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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71화 (71/227)
  • < 제 23장 - 던전 업그레이드 >

    제 23장 - 던전 업그레이드

    융케라스의 정수는 먹음직스러웠다.

    포라스의 정수보다 그 정순함 면에서는 부족했지만 단순히 마력의 양만을 따진다면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식감과 맛은 부족해도 포만감만은 대단한 요리랄까?

    융케라스의 속성은 어둠이었다. 탐욕은 이번에도 융케라스의 어둠을 포용했고, 용호는 이제까지 지니지 못했던 새로운 속성력이 자신의 마력에 자리 잡는 것을 느꼈다.

    마족의 육신과 영혼을 구성하는 것은 마력이었다.

    그리고 개중에서도 ‘마왕’들은 다른 마족들보다도 더 순수한 마력의 덩어리라 할 수 있었다.

    새로운 뿔은 돋아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능력들이 상승했다.

    강건해진 육신을 만끽하며 용호는 숨을 크게 골랐다. 단순히 숨을 쉬는 행위임에도 몸 안 곳곳에서 용솟음치는 마력이 느껴졌다.

    용호가 변화를 느낄 때 예속 사역마인 카타리나와 스컬 역시 자신들의 변화를 깨달았다.

    카타리나의 어둠이 더욱 강해졌다. 스컬의 죽은 육신을 움직이는 마력이 보다 견고해졌다.

    포라스의 권능인 냉기는 용호의 속성력이 되었었다.

    융케라스의 권능인 정신제압은 용호의 정신을 강인하게 만들었다.

    “좋아.”

    정수 흡수가 가져다주는 막대한 쾌락으로부터 깨어난 용호는 남은 일들을 서둘러 진행했다.

    융케라스는 죽었고, 이 소식은 실시간으로 아비게일 가에 전해졌을 터였다.

    분명 무언가 행동을 취할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바로 포라스 가에 병력을 파견할 수도 있었다.

    융케라스가 타고 온 전투 마차는 가까이서 보니 크게 훼손되어 있었다. 전투 마차를 끌 말들이 모두 사라진데다가 마차 안에 내장되어 있던 마정석들 역시 사라졌다. 아무래도 포라스 가를 떠난 사역마들 가운데 일부가 챙겨간 것 같았다.

    리쿰을 선두로 하여 마몬 가의 사역마들이 행군을 시작했다.

    용호는 근처 숲에 숨어 기다리고 있던 살라미의 등에 올랐다. 본래 포라스 가의 것으로 보이는 던전 미어 캣 두 마리가 그런 용호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안에서 일이 벌어지는 동안 살라미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아무래도 데려가 달라는 것 같았다.

    “스컬스컬.”

    던전 미어 캣 두 마리를 나란히 어깨에 올린 스컬이 마몬 가의 행렬의 후미를 지켰다.

    살라미는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힘차게 날아올랐다.

    ‘지치네.’

    살라미의 등에 거의 엎드리다시피 한 용호는 시선을 멀리 두었다. 마계의 하늘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 하지만 안 될 말이었다. 용호는 억지로 정신을 붙잡고 지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약간은 멍하니 마몬 가들의 사역마들을 바라보다가 진화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어?”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토했다. 용호 자신이 강해짐에 따라 함께 강해진 카타리나 때문이 아니었다. 용호의 시선은 스컬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진화 숙련치 100/100]

    ‘언제 쌓았지?’

    합체 진화 이후 벌어진 모든 전투에 스컬이 참여하기는 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확인 했을 때는 분명 절반 정도 밖에-

    ‘아하.’

    돌연 떠오른 것이 있어 용호는 소리 내어 웃었다. 엘리고스가 밤을 하얗게 불태우던 날 스컬은 기초 훈련장 구석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날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다음 날도 그러했었다.

    이미 진화를 몇 번이나 거듭한 스컬은 기초 훈련장에서 숙련치를 얻기가 어려웠다. 처음 기초 훈련장을 발견했을 때 확인했듯이 수십 번을 넘게 망치질을 해야 겨우 숙련치 1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오르긴 오르니 소위 말하는 ‘노가다’를 하면 진화 숙련치를 모을 수 있었다.

    노가다.

    그것이야말로 스컬의- 언데드들의 강점이었다.

    스컬은 지치지 않았다. 더욱이 단순반복 작업의 귀재라 할 수 있었다.

    엘리고스가 뜨거운 열기로 밤을 불태우던 그때 스컬 역시 훈련장 구석에서 망치를 휘둘렀다. 엘리고스가 다른 일들을 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을 때도 마냥 허수아비를 두들겼다.

    그리고 그 결과가 눈앞에 있었다.

    [록 스켈레톤 나이트]

    스컬의 새로운 승급 루트였다. 용호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스컬이 하늘을 향해 망치를 들어올렸다.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언제나처럼 스컬컬 소리치는 것 같았다.

    크게 만족한 용호는 눈을 감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살라미의 등 위에서 잠을 청했다.

    &

    “오오! 돌아오셨습니까!”

    자유도시를 다녀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엘리고스와 사역마들이 던전 입구 방에서부터 용호를 맞이했다.

    선두에 섰던 리쿰이 자랑할 것도 없이 엘리고스와 사역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용호가 승전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전투 마차 가득 실린 재물들이 그 증거였다.

    어찌되었든 우리 편이 이겼으니까 기쁘다.

    고블린들의 사고는 단순했고, 바둑이의 사고는 더더욱 단순했다.

    기분 탓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러했는지 공주개미의 얼굴에도 작은 미소가 걸렸다.

    미어 캣들에게 새로운 식구들을 맞이하게 한 용호는 살라미의 등에서 내려 엘리고스를 마주했다. 연달은 진화 덕분에 짐승남으로 거듭났음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엘리고스의 얼굴에 씩 웃어 보였다.

    “다녀왔어.”

    엘리고스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타리나와 스컬이 강해진 것처럼 엘리고스 역시 가주인 용호의 영향을 받아 강해졌다. 단순히 육체능력만을, 그 중에서도 힘만을 논한다면 마몬 가 제일이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엇, 그런데…….”

    “응?”

    순수하게 기뻐만 하던 엘리고스가 당혹스런 얼굴로 일행들을 살폈다. 아무리 눈을 껌벅여도 보이지 않는 이가 하나 있었다.

    “서, 설마?”

    전투에 나갔던 이가 돌아오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인가 눈을 껌벅이던 용호는 이내 엘리고스가 오필리아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먼저 돌아갔다는 생각을 못하고 허둥거리는 걸 보니 묘하게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동족이라 이건가?’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용호는 애써 입꼬리를 가다듬고 감정을 잡기 시작했다. 최대한 슬픈 표정을 지으며 오필리아의 부고를 알리려 했다.

    하지만 용호의 곁에는 천생 거짓말을 못하는, 이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역마가 하나 있었다.

    “오필리아는 가주 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먼저 선술집으로 돌아갔어요.”

    “아, 그렇군.”

    엘리고스는 정말로 안도했다는 듯 숨을 길게 토했고, 카타리나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좋아했다.

    ‘앓느니 죽는다더니.’

    김이 샌 용호였지만 결국엔 웃고 말았다. 카타리나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어 준 뒤 견원지간처럼 으르렁 거리더니 그새 정들었냐며 엘리고스를 놀려보았다. 효과는 상당했다.

    그렇지 않아도 붉은 얼굴이 더 붉어진 엘리고스의 지휘 하에 사역마들은 짐내리기를 비롯한 각종 정리 작업에 착수했다. 용호는 카타리나만을 대동한 채 바로 던전의 심장 방으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새삼스럽지만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주인님.]

    루시아의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기대가 어려 있었다.

    루시아는 용호와 정신이 연결되어 있었고, 던전의 영혼 중에서도 제법 똑똑한 편에 속했다. 보지 않았지만 용호가 무엇을 가져왔을 지를 짐작했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어서 달라고 조르는 것 같은 의성어에 용호는 키득 웃었다. 순순히 주머니에서 포라스 가의 던전 정수를 꺼내들었지만 그렇다고 바로 루시아에게 주지는 않았다. 장난기가 돌아 시침 뚝 떼고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진지한 얼굴로 정수를 흡수할 태세를 취하자 끙끙 앓는 얼굴로 안절부절 못하는 루시아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진짜요? 진짜 주인님이 다 드실 거예요? 전 하나도 안 주시고요? 정말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그 생각은 분명 전해졌다.

    엘리고스처럼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한 루시아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이런 것도 천성인 엉큼함의 발현일까. 끙끙 앓다가 결국엔 울 것 같은 루시아의 얼굴에 용호는 소리 내어 웃었다.

    엘리고스를 제대로 못 놀린 한도 엉뚱한 곳에서나마 풀었기에 장난을 그만두었다. 조마조마한 감정을 드러내듯 묘한 빛을 내는 루시아의 본체- 던전의 심장에 포라스 가 던전의 정수를 밀어 넣었다.

    용호가 처음으로 정수 흡수를 했을 때 느꼈던 쾌감.

    루시아도 그것을 느꼈다. 그 쾌감이 어찌나 거대했던지 정신이 연결되어 있는 용호에게까지 영향을 줄 정도였다.

    [gkdkrgkdkr sjan aktdlTdjdy! sjan! sjan!]

    이성을 잃었는지 괴이한 목소리로 탄성을 토하는 루시아였다.

    그리고 단순히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가주가 강해지면 던전이 강해졌고, 던전이 강해지면 가주 역시 강해졌다.

    던전의 심장으로부터 막대한 빛이 일었다. 랜드 웜의 마정석을 취했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렬한 빛이었다.

    [지금부터 성장에 돌입하겠습니다.]

    [던전의 심장은 보다 크고 아름다워질 것이며, 던전의 통제력 역시 강화될 것입니다.]

    [성장을 마치면 새로운 던전 시설들을 신축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시설들 또한 보다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성장에는 만 하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딱 하루만 기다려 주세요.]

    딱딱하게 말하다 마지막에는 다시 평소의 말투였다.

    던전의 심장이 마치 슬라임처럼 꿈틀거렸다.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대신 은은한 녹색 빛을 발했다.

    [던전 사역마 중급 훈련장]

    [던전 목욕탕]

    [보다 강화된 벽]

    [방과 방을 연결하는 비밀 통로]

    [던전 중급 작업장]

    [공간의 문 완공]

    마치 게임의 업데이트 예고를 하듯 빛의 문자들이 허공에 펼쳐졌다. 흐릿하게나마 영상 같은 것들이 보이기도 했다.

    “피로 회복에 그만인 던전 목욕탕. 사역마들의 피로를 씻어내 보아요.”

    카타리나가 작은 목소리로 빛의 문자 가운데 하나를 따라 읽었다. 이전 던전 생활관처럼 던전의 마력으로 사역마들의 피로를 해소해주는 시설이었다.

    용호의 관심을 끈 것은 중급 훈련장과 비밀통로였다.

    기초 훈련장 덕에 예정보다 훨씬 빠르게 진화를 한 엘리고스와 스컬이었다. 중급 훈련장을 완공하면 카타리나를 비롯한 다른 사역마들의 성장 역시도 촉진시킬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비밀 통로.’

    포라스 가의 던전에 펼쳐져 있던 그물망 같은 비밀 통로를 떠올린 용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라스 가의 비밀 통로는 조금 과한 감이 있었지만 적절히 이용하면 던전에 들어온 적들을 압박하기에 좋을 터였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아무도 몰래 옮겨 다닐 수도 있고.’

    그리고 공간의 문.

    3대 전 가주인 카이완이 짓다가 만 시설. 용호의 1차적인 목표라 할 수 있을 그것.

    루시아는 잠들었다. 인지한 용호는 조용히 방을 나서기 위해 카타리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왜일까. 카타리나는 무척이나 불안한 얼굴로 빛의 문자를 보고 있었다. 귀와 꼬리도 왜인지 축 처져 있었다.

    “카타리나?”

    소리 죽여 부르자 카타리나는 허둥거리며 용호를 돌아보았다. 오랜만에 냉정한 여기사의 표정을 연기하더니 한 발 앞서 던전의 심장 방을 빠져나갔다.

    용호는 다시 빛의 문자들을 보았다. 저것들 가운데 무엇이 카타리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든 것일까.

    고민은 짧았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생각을 털어낸 용호는 던전의 심장 방을 나섰다.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카타리나가 다시 밝아진 얼굴로 용호를 맞이했다.

    ‘착각이었나?’

    그럴 리는 없었다. 분명이 보았다. 하지만 이미 털어낸 생각이었고, 카타리나도 다시 밝아졌기에 용호는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던전에 복귀했고, 대강의 용무는 끝났다. 그러니 이제 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아니, 그렇지 않지.’

    일은 끝나지 않았다. 융케라스의 죽음을 안 아비게일 가와 남부 공백지의 가주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전에 이쪽은 가능한 많은 일들을 처리해두어야 했다.

    “어… 설마 바로 던전 탐사에 나서시려는 건…….”

    카타리나가 용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하지만 용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음 같아서는 어서 카이완의 유산들을 회수하고 싶었지만 루시아가 잠든 지금 던전을 탐사하는 것은 무리였다.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은 다른 것.

    습관처럼 카타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은 용호는 마왕의 옥좌를 돌아보았다.

    &

    “사랑합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제 23장 - 던전 업그레이드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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