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60화 (60/227)
  • < 제 20장 - 카이완의 일지 >

    용호가 자유도시를 다녀오는 사이 던전 재개편을 진행한 마몬 가의 던전은 통로와 각 시설의 위치 등이 크게 바뀌었다.

    때문에 엘리고스는 감옥으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새로 바뀐 던전 곳곳을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던전의 첫 방어시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외길입니다. 이전의 구불구불한 외길 통로는 통로의 길이를 길게 하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통로 사이의 벽이 얇다는 구조적 약점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새로 개편한 외길 통로는 통로 사이의 벽 굵기가 거의 방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정도가 되었습니다.”

    포라스가 시전한 ‘벽 파괴’에 대한 대응책이었다.

    비활성화 된 공간의 경우 속이 텅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벽 파괴에 약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새로 개편한 외길 통로는 코너를 돈 이후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통로와 통로가 나란히 서는 구간 사이의 벽을 대폭 강화했다. 비활성화 공간을 아예 메워버림으로써 단단한 방벽을 만든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공간을 다 메운 것은 아니었다. 이전과 같이 활성화를 통한 게릴라 전술을 구사하기 위해 일부 공간은 메우지 않은 비활성화 공간으로 놔두었다.

    던전을 침투한 적이 투시 능력이라도 있지 않는 한 비활성화 공간과 메워둔 공간을 구분하는 것은 무리일 터였다.

    ‘나중에 진짜 그런 적이 나올 것도 같지만.’

    마법이 실존하는 마계였다. 이래저래 쓸모가 많은 투시 마법이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단은 나중 문제였다. 그리고 설사 투시 마법이 있다고 해도 백 미터가 넘는 벽을 전부 투시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던전 상회에서 이전에 사들인 함정들을 외길 통로에 집중적으로 배치할 예정입니다. 코너 구간에는 경비를 설 인원들이 쉬어갈 수 있는 초소를 만들어두었습니다.”

    마침 코너 구간이었기에 엘리고스가 벽에 달린 문을 열었다. 두 명에서 세 명 정도가 쉴 수 있는 작은 방이었는데 간이침대와 의자 등이 놓여 있었다.

    경비 초소에 앉아 있던 오크가 자리에서 일어나 용호에게 예를 표했다. 이전에 팔다 남은 무기들로 무장한 상태였다.

    코너가 세 개나 되었던 이전과 달리 새로운 외길 통로는 코너가 딱 하나만 존재했다. 그만큼 통로의 길이가 짧아졌지만 이전처럼 벽 파괴에 당할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외길 통로를 쭉 내려가니 다른 방 네, 다섯 개를 합친 크기의 커다란 방이 나왔다.

    이번에도 엘리고스가 설명했다.

    “가주님이 명령하신 1차 요격지입니다. 평소에는 비워두었다가 적들이 외길 통로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사역마들이 배치될 예정입니다.”

    1차 요격지는 단순히 넓기만 한 방이 아니었다. 방어전을 기본으로 구상했기에 아직 미완성이긴 했지만 방벽이라든가 해자, 함정 같은 것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치 실내에 작은 성을 만들어둔 느낌이었다.

    엘리고스가 요새 한 가운데 설치된 동그란 마법진을 가리켰다.

    “1차 요격지의 유일한 상주 사역마인 트리엔트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가주님도 아시겠지만… 트리엔트는 현재 복귀 중입니다.”

    걸음이 느린 트리엔트인 터라 외길 통로를 꼼꼼히 살피며 이동한 용호 일행보다도 도착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카타리나는 어색하게 웃었고, 스컬은 트리엔트 대신이라도 되듯 마법진 한 가운데 서서 두 팔을 크게 벌렸다.

    1차 요격지에서 쭉 뻗은 길을 조금 지나자 사거리가 나타났다.

    던전은 적에게 ‘미지의 공간’이었다. 그런 만큼 길을 약간 꼬는 것만으로도 적에게 혼란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잘하면 병력의 분산까지 유도할 수 있었다.

    던전을 아예 미로로 만들어 버리면 던전 내의 생활 자체가 힘들어질 터였지만, 어느 정도 길을 꼬아두는 것은 던전의 방어력을 높이는데 유용한 수단이었다.

    사거리 한 가운데 선 엘리고스가 왼편과 오른편을 각각 가리키며 말했다.

    “가주님을 중심으로 오른편 길은 창고 통로입니다. 외길 좌우로 자원 창고 등을 배치해둔 방이죠. 던전 공격자 측에서는 쓸모가 있다고 하기 힘든 목재나 석재 등을 모아둔 공간입니다.”

    용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적에게는 쓸모가 없는 적당한 것들을 배치하라고 했는데 엘리고스가 알아서 잘 처리해준 느낌이었다.

    “왼쪽 길은 그냥 길기만 한 통로입니다. 나중에 새로운 것들을 설치할 수도 있고… 일단은 1차 요격지로 가는 사역마들을 위한 화장실과 물을 마실 수 있는 식수방을 하나 만들어 뒀습니다.”

    결국 던전 내부로 이어지는 진짜 길은 쭉 뻗은 직진로라는 이야기였다.

    ‘으음, 내가 명령하긴 했지만 살짝 불안하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황에 처하면 사람들은 의외일 정도로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1번과 2번이 있으면 1번을 고른다든가, 사거리가 있으면 일단 직진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왕 적을 혼란시킬 목적이라면 조금 길을 꼬더라도 좌우측 중에 하나를 진짜 통로와 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뭐, 나중에라도 고치면 될 문제니.’

    용호는 좌우 통로를 돌아보는 대신 일단은 직진을 했다. 던전을 둘러보는 것도 둘러보는 것이었지만 감옥에도 가야했기 때문이다.

    직진하니 이번에는 2차 요격지가 나왔다. 1차 요격지와 크기 자체는 비슷했지만, 이번에는 공터라는 느낌이 강했다.

    “현재로서는 최종 방어선인 2차 요격지입니다. 추후 가주님의 명령에 따라 방어 시설을 보충할 생각입니다.”

    이번 던전 개편은 꽤나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진행한 일이었다. 나중에는 마몬 가의 전투 사역마들도 많아질 터이니 지금처럼 요격지를 여럿 만들어두는 것이 맞았다.

    2차 요격지를 지나니 드디어 본격적인 생활공간들이 나왔다. 사거리 복도 좌우로 사역마 생활관들이 있는 공간과 식량 창고가 있는 공간이 나왔다.

    사역마 생활관을 두 개나 만든 것은 나중에 추가될 사역마들을 고려해서이기도 했지만, 고블린들과 오크들의 휴식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서였다.

    잠을 잘 자는 것만큼 중요한 휴식은 없었다. 더욱이 사역마 생활관은 하루의 고된 노동을 끝내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만 했다.

    오크들이 고블린들을 괴롭히는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성격과 하는 일 자체가 다른 두 종족이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공간을 분리해 두는 편이 나았다.

    식량 창고 부근에는 화장실과 식수장, 사역마 식당 등이 자리했다.

    ‘요리사도 구해야겠네.’

    막상 자신이 지시하긴 했지만 식당과 부엌의 규모가 상당했다. 현재 마몬 가 사역마들 가운데 ‘식사’를 하는 사역마는 대략해서 십여 명.

    이 정도 인원의 식사준비를 이래저래 하는 일이 많은 엘리고스에게만 떠넘길 수는 없었다. 조만간에 취사 전문 사역마를 구해야 할 듯 했다.

    ‘이래서 귀족 저택에는 그렇게 사용인이 많았구나.’

    잠시 19세기 귀족들의 삶을 다룬 영국 영화를 떠올린 용호는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별 거 없지만 넓기는 확실히 넓은 부엌을 행복한 얼굴로 바라보던 엘리고스는 이내 다시 안내를 이어나갔다.

    두 번째 사거리를 지나자 아직은 아무 것도 설치되지 않은 3차 요격지와 나중을 위해 비어둔 공간들이 나왔다.

    갈림길에 멈춰 선 엘리고스가 말했다.

    “여기서 쭉 직진하시면 가주님의 방인 ‘마왕의 방’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나옵니다. 이전처럼 무작정 나오는 구조가 아닌, 갈림길입니다. 다른 갈림길로 가시면 무기고와 금광 방으로 이어지는 통로, 금을 보관해둘 전용 창고, 목욕탕 등이 나옵니다.”

    이제까지 얌전히 듣고만 있던 카타리나가 ‘목욕탕’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였다. 아니, 당장 살랑거리는 꼬리만 봐도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었다.

    엘리고스가 직접 안내하는 대신 설명만 늘어놓은 것은 용호가 일단은 감옥에 들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용호는 엘리고스의 안내를 따라 감옥과 고문실이 있는 통로에 들어섰다.

    통로에 들어서자마자 엘리고스의 얼굴에 새삼 생기가 돌았다. 새로 만든 감옥인 터라 아직 감옥 특유의 무겁고 칙칙한 냄새도 없건만 마치 공기가 다르다는 듯 크게 심호흡까지 했다.

    다른 시설들이 그러하듯이 감옥 역시 크게 확충을 했다.

    하나였던 감옥 방을 네 개로 늘렸다. 각기 다른 감옥 안의 죄수들이 서로를 볼 수 없도록 통로 한 면에 일렬로 배치시켰고, 그런 감옥들의 맞은 편에는 엘리고스의 꿈의 궁전인 고문실이 자리했다.

    엘리고스가 첫 번째 감옥 문을 열었다.

    깨끗한 감옥 한 귀퉁이에 털복숭이 드워프 하나가 축 늘어져 있었다. 입구에 서서 잠시 드워프를 바라본 용호가 엘리고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문 안 했다며.”

    “마몬 님께 맹세코 안 했습니다. 본래 저런 상태였습니다.”

    용호가 다시 드워프를 보았다.

    힘없이 축 늘어진 건 둘째치고 눈이 썩은 통태 눈깔마냥 죽어 있었다. 당장에 감옥 안에 누가 들어왔는데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죽…은건 아니지?”

    “아닙니다. 아무래도 실의에 차서 자포자기한 것 같습니다. 가능하시다면 반품을 고려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엘리고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용호는 바로 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지금까지 던전 상회에서 사들인 사역마들은 거의 모두가 단순했다.

    고블린들은 진화시켜주고 밥 주고 잠잘 곳 주는 용호와 마몬 가를 좋아했고, 트리엔트는 뿌리 내릴 곳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느낌이었다.

    골렘들은 애당초 무생물이었고, 스컬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비교적 행복해 보였다.

    카타리나와 엘리고스는 사역마이기는 했지만 스스로 마몬 가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이 강했다.

    새로 고용한 오크들은 애당초 노예가 아닌 자유 사역마들이었다. 비록 전투에서 진 바람에 사실상 반 강제로 마몬 가에 고용되기는 했지만 현 상황에 딱히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저 감옥 안의 드워프는 달랐다.

    던전 상회에서 구매할 때 읽어본 정보에 따르면 저 드워프는 애당초 마계 출신도 아니었다. 용호 자신처럼 다른 세상 출신이었고, 어느 마왕과의 던전 전투에서 패해 노예가 된 신세였다.

    용호는 잠시 상상력을 발휘해 보았다.

    목숨을 함께한 전우들은 모두 죽었다.

    겨우 살아남은 자신은 낯선 세상에 홀로 버려졌고, 그나마도 노예가 되어 여기저기 팔려 다니는 몸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꽤나 암울했다. 그냥 순종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엘리고스 말처럼 자포자기해서 그냥 폐인이 되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법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더욱이 저 사역마는 시트리가 따로 뽑아준 리스트에 들어 있던 사역마들 가운데서도 ‘추천’이라는 코멘트가 붙어 있던 녀석이었다.

    물론 시트리가 마몬 가에 무조건적인 호의를 베푼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시트리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폐인을 재고처리 하겠다며 떠넘겼을 것 같지는 않았다.

    용호는 감옥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혹시 모를 돌발 사태에 대비해 카타리나는 전투태세에 들어갔고, 스컬 역시 흐느적거리긴 했지만 용호의 주변을 벗어나지 않았다.

    용호가 바로 몇 걸음 앞까지 왔음에도 드워프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용호는 서두르지 않고 진화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사역마 등록 이전과는 달라졌을 진화 정보를 살펴보았다.

    [이름 : 버그림]

    [종족 : 드워프 (남)]

    [분류 : 비 마계인]

    [속성 : 대지 3레벨 | 불꽃 4레벨]

    [개체 천성]

    [우직함 / 성실함 / 의심]

    [개체 적성]

    [체력 / 마력 / 기량]

    [진화 숙련치 : 0/100]

    [체력 특화 2레벨 | ★★★ (3)]

    [힘 특화 2레벨 | ★★☆ (2)]

    [마력 특화 | - ] - 손상 | 진화 시 더 많은 진화 숙련치 필요

    [기량 특화 5레벨 | ★★★ (3)]

    사역마 등록 전에는 보이지 않던 특화와 속성 레벨이 보이자 용호는 순간 눈을 깜박였다.

    높았다. 잠재력 자체도 나쁘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이미 꽤나 발전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는 눈앞의 드워프- 버그림이 꽤나 출중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뜻이었다.

    ‘기량이 5레벨?’

    이제까지 본 적도 없는 레벨이었다. 용호 자신의 마력도 아직은 4레벨에 불과했다.

    확실히 진화 정보만 보자면 시트리가 추천할 만한 사역마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욕을 되찾아 주는 것이냐인데.’

    용호는 다시 한 번 진화 정보를 보았다. ‘손상’이라 표시된 마력 특화와 개체 적성에 따로 표시된 마력을 번갈아 보았다.

    눈앞의 버그림을 구매했을 때 읽었던 던전 상회의 짧은 소개문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았다.

    [이계 출신의 드워프.]

    [이계와 연결된 ‘마왕 에이두손의 던전’을 침공한 모험가 파티의 일원.]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파티원들은 전멸.]

    [본 상품을 던전 상회에 출품한 ‘마왕 에이두손’ 님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사역마의 고향에 존재하는 드워프들은 여타 세상의 드워프들에 비해 마법 무기 생산에 출중한 재능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던전 상회에서 거래된 같은 이계 출신의 드워프들을 통해 증명된 바입니다.]

    가격에 어울리지 않는 높은 능력치.

    던전 전투에서 패해 노예가 된 이력.

    죽어버린 눈동자.

    마법 무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종족 정보.

    용호가 자세를 낮췄다. 버그림을 보며 말했다.

    “마력을 쓰지 못하게 되었군. 회복할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 같지만.”

    혼잣말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순간 버그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죽어 있던 두 눈에 약간이지만 ‘기대’라는 감정이 어렸다.

    용호가 다시 버그림을 보았다.

    이번에는 버그림 역시 고개를 돌려 용호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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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20장 - 카이완의 일지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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