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100화 (100/227)
  • < 제 32장 #5 >

    &

    투기장의 긴 복도를 지나자 언제나와 같은 등이 용호를 기다렸다.

    하얀 정장과 붉은 피부, 레드 데몬의 또 다른 상징이라 할 수 있을 붉은 꼬리.

    “왔나?”

    구시온이 씩 웃으며 돌아섰다. 처음에는 그저 밉상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런 아저씨가 귀엽다니.’

    순간 스스로의 생각에 태클을 건 용호는 마찬가지로 호방하게 답했다.

    “왔다.”

    다소 건방져 보이는 대꾸였지만 구시온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꺼워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탐욕의 왕의 후계자였다. 마몬의 12 사역마 앞이라 하여 기가 죽으면 곤란했다.

    척하니 입에 시가를 무는 구시온을 바라보던 용호가 다시 발걸음을 내딛으며 물었다.

    “카이완의 상태는 어때? 진정됐나?”

    구시온의 눈썹 끝이 살짝 꿈틀거렸다. 구시온은 입에 문 시가에 불을 붙이며 답했다.

    “자신의 층에서 쉬고 있다. 아직 좀 불안정하지만… 곧 털고 일어설 거라고 생각한다. 카이완은 그런 아이니까.”

    용호도 동의했다. 멸망을 눈앞에 둔 마몬 가를 다시 일으켜 세웠던 그녀였다. 절망과 포기는 카이완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그보다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닌가? 카이완도 투기장의 플로어 마스터 가운데 하나다. 언젠가는 네 녀석과 싸울 거다.”

    “그건 그 때 이야기고.”

    더욱이 플로어 마스터라 하여 딱히 투기장의 도전자와 원수지간인 것도 아니었다.

    투기장에서의 싸움은 진짜 목숨을 건 싸움이 아니었다. 설사 투기장에서 싸우다 죽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죽음을 가상으로 체험하는 것에 불과했다.

    물론 그렇다 하여 우습게 볼 일은 아니었다.

    고통은 진짜와 진배없었고, 죽음의 감각 역시 그러했다.

    아몬과의 수련 덕분에 이미 수십 번 이상 죽음을 체험해본 용호였지만 몇 번을 죽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죽음의 감각이었다.

    “그래, 어차피 네 녀석의 바람대로 카이완을 해방시키려면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 아이를 한 번은 쓰러트려야 할 테니까.”

    구시온이 연기를 토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용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구시온의 말에서 약간의 위화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카이완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카이완을 쓰러트려야 한다. 단순히 용호가 투기장을 정복하는 과정을 이야기한 것일까? 어쩐지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잡담은 이 정도로 하지. 바로 도전할 건가?”

    구시온의 물음에 용호는 잠시 망설였다. 방금 이야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호에 앞서 먼저 목소리를 꺼내는 자가 있었다. 허공에서 홍련의 불길이 타올랐다.

    [괴력의 구시온. 나의 오랜 벗이여.]

    [그대가 할 이야기는 그것만이 아닐 텐데?]

    어쩐지 모르게 약간의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근엄하기만 한 아몬답지 않은 말투였기에 용호도 절로 호기심이 생겼다.

    반면 구시온은 인상을 구겼다. 아몬 쪽으로 연기를 세게 토한 뒤 용호를 돌아보았다.

    “아몬에게 창술을 배운다고 했지?”

    “그런데?”

    “정말로 ‘창술’ 하나만 배우고 있나 보군.”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용호는 섣불리 묻는 대신 구시온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구시온은 다시 한 번 아몬을 돌아본 뒤 용호에게 물었다.

    “네 녀석 수하 중에 혹시 레드 데몬은 없나? 쭉정이 말고 제대로 된 녀석으로. 그러니까 싸움 좀 하는?”

    “하나 있다.”

    용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고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였지만 레드 데몬이라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오필리아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레드 데몬을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설마하니 동족이라서?

    구시온이 바로 해답을 제시했다.

    “그 녀석한테 체술을 배워라. 정확히는… 마력을 운용해서 몸을 쓰는 법을 말이다.”

    “마력이라면 이미 쓰고 있지 않나?”

    용호가 되물었다. 타당한 의문이었다. 마계에 도착한 이래 지금까지 용호는 크고 작은 싸움에서 모두 마력을 활용하였다. 애당초 마력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구시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기하게도 허공에 시가를 비벼 끄며 말했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설명은 내 특기 분야가 아니다. 그러니 일단은 보여주지.”

    거기서 말을 끊은 구시온은 연달아 헛기침을 몇 번 토한 뒤 자세를 잡았다. 허공을 향해 가볍게 두 번 주먹을 내질렀다.

    “차이점을 알겠나?”

    카타리나는 귀를 축 늘어트리며 미간을 좁혔다. 두 번째 주먹이 첫 번째 주먹보다 아주 약간 더 빠르고 강하다는 것 외에는 그리 차이가 없었다. 일단 구시온의 자세 자체는 동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용호는 달랐다. 마력의 흐름을 보았고, 구시온이 말한 차이가 무엇인지 간파했다.

    “마력의 흐름이… 달라. 달랐어. 두 번째에 뭔가 더… 몸 안에서 폭발? 아니 순환?”

    용호가 횡설수설하는 가운데 구시온은 눈을 크게 떴다. 설마하니 정말로 차이를 분간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것도 꽤나 정확한 분별이었다.

    “아몬 놈이 나한테 설명 시킨 이유가 있었구먼.”

    아몬은 무어라 말을 보태는 대신 그저 희미하게 웃었다. 구시온은 여전히 차이를 묘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용호에게 직접적으로 말했다.

    “마계의 존재들은 모두 마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건 알지?”

    “알고 있다.”

    “그래, 그래서 우리 마계인들은 무슨 짓을 하든 마력을 운용하게 되어 있다. 방금 내 주먹질은 그걸 좀 더 심화한 것이고.”

    용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구시온이 스스로 말했듯이 엉망인 설명이었다. 하지만 용호는 스스로 본 것과 지금까지의 경험을 조합해 보았다. 어렵사리 구시온의 말을 재조립했다.

    “움직임에 맞춰 마력을 순환시켰다는 건가? 그러니까 주먹질을 할 때 거기에 최적화된 마력을 운용해서 속도와 위력을 배가시켰다는 거지?”

    구시온의 얼굴이 밝아졌다.

    “오, 정확해. 우리 작은 나리 똑똑한데?”

    “작은 나리?”

    “아무튼. 방금 말한 그대로다. 움직임에 맞춰 마력을 활용하면 그 위력을 몇 배는 배가시킬 수 있지. 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고 말이야.”

    용호의 호칭 문제가 나오자 얼른 말을 돌리는 구시온이었다.

    용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 무협지에 나오는 무공과 비슷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

    “우리 마계인들은 애당초 태어나기를 마력에 기반해 태어났기 때문에 심화의 차이는 있더라도 다들 본능적으로 마력을 활용한다. 네 호위 기사인 귀쟁이 아가씨도 그럴 거다. 저 가느다란 몸으로 폭발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것도 다 그 덕분이지.”

    카타리나의 귀가 조금 더 축 늘어졌다. 구시온이 무슨 말을 하는지 대강은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언제 어떻게 마력을 활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구시온의 말대로 본능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하는 이족 직립 보행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 전신의 뼈와 근육이 반응해야 했고, 절묘한 균형이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 과정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넌 그렇지 않아. 인위적으로 ‘한 방’을 날릴 때 마력을 쓰기는 하지만, 그건 뭐라고 해야 하나… 그건 마법을 쓰기 위해 마력을 모으는 거랑 비슷해. 자연스럽게 마력을 운용하는 것이 아니야. 이건 아마도 네가 마계 출신이 아닌 인계 출신이라 그런 걸 거다.”

    스스로의 설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구시온은 자기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용호 역시 이번에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종족인 레드 데몬은 너도 알겠지만 마법에는 젬병이다. 하지만 마력을 운용해 신체 활동을 하는 쪽으로는 그야말로 타고났다고 할 수 있지. 그러니 네 수하인 레드 데몬 하나를 족쳐서 마력 운용을 배워라. 그것만으로도 넌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을 거다.”

    아가레스의 정수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용호의 육신은 문자 그대로 환골탈태를 이루었다. 그런 지금의 육체에 제대로 된 마력 운용이 더해진다면 실로 굉장한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을 터였다.

    구시온은 할 말 다 끝났다는 듯 다시 새 시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용호는 잠시 그런 구시온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씩 웃어보였다.

    “구시온, 너도 레드 데몬이지 않나?”

    “엉?”

    반사적으로 되물었지만 이미 용호의 얼굴이 대답을 내포하고 있었다. 구시온이 이제 막 불을 붙인 시가를 다시 허공에 비벼 껐다. 용호를 내려다보았다.

    “확인 차 묻는 건데, 설마 나보고 가르쳐 달라는 건가?”

    “사상최강의 레드 데몬은 너라고 들었으니까. 이왕이면 최고에게 배우는 게 좋지 않겠어?”

    용호의 말에 구시온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사상최강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했지만, 주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구시온이 웃었다. 폭발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이나 그러하다 말했다.

    “정말이지. 천 년 만에 너 같은 놈은 처음이다. 카이완조차도 내게 뭘 가르쳐 달라는 말은 안 했는데.”

    그 정도가 아니었다. 대부분은 제대로 말도 붙이지 못한 것이 괴력의 구시온이었다.

    구시온은 자세를 바로 했다. 팔짱을 끼고 용호를 관찰하듯 내려다보았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네가 단번에 7층까지 돌파한다면 가르쳐 주도록 하지.”

    현재 용호가 4층을 돌파한 상태이니 자그마치 3개 층을 단번에 돌파하라는 소리였다.

    지금까지 느긋하게 바라보던 아몬이 처음으로 약간은 성난 기색을 보였다. 카타리나는 걱정 가득한 눈으로 용호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주인이 어떤 대답을 할지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좋아, 그 조건 받아들이지.”

    용호가 답했고, 구시온은 씩 웃었다. 할 테면 해보라는 듯 여유롭게 투기장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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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시온은 시가 연기를 길게 토했다. 엉망진창이 되어 투기장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용호를 내려다보았고, 기가 찬다는 듯 허탈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하란다고 진짜 하냐?”

    아예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무리일거라 생각하고 내건 조건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더 강한 플로어 마스터와 맞붙게 되는 투기장이었다. 더욱이 다섯 개 층을 기준으로 난이도가 급상승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6층의 벽에서 무너질 거라 예상했었다. 그리고 설사 6층을 돌파한다 할지라도 7층의 플로어 마스터인 자이언트 베어는 결코 녹록한 적이 아니었다.

    그런데 죄다 돌파했다. 아무리 브리가다와 탐욕의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해도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아몬 역시 놀랐다. 구시온 곁에서 타오르던 홍련의 불길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의 어린 주인이여.]

    [그대의 탐욕… 아니, 번뇌는 실로 굉장하군. 망상만으로 그 정도의 탐욕을 이끌어낼 줄이야…….]

    탐욕의 근원은 욕망이었다. 그리고 용호의 탐욕은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구시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번뇌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비밀로 하기로 했다.]

    “비밀?”

    [그렇다, 비밀. 음… 솔직히 약간 민망하기도 하군.]

    “민망?”

    당장이라도 둘의 대화를 끊어버리고 싶은 용호였지만 온 몸에 힘이 없었다. 6층의 플로어 마스터였던 거대 거미 옹골리언트에게 당한 독 때문인지 손끝이 떨렸다.

    “가주님. 괜찮으세요? 제 목소리 들리시죠?”

    오직 카타리나만이 진심으로 용호를 걱정했다. 울상인 얼굴로 귀를 늘어트렸다.

    ‘해롭다.’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숨결도 그러했고.

    언젠가 주워들은 불경을 암송하는 것으로 마음을 가라앉힌 용호는 숨을 크게 골랐다. 카타리나의 부축을 받아 일어선 뒤 7층의 플로어 마스터가 남긴 마몬의 마력을 흡수했다.

    “후우.”

    효과가 있었다. 마력의 증강도 증강이었지만 몸 안에 활력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반쯤은 오기로 돌파한 7층이었다. 덕분에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얻은 것들이 많았다.

    마몬의 마력과 보상만이 아니었다. 용호 자신과 대등 혹은 더 강한 존재들과 연달아 사투를 벌인 덕분에 진화 숙련치가 거의 다 차올랐다. 조금만 더 하면 다음 진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시온과의 약속이 있었다.

    “약속, 지킬 거지?”

    “그래, 그래야지. 다만 오늘은 무리일 것 같으니 다음에 방문하면 기초부터 가르쳐주마.”

    구시온도 흡족했다. 솔직히 이제는 약속이 없어도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용호의 성장은 그만큼이나 빠르고 눈부셨다.

    “그런데 너, 수하 중에 제대로 된 힐러는 있나? 하다못해 치료시설이라든가.”

    투기장에서 입은 부상은 진짜 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신은 진짜와 진배없는 타격을 받았다. 강한 정신적 충격은 육체에도 손상을 가하기 마련이었으니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하지만 용호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현재 마몬 가에서 최고의 힐러는 용호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그나마도 진화나 승급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였다.

    이번에 새로 얻은 오로스가 떠오르긴 했지만 그는 마몬 가의 던전이 아니라 자유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당장에 쓸 수 있는 힐러가 아니었다.

    용호와 카타리나의 표정이 모든 것을 대변했다. 구시온은 한숨을 토했다.

    “이렇게 된 이상 대출혈 서비스다.”

    구시온이 허공에 손가락을 놀렸다. 마치 문서를 살펴보듯 눈동자를 굴리다가 말했다.

    “1층… 그러니까 네 기준으로 지하 1층에서 ‘스카자하’를 찾아라.”

    껍데기 마몬 가의 아래, 진정한 탐욕의 미궁의 1층에 자리한 존재.

    스카자하라는 이름에 카타리나가 눈을 크게 떴다. 용호도 그 이름을 기록에서 본 적이 있었다.

    구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사의 마녀 스카자하. 마몬의 12 사역마 가운데서 회복을 담당하는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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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 개 층을 단번에 돌파해서 그런지 투기장을 나와 마몬 가의 던전에 돌아오자 상상 이상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잔소리를 늘어놓는 루시아와 엘리고스를 겨우 달랜 용호는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시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모두가 잠든 새벽녘에 깨어난 용호는 마왕의 방을 나섰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공간의 문을 찾았다.

    공사 중이라 하나 작업 중인 사역마는 없었다. 카이완의 시대에 이미 외형적인 공사 자체는 거의 다 끝났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간의 문을 운용할 마법진의 숙성- 즉 충분한 시간과 마력이었다.

    용호는 공간의 문 앞에 섰다. 마치 게임에서나 보던 포탈같이 생긴 공간의 문이었다. 크고 동그란 금속 원이 제단 위에 올라가 있는 형태였다.

    한참이나 공간의 문을 바라보던 용호는 피식 웃었다.

    ‘제일 그리운 게 치킨과 콜라라니. 나도 막장이구나.’

    부모님 얼굴도 생각났지만, 먹을 것 생각이 간절했다.

    마계에 온지 벌써 수개월.

    그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몇 번이나 되는 목숨의 위기를 넘기며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용호는 숨을 크게 골랐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공간의 문을 바라보았다.

    루시아는 용호를 위해 침묵했다. 그리고 그건 복도에 자리한 카타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흘렀다.

    용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련을 두지 않고 돌아섰다.

    언젠가는 다녀올 터였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마몬 가의 모두를 버려두고 무책임하게 떠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용호 자신은 마몬 가의 가주. 새로운 탐욕의 왕이었다.

    “그러니까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소리 내어 말했다.

    복도 쪽에서 파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용호는 키득 웃었다.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내딛었다.

    앞을 향해 나아갔다.

    제 32장 - 공간의 문 끝, 제 33장 - 물병 좌의 스카자하로 이어집니다.

    < 제 32장 #5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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