모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래서 엠브리오 역시 전략을 바꾸었다.
늑대의 마왕을 필사적으로 피하는 서부 가주 연합에게 피할 수 없는 싸움을 강요했다.
엠브리오는 던전을 공략했다.
이미 정복한 서부의 던전이나 서부와 인접한 곳에 위치한 북부의 던전들이 공격 당하는 것을 무시했다. 병력을 하나로 집결해 서부 가주 연합에 소속된 가주들의 던전을 하나하나 공략했다.
북부에서처럼 공략한 던전을 거두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정수를 취한 뒤 철저하게 파괴했다.
서부 가주 연합의 가주들은 엠브리오처럼 던전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엠브리오가 포기한 던전들은 그가 휘하에 거둔 일종의 확장 기지였지만 서부 가주 연합의 가주들에게 있어 던전은 그들 하나하나의 본진이었다.
던전은 일반적인 요새나 성과는 달랐다.
던전의 함락은 곧 그 던전에 등록된 ‘예속 사역마’의 죽음을 의미했다.
가주와 예속 사역마는 서로 연결된 존재였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강하게 하는 하나의 운명공동체였다.
하지만 달랐다.
던전이 멸망해도 가주는 살아남았지만, 그 던전을 매개로 가주와 계약한 예속 사역마는 목숨을 잃었다.
예속 사역마들의 떼죽음은 가주의 힘을 크게 약화시켰다.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질적인 의미였다. 마력의 약화는 전반적인 육체 능력의 약화까지 야기했다.
예속 사역마를 살리기 위해서는 던전이 함락되기 전에 예속 사역마 등록을 취소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취소 역시 가주의 힘을 크게 약화시키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던전은 한정되어 있었고, 예속 사역마 등록을 취소한 가주가 새로운 던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엠브리오는 서부 가주 연합의 근간인 가주 개개인을 약화시켰다.
자신의 던전이 공격당하는 와중에 엠브리오의 던전들을 공격할 수 있는 가주는 없었다.
서부 가주 연합도 바보들의 모임이 아니니 엠브리오의 진짜 본진을 치자는 의견이 나왔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들은 그같은 전략을 쉬이 현실화 할 수 없었다.
엠브리오의 본진은 서부가 아닌 북부에 있었다. 더욱이 어떤 던전이 엠브리오의 진짜 던전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엠브리오의 던전은 여럿이었고, 던전이 여럿인 가주는 시간과 마력을 투자해 그중 하나를 자신의 핵심 던전으로 삼을 수 있었다.
엠브리오가 북부를 점령한 지 이미 꽤 시간이 흘렀다. 원했다면 얼마든지 핵심 던전을 옮기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더욱이 엠브리오에게는 예속 사역마가 존재하지 않았다. 항상 데리고 다니는 늑대들이 예속 사역마가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긴 했지만, 아무리 영특하다고 해도 그저 늑대였다. 그 숫자가 한정된 예속 사역마 자리에 평범한 늑대를 앉히는 가주는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엠브리오가 예속 사역마를 거느리고 있지 않다면, 던전의 공략은 엠브리오에게 심적 타격은 줄 수 있을지언정 구체적인 전력의 약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할 터였다.
서부 가주 연합은 엠브리오와 똑같은 전략을 펼칠 수 없었다.
그들 대부분은 단 하나의 던전만을 보유한 반면에 엠브리오는 여러 개의 던전을 보유했다.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북부로 쳐들어가야만 했고, 그 북부는 전부 엠브리오의 땅이었다. 더욱이 공격지점까지 명확하지 않으니 단기 속전으로 엠브리오의 던전을 공략한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부 가주 연합의 가주들은 몸을 사렸다.
자신들의 던전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가까이에 있는 엠브리오의 전선기지들이라면 모를까, 저 먼 북부로 원정을 나가겠다고 나서는 가주는 없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라 해도 좋았다.
엠브리오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제 조만간 서부 가주 연합은 내부에서부터 분열하든가 아니면 새로운 전략을 추구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들이 그토록 거부해온, 엠브리오 자신과의 단판 승부 말이다.
조만간이었다. 그렇기에 아직은 조금 더 인내해야만 했다.
엠브리오가 정예 병력을 이끌고 던전 하나를 공략하는 동안 서부 가주 연합은 엠브리오가 세운 전선기지를 공격했다. 전선기지가 파괴된다 해도 서부 가주 연합처럼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 하여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의 피해인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달렸었다. 엠브리오 자신을 피하기 위해 '히트 앤 런'을 반복하는 가주 연합의 기동대를 붙잡기 위해, 조금이라도 전선 기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전력으로 질주했었다. 아무리 엠브리오 자신이라 해도 보급 물자 없이 군대를 유지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질주가 산보에 가까운 걸음이 된 것은 전선 기지를 수백 미터 앞에 두었을 때였다.
거리가 좀 더 가까워지자 후각에 이어 시각이 위화감을 포착했다.
전선 기지는 파괴되지 않았다. 아군은 별로 죽지 않았고, 적군은 많이 죽었다. 시체들의 숫자와 상태를 보면 단순한 승리가 아닌 대승- 거의 적을 궤멸시켰다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엠브리오는 승리의 원인을 이해했다.
“데스 나이트.”
시체의 산을 등지고 강대한 죽음의 기사가 고고히 서 있었다.
무지막지한 압박감이었다. 과연 엘더 리치와 더불어 최강의 언데드를 자처할 수 있는 존재다운 위용이었다.
칠흑의 풀 플레이트 메일이 전신을 감쌌고, 밤을 닮은 검푸른 망토가 바람에 흩날렸다. 거대한 마검은 피를 잔뜩 취해 진득한 사기를 내뿜었다.
남부 공백지의 어지간한 가주보다도 강할 것이 분명했다.
엠브리오는 쓰게 웃었다. ‘지원’임에 분명한 데스 나이트였지만 일종의 경고장과도 같았다.
저 데스 나이트의 주인의 휘하에는 더 강대한 존재들이 있었다. 그의 진정한 세력에 비한다면 눈앞의 죽음의 기사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엠브리오. 생각보다 고생하는 것 같더군”
거칠고 음산한 목소리가 땅속에서부터 울렸다. ‘식탐의 왕’의 수하인 감시자였다.
전선 기지는 이제 지척이라 해도 좋았다.
엠브리오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데스 나이트와 기묘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는 수하들에게 다가가는 대신 늑대들과 더불어 휴식을 취했다. 감시자와의 만남을 수하들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왕께서 네게 하사하신 선물이다.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해라.”
엠브리오는 마른 침을 삼켰다. 평소처럼 감시자의 말을 받아넘긴다든가, 미묘한 신경전을 펼치지 못했다.
데스 나이트의 존재 때문이 아니었다. 엠브리오의 시선이 절로 하늘로 향했다.
감시자가 음산하게 웃었다. 엠브리오의 유능함과 기민함은 평소 그를 언짢게 하는 요소였지만 이번만은 기쁨을 주었다.
“잊지 마라. 왕께서 널 지켜보고 계신다, 엠브리오.”
감시자의 기척이 사라졌다. 데스 나이트가 엠브리오에게 먼 거리에서나마 예를 표했다.
하지만 엠브리오는 둘 모두에게 반응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마계의 현란한 하늘을 노려보았다.
저 구름 너머에 자리한 존재.
데스 나이트를 능가하는 죽음의 괴수.
마계를 지배하는 여섯 왕의 저력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
“본… 드래곤…….”
나직한 부름에 호응하듯 하늘의 기류가 변했다. 강대한 죽음의 마력이 마계의 하늘을 헤집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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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똑바로 차려요! 오라버니!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하면 돼요!”
오필리아가 정면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녀의 날씬하고 탄력적인 종아리에서 푸른 마력의 기운이 휘몰아쳤다.
엘리고스는 거친 숨을 토했다. 흥분과 긴장을 억누르며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검붉은 기운을 양 손에 모으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던전 전투용 조명은 어둠을 모두 몰아내지 못했다. 사방으로 큰 길이 난 사거리의 중앙을 밝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스컬컬!”
오필리아와 엘리고스로부터 정 반대 방향에 선 스컬이 우렁차게 외쳤다. 브리가다 목걸이에서부터 일어난 탐욕의 뇌전이 워해머 뿐만 아니라 용호가 투기장 5층에서 얻은 마법 방패에까지 어리었다.
스컬 부대 역시 자신들의 대장을 따라 일갈했다. 저마다의 무기를 거머쥐고 어둠을 노려봤다.
카타리나는 차분히 숨을 골랐다. 브리가다로부터 비롯된 탐욕의 마력을 온전히 지배하에 두었다.
탐욕이 그녀의 마력을 강화했다. 검은 마력은 이제 자유자재로 변모하는 칼날과 같았다. 양손에 나눠 쥔 단검뿐만 아니라 팔과 다리에까지 검은 마력을 두른 카타리나는 이제 전신이 무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리쿰과 수하 오크 몇이 그런 카타리나의 곁에서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어둠 너머가 보이진 않았지만 소리만으로도 대충의 숫자를 파악할 수 있었다. 오크들 사이에 선 고블린 레인저들과 바둑이는 긴장 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키아아아!”
괴성과 함께 사거리의 세 방향에서부터 던전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마몬 가의 지하 1층.
일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금단의 땅이었던 그곳은 이미 던전 몬스터들의 것이었다.
수십, 아니 어쩌면 수백 마리에 달할지도 모를 던전 몬스터들이 마몬 가의 사역마들을 향해 돌진했다.
거의 대부분이 구울과 스켈레톤들이었다. 산 자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를 불태우는 그들 사이로 소수나마 죽음의 비명을 토하는 밴시와 끔찍함의 화신인 어보미네이션이 섞여 있었다.
엘리고스의 숨이 빠르고 거칠어졌다. 오필리아는 그런 엘리고스의 등을 짝 소리 나게 때린 뒤 씩 웃었다.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던전 몬스터들에게 마주 돌진했다.
“꺄아! 살려줘요! 오라버니!”
살고 싶으면 돌진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구울들 사이로 파고들어 무지막지한 발차기를 날리는 그녀는 흡사 태풍이었다. 오히려 구울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쳐야 할 것 같았다.
“우오오!”
엘리고스는 오필리아를 따라 돌진했다. 지금 돌진하지 않으면 겪게 될 후환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반 정도는 그것 때문이었지만, 나머지 반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엘리고스 자신은 마몬 가의 집사였다. 위대한 마몬 가의 집사에 어울리는 강함을 갖춰야만 했다. 그리고 약간, 정말 아주 약간 오필리아가 걱정되었다.
레드 데몬 비스트 특유의 폭발적인 육체 능력이 구울들 사이에서 화려하게 꽃 피었다. 엘리고스의 주먹이 구울들을 문자 그대로 폭발시켰다.
“오라버니 멋져! 짐승 같아!”
오필리아가 깔깔 거리며 허공을 찼다. 날카로운 발끝에서부터 일어난 기운이 마력의 칼날이 되어 구울 여러 마리를 일도양단했다.
“스컬컬!”
반대 방향에 선 스컬 역시 용맹함을 뽐냈다. 뇌격이 실린 전투 망치로 구울들을 박살내는데 그치지 않았다.
스컬이 목에 찬 브리가다로부터 탐욕의 마력이 솟구쳐 올랐다. 스켈레톤 매직 나이트인 스컬은 그 마력을 망치에 집중시켰다. 단숨에 지면을 후려쳐 무지막지한 뇌격을 방출했다!
타점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수십 갈래의 뇌격이 복도 전체를 휩쓸었다.
구울뿐만 아니라 반은 영체라 할 수 있을 밴시 까지도 뇌격을 피하지 못했다. 구울들의 육신 곳곳이 뇌격을 이겨내지 못해 폭발했고, 밴시의 영체가 허공에 흩어졌다.
스컬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스컬컬!”
돌진 명령이었다. 대장의 명을 받은 스컬 부대는 뇌격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난입해 던전 몬스터들을 일소했다.
홍일점 준의 지휘에 따라 고블린 레인저가 진형을 갖추고 싸웠다. 그들 사이에 죽창을 든 바둑이가 끼어들었고, 준은 바둑이를 포함한 진형을 새로 갖춰 구울들을 상대했다.
욕심을 내지 않았다. 농구에서 지역 수비를 하듯 자신들의 자리를 지켰다. 공세는 고블린 레인저의 몫이 아니었다.
리쿰과 오크들은 간만의 실전에 흥분했다. 누가 뭐라 해도 전투 종족인 오크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발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구울들과 그들 사이에는 커다란 방벽이 하나 존재했다.
카타리나가 어둠 속을 질주했다.
다크 엘프의 피를 이은 그녀는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서큐버스의 피를 이은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탐욕의 마력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녀는 쉐도우 러너였다. 어둠은 그녀의 적이 아닌 우군이었다.
바닥만이 아니라 벽과 천장 모두가 카타리나의 무대였다. 벽을 달리고 천장을 박차 구울들 사이로 파고든 그녀는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양 팔을 휘둘렀다. 일순간에 검은 마력을 방출했다.
그림자의 칼날이 휘몰아쳤다. 탐욕의 마력을 잔뜩 머금은 그것은 수 미터 이상으로 늘어나 걸리는 모든 것들을 갈라놓았다. 반 영체인 밴시도 그림자의 칼날을 피할 수는 없었고, 두터운 피부 덕에 일반적인 칼날은 통하지 않는 어보미네이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림자의 칼날은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었다. 어떨 때는 거대한 사신의 낫이었고, 어떨 때는 예리한 시미터였다. 거의 순간이동이라 해도 좋을 카타리나의 기동력이 더해지니 냉병기로 펼치는 광역공격이라 해도 좋았다.
“워워! 우리 편 잘 한다!”
각기 세 방향에서 밀려오는 적들을 상대하는 사역마들 사이.
태평하게 선 용호가 짝짝 박수를 치며 사역마들을 응원했다. 용호의 곁에 선 살라미는 이래도 되냐는 눈으로 주인을 바라보았지만 용호는 적어도 저 세 방향의 전투에는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용호 자신만 강해진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사역마들도 함께 강해져야만 했다.
진화 숙련치를 쌓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목숨을 건 실전이었다. 상대가 강대하면 강대할수록, 그 전투가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더 많은 진화 숙련치를 쌓을 수 있었다.
더욱이 브리가다의 운용 또한 보다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용호는 특히 카타리나 쪽을 유심히 보았다. 짐승 같이 싸우는 엘리고스의 성장도 대단했지만 역시 카타리나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저 정도면 정말 투기장 1층에 도전해도 될 것 같았다.
땅이 울렸다. 사거리의 남은 한 방향에서도 던전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지금까지의 부재를 보충하겠다는 듯 그 숫자가 다른 방향의 몇 배에 달했다.
용호는 그쪽으로 돌아섰다. 수십 마리에 달하는 구울들이 달려오고 있음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허공에 손을 뻗어 홍련의 마창 아몬을 움켜쥐었다.
“가자, 살라미.”
용호가 말했고, 살라미는 이해했다. 자신의 라이벌인 부케팔로스가 여기 없다는 사실에 한탄하며 마력을 끌어 모았다.
용호는 질주하지 않았다. 탐욕의 마력을 아몬의 창끝에 집중시켰다.
“키아아아아!”
구울들이 어둠에서 튀어나왔다. 용호는 아몬을 당겼고, 진각을 밟으며 내뻗었다. 살라미 또한 입을 크게 벌려 불꽃을 토했다.
탐욕의 녹염이 살라미의 불꽃을 포용했다. 사거리의 한 방향- 넓은 복도 전체를 불꽃의 파도로 뒤덮었다. 구울들뿐만 아니라 어둠 그 자체를 몰아냈다.
워낙에 어마어마한 마력의 불꽃이었기에 다른 세 방향에서 싸우던 이들도 순간이나마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미소를 머금었다.
공기가 불탔다. 타는 냄새가 복도를 가득 채웠고, 사역마들은 이내 인상을 찡그린 채 저마다의 싸움에 다시 집중해야만 했다.
용호 역시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래도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지막 남은 구울의 머리통을 엘리고스가 주먹으로 박살낸 그 때 기다리고 기다렸던 루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몬 가 지하 1층 홀을 장악했습니다!]
[지금부터 마력을 공급할게요!]
천장에서 마력의 빛이 쏟아졌다.
그 빛을 마주하며 용호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빛을 피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어둠 사이에 선 마몬 가의 사역마들을 하나하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마몬 가 지하 1층.
탐욕의 왕 마몬의 진정한 거성인 ‘탐욕의 미궁’의 탐사.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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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3장 - 물병 좌의 스카자하 (수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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