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74화 (74/227)
  • < 제 23장 #4 >

    &

    검의 종류는 다양했다.

    ‘검’이라는 것은 몇 가지 특성을 공유하는 무기들을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이었다.

    때문에 같은 검이라 하여도 그 종류에 따라서 형태와 사용법이 달랐다.

    창 또한 마찬가지였다.

    ‘창’이란 이름 아래에는 검만큼이나 많은 종류의 무기들이 존재했다.

    동양의 창과 서양의 창이 달랐다.

    한 손으로 쓰는 창과 양 손으로 쓰는 창 사이에는 놀라울 정도로 큰 차이점이 존재했다.

    찌르는 데 중점을 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휘두르는 데 줄 것인가.

    방진전투를 염두에 둔, 다수와 다수간의 전투를 상정한 창인가 그렇지 않으면 홀로 싸우는 것을 전제로 한 창인가.

    도끼와 결합한 미늘창이 있었고, 창대의 탄력을 이용하는 봉의 특성을 가진 창도 있었다.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때문에 창술이라 하여 모두 같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창을 사용한 창술을 배울 것인지 부터 확실히 해야만 했다.

    홍련의 마창 아몬은 평범한 창이 아니었다.

    더욱이 지금은 창이라기보다는 쇠꼬챙이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었다.

    교본이나 기술서를 보고 혼자 독학하는 것은 용호 같은 초보자에게는 독이 될 수 있었다.

    잘못된 자세나 좋지 못한 습관을 지적해줄 스승이 필요했다.

    누구보다 아몬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자.

    누구보다 오랜 시간동안 창술을 연마해온 자.

    누구보다 용호의 움직임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자.

    세 가지 조건 모두에 부합하는 자가 있었다.

    오필리아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몬 님- 아니, 홍련의 마창 아몬은 단순한 창이 아닙니다. 탐욕의 왕 마몬께서 거느리신 열두 사역마- 속칭 마몬의 사역마들 가운데서도 손에 꼽히는 고귀하며 강력한 마족이죠. 아몬이야말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마몬님과 함께한 사역마입니다. 수많은 전장을 경험했고, 수많은 전투에서 창을 이용한 전투법을 습득했습니다. 엔델리온의 딸 오필리아가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감히 말하건데, 창술만을 논한다면 아몬이야말로 마계 제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에게서 창술을 배운다.

    도가에서나 들을 법한 선문답이었지만 오필리아는 진지했다.

    아몬에게는 의지가 있었다. 이전 선술집에서 아몬의 의지를 똑똑히 느낀 오필리아였다.

    말을 마친 오필리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새삼 아몬과 마주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온통 불타는 세상 위에 군림하고 있던 거대한 존재.

    그저 떠올렸을 뿐인데도 벌써부터 등이 축축하게 젖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멈추지 않았다.

    아몬의 의지와 마주한 적이 없는 카타리나와 엘리고스는 꽤나 순박한 반응을 보였다. 카타리나는 기대 섞인 눈으로 아몬을 보았고, 엘리고스는 왜 자신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는가-에 가까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몬에게 창술을 배운다.’

    용호는 아몬을 처음 마주했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붉고 붉은 눈동자.

    압도적이라는 말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 거대한 존재.

    그 이후에도 용호는 몇 번이나 아몬의 존재를 느꼈었다.

    녹염으로 피아를 구분했을 때, 오필리아를 제압했을 때, 융케라스의 정신을 먹어치웠을 때.

    용호는 아몬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자연스럽게 진화의 권능을 발현시켰다.

    [이름 : 아몬 (?)]

    [종족 : ???]

    [분류 : ??? (???)]

    [속성 : 불꽃 ???레벨 / ??? ???레벨]

    [진화 숙련치 : 57/100]

    [??? 특화 | ★★★★★★ (6)]

    [??? 특화 | ★★★★★★ (6)]

    [??? 특화 | ★★★★★☆ (5.5)]

    여전히 물음표 투성이인 아몬의 진화 정보창이었다.

    하지만 용호는 언제나처럼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냈다. 진화 숙련치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차 있었다.

    ‘57!’

    어찌 보면 이제야 겨우 절반이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반이나 찬 것이었다. 아몬을 진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좋아,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고 했지.”

    진화의 권능을 거둔 용호는 스스로와 모두에게 말했다. 엘리고스가 새삼 걱정된다는 얼굴로 작게 말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아몬의 존재는 너무나 거대했다. 예속 사역마된 자로서 입에 담기 껄끄러운 이야기였지만 지금의 용호는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그런 아몬이 용호를 짓누르면 어떻게 될까. 혹시라도 해코지라도 한다면.

    엘리고스의 말에 아몬을 직접 경험해본 오필리아의 얼굴에도 약간이지만 두려움과 망설임이 떠올랐다.

    하지만 카타리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용호가 아몬을 처음 손에 넣었을 때 카타리나는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용호가 처음 녹염을 지배하에 넣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몬은 용호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코 지금처럼 녹염을 통제하지 못했을 터였다.

    카타리나는 입 밖으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진 않았다. 하지만 예속사역마와 그 주인의 관계였다. 용호는 카타리나의 마음을 알았다. 서로 부드러운 미소를 나누었다.

    [저도 믿고 있어요!]

    루시아가 뒤질세라 목소리를 높였다.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은 용호는 자세를 바로 했다. 숨을 크게 고른 뒤 두 손으로 무릎 위에 눕혀둔 아몬을 잡았다.

    눈을 감았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용호는 아몬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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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불타올랐다.

    홍련의 불꽃이 하늘과 땅을 불태우는데 그치지 않고 그 모두가 되었다.

    불꽃 속에서 누군가 창을 휘둘렀다.

    거대한 남자였다.

    그저 건장한 체구일 뿐임에도 마치 거인처럼 느껴졌다.

    창이 궤적을 그렸다. 불꽃을 가르는데 그치지 않고 종국에는 불꽃과 어울렸다. 마치 화려한 꽃이 피는 것만 같았다.

    용호는 남자의 움직임을 모두 확인 할 수도 없었다. 결코 빠르지 않은 움직임이었지만 그것은 그저 느낌에 불과했다.

    압도적인 정보량이었다. 하나의 궤적으로부터 다시 어떤 궤적이 이어질지를 상상하는 것조차 무리였다.

    그저 바라보았다. 그리고 빠져들었다. 마치 용호 자신이 저 궤적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의식 속에서 용호는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불꽃을 느꼈다. 그리고 용호의 머릿속에 또 다른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불꽃의 기억이었다. 불꽃은 그 몸을 불태워 세상 모든 것들을 표현해냈다.

    사람들이 보였다.

    하나가 아닌 여럿이었다.

    거대한 낫을 든 존재가 전장을 질타했다. 산양의 머리와 뿔을 가진 그것은 온 몸이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다.

    얼굴을 안대로 가린 여자가 불꽃 사이를 걸었다. 그녀의 머리칼은 금빛이었고, 온몸에 걸친 것은 모두가 붉고 붉은 색을 띄었다. 허리에 걸린 검은 가늘고 길어 초승달을 연상시켰다.

    연달아 여러 존재의 모습이 환영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서로 마주하고 있는 쌍둥이 소년과 소녀.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야만인 전사.

    하늘의 태양을 쏠 기세로 활을 당기는 켄타우로스.

    온 몸에 타인의 피를 뒤집어 쓰고 포효하는 황소와 같은 남자.

    물병을 들고 자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성녀와 같은 검은 머리칼의 여인.

    그 이후에도 이어졌다. 여자와 남자의 모습이 보였고, 때로은 이형의 괴물들도 보였다.

    용호는 어느 순간 알아차렸다.

    인지할 수 있었다.

    ‘마몬의 사역마.’

    탐욕의 왕의 열두 사역마. 탐욕의 왕과 함께 마계를 호령한 거대한 존재들.

    환영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용호는 한 남자의 등을 보았다.

    그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바람에 망토가 흩날렸다.

    하늘이 푸르렀다. 마계의 오색찬란한 하늘이 아니었다.

    높고 높은 계단을 그가 올랐다.

    그 계단의 끝에는 돌로 만든 거대한 옥좌가 존재했다.

    그는 결코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등 뒤로 마몬의 사역마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모두가 그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그 남자의 이름.

    사라졌다.

    모든 것이 불꽃이 되어 흩날렸다.

    거대하고 거대한 눈동자가 용호를 마주했다.

    나의 어린 주인이여.

    처음 마주했을 때와 달랐다. 용호는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주인된 자로서 아몬을 마주했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건 너였어.”

    계단을 오르던 남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불꽃 속에서 창을 휘두르던 남자.

    결코 거대하지 않음에도 거인이라고 느껴진 존재.

    아몬의 미소가 느껴졌다.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용호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아몬이 창이 되기 전의 모습이었다.

    창마 혹은 창신이라 불리던 시절의, 참으로 오랜 옛날 마계를 호령했던 마인의 기억이었다.

    마몬 또한 아몬에게 창을 배웠다.

    불꽃의 기억은 짧지만 강렬했고, 용호는 말로는 전달 못할 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주인이여.

    그대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다.

    탐욕의 왕이 그러했던 것처럼 저 마천루의 옥좌를 향해 계단을 오르는 것은 아직 무리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아갈 의지가 있다면, 내가 그대라는 배의 바람이 되어 주겠다.

    용호 역시 목소리가 아닌 마음으로 답했다.

    다시 한 번 아몬의 미소가 느껴졌다. 불꽃이 크게 일어 모든 것을 뒤덮었다.

    눈을 떴다.

    그야말로 번쩍이란 수식어가 어울릴 법한 움직임에 조마조마한 얼굴로 용호를 바라보고 있던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가주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으세요?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걱정 섞인 목소리들이 쏟아져 내렸다.

    용호는 눈을 깜박였다. 일단 울 것 같은 얼굴의 카타리나가 보였다. 그리고 초조한 기색의 엘리고스와 안도의 숨을 내쉬는 오필리아가 보였다. 머릿속에 크게 안도하는 루시아의 환영 역시 떠올랐다.

    [아몬과 접촉하신지 두 시간이 넘게 지났습니다.]

    [다들 어마어마하게 걱정했어요. 걱정했다고요.]

    순간이라 생각했던 시간이 그렇게나 길었다. 용호는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두 시간 내내 끙끙 앓는 소리도 냈을 것 같았다. 카타리나가 귀를 축 늘어트린 채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분명 성과가 있었다. 용호는 부드러운 미소로 모두를 일단 안심시킨 뒤 아몬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볍게 손짓해 카타리나와 엘리고스를 물러나게 해 거리를 벌렸고, 아몬을 들어올렸다.

    순간 불꽃이 일었다. 붉고 붉은 그것이 아몬의 전신을 뒤덮었고, 이내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아!”

    카타리나가 탄성을 토했다. 엘리고스와 오필리아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드러났다.

    아몬의 모습이 변했다.

    1미터 남짓한 쇠꼬챙이였던 그것이 근 2미터에 달하는 창의 형태를 취했다.

    여전히 아무런 모양도 없는, 그저 밋밋한 붉은 막대인 것은 똑같았다. 하지만 단순한 외형으로 아몬을 평가할 수 없었다. 마주하는 모든 이들이 아몬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용호는 양손으로 아몬을 쥐어보았다.

    이전과 달랐다.

    아몬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한 차례 불꽃이 일었고 아몬은 붉은 팔찌로 그 형태를 바꾸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용호의 오른팔을 휘감았다.

    카타리나의 귀와 꼬리가 맹렬한 속도로 파닥거렸다. 엘리고스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오필리아는 아버지 엔델리온의 이름을 주문처럼 읊조렸다.

    ‘마몬의 사역마들.’

    하늘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는 탐욕의 왕 마몬. 그리고 그의 뒤를 따르던 열두 사역마들.

    계단을 오르는 용호 자신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자들의 모습 또한 보였다.

    나의 어린 주인이여.

    마지막 부름을 끝으로 아몬은 다시 침묵했다. 하지만 용호는 당황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아몬에게 창술을 배우게 될 지를 이미 이해했기 때문이다.

    용호는 카타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필리아와 함께 눈물이 그렁그렁한 엘리고스를 놀려주었다.

    &

    며칠이란 시간이 흘렀다.

    용호는 스컬을 필두로한 스컬 부대를 이끌고 던전 탐사를 계속했고, 카이완의 지도에 나와 있던 또 다른 시설인 도서관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도서관 자체에는 특별한 마력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지만, 그 대신 족히 수백 권은 될 서책들이 모여 있었다.

    달을 삼키는 늑대의 문장이 새겨진 도서관 문을 열었을 때 용호는 카이완의 기억을 읽었다.

    몸이 약한 전전대 가주가 좋아했던 장소였다. 동생을 누구보다 아끼는 카이완 역시 이 도서관을 좋아했었다.

    ‘카이완.’

    그녀의 유산들을 하나하나 찾을 때마다 마몬 가는 강해졌다.

    그녀가 있었기에 마몬 가는 용호 자신의 대까지 멸망하지 않았다.

    무기고와 금광, 오필리아와의 인연, 왜곡의 반지와 마력을 담을 수 있는 팔찌.

    용호는 카이완에게서 많은 것들을 받았다. 그녀의 유산들이 없었더라면 이미 던전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표독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잿빛 머리칼의 미녀.

    용호는 동생 앞에서 미소 짓던 그녀를 알았다. 그렇기에 새삼 부드러운 표정으로 달을 삼키는 늑대의 문장을 쓰다듬었다.

    도서관을 발견하고 다시 일주일 뒤.

    용호는 카이완의 지도에 나와 있던 모든 구역을 확보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몬 가 1층의 80%를 용호가 통제 하에 넣었다는 이야기였다.

    남은 20%에 숨겨져 있는 것들.

    과연 몇 층까지 이어져 있는지조차도 의문인 지하층에 존재하고 있을 마몬의 사역마들과 유산들.

    계단을 오르던 탐욕의 왕.

    용호는 그 뒷모습을 기억했다.

    느리지만 착실하게 한 걸음을 내딛었다.

    제 23장 - 던전 업그레이드 끝, 제 24장 - 마몬의 투기장으로 이어집니다.

    < 제 23장 #4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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