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95화 (95/227)
  • < 제 31장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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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의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첫 매물은 이계의 용사 아스란입니다.”

    본 경매장 안은 마치 오페라 하우스 같았다. 큰 무대가 있었고, 그 무대를 바라보는 형태로 좌석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다만 좌석의 형태가 조금 특수했다. 적게는 두 개에서 많게는 네 개 정도의 좌석들이 각각 한데 묶여 덩어리를 이루었고, 각각의 덩어리 사이에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극장 커플석의 발전형인가?’

    용호는 잠시 단기 알바로 일했던 극장을 떠올려 보았다.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차라리 TV에서 곧잘 나오는 연말 시상식장에 더 가까울 것 같았다.

    시트리는 딱 중간이라 할 만한 곳으로 용호를 인도했다. 일자형의 긴 소파와 마찬가지로 긴 테이블에는 ‘27’이란 숫자가 붙어 있었다.

    “용감하게도 ‘폭력의 왕’의 던전을 공격한 자입니다. 폭력의 왕께서 자비를 베푸시긴 했지만, 이렇게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번 매물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용호가 자리를 찾는 와중에도 경매는 계속 진행되었다.

    시트리는 말없이 소파의 가장 왼쪽에 자리를 잡았고, 용호는 오른손으로 카타리나의 왼손을 잡고 있는 터라 잠시 주저하다가 시트리의 옆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카타리나는 소파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용호와 시트리 사이에는 사람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남았다. 손을 잡고 있다고는 해도 사실상 바싹 붙어 앉은 카타리나와는 꽤나 눈에 띄는 차이였다. 아직 메우지 못한 시트리와의 거리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시트리는 개의치 않았고, 용호는 자리에 앉고 나서야 겨우 무대를 돌아볼 여유를 찾았다.

    “용사답게 만능에 가까운 자입니다. 강력한 검사인 동시에 마법사이며 뛰어난 전술가이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팔방미인이지요. 지금 이대로도 좋지만 언데드로 부활시켜도 만족스러운 성능을 보여줄 것이 분명합니다.”

    경매를 진행하는 것은 코끼리 가면을 쓴 남자였다. 참으로 기묘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터라 보이는 것은 그저 잘 차려입은 정장뿐이었는데도 무척이나 섹시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던 터라 용호는 적잖게 당황했다.

    그런 용호의 심정을 헤아리기라도 했는지 시트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큐버스 로드 카롯이군요. 최속의 날개 사마엘의 심복 가운데 하나죠. 무의식중에도 타인을 유혹하는 위험한 자랍니다. 그의 유혹은 남녀를 가리지 않으니 조심하세요.”

    싱긋 눈웃음을 짓는 것으로 시트리가 말을 마쳤다. 용호는 그 말 그대로 시트리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입에 담지는 않았다. 다시 경매에 집중했다.

    코끼리 가면의 사내- 인큐버스 로드 카롯의 옆에는 오늘의 매물인 용사 아스란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겉모습만 보자면 평범한 자였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갈색이 섞인 탁한 금발도 그러했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체구 역시 그러했다. 용호는 좀 더 자세히 용사를 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의 두 눈이 죽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위 말하는 썩은 동태 눈깔보다도 더했다. 검정에 가까운 회색 눈동자에는 아무런 빛이 없었다.

    화려한 갑옷이 어울리지 않는 것은 체구나 외모 때문이 아니라 바로 저 눈 때문이었다.

    용호는 버그림을 떠올려 보았다.

    삶의 희망을 잃고 그저 살아있기만 하던 그.

    머릿속에 절로 이런저런 망상이 떠올랐다. 혼자서 폭력의 왕에게 덤비지는 않았을 터이니 저 용사에게도 동료들이 있었을 터였다. 그 동료들은 어찌되었을까. 모두 다 죽고 혼자 살아남은 것일까? 낯선 이계로 끌려와 노예 노릇을 하게 된 사실에 절망하고 있을까?

    “소개는 이쯤 하도록 하죠.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가는 5,000입니다.”

    최하급 사역마라면 수백 마리를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

    용호는 쓸데없는 망상을 지우고 객관적인 눈으로 아스란을 보았다. 본 경매장 안에서도 휘몰아치는 마력의 흐름에 맞서지 않고 순응했다. 자연스럽게 진화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이름 : 아스란 (남)]

    [종족/직위 : 인간]

    [힘 특화 4레벨 | ★★★ (3)]

    [체력 특화 4레벨 | ★★★ (3)]

    [마력 특화 7레벨 | ★★★☆ (3.5)]

    [기량 특화 6레벨 | ★★★☆ (3.5)]

    사역마가 아닌 터라 대강의 정보밖에 볼 수 없었지만 용호는 감탄과 실망을 동시에 느꼈다.

    용사 아스란은 용호가 지금까지 감별한 존재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레벨을 가진 자였다. 하지만 진화 잠재력은 그렇지 않았다.

    용호는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카타리나의 숨결이 평온했다. 용호 자신과 마력을 공명시킨 덕분이긴 했지만, 그 점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무척이나 빠른 적응이었다.

    용호 자신의 뿔은 네 개 였고, 카타리는 세 개였다. 이 차이는 컸다. 아마 마력의 절대치만 따진다면 카타리나는 용호 자신의 절반 이하일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타리나는 경매장 안의 마력 흐름에 적응했다. 매섭게 휘몰아치는 마력을 부드럽게 받아넘기며 스스로를 지켜냈다.

    ‘그러고 보면.’

    스스로를 퇴화시킨 아몬을 제한다면, 카타리나는 지금까지 용호가 감별한 존재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잠재력의 소유자였다. 용사 아스란에게조차 없는 별 네 개짜리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가장 낮은 잠재력조차도 용사 아스란과 필적하는 별 세 개 반짜리였다.

    카타리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원석이었다. 어떤 식으로 커팅하느냐에 따라 그 아름다움과 가치가 달라질 터였다.

    “가주님?”

    용호의 시선을 눈치 챈 카타리나가 작게 물었고, 용호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적당히 답한 뒤 진화의 권능을 해제했다.

    용사 아스란은 드래곤 가면을 쓴 자에게 낙찰되었다.

    경매는 계속 진행되었다. 용사 아스란처럼 사람이 매물로 올라올 때도 있었고 무언가 진귀해 보이는 아티펙트가 올라올 때도 있었다.

    용호는 나름대로 경매를 즐겼다. 사람이 매물로 올라올 때는 진화의 권능으로 잠재력을 살폈고, 물건이 올라왔을 때는 탐욕으로 나름의 가치를 매겨보았다.

    견문을 넓힌다는 목적 자체는 채우고도 남을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열세 번째 매물이 무대 위에 올라왔다.

    “이번에는 잠시 쉬어가는 코너라 생각하셔도 될 것 같군요. 아인켈의 저주받은 왕관입니다.”

    토끼 가면을 쓴 바니 걸 차림의 여인이 밀고 온 수레 위에는 작은 왕관이 올라가 있었다. 순수하게 금속으로만 만든 왕관은 낡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보관이 제대로 안 되었는지 여기저기가 상해 있었다.

    카롯은 연이어 왕관에 대한 설명을 했다. 쉬어가는 코너라 언급한 이유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시답잖은 설명들이었다. 왕관에 걸린 저주조차도 장난스러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용호는 연신 마른 침을 삼켰다. 카롯의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탐욕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탐욕은 늘 가치 있는 것에 집착했다. 용호 자신이 갈망하는 것을 가리켰다.

    탐욕은 왕관을 가리키지 않았다. 스멀스멀 일어난 그것은 여기저기에 가지를 뻗었지만 그 어느 것도 왕관과는 무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호는 왕관에 깊은 탐심을 느꼈다.

    탐욕 또한 그러했다. 가지를 뻗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 왕관을 손에 넣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감각이었다.

    이제까지 이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정말로 그러할까?

    이런 감각을 느꼈던 적이 없었던 걸까?

    비슷한 감각은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본 경매장에 들어오기 직전에 귀신 가면의 사내를 마주했을 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때 느꼈던 감각과 비슷했다. 분명 같지 않고 달랐지만 유사점이 있었다.

    “가격은 100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카롯의 목소리가 상념을 끊었다. 용호는 반사적으로 시트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시트리는 용호가 자신을 돌아볼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부드럽게 용호를 맞이하였다.

    용호는 그런 시트리의 시선에 당황했지만 잠깐 뿐이었다. 주저하는 대신 약간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가문에 돌아가는 즉시 대금을 지불하겠습니다. 대금을 대여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시트리는 미소로 응답했다. 용호에게 가타부타 말하는 대신 가늘고 긴 손가락을 들어 경매에 참여했다.

    애당초 장난스런 매물임을 증명하듯이 왕관을 탐내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도 시트리가 조금 세게 가격을 부르고나니 완전히 사라졌다.

    최종 낙찰가는 500. 사치 부릴 형편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 금액이라면 충분히 부담할 수 있었다.

    왕관의 가격이 올라갈 때마다 제발 따라붙지 말라 기도하던 용호는 안도의 숨을 토했다. 시트리는 그런 용호가 다시 평온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말했다.

    “그럼 이제 그만 돌아갈까요? 큰물도 충분히 경험하셨고, 호위 기사도 벽을 하나 넘은 데다가 원하시는 매물도 손에 넣으셨으니까요.”

    벽을 하나 넘었다는 말에 용호는 급히 카타리나를 돌아보았다. 카타리나는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깜박였지만 이내 이해했다. 그리고 그것은 용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타리나의 마력 컨트롤 능력이 경매장에 들어오기 전보다 눈에 띌 정도로 향상되었다. 마력 컨트롤 능력이 반강제적으로 상승한 것은 용호 자신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상승폭만을 따진다면 카타리나가 월등했다.

    “감사합니다.”

    “뭘요, 약속을 지킨 것뿐인걸요.”

    반사적으로 나온 감사 인사에 부드럽게 응대한 시트리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들어올 때 그러했던 것처럼 자연스런 발걸음으로 용호와 카타리나를 밖으로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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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탐의 왕이 본 경매장 안에 들어선 것은 경매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최속의 날개 사마엘과 나눈 비밀스런 거래가 꽤나 성공적이었기에 식탐의 왕은 흡족함을 감추지 않았다.

    앵무새 가면의 여자가 그런 식탐의 왕에게 공손한 손길로 카탈로그를 넘겼다. 오늘 경매에 올라온 매물들이 기록된 카탈로그였다.

    카탈로그에는 단순히 그림이나 설명만이 들어있지 않았다. 마법으로 순간을 기록한 이 카탈로그를 사용하면 매물 그 자체를 생생하게 느끼는 것이 가능했다.

    가벼운 손놀림으로 페이지를 넘기던 식탐의 왕은 어느 순간 손을 멈췄다. 식탐의 왕에게 집중하고 있던 앵무새 가면의 여자가 작고 단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주인님, 혹여 관심 가는 매물이라도 있으신지요.”

    식탐의 왕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뚫어져라 카탈로그만을 노려보았다. 앵무새 여자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대신 슬쩍 카탈로그 안을 살펴보았다. 식탐의 왕의 손이 멈춘 페이지에는 '아인켈의 저주받은 왕관'이라는 매물이 올라 있었다.

    아이들 장난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별 거 아닌 물건이었다. 걸려있는 저주 또한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탐의 왕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한참이나 왕관을 노려보다가 낮은 목소리를 토했다.

    “이 매물을 낙찰 받은 건 누구지?”

    왕의 물음이었다. 하지만 앵무새 가면의 여자는 답할 수 없었다. 익명 경매의 경우 던전 상회는 절대로 매입자의 정보를 누설하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앵무새 가면의 여자는 쥐어짜낸 목소리로 겨우 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떤 가면을 쓴 자가 왕관을 낙찰 받았는지라도 알아내야 했다. 경매장 안에서 수소문을 한다면 그 정도 정보는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앵무새 가면의 여자가 자리를 나서자 식탐의 왕은 긴 숨을 토했다. 손을 뻗어 허공에 떠오른 왕관의 영상을 어루만져 보았다.

    왕관에 걸린 저주는 조잡했다. 왕관의 형태 또한 별다른 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저 왕관을 구성하고 있는 금속.

    평범한 이들은 알아볼 수 없었다.

    뛰어난 안목을 가진 대장장이들조차도 저 금속의 진가를 알아보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식탐의 왕은 알 수 있었다.

    그가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여서가 아니었다.

    ‘식탐’이 말해주고 있었다.

    오랜 세월 신기를 곁에 둔 육신이 소리치고 있었다.

    일곱 개의 대죄. 칠대 죄악.

    그것은 마신왕의 혼의 파편. 저 지고한 존재의 편린.

    일곱 개의 신기.

    그것은 마신왕의 육의 파편.

    그리고 신기가 되지 못한 파편들. 수십, 수백 개가 넘는 그것들.

    저 왕관을 구성하고 있는 금속은 신기가 되지 못한 파편의 일부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신왕의, 저 위대한 존재의 육신이었다.

    신의 금속.

    그래, 그것 말고 그 어떤 표현이 저 금속에 어울릴 것인가.

    식탐의 왕은 치밀한 자였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왕관을 구매한 자는 과연 왕관의 진면목을 알아본 것일까. 그저 유흥거리로 왕관을 구매한 것은 아닐까.

    유흥이라면 상관없었다.

    하지만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왕관의 진면목을 알아본 것이라면.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 경매장 안에 자리한 왕은 식탐의 왕 자신뿐이었다. 다른 왕이 존재했다면 못 알아봤을 리가 없었다. 현존하는 여섯 왕 모두가 대면했고, 심지어 겨뤄본 적도 있는 식탐의 왕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어째서 석연찮은 기분이 드는 것일까.

    식탐의 왕은 앵무새 가면의 여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경매가 시작하기 전에 마주했던 하얀 가면을 쓰고 있던 애송이.

    식탐의 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의 기우이기를 바라며 카탈로그의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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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고양이 마차에서 내린 용호가 시트리를 마주하고 말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 것 같았는데도 아직 밤은 끝나지 않았다. 새벽은 아직도 저 먼 곳에 있었다.

    시트리는 까르르 웃었다. 정감어린 눈으로 용호를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고객님이 더더더더 큰 고객님이 되시면 저도 행복하답니다. 저 스스로를 위해 한 일이었다고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시트리가 돌연 말끝을 흐렸다. 눈을 가늘게 뜨더니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보기 좋지만 이제 그만 손을 놓으셔도 되지 않을까요?”

    용호는 눈을 깜박였고, 이내 이해했다. 경매장을 나오고 마몬 가의 던전에 돌아올 때까지 꼭 붙잡고 있던 카타리나의 손에 절로 시선이 갔다.

    카타리나는 귀를 파닥이며 당황했고, 용호는 화들짝 놀라 손을 놓았다. 길이는 달랐지만 두 사람의 귀 모두가 붉게 달아올랐다.

    시트리는 침묵으로 두 사람을 놀리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를 수습하듯 가슴골 사이에서 왕관을 꺼내 용호에게 내밀었다.

    “왕관 여기 있습니다. 사랑하는 고객님은 안목마저도 뛰어나시네요.”

    안목이 뛰어나다는 것은 장난일까, 아니면 정말 이 왕관에 무언가 가치가 있는 것일까.

    용호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시트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만 들어가 보세요. 엘리고스가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엘리고스는 모르겠지만 하이 미어 캣들이 자다 말고 일어나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용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시트리에게 예를 표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네, 저 역시도. 사랑하는 고객님을 다시 뵐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시트리 역시 예를 표했다. 카타리나는 잠시 어떻게 인사할까 고민하다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용호와 카타리나가 나란히 마몬 가의 던전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시트리는 이내 쓸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시 고양이 마차 위에 올랐다.

    용호의 모습. 그 옆에 서 있던 카타리나.

    마몬과 엘룬을 떠올리게 했다. 시트리는 밤하늘을 달리는 고양이 마차 위에서 오랜 옛날을 추억했다. 밀려오는 새벽을 마주하며 작은 목소리로 불러보았다.

    “마몬.”

    위대한 탐욕의 왕.

    시트리 자신이 사랑했던 유일한 남자.

    그리고.

    시트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잊고 싶지만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사실을 기억했다.

    천 년도 더 지난 먼 옛날.

    마몬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그 날.

    시트리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몬의 목숨을 끊었던 바로 그 손을 가슴에 안았다. 다시 한 번 마몬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물기 어린 목소리만이 어둔 밤 하늘 사이를 맴돌았다.

    제 31장 - 던전 상회 경매장 끝, 제 32장 - 공간의 문으로 이어집니다.

    < 제 31장 #2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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