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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64화 (64/227)

< 제 21장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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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해서 한 행동이 아니었다.

용호는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쳤고, 그랬기에 더욱 더 강하게 본능에 이끌렸다.

탐욕.

일곱 개의 대죄 가운데 하나인 그것이 용호를 이끌었다.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욕망이 눈앞에서 소용돌이치는 마력의 덩어리를 원했다.

마계라는 세계는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기는 물론이고 돌과 흙, 이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들에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물론 밀도의 차이는 있었다. 마력은 흡사 바람과 같이 마계를 떠돌았다. 그 끝없는 흐름은 자연스런 밀도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뒤틀림은 그러한 마력의 흐름이 일으키는 이현상이었다.

마치 흐르는 강물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발생하는 것처럼, 생각지도 못했던 구간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흐름이 생겨나는 것처럼.

뒤틀림은 위험했다. 그것은 함부로 건드릴만한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탐욕은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위험이 있기에 오히려 더 강한 욕망을 불태우는 것 같았다.

카타리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는 마력에 익숙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눈앞의 뒤틀림이 어느 정도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측정할 능력이 없었다. 그저 처음보다 작아졌으니 위험성 역시 낮아지지 않았을까-하는 막연한 추측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루시아는 달랐다. 던전 상회에서 기본적으로 입력해준 정보가 없다 하더라도 그녀는 던전의 영혼이었다. 던전 내부에서 일어나는 마력의 흐름을 그 누구보다도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존재였다.

작아졌다고는 해도 뒤틀림이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회전하는 마력은 그 자체가 흉기나 다름없었다. 함부로 손을 대었다가는 마력의 뒤틀림을 감당하지 못한 용호의 육신이 파괴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루시아는 지금 이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던전의 영혼이 이 정도로 감정을 가진다는 것 역시 흔치 않은 일이었다.

기대라고 해야 할까.

몇 번이나 말도 안 되는 일을 보여준 자신의 주인님이었다. 그런 주인님이라면 이번에도 자신을 놀라게 해줄 터였다.

아니, 이런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막연한 기대는 너무나 위험했다.

[주인님!]

가까스로 목소리를 토했다. 하지만 용호는 멈추지 않았다. 단순히 탐욕에게 지배당한 것이 아니었다. 용호 역시 눈앞의 뒤틀림을 원했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손을 뻗는 것 역시 아니었다.

용호에게는 마력의 흐름이 보였다. 그리고 그 흐름을 따라 손끝에서 뻗어나간 탐욕의 기운이 움직이는 것 역시 느껴졌다.

용호는 흐름을 거스르지 않았다. 탐욕은 자연스럽게 뒤틀림의 흐름에 합류했다.

“아.”

카타리나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토했다. 아지랑이처럼 공간을 일그러트리던 뒤틀림으로부터 상상도 못했던 여러 색채들이 쏟아져 나왔다. 용호가 보아왔던 광경을 카타리나와 스컬 역시 목격했다.

처음에는 탐욕을 받아들였던 뒤틀림이 이제는 탐욕을 따랐다. 집중되어 있던 마력의 덩어리는 자연스럽게 회전 속도를 늦추었고, 그 과정에서 남은 마력 대부분을 대기 중에 흘려보냈다.

‘탐욕’은 ‘식탐’이 아니었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그저 먹어치우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색색으로 빛나던 소용돌이가 완전히 멈추었고, 거짓말처럼 용호의 오른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용호는 탐욕이 정수를 흡수하듯 마력의 덩어리를 인도하는 것을 보았다.

정수 흡수와는 달랐다.

그보다 훨씬 더 ‘다양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정수는 그 정수의 소유자였던 마족의 특성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왕개미와 포라스의 정수는 그 주인을 따라 냉기를 띄었었다.

하지만 뒤틀림은 자연의 마력이었다. 마계를 떠도는 온갖 마력들의 덩어리였다.

훨씬 더 다양한 속성들이, 그야말로 순순한 마계의 마력들이 용호의 육신에 파고들었다.

청량감이라 해도 좋았다.

용호는 진미를 탐식했을 때의 포만감을 느꼈다. 색색의 마력이 눈을 현란하게 했던 것처럼 각각의 속성들이 잠들어 있던 용호의 감각들을 일깨웠다.

칠색칠성.

인간뿐만 아니라 영혼을 가진 이라면 모두가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그 영혼의 색과 속성.

마계의 마력이 가지는 속성과 색은 칠색칠성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흡사한 것들이 분명 존재했고, 용호는 보다 명확하게 자신의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다.

뒤틀림은 용호의 마력을 크게 성장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존에 쌓여 있던, 마구잡이로 더해졌던 정수들을 온전히 용호의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마치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진 레고 블록을 깔끔하게 재조립한 것과 같았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속성들이 성장했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용호가 눈을 떴다.

피로함이 아닌 상쾌함을 느꼈다. 방금까지 지쳐서 헐떡였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전신에 힘이 충만했다.

“가…주님?”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조마조마한 얼굴로 귀를 축 늘어트린 카타리나가 보였다. 카타리나 뿐만 아니라 그 뒤로 엘리고스와 리쿰까지 보였다.

[괜찮으신 거 맞죠?]

[뒤틀림의 마력을 흡수하신 지 30분이 넘게 지났어요.]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가주님의 마력 회복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마력 용량 역시 약간이지만 더 커졌고요.]

루시아의 말에 용호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소위 말하는 무아지경에 빠졌던 모양이었다.

“가주님?”

여전히 대답을 듣지 못한 카타리나가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물었다. 용호는 안심시키듯 웃었고, 카타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비로소 안도한 카타리나가 길게 숨을 토했다. 그리고 그것은 카타리나의 뒤에 서있던 엘리고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뒤틀림이 발생했다고 해서 급히 달려왔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도 가주님께서 잘 마무리하신 것 같군요.”

엘리고스의 푸근한 미소에서 용호 또한 안정감을 느꼈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엘리고스와 리쿰뿐만 아니라 리쿰이 데려온 것으로 보이는 오크 전사들도 보였다.

시선이 마주치자 순간 움찔했던 리쿰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뒤틀림의 마력을 흡수하신 겁…니까?”

“전부는 아니고 조금.”

씩 웃은 용호는 가볍게 어깨를 풀었다. 엘리고스에게 물었다.

“괜한 소란을 일으킨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어디까지 들었지?”

약간 생뚱맞은 질문이었지만 엘리고스는 거의 바로 용호의 말뜻을 이해했다.

“도착한지 20여분 정도가 지났습니다. 전투 경과는 카타리나에게 모두 들었습니다. 조기에 진압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전전대와 전대 가주 시절을 경험한 엘리고스에게 있어 던전 몬스터는 그야말로 끔찍한 재앙이었다.

불꽃의 진과 함께 나타났던 벌레형 몬스터들은 라이긴이란 녀석들이었다. 화산지대에 살기 때문에 열기에 대한 내성이 제법 강한 녀석들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면에서 쏟아지는 불꽃을 견뎌낼 능력은 없었던 모양이다.

[뒤틀림은 던전 어디에서고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몬 가의 던전은 다른 던전들보다 뒤틀림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약간 늦은 감이 있었지만 이 기회에 명확히 할 요량이었는지 루시아의 설명에 각이 잡혀 있었다.

[일반적으로 던전은 해당 던전의 영혼의 통제하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던전 외부보다 마력의 흐름이 안정적이고, 자연히 뒤틀림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습니다.]

[하지만 마몬 가는 제 통제 밖에 있는 영역이 너무 넓습니다.]

[더욱이 마계의 끝- 저 엔카트로 패그니움의 존재로 인해 마력의 흐름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빠르고 거친 편입니다.]

[뒤틀림은 때로는 더 큰 뒤틀림을 부르기도 합니다. 마몬 가의 지하에는 보다 위험한 던전 몬스터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마디로 위협이 되는 것은 마몬의 사역마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마몬 가의 던전 지하는 그야말로 만마전.

어떤 마수나 괴물이 숨어 있을지 모르니 전대의 가주들이 개척을 포기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카이완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용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용호가 다시 말이 없자 카타리나가 약간은 불안한 눈으로 용호를 보았다. 새삼 다시 카타리나의 머리를 쓰다듬은 용호는 아몬을 허리춤에 회수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루시아에게 공터의 활성화를 명했다.

[공터의 활성화를 개시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루시아의 말대로 잠시였다. 거의 1분도 지나지 않아 공터에 마력이 공급되었고, 다른 방들과 마찬가지로 마력으로 된 빛이 천장에 떠올랐다.

어둠이 모두 밀려나자 용호는 마침내 방안의 전경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돌로 된 방.

하지만 평범한 비활성화 방들과는 달랐다. 바닥과 벽에 복잡한 문장이 새겨져있었고, 무언가의 잔해로 보이는 것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용호는 급히 카이완의 지도를 허공에 펼쳐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지도에서는 이렇다 할 시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루시아가 말했다.

[‘던전 시설 : 공간의 문’을 건설하다가 만 흔적 같습니다.]

“공간의 문?”

용호의 목소리에 엘리고스와 카타리나 역시 반응했다. 단순히 놀랐다고 보기에는 어색한 반응이었지만 용호는 그런 민감한 변화를 포착할 정신이 없었다. 저도 모르게 흥분해 루시아에게 물었다.

“건설하다 말았다니? 그럼 마저 건설해서 완성하는 것도 가능한가?”

카이완이 어째서 공간의 문을 건설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건설하다가 모종의 이유로 취소한 것인지, 아니면 건설 중에 실종된 건지도 모르는 판국에 거기까지 아는 것은 불가능했다.

용호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공간의 문의 완성이 가능한지 여부.

애당초 용호의 ‘1차적인 목적’은 인계와 통하는 공간의 문을 건설할 수 있을 정도로 던전을 키우는 것이었다.

용호의 흥분한 목소리에 루시아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조심스런 목소리로 답했다.

[불가능합니다.]

[현재의 저로서는 공간의 문을 관리, 운영하는 것은 물론이고 설치하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성장을 하면 가능할 겁니다.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 실망하지 마세요.]

“그런가… 아직은 무리인가.”

기대를 했기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다소 실망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타리나와 엘리고스는 이번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카타리나는 안도의 숨을 작게 토했고, 엘리고스는 저도 모르게 꽉 쥐었던 주먹을 풀었다.

용호는 그런 두 사람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머리를 가볍게 터는 것으로 실망감 역시 함께 털어낸 뒤 다시 사역마들을 보았다.

“아무튼 잘 해결 되었어. 여기까지 달려와 준 건 고맙지만 이제 돌아가 봐도 될 것 같아.”

리쿰과 오크 전사들은 용호에게 예를 표한 뒤 물러났다.

엘리고스가 용호에게 물었다.

“가주님께서도 오늘은 그만 쉬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탐사를 시작하고 이제 겨우 시설 하나를 발견했을 뿐이었지만 어찌되었든 꽤 격렬한 전투를 치렀다. 쉴 것을 권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용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간은 아직 용호의 편이 아니었다.

포라스의 공격이 예고되었을 때처럼 급박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공백지의 가주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무리할 생각은 없어. 통로만 조금 더 확보한 다음에 돌아갈 테니 걱정하지 마.”

“알겠습니다. 돌아오셨을 때를 대비해서 식사와 목욕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주면 고맙고.”

예를 표한 엘리고스가 공터를 떠났다. 자기 집에서 탐사를 하니 이런 점에서는 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그럼 다시 시작할까?”

용호가 말했고 카타리나와 스컬이 대답했다. 살라미와 바둑이 역시 다시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방해가 들어왔다.

[주인님, 던전 미어 캣들의 보고입니다.]

[던전에 고속으로 다가오는 인물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말씀하신 부외 사역마- 오필리아인 것 같습니다.]

“오필리아가?”

분명 조만간에 마몬 가의 던전을 방문하기로 한 오필리아였다. 하지만 용호가 마몬 가의 던전에 도착한지 이제 겨우 이틀이 지났을 뿐이었다. 예상보다 빠른 방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용호는 결국 마음을 정했다. 깔끔하게 돌아섰다.

“오늘은 이쯤하지.”

아무래도 오필리아의 빠른 방문이 신경 쓰였다. 어쩌면 다른 가주들이 무언가 긴밀한 움직임을 보였을지도 몰랐다.

바둑이가 앞장섰고, 카타리나와 스컬이 용호의 곁을 호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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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델리온의 딸 오필리아가 위대한 마몬 가의 가주 님을 뵙습니다.”

< 제 21장 #3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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