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85화 (85/227)

< 제 28장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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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가 그간 오필리아의 예속 사역마 등록을 미룬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개중 핵심이 되는 이유는 단순했다.

용호에게는 여력이 없었다.

예속 사역마는 일반 사역마들과는 다른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

평범한 사역마들은 그저 계약으로 엮인 존재에 불과했다. 사역마의 종류에 따라 마법적인 구속력이 뒤따른다는 것이 다를 뿐, 그 외의 것만 보자면 인계에서 흔히 하는 서면 상의 계약과 대동소이했다.

예속 사역마는 일반적인 사용인과 사용자의 관계 이상을 의미했다. 영혼이 서로 이어진 관계이니 어찌 보면 혈육 이상의 밀접함이었다.

가주가 강해지면 예속 사역마도 강해지고, 반대로 강한 예속 사역마를 거느리거나 예속 사역마가 강해지면 가주 역시 강해진다.

그렇다면 예속 사역마를 늘리는 것만으로도 가주는 강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예속 사역마를 한도 끝도 없이 늘리는 가주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예속 사역마를 늘림에 따라 기대되는 성장치에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예속 사역마를 삼을 수 있는 가주의 능력에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마력의 총량, 지배력, 영혼의 크기.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간단히 보자면 결국 가주의 여력이었다.

마력과 영혼이 강대한 가주일수록 더 많은 예속 사역마들을 거느릴 수 있었다.

일반적인 가주들이 예속 사역마의 숫자를 셋에서 넷, 많아봐야 다섯 정도로 제한하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비유하자면, 용호가 가진 여력은 지금까지 열 개의 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 엘리고스가 두 칸을, 카타리나와 스컬이 각각 세 칸을 차지했다. 이미 예속 사역마 셋에게 여덟 칸을 할애한 상태인 셈이었다.

남은 것은 겨우 두 칸이었는데 오필리아는 네 칸 이상을 요구하는, 용호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자원을 요구하는 사역마였다.

용호가 지금까지 아몬을 예속 사역마화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비록 용호를 위해 스스로의 힘 대부분을 봉인하고 퇴화한 아몬이었지만 그는 참으로 지고한 존재였다. 엘리고스와 카타리나, 스컬 등의 예속 사역마 등록을 모두 포기한다 할지라도 현재의 용호가 아몬을 예속 사역마로 삼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몬과 동격의 존재를 자그마치 열 두 명이나 예속 사역마로 삼은 탐욕의 왕 마몬은 실로 규격 외의 존재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용호는 처음 마몬 가의 가주가 된 이래 끊임없이 강해졌다. 하지만 용호가 성장하는 만큼 카타리나를 비롯한 기존의 예속 사역마들 역시 성장했다.

뿔이 네 개가 되는 극적인 성장을 이룬 덕분에 마력의 총량이 크게 늘긴 했지만 지배력이 마력의 급격한 성장을 따라잡지 못했고, 용호에게는 스스로의 마력을 완벽히 통제하기 위한 훈련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며칠.

투기장을 연달아 돌파해 마력의 총량을 늘리는 한 편 뒤틀림을 흡수했을 때처럼 성장한 마력을 재편한 결과 - 용호는 이를 조각 모음이라 불렀다. - 용호는 드디어 충분한 여력을 손에 넣었다.

“지금 하는 건 어디까지나 약식이야. 조만간에 던전에 들려서 루시아에게도 등록을 해야 할 거야.”

예속 사역마는 가주와 던전 모두에 예속된 존재였다. 용호가 당부하듯 말하자 오필리아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은근한 눈빛으로 용호를 재촉했다.

오필리아는 강해지고 싶었다.

평생 강함에 숙원을 둔 아버지를 보고 자랐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선술집의 여주인 역할을 수행하며 그녀는 참으로 많은 사역마들을 보았다.

마계는 약육강식.

더욱이 마력의 강약이 수명과 노화까지도 결정하는 세상이었다.

누구나 성장을 갈망했다.

누구나 더 크고 강한 마력을 원했다.

하지만 한계라는 것이 존재했다.

부단한 수련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무척 드물었고, 참으로 힘들고 지나한 과정을 필요로 했다. 더욱이 극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벽을 깨지 못하고 주저앉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오필리아 역시 벽에 부딪힌 상태였다.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수행을 거듭하고 있기는 했지만 기술의 예리함은 더해질 지언정 마력의 성장은 사실상 몇 년째 제자리걸음인 상태였다.

그렇기에 갈망했다.

오필리아는 조급한 마음을 억누르며 눈을 감았다. 용호 앞에 무릎 꿇었다.

용호는 마찬가지로 자세를 낮춘 뒤 두 손을 오필리아의 어깨 위에 올렸다.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해 이마를 맞대었다. 이미 오필리아의 이마에 각인되어 있던 사역마의 표식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끝났다.”

이마를 맞대고 1분에서 2분.

용호가 숨을 길게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필리아는 멍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이게 끝?

정말로 이걸로 끝?

감정과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눈빛에 용호 역시 약간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루시아가 가르쳐준 대로 했는데 설마하니 실패한 것일까?

하지만 속단이었다. 용호와 오필리아는 거의 동시에 영혼의 충격을 경험했다. 지켜보고 있던 카타리나와 스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용호는 포효했다. 네 개의 뿔이 모두 드러났고, 감추어져 있던 마력이 해방되었다.

오필리아는 전율하며 비명과도 같은 울부짖음을 토했다. 그녀 역시 작게 만들어두었던 뿔들이 본모습을 드러냈다. 이마에 난 두 개의 뿔 사이로부터 숨어있던 세 번째 뿔이 거칠게 돋아났다.

오필리아는 본래부터 뿔이 세 개였었다.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강맹한 힘이 뿔을 따라 흘렀다. 용호의 예속 사역마가 됨에 따라 오필리아는 그토록 갈망하던, 지난 몇 년간 잊고 있었던 성장의 쾌감을 누렸다.

오필리아를 수중에 넣음으로써 용호가 강해지자 카타리나와 스컬 역시 영향을 받았다. 당사자인 용호와 오필리아 정도는 아니었지만 둘 모두 힘의 성장을 체감했다.

바 안에 강렬한 마력이 요동쳤다. 가주와 그 예속 사역마들의 마력이었기에 그 색과 속성은 다르다 하나 참으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한참을 포효하던 용호는 거친 숨을 토하며 오필리아를 내려다보았다. 스스로의 양 팔을 끌어안으며 괴성을 토하던 오필리아 역시 고개를 들어 용호를 보았다.

이전과는 다른 유대감이 느껴졌다. 용호가 눈빛만으로도 카타리나와 소통했듯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단편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여기 방음되는 거 맞지?’

오필리아가 지친 가운데 화사하게 웃었다. 용호는 그런 오필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육성으로 말했다.

“마몬 가의 예속 사역마가 된 것을 환영한다. 빼도 박도 못할 노예 계약이니까 각오 단단히 하라고?”

“지금까지랑 뭐 크게 달라질 거 있나요?”

용호의 손을 마주잡으며 오필리아는 받아쳤고, 가주와 예속 사역마는 유쾌한 미소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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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가 자유도시에 도착하고 한나절이 흐른 깊은 밤.

자유도시 중앙광장 지하에 위치한 밀실에 삼 개 세력의 수장들이 모였다. 정례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원탁 앞에 둘러앉은 그들 뒤로는 아무도 없었다. 심복 하나 거느리지 않고 수장들끼리 만나는 것이 이 회의의 원칙이었다.

“그래서, 효과는 좀 있었나?”

조급함이 섞인 다곤의 물음에 오필리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림도 없더라고. 평소에도 주지육림 속에서 사는지 애들을 몇이나 붙였는데도 별로 효과가 없어. 옆에 끼고 다니는 호위기사 봤잖아? 아직 다 확인하진 못했지만 예속 사역마들도 쭉쭉빵빵한 미녀들일게 분명해.”

말미에 지은 미소가 어째 야릇하면서도 묘했지만 그런 것에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미치광이 오로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호색한인가.”

나쁘지 않았다. 지금 자유도시 수장들에게 필요한 것은 앞으로 받들어 모실 주군이 아니라 당장의 위기를 함께 맞서나갈 용병이었다.

호색한이라는 사실은 결점이라기보다는 그저 성격적 특성에 가까웠다.

오필리아 말대로 여자에 익숙한 호색한이라 해도 어찌되었든 여자를 좋아한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이용해먹을 구석이 있을 터였다.

“중요한 건 마몬 가의 가주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포라스 수준이라면 이쪽이 곤란해.”

오로스가 말을 보태자 다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필리아는 오른팔에 턱을 괴며 대꾸했다.

“자유도시의 조력에 응한 건 그래도 마몬 가 하나뿐이었잖아? 더욱이 우리와 대등한 전력이 하나라도 더 생긴다면 그건 꽤 의미 있는 일일 텐데? 마몬 가의 사역마들을 제한다고 해도 말이야.”

“우리의 적은 아가레스다. 결코 쉽지 않아. 우리 셋 모두 전장에 나서야 할 거다. 아마도 전력을 다해야겠지. 그런 강적을 상대로 둔 만큼 마몬 가의 가주가 얼마나 강한지 알아두는 것은 중요하다.”

오로스의 말은 정론에 가까웠다. 오필리아가 무어라 대꾸하기도 전에 다곤이 입을 열었다.

“그냥 한 판 붙어 볼까?”

이것저것 헤아리기 귀찮다는 투였다. 오로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랬다가 지면?”

“응?”

“네놈이 비기거나 이기면… 아가레스와의 싸움을 생각한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문제겠지만, 진짜 문제는 네놈이 마몬 가의 가주에게 졌을 때이다. 넌 이 싸움 이후에는 네 세력을 포기할 거냐?”

이 자리에 모인 세 수장들이 수장의 자리에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 셋이 각자의 세력 내에서 가장 강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수장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마몬 가의 가주에게 패한다면 그 후폭풍은 결코 작지 않을 터였다. 특히나 무력만을 최고로 치는 무법자들의 수장인 다곤이지 않은가.

피로 피를 씻는 항쟁의 시대는 지났다. 세 수장들은 기묘한 균형 아래 이루어진 평화를 벌써 십 년 가까이 누렸고, 이제는 서로에게 묘한 동지애까지 느끼고 있었다.

성정은 물론 전투력까지 파악하고 있는 데다가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 중인 다곤이 실각하면 오로스 입장에서도 좋을 것이 없었다.

“으음… 그럼 내 오른팔인 자코비를 내보낼까? 아니면 몰래 숨어서 대련하자고 하든가.”

“마몬 가의 가주가 호구라면 순순히 요구에 응하겠지.”

오로스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토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는지 오필리아 쪽을 돌아보았다. 오필리아는 손사래를 쳤다.

“몇 번 마주하고 술자리까지 거하게 가진 입장에서 말하자면 호구가 아냐. 우리가 그의 힘을 시험해보고자 한다면… 그 역시도 우리에게 같은 것을 요구하겠지. 섣부른 행동은 지양했으면 해.”

패배의 위험을 짊어지는 것은 마몬 가의 가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지금 마몬 가의 가주는 조력자로서 자유도시를 찾은 상황이었다. 불필요한 갈등과 마찰은 피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힘을 시험해볼 필요는 있다. 그 점만은 다곤에게 동의한다.”

오로스가 다시 말했고, 다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필리아는 습관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뭐,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차차 생각해보자고.”

공식 회담은 내일이었고, 더 이상 나눌 이야기는 없었다. 언제나처럼 딱히 파장 선언을 하지 않았음에도 오필리아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벼운 손 인사를 하며 물러서는 오필리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다곤이 문득 물었다.

“오필리아.”

“왜?”

돌아서지 않고 묻자 다곤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뭔가 변한 것 같군.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거칠기 짝이 없는 자유도시의 무법자들을 한 손으로 부리는 다곤이었다. 타고난 성정이 단순하기는 해도 바보는 아니었다. 오히려 싸움의 감각만이라면 미치광이 오로스보다 몇 수 위인 그였다.

오필리아는 당황하지 않고 가볍게 답했다.

“어, 그날이거든.”

다곤은 입을 다물었고 오로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오필리아는 살짝 놀란 가슴을 자연스럽게 억누르며 돌아섰다. 꼬리를 흔들며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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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점심 무렵에 공식 회의가 소집되었다.

카타리나와 스컬만을 대동한 채 자유도시 중앙광장에 위치한 회담 장소에 도착한 용호는 싸울 태세를 완벽히 갖춘 다곤을 마주한 채 눈을 가늘게 떴다.

다곤의 등 뒤에 놓인 회담 테이블 앞에는 미치광이 오로스와 오필리아가 앉아 있었다.

오로스는 될 대로 되라는 얼굴로 인상을 찡그렸고, 오필리아는 어쩔 수 없었다는 뜻을 시선에 담아 보냈다.

회담 장소인 돌로 만든 회의장은 투기장을 겸용하는 건물인만큼 그 크기가 결코 작지 않았다.

다곤이 애병인 메이스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난 단순해서 말이야. 마몬 가 가주인 네 실력이 궁금해서 어쩔 수가 없군. 가볍게 한 판 붙어보자.”

다곤도 바보는 아니었다. 목숨을 건 싸움을 할 생각은 없었다. 때문에 나름대로 우호적인 미소까지 입에 걸어두었다.

스컬은 그런 다곤을 노려보며 전투 망치를 움켜쥐었고, 카타리나 역시 검은 마력을 일으켰다. 오필리아와 오로스에게 매서운 시선을 보냈다.

용호는 숨을 가볍게 토했다. 오필리아와의 대화를 통해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바였지만 설마 정말로 이런 식의 대면을 할 줄은 몰랐다.

‘어찌되었든.’

예상했던 상황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했다. 용호는 당황하거나 노여워하는 대신 다곤뿐만 아니라 오로스에게까지 말했다.

“나부터 하지.”

굳이 싸울 필요도 없었다.

용호는 한 걸음을 내딛었다. 자유도시에 온 이래 감춰두었던 마력을 개방했다.

힘의 우위를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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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8장 #2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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