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52화 (52/227)
  • < 제 17장 - 자유도시 >

    제 17장 - 자유도시

    말을 타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족보행 동물인 말은 단지 걷는 것만으로도 상상 이상의 흔들림을 야기했다.

    더욱이 말은 사람보다 덩치가 훨씬 큰 동물이었다. 자연히 몸을 움직일 때 일어나는 자잘한 낙차 역시 컸다.

    때문에 말을 탄다는 것은 전후좌우뿐만 아니라 위아래로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의자 위에 앉아 있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이 흔들림은 고작 시작에 불과했다.

    말이 달릴 때는 훨씬 더 큰 흔들림이 일어났다.

    말은 자전거나 차 같은 무생물이 아니었다. 단순한 방향전환이나 정지조차도 기수 혼자서 할 수 없었다. 말과의 교감이 필요했다.

    그나마 등자나 안장 같은 보조기구들이 발전한 덕분에 승마의 난이도 자체가 하락하긴 했지만 그렇다 하여 녹록한 수준이 된 것은 아니었다.

    흔들리는 안장 위에서 버틸 수 있는 강한 체력과 뛰어난 균형감각, 생물인 말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 말의 추진력과 기수의 체중을 이용해 리드미컬한 평형운동을 해내는 감각 등 여전히 많은 것들을 필요로 했다.

    괜히 승마 머신 같은 다이어트 기구가 나오거나 로데오 같은 문화가 발전한 것이 아니었다.

    짐승을 탄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넓적한 바위 위에 앉은 카타리나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입을 헤 벌렸다. 맞은편에 앉아 나뭇가지로 바닥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용호를 보며 말했다.

    “가주님은 뭐든지 빨리 배우시네요.”

    전대 가주 시절의 마몬 가가 망하기 직전의 몰락가문인 것은 분명했지만 그렇다 해서 완전히 망했던 것은 아니었다.

    명색이 호위기사인 카타리나는 전대 호위기사에게 승마술을 배운 적이 있었다. 때문에 승마가 결코 초심자에게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았다.

    그런데 용호는 처음 타본다는 말을 참으로 잘도 탔다. 구보뿐만 아니라 나름 달리기까지 할 수 있었다.

    물론 완벽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승마 첫 경험자라고 하기에는 사기적인 수준이었다.

    감탄 섞인 목소리에 용호는 고개를 들었다. 칭찬이 쑥스럽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 진짜 승마는 못해봤지만 승마 머신은 많이 타봤으니까.”

    거하게 취하신 아버지께서 언젠가 마왕이 되면 말을 탈 일이 있을 거라며 승마 머신을 사오셨던 것이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어머니의 등짝 스매시가 작렬하는 무시무시한 밤이었지만 그래도 용호는 그 날을 잊지 못했다.

    용호 자신의 몸에 마왕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처음 안 바로 그 날이었으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잘 지내시려나.’

    가출 한 번 안하고 반듯하게 자라온 아들놈이 어느 날 갑자기 편지 한 장 남기지 않고 사라졌으니 원.

    생각해 보니 문제는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학고 맞겠네.’

    수업을 연달아 째고 있으니 기적의 올F를 달성하는 것은 아닐까.

    용호는 저도 모르게 키득 웃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학교와 집이 현실이었다. 학고는 세상에서 세 번째쯤으로 무서운 것이었고, 새내기 모임에서 보았던 컴공과 여신후보 여학우보다 더 신경 쓰이는 존재는 세상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가주님?”

    “아니, 네가 예진이보다 훨씬 더 예쁘다고.”

    갑작스런 칭찬에 카타리나는 당황했지만 입꼬리가 살살 올라가는 걸 보니 칭찬이 좋기는 좋은 모양이었다.

    용호는 다시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타리나가 ‘뭐든지’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눈앞에 있었다.

    나뭇가지로 쓱쓱 갈겨 쓴 글자들.

    마치 게임에서나 보던 룬 문자 같았다.

    어젯밤, 용호는 카이완의 일지를 읽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다.

    태고의 마신이라는 작자가 마계에 새겨놓았다는 ‘세계급 마법’ 덕분에 마계의 존재들은 종족을 불문하고 일단 말을 할 수 있다면 대화가 가능했다.

    용호가 처음 마계에 온 날부터 카타리나나 엘리고스와 문제없이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그 마신의 마법 덕분이었다.

    인지하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었지만, 용호는 이 세상에 온 이래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생각 자체는 한국어로 하고 있었지만 입 밖에 나오는 것은 마계의 언어였다.

    대화는 가능했다.

    던전 상회 가상공간에서는 마법 덕분에 처음 보는 마계문자였지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이완의 일지는 달랐다. 마법 없이 그냥 마계의 문자로 쓴 책이었기 때문에 읽을 수가 없었다.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일지니.’

    그래서 용호는 어젯밤부터 카타리나에게 속성으로 글자를 배우고 있었다. 언어 자체는 머릿속에 있는 만큼 문자만 제대로 익히면 어렵사리나마 일지를 해석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냥 카타리나나 엘리고스에게 해석을 맡겨도 되기는 했다. 지금까지 전대, 전전대 가주가 남긴 기록들은 그런 식으로 처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일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어젯밤 카타리나가 앞장만 살짝 읽어본 결과 내린 판단에 따르면, 이 일지는 참으로 개인적인 ‘일기장’에 가까웠다.

    이미 죽은 사람이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꿈속에서나마 마주한 적이 있기 때문인지 가능한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싶었다.

    ‘집무실에 곰인형 숨겨두는 사람인데 무슨 내용이 있을 줄 알고…….’

    3대 전 가주에 대해 경외심만을 품고 있는 카타리나와 엘리고스에게는 충격과 공포인 내용들이 다량 함유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용호는 마계의 문자를 배우기로 했다.

    애당초 일가의 주인인 가주가 문맹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 장래를 위해서라도 꼭 글자를 익혀야 했다.

    나뭇가지 대신 발로 글자들을 슥슥 지운 용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들도 충분히 쉰 것 같으니 이제 다시 출발할 때였다.

    말들의 상태를 살펴보던 리쿰이 말했다.

    “스컬은 카타리나와 말을 바꿔타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무게 때문에 말이 많이 지친 것 같습니다.”

    락 스켈레톤 워리어로 거듭난 스컬은 몸무게가 100kg이 훌쩍 넘었다. 갑옷까지 완비하면 거의 200kg에 가까웠으니 말이 힘들어 하는 것도 당연했다.

    “스컬컬…….”

    무겁다는 이야기에 의외로 의기소침해진 스컬이 작게 꿍얼거렸다. 어쩌면 말에게 미안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스컬도 말을 잘 타네. 역시 전생에 기사 같은 거였나?’

    보면 볼수록 출생의 비밀이 궁금한 스컬이었지만 당장에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마몬 가의 던전과 자유도시 뉘른베르크 사이에는 말을 타고 이틀 정도를 달려야 하는 거리가 있었다. 하루 정도는 야숙을 해야 할 터이니 밤이 오기 전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만 했다.

    마계의 풍경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서부영화에나 나올 법한 황무지가 쭉 이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강과 숲이 튀어나왔고, 생각지도 못한 녹초지대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행은 숲과 멀리 떨어진 황무지, 그 중에서도 바위들이 쌓여 작은 돌산을 이루고 있는 곳에 터를 잡았다.

    “숲에는 생활환경이 조성되는 만큼 어떤 마수가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황무지라고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숲보다는 나은 편이죠.”

    숲을 지날 때 챙긴 장작들에 불을 붙이며 리쿰이 말했다. 스컬은 던전에서와 마찬가지로 바닥을 구르며 돌산과 하나가 되었고, 카타리나는 가방을 풀어 식량을 꺼냈다.

    어느 정도 야숙 준비가 갖춰지자 리쿰이 설명을 시작했다.

    “자유도시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만한 땅입니다. 농사가 가능하다든지, 수원이 있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광산처럼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이 있다든지요. 기본적으로 살기가 팍팍한 마계이다 보니 사람이 살만한 곳에는 거의 반드시 마왕의 영지나 자유도시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적자생존에 약육강식.

    마계의 환경은 척박했고, 뒤죽박죽인 풍경만큼이나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힘이 없는 자는 어딜 가나 이용당하기 마련이었다. 고블린이나 임프 같이 약한 사역마들에게 평화와 안녕은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였다.

    “자유도시라는 이름답게 특정한 마왕에게 속해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도시를 지배하는 자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도시의 지배자는 ‘던전 없는 가주’라고도 할 수 있죠.”

    리쿰은 나뭇가지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은근히 그림에 재능이 있는지 슥슥 그렸음에도 제법 그럴싸한 지도가 나타났다.

    “뉘른베르크는 여러 던전들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말을 달려 하루에서 이틀 사이에 도달할 수 있는 던전만 해도 셋이나 되죠.”

    리쿰은 뉘른베르크를 중심으로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던전들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포라스의 던전, 앙골라디언의 던전, 쉬크니엘의 던전.”

    “뒤의 두 던전이 포라스의 던전을 노리고 있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벌써 며칠 째 병력을 이끌고 나선 가주가 돌아오질 않고 있으니까요. 자세한 사항까지는 무리라 해도 혹시나 싸움에 져 사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식의 정보는 이미 선술집을 통해 퍼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부에서 나타난 가주 때문에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황이니... 이전보다 좀 더 정보 수집에 열정을 보일테고요.”

    리쿰은 다시 나뭇가지로 뉘른베르크를 가리켰다.

    “선술집에서는 별의 별 잡것들이 다 모입니다. 이렇게 모인 자들이 하나 둘 타지에서 가져온 정보들을 조합해 제대로 된 정보를 만들어서 파는 것이 선술집 주인들이죠. 그리고 이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선술집은 고용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방랑 사역마들에게 자유도시, 그 중에서도 선술집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소입니다.”

    거기까지 들은 용호는 잠시 스컬을 돌아보았다. 구르기도 지쳤는지 바위와 하나 되어 나자빠져 있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리쿰에게 물었다.

    “방랑 사역마들 중에는 언데드 사역마도 있나? 마법을 쓸 수 있는 리치… 아니, 리치는 너무 고급이고 아무튼 그 이하로 마법을 쓸 수 있는 언데드라든가.”

    용호의 물음에 리쿰은 미간을 한 번 좁히더니 약간은 자신 없다는 투로 답했다.

    “방랑 사역마들 중에 언데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대부분이 누군가에게 사역된 상태죠.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리치 정도라면 직접 언데드 군단을 부려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만… 으음, 아무래도 만나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 그럼 별 수 없고.”

    괜찮다는 듯 가볍게 답하긴 했지만 아쉽기는 했다.

    ‘합체 진화.’

    아직 실례가 하나 밖에 없어 확신할 순 없었지만 언데드와 언데드끼리는 합체진화가 가능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스컬과 언데드 마법사를 합체 진화시키면 어떻게 될까?

    미스릴이나 오리하르콘 같은 - 물론 그런 금속이 마계에 진짜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 금속 재질과 합체 진화시킨 ‘오리하르콘 데스나이트 스컬'이 ‘리치’와 합체 진화를 한다면.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최강의 언데드 마검사가 탄생하는 것은 아닐까?

    “스컬스컬.”

    멍한 얼굴로 굴러다니는 걸 보면 참으로 요원한 일 같았지만 어디까지나 요원할 뿐이었다. 불가능 같은 것이 아니었다.

    용호의 안색을 살피던 리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여 마법사나 마법서를 원하시는 것이라면 선술집에서 둘 모두 찾아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언데드 마법사는 드물지만 단순히 마법을 사용하는 자라면 결코 적지 않으니까요. 운이 좋으면 선술집에서 간단한 특기나 마법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선술집보다는 만능상점이라는 말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에도 적당히 응답한 용호는 고개를 들었다. 마계의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빨강과 노랑을 파랑과 보라가 뒤덮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색 위로 다시 검정이 덧칠해졌다.

    소용돌이치는 마력의 흐름을 주시하던 용호는 적당히 먹을 것을 주워 먹은 뒤 잠을 청했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

    아침이 밝자마자 용호는 서둘러 말을 달렸다. 뉘른베르크까지의 거리가 이틀이란 것은 꾸준히 말을 달렸을 때의 이야기였다. 중간에 말을 쉬어줄 시간까지 고려하면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리쿰이 말했던 대로 살만한 땅이 가까워졌기 때문인지 어제보다 눈에 보이는 야생 동물- 아니, 야생 마물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 먼 곳에서 웅크린 채 이쪽을 노려보는 거대한 늑대도 있었고, 제법 거리를 두긴 했지만 아예 대놓고 뒤를 따라오는 잔챙이 마인들도 있었다.

    ‘레벨 노가다나 해볼까.’

    예전에 즐겨했던 고전게임에 나오던 무사수행을 떠올린 용호는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마물들을 마주 노려보았다.

    하나하나는 잔챙이가 분명했지만 어찌되었든 쓰러트리면 진화 숙련치와 약간이지만 금품이 나올 터였다.

    자고로 티끌 모아 태산이라 했으니.

    그렇잖아도 돈이 부족한 상황이니 한바탕 쓸고 지나가면 꽤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고전게임에서도 아르바이트보다는 무사수행이 더 돈벌이에 효과적이지 않았던가.

    ‘아서라. 이게 무슨 게임이냐.’

    잔챙이를 상대라 해도 실전이었다.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불필요한 충돌은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스컬컬.”

    마치 동의한다는 듯 때맞춰 들려온 목소리에 용호가 고개를 돌렸다. 스컬이 굵직한 뼈 손가락으로 이제 코앞이라 해도 좋을 자유도시가 아니라 다른 먼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참으로 거대한 뼈였다. 멀리서도 그 형태가 명확히 보이는 걸 보면 못해도 수십 미터 길이는 될 것 같았다.

    리쿰이 말했다.

    “랜드 웜의 유골이군요. 저 정도 크기인 녀석은 저도 오랜만에 봅니다.”

    하지만 용호에게는 오랜만이라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마계에 온 이후 거대 개미부터 오크까지 별의 별 사역마들을 다 마주했지만 몸길이 수십 미터 크기의 괴수의 존재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용호가 눈에 띄게 당황하자 카타리나가 말했다.

    “랜드 웜 같은 거대한 마수들도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자유도시가 바로 코앞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마지막에는 제법 친절한 미소까지 머금었다.

    카타리나의 말대로 야트막한 성곽에 둘러싸인 자유도시가 코앞이었다.

    용호는 무안함을 감추듯 헛기침을 터트린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면이 흔들렸다. 처음에는 약하게, 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그 진동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을만치 강하게!

    “스, 스컬컬?”

    스컬조차도 당혹스런 목소리를 토했다. 말들은 불안한 울음소리를 토하며 주춤거렸고, 리쿰은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동이 다가오고 있었다.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지진이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국소적으로.

    용호의 머릿속에 번쩍하고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제는 설마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카, 카타리나?”

    “그, 그럴 리가 없는데?”

    호구리나- 아니, 허당리나가 당황해서 말했다. 그 와중에도 진동은 가까워졌고, 저만치 보이는 자유도시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성문을 닫는 것이 보였다.

    용호가 소리쳤다.

    “달려!”

    하지만 너무 늦었다. 공포에 빠진 말들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굉음이 터졌다. 지면이 마치 폭발하듯 솟구쳐 올랐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아아-!”

    비산하는 흙과 모래와 바위 사이에서 괴성이 울려 퍼졌다. 몸길이가 수십 미터에 달할 거대한 괴수가 그 거체를 우뚝 세웠다.

    말들은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했다. 거대한 괴수- 랜드 웜이 포효하며 머리를 흔들었고, 이내 한 지점을 바라보았다.

    꿀꺽.

    용호가 마른침을 삼켰다.

    랜드 웜이 거대한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영원 같은 찰나.

    참으로 끔찍한 아이콘택트.

    다시 한 번 지면이 폭발했다.

    랜드 웜이 용호를 향해 돌진했다.

    &

    < 제 17장 - 자유도시 > 끝

    ⓒ 취룡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