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81화 (81/227)
  • < 제 26장 #2 >

    &

    “살아… 계시다고요?”

    “투기장에서 3대 전 가주 님을 만나신 겁니까?!”

    똑같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지만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달랐다.

    오필리아의 목소리에는 당혹감뿐만 아니라 애틋함이 묻어났다. 순수하게 경악하는 엘리고스와는 달랐다.

    오필리아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흥분과는 달랐다. 어느 순간 자리에 털썩 앉았고, 목소리를 흘렸다.

    “맙소사. 세상에 맙소사. 그분이…….”

    오필리아 역시 카이완을 직접 마주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카이완을 흠모했던 엔델리온의 딸이었다. 아버지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자연 그녀 역시 카이완을 흠모하게 되었다.

    오필리아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카이완의 동생인 케이언이 약자라 하여 마몬 가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마몬 가를 잊지 못했던, 몰락해가는 마몬 가를 마주하면서도 언젠가 마몬 가는 다시 일어설 거라 믿었던 모순투성이 아버지를 기억했다.

    카이완을 마주하면 무어라 말한단 말인가.

    아버지 엔델리온이 케이언을 버렸다고?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하여 마몬 가를 떠나버렸다고?

    카이완의 분노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슬픔에 찬 그녀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카이완은 아마 이해할 것이다. 오필리아 자신이 아는 카이완이라면 엔델리온이 떠날 줄 알았다고 할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카이완은 자신이 사라졌을 때를 대비해 남긴 편지에 엔델리온이 마몬 가를 떠난다면 그 뜻을 존중한다는 내용을 적어두었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오필리아는 격한 감정에 휩쓸렸다.

    저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변명을 떠올렸다.

    카이완의 실종에 크게 상심한 엔델리온은 오랜 시간 공백지를 방황했다. 그가 어린 오필리아를 데리고 공백지 남부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마몬 가의 가세가 크게 기운 이후였다.

    그럼 만약 엔델리온이 떠나지 않았다면.

    던전 몬스터에게 무기고와 금광을 빼앗기지 않았을 터였다.

    케이언이 나약한 가주였다고는 하나 마몬 가가 그렇게까지 몰락하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변명이 더 이상 변명이 아니게 되었다.

    용호는 오필리아의 심정을 모두 헤아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짐작했다. 예를 표할 때마다 아버지 엔델리온을 반드시 언급하는 그녀였다. 그만큼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그녀가 카이완의 생존 소식에 흔들리는 것이 당연했다.

    “투기장의 각 층에서 승리하면 보상이 주어지지만 패배하면 벌칙이 있다. 특정 층마다 특히 벌칙이 심해질 때가 있다는데… 카이완은 패배 벌칙으로 투기장에 예속된 존재가 된 것 같아.”

    용호의 목소리를 길잡이 삼아 겨우 감정의 도가니에서 빠져나온 오필리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용호가 말을 이었다.

    “카이완만이 아니야. 확신할 수는 없지만 더 있는 것 같았어. 어쩌면 역대 마몬 가의 가주들 가운데서 실종된 자들 거의 대부분이 투기장에 예속되어 있을 지도 몰라.”

    엘리고스가 연신 마른 침을 삼켰다. 머릿속으로 마몬 가의 가계도를 떠올렸다. 갑작스런 실종으로 가주 자리에 물러난 이는 카이완 하나만이 아니었다.

    용호의 말대로 그들 모두가 투기장에 예속되어 있다면.

    그리고 역대 가주들을 꺾을 정도로 강력한 사역마들이 투기장에 존재하고 있다면.

    “투기장의 관리인인 구시온이 그러더군. 투기장의 모든 층을 정복하면 투기장에 예속된 사역마들을 모두 휘하에 둘 수 있다고.”

    용호가 말했다. 그 말에 엘리고스뿐만 아니라 아직 감정의 여파를 모두 떨쳐내지 못했던 오필리아도 크게 반응했다.

    “괴력의 구시온.”

    오필리아가 구시온의 이명을 탄식처럼 흘렸다. 엘리고스가 주먹을 움켜쥐고 소리쳤다.

    “마몬의 열두 사역마 가운데 하나. 최강의 괴력. 고금을 통틀어 레드 데몬 가운데 최강이라 불리는 자!”

    그것이 구시온이었다.

    전투 종족이라 불리는 레드 데몬 가운데서도 고금제일이란 수식어가 붙는 강대한 존재였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흥분하지 않을 수 없군요. 만약 가주 님께서 투기장을 정복하신다면… 그래서 구시온의 말대로 투기장의 사역마들을 모두 휘하에 거느리신다면…….”

    “그 힘은 마계를 지배하는 여섯 왕들에게도 맞설 수 있을 것입니다.”

    엘리고스가 끝내 맺지 못한 말을 오필리아가 마무리 지었다.

    과장이 아니었다.

    구시온을 손에 넣는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마몬 가의 전대 가주들이 더해진다면, 그들을 꺾을 정도로 강력한 사역마들이 더해진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실로 전율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카타리나는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같이 흥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귀를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확연한 걱정이 얼굴에 묻어났다.

    그 모습이 엘리고스를 진정시켰다.

    너무나 큰 보상에 눈이 멀어 잊고 있던 위험을 떠올리게 했다.

    카이완을 비롯한 역대 가주들은 결국 패해 투기장에 예속된 존재가 되었다.

    그 같은 일은 용호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다.

    불길처럼 일었던 흥분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다시 자리에 앉은 엘리고스는 입술을 달싹였고, 용호는 그런 엘리고스를 기다렸다.

    한참이나 지난 끝에 엘리고스가 겨우 입을 열어 물었다.

    “투기장에 계속 도전하실 생각이십니까? 카이완 님… 3대 전 가주 님처럼?”

    “그래, 엘리고스.”

    용호는 차분히 답했다. 이미 오필리아와 엘리고스가 떠올렸던 것들을 모두 떠올렸던 용호였다.

    물론 무모하게 도전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꽁무니를 뺄 생각도 없었다.

    투기장을 통해 강해지고 싶었다.

    카이완을 구하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집사장 엘리고스, 가주 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엘리고스가 무겁게 말했고, 용호는 푸근하게 웃었다.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역마들에게 다음 화두를 꺼냈다.

    “일단 공지할 것 두 가지는 끝났어. 다음은 조금 다른 용무다.”

    말을 잠시 끊은 용호는 고개를 돌려 한 곳을 보았다. 자연 모두의 시선 역시 용호를 따라 한 점에 집중되었다.

    “스컬컬?”

    스컬이 고개를 갸웃했다. 용호는 품에서 스크롤 한 장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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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컬 부대를 구성하면서 용호는 자연스럽게 여러 종류의 스켈레톤들을 관찰하게 되었다.

    물론 스켈레톤들에게도 저마다의 개성이 존재했다. 진화 잠재력이 다르거나, 승급 루트가 다른 것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종족으로써의 공통점 역시 존재했다.

    스켈레톤은 해골을 기반으로 한 언데드 몬스터 전반을 가리켰다. 최하급인 스켈레톤 일꾼부터 최상위급 존재인 데스나이트와 엘더 리치까지 모두가 ‘스켈레톤’이란 범주 하에 들어갔다. 본 드래곤조차도 굳이 따진다면 스켈레톤의 일종이었다.

    스켈레톤은 그 등급이 낮을수록 자아가 희박했다.

    일꾼시절부터 어느 정도 자아를 보인 스컬이 무척이나 특이한 경우였다. 스켈레톤 일꾼, 그 상위 등급인 스켈레톤 솔져조차도 골렘에 비견해도 될 정도로 자아가 약했다.

    스컬 부대에 소속된 스켈레톤들 가운데는 스켈레톤 워리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아가 없다시피 한 녀석도 있었다.

    도서관 한 구석에 선 용호는 투기장 1층 돌파 보상인 스켈레톤 메이지 스크롤을 찢었다.

    따로 마력을 주입하지 않았음에도 스크롤로부터 마법이 발동했다.

    하얗고 파란 빛이 발산되었다. 마치 뒤틀림처럼 두 가지 색의 마력이 허공에서 소용돌이쳤고, 점점 회전이 빨라지던 그것이 다시 한 번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빛이 가신 자리에는 스켈레톤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여느 스켈레톤과 마찬가지로 인간형이었다.

    “스켈레톤 메이지?”

    레드 데몬임에도 불구하고 마몬 가 제일의 마법 능력자라 할 수 있을 오필리아가 소환된 스켈레톤의 특별함을 눈치챘다.

    용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화의 권능을 발동할 것도 없이 스크롤에 남아있던 마력이 허공에 빛의 문자를 그렸다. 보는 순간 마계의 언어처럼 해석이 되는 루시아의 빛의 문자가 아닌, 순수한 마계의 문자였다.

    [스켈레톤 메이지]

    [번개 속성]

    [사용 가능한 마법 : 인챈트 매직(번개 속성) / 라이트닝 애로우]

    역시나 스켈레톤답게 자아 개념이 희박한 지 스켈레톤 메이지는 몸을 축 늘어트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오필리아가 말했다.

    “스켈레톤 메이지는 특별한 주문을 통해 만들어지는 사역마입니다. 새로운 마법을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미 익히고 있는 마법이라면 꽤나 준수한 수준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자아 개념이 약해서 명령을 구체적으로 해줘야 하긴 하지만 인챈트 매직과 라이트닝 애로우라면… 전력에 꽤 보탬이 될 것 같군요.”

    인챈트 매직은 무기에 번개 속성을 덧씌우는 마법이었고, 라이트닝 애로우는 이름 그대로 번개의 화살을 쏘아내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용호는 그 정도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정말 단순히 마법 전력으로 쓸 거였다면 굳이 스켈레톤 메이지 스크롤에 탐욕이 반응할 일도 없었다.

    용호는 진화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아이언 스켈레톤 나이트로 거듭난 이후로는 중급 수련장에서도 진화 숙련치 수급이 어려워진 스컬을 돌아보았다.

    빛이 이어져 있었다. 스컬과 스켈레톤 메이지를 잇는 빛의 선이 선명했다. 용호가 기대했던 문장이 빛의 상자에 담겨 있었다.

    [스켈레톤 매직 나이트]

    언데드간의 결합.

    더욱이 스켈레톤 메이지는 자아가 약했다. 일꾼 시절부터 자아를 보인 스컬이 스켈레톤 메이지에게 잠식당할 우려는 없었다.

    스켈레톤 메이지를 따로 진화시키는 쪽도 생각해보긴 했지만 역시 이쪽이 더 낫다는 판단이 섰다.

    단순히 육체 능력이 상승하면 그만인 전사계열과 달리 마법사 계열은 새로운 마법의 사용 여부가 중요했다. 진화를 한다 하여 새로운 마법을 자동으로 습득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또한 스켈레톤 메이지가 승급해 자아가 강해지면 합체 진화의 결과가 용호의 예상과 달라질 수도 있었다.

    이번 합체 진화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실험이었다.

    상급 수련장을 짓는 것은 아직 요원했기에 다시 한 번 스컬을 합체 진화시킬 생각으로 아껴둔 진화 숙련치였다. 그리고 이제 때가 왔다.

    “준비 됐어?”

    용호가 스컬에게 물었다. 이번이 세 번째였기에 스컬은 주저하는 대신 시원하게 답했다.

    “스컬컬!”

    합체 진화 자체를 처음 목격하는 오필리아는 지금 대체 용호가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다. 카타리나와 엘리고스는 즐거이 웃으며 뒤로 몇 걸음씩을 물러섰다.

    “가주 님? 엘리고스 오라버니?”

    자기만 모르는 상황에 당황한 오필리아의 팔을 엘리고스가 잡아끌었다. 똑같이 물러서게 해 용호에게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주었다.

    용호가 두 손을 들었다. 각기 스컬과 스켈레톤 메이지의 어깨 위에 올렸고, 루시아로부터 던전의 마력을 이끌어냈다. 아낌없이 스컬과 스켈레톤 메이지에게 마력을 쏟아 부었다.

    합체 진화.

    초록색 빛이 크게 일었다. 그리고 빛이 사라졌을 때 모두의 앞에 선 것은 푸른 마력을 품은 스켈레톤 나이트였다.

    스컬에게서 스켈레톤 메이지의 마력을 감지한 오필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무어라 말도 못하고 용호와 엘리고스, 스컬을 번갈아 보았다.

    던전 운용에 필요한 마력을 제외한 거의 전부를 쏟아부은 용호는 스컬의 어깨 위에 올려두었던 팔을 내렸다. 조심스럽게 불러보았다.

    “스컬?”

    “스컬컬!”

    스컬이 우렁차게 답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허리춤에서 망치를 뽑아들더니 그대로 높이 들어올렸다. 마법을 발동시켰다.

    인챈트 매직!

    푸른 번개가 전투 망치를 휘감았다.

    스컬이 본래 품고 있던 마력에 스켈레톤 메이지의 마력이 더해졌다. 그리고 스컬은 본능적으로 새로운 힘을 다루는 법을 인지했다.

    스컬은 번개를 품은 망치를 빙빙 돌렸다. 어느 순간 도서관 빈 곳을 향해 전투 망치를 내뻗었다.

    망치로부터 번개가 방출되었다. 라이트닝 애로우였다.

    “오오! 오오오!”

    용호가 감탄하자 스컬은 번개가 실린 망치를 허공에 휘둘렀다. 스컬 부대를 훈련시킬 때 보여주는 움직임이었다.

    전투 망치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파공음이 울렸다. 스파크와 함께하니 마치 작은 천둥소리 같았다.

    크게 만족한 용호는 결심했다. 옆에 선 카타리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이트메어는 스컬에게 줄게. 그래도 괜찮지?”

    유령마의 주인 자리를 놓고 스컬과 경합을 펼치던 카타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켈레톤 부대의 대장일뿐만 아니라 이제는 마법까지 쓰는 마법기사가 되었으니 멋들어진 말이라도 하나 타야 순리에 맞을 것 같았다.

    카타리나가 기쁘게 수락하자 용호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스컬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구상하던 스컬의 최종 목표를 수정했다.

    데스 나이트?

    아니었다.

    데스 나이트의 무력과 리치의 마력을 합친 존재. 사상 초유의 언데드 마법기사!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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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저녁 오필리아는 예정대로 마몬 가를 떠나 자유도시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오는 것은 적어도 며칠 후일 터였다. 예속 사역마 등록은 돌아온 이후에 진행하기로 하였다.

    사역마들과의 식사를 마친 후 일찌감치 침실로 돌아간 용호는 카이완의 일지를 꺼내들었다. 투기장과 관련된 내용을 다시 점검해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몇 페이지나 넘겼을까.

    용호는 손을 멈췄다. 카이완의 일지를 계속 살피는 대신 다른 책을 꺼내들었다.

    전전대 가주의 기록.

    케이언의 일지.

    동생의 이름을 부르짖던 카이완의 얼굴이 떠올랐다. 용호는 케이언의 일지를 펼쳤다.

    천천히 그 내용을 읽어 내렸다.

    제 26장 - 천둥 끝, 제 27장 - 자유도시 출진으로 이어집니다.

    < 제 26장 #2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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