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63화 (63/227)
  • < 제 21장 #2 >

    &

    사실 똑같이 탐사라 해도 이전에 무기고와 금광 방을 찾아 나섰을 때보다는 상황이 훨씬 더 나았다.

    그때는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상태로 그저 적당히 방향만 보고 나아간 것에 가까웠지만 이번에는 지도가 있었다.

    전전대 가주는 거의 가주 자리를 물려받자마자 크레이지 앤트들에게 금광 방 일대를 빼앗겼다. 사랑하는 누이의 집무실에 있는 물건들조차 포기해야 했으니 상황이 꽤나 급박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는 곧 금광 방 이후의 지역은 거의 모두 카이완의 시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카이완의 일지에서 찾아낸 지도는 장래의 계획까지 포함한 청사진에 가까웠다.

    하지만 적어도 금광 방 근방의 지역은 이미 카이완의 시대에도 완성이 되어 있을 터였으니 지도의 정확도가 높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카이완의 집무실 앞에 도달한 용호는 손가락을 놀려 던전 현황도와 새로 베껴 그린 카이완의 던전 지도를 허공에 펼쳤다.

    출발하기에 앞서 용호가 카타리나를 돌아보았다.

    “그림자를 쓰는 건 좀 어때? 익숙해진 것 같아?”

    용호의 물음에 카타리나는 잠시 망설이더니 귀를 살짝 늘어트리며 대답했다.

    “아직 완벽하진 못합니다. 쓰면 쓸수록 뭔가가 더 있을 것 같기도 해서… 일단은 공격 후 추가타를 가하는 용도로만 써야할 것 같습니다. 어… 한 번 보여드릴까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용호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선 뒤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 빠른 바둑이가 눈을 껌벅이는 살라미의 꼬리를 잡아끌어 뒤로 물러섰다.

    모두에게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카타리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었다. 그대로 허공을 빠르게 베었다.

    분명히 한 번의 동작.

    그런데 카타리나가 허공을 벤 직후 카타리나의 팔 뒤에서 새카만 무언가가 나타나 다시 한 번 허공을 베었다. 카타리나가 벤 지점을 정확히 따라서 벤 검은 기운은 금방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쉐도우 러너로 승급함에 따라 카타리나가 새로이 습득한 능력이었다.

    어둠 속성의 마력을 다루는 기술이었는데, 마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체술에 가까운 것 같았다.

    ‘익숙해지면 아예 분신 같은 걸 다룰 수 있으려나? 아니면 추가타의 횟수가 늘어난다든가.’

    선례가 없다보니 독학으로 모든 걸 알아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제야 좀 뭔가 마족 같네.’

    물론 곡예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카타리나의 몸놀림은 실로 훌륭했지만, 아무래도 ‘마족’이란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실제로 마력을 쓰는 일도 없었고 말이다.

    “잘했어. 앞으로의 성장도 기대할게.”

    “감사합니다.”

    용호가 칭찬하자 솔직하게 기뻐한 카타리나는 단검을 회수했다. 바둑이는 이번에도 신기한 걸 봐서 신난다는 눈치였다.

    [그럼 비활성화 된 통로들의 활성화를 시작하겠습니다.]

    루시아가 상황을 정리하듯 막혀있던 통로를 활성화 시켰다. 탐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사역마 훈련장이었다.

    “순조롭군.”

    금광 방과 사역마 훈련장은 그리 멀지 않았고, 그 사이에 새로 개척한 통로에도 이렇다 할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슬라임 두어 마리가 모습을 보였을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금광 방 안쪽은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시설보다는 안전하게 지켜야 하는 던전의 핵심 시설들을 모아둔 장소였다.

    애당초 생활권이란 감각 하에 배치된 시설들이다보니 시설간의 거리도 가까웠고, 금광 방에서 멀지 않았으니 크레이지 앤트들 덕분에 다른 던전 몬스터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역마 기초 훈련장의 활성화를 시작합니다.]

    마력이 공급되고 빛이 들어오자 거의 마왕의 방만큼이나 넓은 공간이 눈앞에 드러났다. 크레이지 앤트의 잔당으로 보이는 개미 몇 마리가 빛에서 도망치듯 바닥과 벽을 기어 다녔다.

    용호가 눈짓하자 등에 바둑이를 태운 살라미가 크레이지 앤트들을 박멸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딱히 걱정할만한 적이 아니었기에 용호는 싸움에서 눈을 돌려 훈련장 내부를 살펴보았다.

    전체적으로 낡고 오래된 체육관이란 느낌이었다. 다른 방보다 천장이 조금 더 높았고, 바닥에는 흙이 깔려 있었다.

    대련장으로 보이는 사각형 구간 옆에는 게임에서 흔히 보던 허수아비 인형이 몇 개나 세워져 있었다.

    스컬이 시범을 보인다는 듯 망치로 허수아비를 때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모르게 한 번 때릴 때마다 진화 숙련치가 조금씩 오를 것 같은 기분이었던 터라 용호는 반사적으로 진화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오오, 진짜 오른다.’

    이미 꽤 성장한 스컬이라 그런지 망치를 수십 번 휘둘러야 겨우 1정도 오를까 말까였지만 어찌되었든 오른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었다.

    용호의 머릿속에 카타리나도, 리쿰도, 하다못해 고블린들도 아닌 엘리고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엘리고스의 승급 가능 루트에 떠오른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레드 데몬 - 비스트.

    짐승이란 단어가 붙은 만큼 진화하면 어떤 능력을 보여줄지가 기대되었다.

    ‘전투 종족이 분명해. 전투 종족이.’

    씩 웃은 용호는 다시 손가락을 놀려 던전 지도를 펼쳤다. 이대로 쭉쭉 나머지 시설들도 발굴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한창 허수아비를 때리던 스컬이 망치를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컬뿐만 아니라 살라미와 바둑이, 카타리나 또한 거짓말처럼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용호 역시 그랬다.

    벽 너머,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강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대기 중의 마력이 비정상적으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징후가 심상치 않습니다.]

    [던전 상회의 기본 데이터와 현 상황을… 뒤틀림!]

    비교적 침착하던 루시아의 목소리가 마지막에 가서 돌연 높아졌다.

    루시아가 거의 쏟아내듯 말했다.

    [마력의 비정상적 집중으로 인한 뒤틀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뒤틀림으로 인해 열린 공간의 문으로부터 던전 몬스터가 소환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던전 몬스터가 나타날 지 알 수 없습니다. 일단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 주세요!]

    정말로 다급한 상황인지 루시아는 용호에게만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허공에 빛의 문자를 나열해 카타리나에게도 위기를 알렸다.

    용호는 과거 엘리고스에게 들었던 설명을 떠올렸다.

    던전 몬스터가 발생하는 두 가지 원인 중에 하나인 뒤틀림!

    크레이지 앤트와 살라미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나타났었다. 카이완의 시대였다면 곧 격퇴했을 터였지만 전전대 가주는 둘 모두 격퇴하지 못했고, 결국 금광 방과 무기고 일대를 빼앗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될 수도 있었다.

    카타리나가 용호를 보았다. 용호는 빠르게 판단했다.

    “루시아! 뒤틀림이 생기는 장소를 정확히 알려줘!”

    [카이완님의 지도대로라면 훈련장 바로 옆에 위치한 빈 공터입니… 주인님?]

    용호는 아몬을 뽑아들었다. 용호의 의중을 간파한 카타리나는 곧장 무기를 뽑아들었고, 스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도망치지 않는다.

    오히려 뒤틀림이 열린 직후, 던전에 막 소환될 던전 몬스터를 급습해 격퇴한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사실상 마몬 가 던전의 최대 전력들이었다. 어차피 이 전력으로 할 수 없다면 앞으로도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루시아도 용호의 뜻을 알았다. 그랬기에 망설이듯 신음을 토했지만 그리 길지 않았다. 바로 훈련장에서 옆 공터로 이어지는 통로를 활성화 시켰다.

    [이제 곧 뒤틀림으로부터 던전 몬스터가 등장할 겁니다.]

    [이왕 하실 거면 서둘러 주세요! 다치지 마시고요!]

    용호는 씩 웃으며 달렸다. 카타리나를 필두로 한 사역마들이 그 뒤를 따랐다.

    [뒤틀림으로 인한 마력 과잉 때문에 공터의 활성화가 불가능합니다.]

    [예속 사역마 엘리고스와 사역마 리쿰에게 현 상황을 알렸습니다.]

    [사역마 리쿰이 지원부대를 이끌고 곧 당도할 것입니다.]

    용호는 통로 너머 어둠을 보았다. 어둠 사이에서 색색의 마력이 소용돌이 쳤다.

    살라미의 등 뒤에서 뛰어내린 바둑이가 등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막대 모양의 조명장치들을 꺼내 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러자 각각의 막대들로부터 하얀 빛이 일었고, 공터 안의 어둠을 일부나마 몰아냈다.

    마력의 색과 속성을 읽어내지 못하는 카타리나와 스컬의 눈에도 뒤틀림이 보였다.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회전하는 아지랑이와 같았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 일렁이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었다.

    뒤틀림은 어느 던전에서고 발생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발생한 뒤틀림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이었다.

    공터 자체는 그렇게까지 넓지 않았다. 방금까지 있던 훈련장의 사분의 일 정도 크기에 불과했다.

    언제라도 퇴각할 수 있도록 용호는 출구 쪽에 사역마들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살라미에게 뒤틀림을 겨냥하도록 하였다.

    뒤틀림으로부터 던전 몬스터가 소환되는 즉시 살라멘더의 화염을 내쏜다. 상황을 봐서 용호 자신 역시 아몬의 불꽃으로 합류한다.

    교전 없이 불꽃으로 상황을 마무리 짓는 것이 최선.

    살라미가 불꽃을 끌어 모으며 뒤틀림을 주시했다.

    용호가 다시 마력의 색과 속성을 보았다. 뒤틀림을 구성하던 여러 색이 점차 하나의 색으로 통일되었다.

    붉은 색.

    뒤틀림이 멎었다. 회전하던 마력이 일순 폭발했고, 강렬한 빛과 함께 공간이 열렸다!

    “쏴!”

    빛이 시야를 뒤덮은 그때 용호가 외쳤다. 살라미는 눈을 꽉 감으며 입을 벌렸고, 모으고 모은 불꽃을 단번에 쏟아냈다.

    일순간의 화력만이라면 용호조차 상회하는 살라미였다. 불꽃이 빛을 압도했다.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무언가 타들어가는 냄새가 났고, 거친 날갯짓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일순 마비되었던 시야가 회복되었다. 용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보았다. 고작해야 몇 초 남짓한 시간이었고, 살라미의 불꽃은 아직 지속되었다.

    거대한 벌레 같은 것이 보였다. 아직 닫히지 않은 뒤틀림으로부터 쏟아져나온 곤충형 괴물들이 살라미의 불꽃에 휩쓸려 죽음을 맞이했다.

    작전은 성공이었다. 살라미가 슬슬 한계였기에 용호는 바로 아몬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살라미의 불꽃이 갈라졌다. 뒤틀림으로부터 일어난 거센 불길이 살라미의 불꽃을 뚫고 솟구쳐 올랐다.

    용호는 순간 살라미와의 첫 교전을 떠올렸다. 아몬의 불꽃으로 살라멘더의 불꽃을 제압했던 광경이 눈 앞에서 거의 비슷하게 재현되었다.

    “진! 불꽃의 진입니다!”

    카타리나가 소리쳤다. 뒤틀림으로부터 솟구쳐 오른 불꽃은 끊임없이 타올라 그 형태가 명확하지 않았지만 얼핏 거대한 사내의 상체를 이루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놈에게는 불꽃이 통하지 않았다. 다른 공격수단이 필요했다.

    “스컬컬!”

    스컬이 용맹하게 돌진하며 전투 망치를 휘둘렀지만 소용 없었다. 망치로 불꽃에 타격을 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스컬의 공격을 거의 무시하다시피 한 진은 고개를 돌려 헐떡이는 살라미와 용호, 카타리나를 보았다. 두 팔 가득 불꽃을 모으더니 살라미가 했던 것처럼 거대한 불꽃을 내뿜었다.

    찰나가 생사를 갈랐다.

    카타리나는 긴장으로 꼼짝도 못하는 바둑이의 허리를 안고 지면을 박찼다. 살라미는 지친 가운데 불꽃을 노려보았고, 용호는 살라미를 보호하듯 정면으로 나서며 아몬의 불길을 일으켰다.

    불꽃과 불꽃이 격돌했다. 바둑이를 한 팔에 안고 지면을 박찬 카타리나는 순식간에 천장과 벽을 연달아 박차 진의 배후로 돌아갔다. 그림자와 더불어 단검을 던졌다.

    이번에도 소용없었다. 단검에 연이어진 그림자가 약간의 타격을 입힌 것 같기는 했지만 불꽃을 약간 헤집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애당초 카타리나의 목적은 일격으로 불꽃의 진을 쓰러트리는 것이 아니었다. 배후를 점한다는 행위 그 자체로 불꽃의 진의 신경을 분산시키는 것에 있었다.

    용호가 불꽃을 꿰뚫었다. 아몬으로부터 일으킨 녹염으로 전신을 뒤덮었고, 그대로 불꽃의 진을 향해 돌진했다.

    카타리나에게 시선을 분산했던 불꽃의 진은 급히 용호를 돌아 보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용호와 불꽃의 진 사이의 거리가 좁혀진 상태였다.

    불꽃의 진이 거칠게 양 팔을 휘둘렀다. 허공에서부터 불꽃의 파도가 머리를 향해 밀려오는 것은 그야말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용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아몬의 녹염을 더욱 거칠게 일으키며 불꽃의 진을 주시했다.

    불꽃의 파도가 용호의 얼굴을 덮쳤다. 녹염과 뒤섞였고, 허공에서 비산했다. 용호는 그 모든 와중에도 다시 한 걸음을 내딛었다.

    뜨거웠다. 불꽃이 서로를 집어삼키며 만들어낸 광경이 눈을 현혹시켰다. 녹염으로 방어해낼 수 있다고 믿었지만 눈앞의 불꽃에 본능이 반응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불꽃이 이번에는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렸다. 다시 한 번 녹염이 불꽃과 함께 어울렸다. 폭발했고, 용호의 전신을 감싸던 녹염이 순간이지만 사라졌다.

    뜨거움이 훨씬 더 강해졌다. 당장이라도 눈을 감고 싶었다. 불꽃의 진으로부터 일어난 불꽃이 바로 코앞에서 이글거렸다.

    아몬의 불꽃이 만능은 아니었다.

    살라미를 처음 격퇴했을 때도 녹염으로 불꽃을 방어했을 뿐, 결정적으로 승패를 가른 것은 살라미의 육신에 스컬이 행한 직접 공격이었다.

    그렇다면 어디인가.

    불꽃으로 이루어진 놈의 어디를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가.

    용호는 마력의 흐름을 보았다. 일촉즉발의 순간에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발휘해 읽어냈다.

    불꽃 속에서 또 다른 색이 보였다. 소용돌이치는 그것이야말로 불꽃의 진의 핵심이었다.

    용호가 다시 한 번 녹염을 일으켰다. 아몬이 아닌 왼팔을 불꽃 속에 쑤셔 박았다.

    녹염과 불꽃이 다시 한 번 폭발했다. 불꽃의 진과 용호는 서로를 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용호는 개의치 않았다. 마력을 읽었고, 핵심에 손을 뻗었다. 녹염 대신 팔찌에 저장해둔 마력을 일시에 발산했다!

    그것은 불꽃이 아니었다.

    한기였다. 여왕개미와 포라스로부터 흡수한 냉기를 담은 마력이었다!

    카이완의 일지와 함께 발견된 팔찌에는 마력을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랜드 웜과 전투에서 기존에 저장되어 있던 마력을 모두 소모한 용호는 그 안에 냉기의 마력을 담았다. 마력 조절이 서툰 용호였던 터라 팔찌 하나를 가득 채우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상관없었다. 애당초 자유도시에서 던전으로의 귀가 길에 남는 것은 오로지 시간뿐이었다.

    용호는 아직 마법을 쓸 줄 몰았다. 그저 단순히 냉기를 일시에 발산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냉기가 불꽃을 몰아냈다. 불꽃의 진의 핵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불꽃의 진이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바람소리와도 같은 그것을 용호는 무시했다. 있는 힘을 다해 얼어붙은 핵을 움켜쥐었다!

    마치 연약한 얼음조각처럼 핵이 부서졌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불꽃의 진을 형성하던 불꽃들이 흩어졌고, 이내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열기만이 불꽃의 진이 존재했단 사실을 증명했다.

    “허억, 헉…….”

    용호가 거친 숨을 토하며 비틀거렸다. 카타리나가 급히 그런 용호를 부축했다.

    [뒤틀림으로부터 더 이상 던전 몬스터가 나타날 징후가 보이지 않습니다.]

    [잘 하셨어요. 정말 잘 하셨어요!]

    [예속 사역마 엘리고스와 사역마 리쿰에게도 이 상황을 전하겠습니다.]

    루시아의 안도 섞인 목소리에 용호는 눈을 한 번 꾹 감았다. 손에 남은 핵의 파편에서부터 약간이지만 마력이 느껴졌다. 정수 흡수는 무리겠지만 루시아에게 줄 간식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설마하니 불꽃이 통하지 않는 적이 나타날 줄이야.

    그래도 결국 쓰러트렸다. 카타리나 역시 기쁨을 감추지 않고 환히 웃었다.

    [뒤틀림은 자연 소모될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라는 것이 있으니 뒤틀림과 잠시 거리를 두시길 권장합니다.]

    정론이었다.

    하지만 용호는 물러서는 대신 카타리나에게 의존해 몸을 바로 했다. 작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회전하는 뒤틀림- 마력의 흐름을 주시했다.

    뒤틀림은 대기 중의 마력이 비정상적으로 응집되어 일어난 현상.

    다시 말해 그 자체가 거대한 마력의 덩어리.

    “가주님?”

    [주인님?]

    카타리나와 루시아가 동시에 말했다. 용호는 두 사람에게 대답하는 대신 뒤틀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용호 안의 탐욕이 입을 벌렸다.

    &

    < 제 21장 #2 > 끝

    ⓒ 취룡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