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59화 (59/227)
  • < 제 19장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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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라멘더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은 실로 환상적인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계속 하늘을 누비고 싶었다.

    하지만 살라멘더에게서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아직 나는 법이 서툰 데다가 진화 자체에도 상당한 체력을 소모했기 때문이었다.

    살라멘더는 자연스럽게 고도를 낮춰 다시 던전 입구 쪽으로 돌아갔고, 용호도 괜한 욕심을 부리는 대신 살라멘더의 뜻을 따라주었다.

    살라멘더가 지상에 안착했다. 나는 법 만큼이나 착지도 서툴러서 그 모양새가 꽤나 볼썽사나웠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크들이 제일 먼저 박수를 쳤고, 전염이라도 되듯 사역마 일동이 살라멘더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살라멘더는 부끄럽다는 듯 낑낑 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용호는 그런 살라멘더의 등을 한 번 쓰다듬어 준 뒤 바닥에 내려섰다. 이미 손잡이까지 달려있는 마당이었으니 안장만 어디서 하나 구해오면 딱일 것 같았다.

    ‘다만.’

    막상 내리고 보니 흥분 때문에 놓쳤던 것들이 떠올랐다.

    너무 과했던 것이 아닐까.

    살라멘더의 진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던전 밖에서 살라멘더를 진화시켰다는 사실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오필리아는 마몬 가의 던전 부근을 감시한 덕분에 용호가 마몬 가의 가주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 오필리아가 카타리나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것이 크게 작용하긴 했지만 말이다. -

    다른 가주들이나 선술집의 정보원들은 포라스의 던전을 주시했기에 포라스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용호는 새삼 등 뒤를 돌아보았다.

    오필리아는 자신 외에는 마몬 가의 던전 부근을 감시 중인 자가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오필리아도 아버지가 카이완이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마몬 가의 길목에 남긴 감시용 아티펙트를 통해서 감시 중이라 말했다.

    던전 입구 바로 근방은 던전 그 자체의 마력으로도 보호되었기에 감시용 마법이나 아티펙트를 설치해두는 것이 어려웠다. 직접 감시하는 자들도 여간해서는 던전 미어 캣 같은 방범용 사역마들 덕분에 일찌감치 알아차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니 일단은 본 사람이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좀 무리수이기는 했다. 다음부터는 삼가야 할 일이 분명했다.

    ‘그렇긴 한데.’

    다시 돌아서서 사역마들을 마주한 용호는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다들 눈이 초롱초롱해도 너무 초롱초롱했다.

    카타리나는 끙끙 앓는 표정으로 살라멘더를 바라보았는데, 아무래도 한 번 태워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꼬리며 귀가 축 늘어져 있는 게 보기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오크들은 고블린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며 잔뜩 흥분했고, 고블린들과 코볼트는 언제나처럼 방방 뛰기 바빴다. 스컬도 망치를 흔들며 함께 환호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흥분한 것은 트리엔트였다.

    진화한 본인인 살라멘더보다도 더 흥분한 트리엔트는 가지를 부들부들 떨며 용호 쪽을 보았다. 나무 몸통에 형성된 사람의 이목구비 역시 무척이나 다이나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치 깠구나.’

    다음이 자기 차례라는 사실을.

    용호는 다시 등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미 저지른 마당에 한 번 정도 더 어때-라는 생각을 하며 트리엔트에게 다가섰다.

    용호가 트리엔트에게 가까이 가자 다른 사역마들은 거짓말처럼 입을 꾹 다물고 용호와 트리엔트를 보았다. 마치 마술쇼를 지켜보는 관중들 같았다.

    용호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코볼트 옆에 선 공주개미가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고작 며칠이었지만 그 사이에 좀 더 감정이랄 것이 생긴 모양이었다.

    공주 개미의 사역마 등록도 더는 뒤로 미룰 수 없었다. 오늘의 진화는 트리엔트로 끝내야 할 터였다.

    “좋아, 마음을 편히 먹고 몸의 긴장을 풀어.”

    용호의 말에 트리엔트가 눈에 띄게 가지를 축 늘어트렸다. 다시 한 번 사역마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왼손에 낀 금반지를 높이 들어 올린 용호는 진화의 권능으로 트리엔트를 살펴보았다.

    [종족 : 트리엔트 (남)]

    [분류 : 마수 (하급)]

    [속성 : 대지 1레벨]

    [개체 천성]

    [순박함]

    [개체 적성]

    [덩굴 / 체력]

    [진화 숙련치 : 100/100]

    [덩굴(촉수) 특화 1레벨 | ★★ (2)] -> 진화시 승급 루트 개방

    [체력 특화 0레벨 | ★★ (2)]

    [민첩 특화 0레벨 | ★ (1)]

    아무래도 애당초 2성 사역마인 데다가 진화도 한 번 밖에 하지 않은 터라 살라멘더보다는 이래저래 부실한 트리엔트의 진화 정보였다.

    트리엔트 역시 미리 진화 루트를 고민해두었기에 용호는 미련 없이 덩굴 특화를 선택했다.

    이번에도 빛이 트리엔트를 휘감았다. 노란 빛에 휩싸인 트리엔트의 실루엣이 변모하였고, 사역마들은 다들 숨까지 멈추고 트리엔트의 변화에 집중했다.

    빛이 사라졌다. 용호는 숨을 길게 토하며 트리엔트의 몸체에 올려두었던 손을 회수했다. 뒤로 몇 걸음 물러나 트리엔트의 전신을 시야에 담았다.

    이전보다 덩치가 약간 더 커지고 덩굴과 가지의 숫자가 늘었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해도 좋았다.

    사역마들은 이번에도 다들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하지만 정작 진화한 본인인 트리엔트는 잠시 스스로를 돌아보더니 풀 죽은 얼굴로 가지를 축 늘어트렸다. 아마 자기도 날개가 생길 거라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미안하다. 거기까지는 무리다.’

    물론 살라멘더도 없던 날개가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허용 범위 내의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무에서 날개가 돋아나 날아다니는 모습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힘내라는 듯 트리엔트의 가지를 툭툭 두드린 용호는 새로 개방된 승급 루트를 건드려 보았다.

    [트리엔트 - 공격형] | [트리엔트 - 수비형]

    둘 모두 발이 느려 보이는 건 여전했지만 공격형은 덩굴 외에도 솔방울이라든가 가시 같은 부가 무장 같은 것이 생겨났고, 수비형은 전체적으로 나무껍질이 크고 두꺼워졌다.

    승급 후의 모습까지 대강 확인한 용호는 엘리고스를 돌아보았다. 더 지체하지 않고 사역마들과 함께 마몬 가의 던전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

    [정말이지! 다 도착하셔놓고 왜 안 들어오시는 거예요!]

    [설마 저 애태우려고 그러신 거예요?]

    [그래도 무사히 잘 돌아오셨습니다.]

    투정 부리듯 성을 내다가 돌연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용호를 환대하는 루시아였다.

    빠른 태세 전환이 꽤나 귀여웠던 터라 용호는 스컬처럼 껄껄 웃은 뒤 며칠 만에 돌아온 던전 입구 방을 돌아보았다. 대대적인 던전 구조 개편을 했지만 입구 방 자체는 그다지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내부 통로는 미리 지시해둔 대로 배치가 모두 끝났습니다. 현재는 함정들을 재설치하고 작업장 등을 건설하는 중입니다.”

    용호의 의중을 읽은 엘리고스가 설명했다. 용호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천장 쪽을 보았다. 허공에 손가락을 놀리며 말했다.

    “루시아, 지금 바로 공주개미의 사역마 등록이 가능할까?”

    [가능합니다.]

    [밖에서의 진화도 그렇고, 오늘은 주인님 마음이 살짝 급하신 것 같아요.]

    “아직이야. 너 줄 선물도 남아 있는 걸.”

    용호의 말에 루시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람이었다면 아마 눈을 껌벅이고 있을 터였다.

    [저 줄 선물이요?]

    [선물 사오셨어요?]

    “바로 사역마 등록을 시작하자. 보조해줘.”

    일부러 화제를 돌리듯 느긋이 말한 용호는 코볼트와 공주개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볍게 손짓하니 금방 그 뜻을 알아들은 코볼트가 공주개미를 데리고 용호 앞으로 다가왔다.

    용호의 머릿속에 불만스런 얼굴로 입술을 삐쭉이는 루시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로 그러하기라도 했는지 약간은 토라진 목소리가 이어졌다.

    [준비 완료입니다. 바로 시작해 주세요.]

    [이전에 말씀드렸다시피 공주개미의 사역마 등록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마력이 소모될 예정입니다.]

    [이 점 주의해 주세요.]

    그래도 공과 사는 확실한 지 마지막에 가서는 다시 착실한 목소리로 돌아온 루시아였다.

    용호는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 뒤 공주개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밖에서 본 것 때문인지 공주개미는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눈을 꾹 감고 용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루시아가 미리 경고한 대로 거의 살라멘더를 진화시켰을 때와 비등한 마력이 일순간에 소진되었다.

    공주개미는 끙 앓는 소리를 냈고, 그런 공주개미의 이마 위에 새하얀 마법진이 그려졌다.

    [사역마 등록이 끝났습니다. 공주개미는 이제 마몬 가의 사역마입니다.]

    “후우.”

    마력 소모만 따지면 연달아 세 번 진화를 시킨 셈인 터라 용호는 숨을 길게 토하며 손을 거두었다. 그러자 공주개미는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스스로를 돌아보더니 이내 실망한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아마 자신 역시 진화를 할 거라 생각했던 것 같았다.

    용호는 다시 그런 공주개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역마 등록을 했기 때문인지 이전보다 친밀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건 공주개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석같던 이전보다 조금 더 친애의 감정을 드러냈다.

    ‘조금만 더 무리하자.’

    사역마 등록 직후의 연례행사와도 같은 일이었으니까.

    용호는 진화의 권능으로 공주개미를 보았다.

    [종족 : 크레이지 앤트 (여)

    [직위 : 공주개미]

    [분류 : 마수 (하급)]

    [속성 : 냉기 0레벨]

    [개체 천성]

    [순진함]

    [개체 적성]

    [매력 / 마력]

    [진화 숙련치 : 0/100]

    [매력 특화 0레벨 | ★★ (2)]

    [감성 특화 0레벨 | ★☆ (1.5)]

    [마력 특화 0레벨 | ★★ (2)]

    [체력 특화 0레벨 | ★ (1)]

    [속성 강화 0레벨 | ★☆ (1.5)]

    ‘좋아.’

    용호는 진화 루트를 나타내는 빛의 상자들을 하나씩 건드려 보았다. 공주개미의 몸 위로 흐릿한 실루엣이 그려졌는데, 어느 쪽이든 그리 현격한 변화는 없었다. 고작해야 10살짜리가 11살이 된다는 기분이었다.

    ‘어른이 되면 여왕개미 승급 같은 게 생기려나?’

    [일반적으로 공주개미가 여왕개미가 되기 위해서는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합니다.]

    [해당 개체는 현재 군락을 잃은 상태이니 새로운 군락 형성을 위해 빠른 성장을 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연.’

    고개를 끄덕인 용호는 다시 공주개미를 보았다. 자세를 낮춰 공주개미와 눈높이를 맞춘 뒤 말했다.

    “잘 부탁한다. 오늘부터 네 이름은 ‘유리아’다.”

    사역마 등록의 영향인지 공주개미가 말뜻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역마 목록에도 ‘유리아’라는 이름이 추가되었다.

    공주개미와 항상 붙어 다니던 코볼트가 왈왈 거리며 다시 방방 뛰었다. 공주개미를 축하하는 것 같으면서도, 슬쩍 용호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자기한테도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바둑이나 멍멍이 정도면 되려나.’

    앞으로 등록하게 될 사역마들 모두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무리겠지만 살라멘더와 트리엔트에게까지는 이름을 지어줘야 할 것 같았다.

    ‘살라멘더는 람보르기 디아볼로나 포르쉐라거나… 아니, 이건 좀 너무했네. 살라미 정도로 할까?’

    어찌되었든 일단은 뒤로 미뤄둘 이야기였다. 자유도시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엘리고스와도 상의해야 했고, 새로 재편된 던전 구조로 파악해둬야만 했다.

    엘리고스가 사역마들을 해산시키고 나자 용호는 겨우 한시름 놨다는 얼굴로 말했다.

    “뭔가 많이 늦었지만 다녀온 일은 잘 되었어.”

    “그럴 것 같았습니다.”

    엘리고스가 푸근하게 웃었다. 용호는 그런 엘리고스와 카타리나, 스컬을 대동하고 던전 안쪽으로 이동했다. 던전 현황도를 열어서 재편된 통로를 살피다가 문득 물었다.

    “그러고 보니 드워프는 지금 어디에 있지?”

    작업장을 맡기로 한 제조 기능을 가진 드워프.

    용호의 물음에 엘리고스가 여전히 푸근한 얼굴로 답했다.

    “당연히 감옥에 있습니다.”

    어째서 감옥이란 말 앞에 ‘당연히’가 붙는 것일까.

    용호는 미묘한 얼굴이 되어 다시 물었다.

    “혹시나해서 묻는 거지만, 고문은 안 했지?”

    엘리고스의 얼굴에 시무룩한 기색이 어렸고, 용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 19장 - 자가용 끝, 제 20장 - 카이완의 일지로 이어집니다.

    < 제 19장 #2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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