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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58화 (58/227)
  • < 제 19장 - 자가용 >

    제 19장 - 자가용

    중립.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공정하게 처신하는 것.

    어느 편에도 서지 않기에 누구에게도 공격받지 않는다는 참으로 속편한 개념.

    약자들에게 있어 중립은 그야말로 꿈과 같은 개념이었다.

    자신의 편에 설 것인지, 적이 될 것인지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강자들에게서 해방될 수 있는 출구였고, 평화롭게 자신의 힘을 기를 수 있을 최고의 방패막이였다.

    ‘그래, 꿈과 같지.’

    힘없는 중립은 존재하지 않았다.

    약자의 중립 선언 따위 짓밟아버리면 그만이었다.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강자들조차도 쉬이 넘볼 수 없는 힘이, 오히려 그들의 목을 물어뜯을 수 있는 날카롭고 매서운 이빨과 발톱이.

    던전 상회는 마계에서 유일하게 ‘중립’의 위치에 선 세력이었다.

    그 어떤 마왕도 던전 상회의 중립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것은 죄악과 신기를 보유한 마계의 실질적인 지배자들- 저 여섯 왕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던전 상회 최고의 지력- 비프론즈는 그 자체로도 예술품이라 할 수 있을 체스판과 기물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체스와는 달랐다. 비프론즈가 직접 고안한 ‘엔카트로’라는 게임이었다.

    시작 할 때 사용하는 말의 개수는 60개나 되었고, 전장 또한 x축과 y축이라는 평면 위에 z축이라는 높이 개념을 추가했다. 더욱이 모든 말들은 승급과 전직이 가능했고, 지원군과 복병의 개념으로 새로운 변수를 추가했다.

    여기에 더해지는 세세한 규칙들이 다시 수십 가지였기에 일반적인 체스와는 난이도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게임을 진행하면 할수록 복잡성과 난이도가 대폭 증가하는 터라 일반적인 두뇌와 신경을 가지고는 도저히 이 게임을 즐길 수 없었다. 드넓은 마계에서도 이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의 수는 기껏해야 열 명 내외. 그것도 게임의 제작자인 비프론즈를 포함한 숫자였다.

    하지만 비프론즈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 게임은 스스로가 즐기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아마 마계 전체에 이 게임을 퍼트린다면 아마 플레이어의 숫자는 최소 지금보다 두 배 이상은 늘어나지 않을까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만큼 마계는 넓었고, 별의 별 종자들이 다 있는 세상이었다.

    비프론즈는 반상 너머를 보았다.

    아무도 없는 빈 자리였지만 그에게는 다른 누군가가 보였다. 오랜 옛날 스스로가 만들어낸 인격이었다. 비프론즈는 그를 오랜 친구라 불렀다.

    오랜 친구가 한 수를 두었다. 비프론즈를 보며 말했다.

    ‘역시 자네에게 최고의 지력이란 이명은 과분해.’

    비프론즈가 맞수를 두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그저 분석하길 좋아하는, 연산 능력이 뛰어난 존재에 불과하지. 더욱이 던전 상회의 시스템을 운용하느라 내 연산 능력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으니… 아마 모략을 꾸미고 세상사를 읽는 안목에 있어서는 그저 평범한 이보다 약간 나은 수준일지도 모르지. 아니, 아마 그러할 거다.”

    오랜 친구를 마주하면 비프론즈는 늘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스스로의 말에 동의했다.

    비프론즈 자신이 비상한 지력의 소유자인 것은 분명했지만 그렇다 하여 세상사 모두를 손바닥 안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마엘 그 아이가 요즘 고민이 많은 것 같더군.’

    오랜 친구가 수를 두었다. 그 하나의 수에서 수백 가지가 넘는 가능성이 탄생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결국 정해진 규칙 내의 것에 불과했다.

    비프론즈는 바로 맞수를 두는 대신 의식적으로 한 걸음을 물렀다. 전장 전체를 바라보며 답했다.

    “그 아이는 언제나 그러했지. 아마도 지금은 마계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을 거다. 오만의 왕과 질시의 왕의 대립은 그 아이의 짧은 인생 속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 사건일 테니까.”

    오랜 친구는 수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가만히 턱을 괴었다. 오랜 친구는 비프론즈의 분신이라 할 수 있을 존재였지만 그 생김새까지 빼닮지는 않았다. 오늘 그는 온통 어둠으로만 가득찬 나이트 셰이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그 둘이 사생결단을 낼까? 어느 한 쪽의 죄악과 신기를 빼앗을 정도로.’

    다른 왕들이 그것을 좌시할 것이냐와는 다른 의문이었다.

    비프론즈는 오랜 친구의 물음에 미소 지었다.

    “탐욕의 왕 마몬… 마계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마왕은 마계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가르침을 하나 남겼지.”

    뜸 들였던 수를 두었다. 오랜 친구의 실루엣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눈동자만을 굴려 수를 살피는 것 같았다.

    병사가 기사를 죽이고 검과 방패를 빼앗았다. 스스로 기사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말을 찾았다.

    비프론즈가 말했다.

    “죄악이나 신기를 둘 이상 손에 넣는 순간, 그는 마계 전체의 적이 된다.”

    마계는 이미 탐욕의 왕 마몬을 경험했으니까.

    다른 왕들은 자신들 위에 설 수 있는 존재를, 다시 한 번 마몬과 같아질 수 있는 존재를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결국엔 다들 겁쟁이라는 건가? 마계의 지고한 왕- 마신의 자리에는 오르고 싶지만 다른 왕들 모두의 적이 되기는 두려워하는?’

    오랜 친구가 수를 두었다. 그것은 충동적인 수였다. 비프론즈에게는 이런 계산되지 않은 ‘충동’이 오히려 상대하기 어려운 수였다.

    충동.

    계산되지 않은 것.

    그렇기에 예측할 수 없는 것.

    “지금까지는 그러했지. 하지만 앞으로도 그러하란 법은 없겠지. 그것이 세상이니까.”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다면, 그리고 모든 것이 계산대로 돌아간다면 미래조차 예측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현실에 ‘라플라스의 악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비프론즈는 충동에 충동으로 맞서 보았다. 일탈의 쾌감을 맛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나는 지금의 균형이 좀 더 이어질 것 같군.”

    ‘그것이 평화와 안녕이니까?’

    “그래, 그래야 이렇게 구석에 틀어박혀서 기물이나 만지고 놀 수 있을 테니까.”

    오랜 친구가 다시 수를 두었다. 이번에도 충동적인 수였다.

    비프론즈는 다시 한 번 충동으로 맞서 보았다.

    &

    마차의 장점은 역시나 달리는 동안에 마음 놓고 딴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카타리나는 망토에 파묻혀서 깨어날 줄을 몰랐고, 용호는 그런 카타리나의 옆에 앉아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스컬의 마차 모는 솜씨는 무척이나 훌륭했다. 비포장 도로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황무지를 달리고 있음에도 말에 탔을 때보다 진동이 훨씬 적었다. 마차 자체에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이 설치되어 있다고는 해도 실로 놀라운 운전 솜씨였다.

    ‘전생에 기사가 아니라 마차꾼이었나.’

    마계의 상식이 아니라 인계의 상식이긴 했지만, 좋은 기사가 곧 좋은 기수일 수는 있어도 마부이기는 힘든 법이었으니 말이다.

    용호는 슬쩍 창밖을 보았다. 이것저것 뒤섞인 마계의 풍경이 낯익었다. 마몬 가의 던전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결단을 내리긴 해야겠는데.’

    다시 눈을 감은 용호는 자세를 바로 했다. 턱을 괴고 보다 본격적으로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오필리아에게 마몬 가의 현황을 알려줄 때 리쿰은 집무실이 아닌 아래층에 있었다. 리쿰에게는 아직 탐욕이나 아몬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탐욕과 아몬의 존재.

    숨기는 게 어렵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다른 사역마들에게는 계속 숨길 가능성이 높았다.

    ‘입단속을 하긴 해야겠네.’

    탐욕에 대해 아는 것은 카타리나와 엘리고스, 스컬, 오필리아 뿐이었지만 아몬은 아니었다.

    아몬을 처음 얻었을 때 함께 있던 사역마들은 다들 아몬의 존재를 알았다.

    입단속에 그리 큰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 트리엔트는 어차피 말을 못했고, 고블린 존과 론은 아몬이 뭔지도 몰랐다. 어쩌면 벌써 잊어버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용호는 탐욕과 아몬이 아닌 다른 것을 고민했다.

    용호 자신이 마왕으로서 가진 힘인 진화의 권능을 어찌할 것인가.

    진화의 권능은 한 번 사용하면 바로 표가 나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용호 자신과 극히 일부 사역마들에게만 행사한다면 아무래도 그 효율성이 떨어졌다. 특히 지금처럼 손 하나가 아쉬운 상황에서는 말이다.

    물론 모든 마왕들이 자신의 권능을 완벽히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포라스만 해도 함께 전투에 나갔던 사역마들은 대강이나마 그의 권능을 인지하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대충 한기를 일으키고 적을 얼리는 능력- 정도로 말이다.

    ‘제대로 아는 건 극소수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그냥 어영부영 대강 알게 하는 수밖에 없나? 아니면 권능이 아닌 다른… 아티펙트 같은 것의 힘을 빌린 능력으로 속이거나.’

    아무래도 후자가 더 매력적이었다.

    더욱이 ‘진화’는 사역마들에게 있어 상당한 동기부여 요소가 될 수 있었다. 무작정 숨기는 것은 능사가 아니었다.

    ‘좋아.’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린 용호는 다시 눈을 뜨고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예상대로 마몬 가의 입구가 보였다.

    &

    “어서 오십시오, 가주님.”

    던전 미어 캣이 알려준 덕분인지 마차가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엘리고스를 비롯한 사역마들이 입구에 총출동한 상황이었다.

    출발할 때는 말을 타고 나갔던 양반이 마차를 몰고 돌아온 터라 다소 당황한 것 같긴 했지만, 엘리고스는 노련한 집사답게 미소로 용호를 맞이했다.

    용호 역시 즐겁게 웃으며 사역마들을 돌아보았다. 가장 먼저 눈이 간 것은 역시 살라멘더와 트리엔트였다. 아주 자연스럽게 진화의 권능이 발동했다.

    ‘오, 역시!’

    던전을 비운 사이에 공사든 훈련이든 뭔가를 했는지 100에 살짝 모자랐던 진화 숙련치가 둘 모두 100에 도달해 있었다.

    진화 숙련치는 평등하게 쌓이지 않았다. 이미 꽤나 능력이 발달한 상태이거나 진화를 반복한 상태면 진화 숙련치 쌓이는 것이 무척이나 느렸다.

    살라멘더는 이미 마주했을 때부터 꽤나 강력한 상태였기 때문인지 획득한 이후 발생한 모든 전투에 참가했음에도 이제야 겨우 숙련치 100을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쌓아올린 진화 숙련치인 만큼 어떤 능력을 진화시킬 지 고심해야 했지만 용호는 바로 결정을 내렸다. 고민이라면 살라멘더를 손에 넣은 이후 쭉 해왔으니 말이다.

    용호가 던전에 들어가지는 않고 흐뭇한 얼굴로 서서 살라멘더와 트리엔트를 바라보니 자연 다른 사역마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모였다. 특히 고블린들에게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전해들은 오크들의 시선이 초롱초롱했다.

    “꾸르르?”

    묘한 긴장 상태에 빠져 있던 살라멘더가 약간 앓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새삼 정신을 차린 용호는 다시 한 번 씩 웃었다. 모두가 잘 볼 수 있도록 손을 번쩍 들어 올린 뒤 오필리아에게서 받은 물품들 사이에서 챙겨둔 반지를 꺼냈다. 복잡한 문자가 새겨져 있는 금색 반지였는데, 모양만 그럴싸할 뿐 아무런 능력도 없는 평범한 금반지였다.

    용호는 마치 연극을 하듯 과장된 동작으로 반지를 왼손 중지에 끼웠다. 잔뜩 긴장한 살라멘더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섰다.

    [종족 : 살라멘더 (남)]

    [분류 : 마수 (중급)]

    [속성 : 불꽃 2레벨]

    [개체 천성]

    [우직함]

    [개체 적성]

    [체격 / 힘]

    [진화 숙련치 : 100/100]

    [체격 특화 2레벨 | ★★ (2)] -> [진화시 승급 루트 개방]

    [민첩 특화 1레벨 | ★★☆ (2.5)] -> [진화시 승급 루트 개방]

    [마력 특화 2레벨 | ★☆ (1.5)]

    [힘 특화 1레벨 | ★★ (2)]

    이것이 지금의 살라멘더.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 터였다.

    용호가 살라멘더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살라멘더는 긴장한 얼굴로 눈을 감았고, 다른 사역마들- 특히 오크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주먹을 꽉 쥐었다.

    용호는 일부러 금색 반지 주변에 마력을 모았다. 진화의 권능을 담은 마력을 살라멘더의 이마에 불어넣었다.

    택한 것은 민첩 특화.

    용호 역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따라 더욱 더 많은 마력을 불어넣었다.

    빛이 살라멘더를 뒤덮었다. 심상치 않은 마력의 발산에 오크들은 이제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고, 리쿰 또한 연신 마른 침을 삼켜댔다. 이미 진화의 권능을 경험하거나 본 적이 있는 사역마들 또한 새삼 흥분해서 지켜보았다.

    “꾸어어어어!”

    살라멘더가 포효했다. 동시에 마치 폭발하듯 강렬해졌던 빛이 일순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리하여 나타난 모습.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납작한 도마뱀 같았던 외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일단 다리가 길어졌다. 도마뱀보다는 상상속의 동물인 그리폰에 가깝게 체형이 조정되었고, 양서류처럼 민둥민둥했던 머리도 제대로 된 비늘과 갑각이 덮였다. 이전에는 없던 뿔까지 하나 돋아난 터라 마치 멋진 투구를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따로 있었다. 다른 사역마들 역시 오로지 한 지점만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날개.

    박쥐의 그것과 같은 붉은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뒤늦게 날개의 존재를 눈치 챈 살라멘더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당황했다.

    지금까지의 진화 중에서 가장 현격한 외형의 변화였다.

    “후우.”

    큰 변화만큼이나 많은 마력을 쓴 용호는 숨을 길게 토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시야에 살라멘더의 전신을 담은 뒤 다시 한 번 살라멘더의 정보를 살폈다.

    [종족 : 살라멘더 (남)]

    [분류 : 마수 (중급)]

    [속성 : 불꽃 2레벨]

    [개체 천성]

    [우직함]

    [개체 적성]

    [체격 / 힘 / 민첩]

    [진화 숙련치 : 0/100]

    [체격 특화 2레벨 | ★★☆ (2.5)]

    [민첩 특화 2레벨 | ★★★ (3)]

    [마력 특화 2레벨 | ★★☆ (2.5)]

    [힘 특화 1레벨 | ★★ (2)]

    [살라멘더 - 강습형] | [살라멘더 - 고속형]

    새로이 생긴 승급 루트가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용호는 가볍게 빛의 상자를 건들자 새로운 실루엣들이 살라멘더 위로 그려졌다.

    보다 거대하고 전투적으로 변하는 강습형과 생긴 것만 봐도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를 것 같은 고속형.

    ‘진짜 이러다 드래곤 되겠네.’

    만족한 용호는 이번에는 아예 몇 걸음 뒤로 물러서 거리를 벌렸다. 여전히 당황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살라멘더에게 씩 웃어준 뒤 하늘을 가리켰다.

    무엇을 뜻하는지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날개가 있으니 날 수 있을 거야!’

    닭과 타조가 들었다면 시무룩해질 생각을 하며 용호가 다시 한 번 하늘을 찔렀다. 살라멘더는 무언가 결심한 듯 굳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손에 넣은 날개를 크게 홰쳐 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던전 입구 위에 자리한 야트막한 언덕을 기어올랐다.

    모두가 살라멘더를 보았다.

    살라멘더는 그런 모두 대신 하늘을 보았고, 이내 결심한 듯 맹렬한 질주를 개시했다. 언덕 아래를 향해 몸을 던졌다.

    “날아!”

    누군가 외쳤다. 그리고 살라멘더가 그에 호응했다. 날개를 펄럭였고, 불꽃을 일으켰다. 불꽃의 잔재 속에서 날아올랐다.

    고블린들이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공주개미도 얼굴에 표정이란 것을 떠올렸고, 코볼트는 왈왈 짖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리고 살라멘더가 돌아왔다. 마계의 하늘에 붉은 궤적을 그린 불꽃의 마수는 거대한 바람을 일으키며 지상에 착지했다.

    이것으로 끝인가. 아니었다. 살라멘더는 처음으로 맛본 하늘을 벌써부터 떠나보낼 생각이 없었다. 기세 좋은 소리를 내며 용호에게 머리를 흔들었다.

    용호의 손짓만큼이나 명확한 그 행동에 용호 역시 반응했다. 카타리나나 엘리고스가 말릴 새도 없이 살라멘더의 등 위에 올라탔고, 마치 손잡이처럼 솟아 있는 돌기를 꽉 붙잡았다.

    ‘근데 왜 이런 게 생겼지? 설마 내가 타고 다닐 생각을 해서 진화에 영향을 줬나?’

    정말이라면 꽤나 미안한 일이었지만 용호는 일단 머릿속을 비웠다. 손잡이의 충실한 그립감에 만족하며 소리쳤다.

    “가자!”

    살라멘더가 호응했다. 이번에는 언덕을 기어오를 것도 없이 날개를 크게 홰쳤다. 다시 한 번 불꽃을 일으키며 허공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자가용 비행기. 아니- 자가용龍!

    친구들이 들었다가는 용호의 손발을 도려낼 것 같은 언어유희를 떠올리며 용호는 크게 웃었다. 짜릿한 쾌감 속에 시선을 멀리 하였다.

    마계의 하늘.

    그리고 마계의 땅.

    소용돌이치는 듯한 마력의 흐름.

    그 모든 것들 사이를 뚫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마계 저 너머, 지평에서부터 불어온 바람이었다.

    &

    < 제 19장 - 자가용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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