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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48화 (48/227)

< 제 15장 - 던전 개편 >

제 15장 - 던전 개편

던전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누가 뭐라 해도 던전의 심장이었다.

던전의 심장은 던전 내의 모든 시설에 마력을 공급했고, 던전을 관리하는 총괄 운영자라 할 수 있을 던전의 영혼이 깃든 장소였다.

던전의 심장이 죽으면 던전 역시 죽었다.

던전은 단순한 장소나 건물이 아닌 일종의 거대한 사역마였다.

용호는 어느새 등 뒤에 따라붙은 카타리나와 함께 던전의 심장이 있는 비밀 방에 들어섰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황량한 풍경이었다.

[주인님 오셨어요?]

[서두르지 않으셔도 되는데.]

방금까지 채근하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짐짓 앙큼하게 말하는 던전의 영혼이었다.

괜히 소녀 목소리가 아닌 모양이었다.

꽤나 귀여운 앙탈이었기에 용호는 그저 웃으며 던전의 심장에 다가섰다. 투박한 제단 위에 올라가 있는 던전의 심장은 이전에 방문했을 때보다 더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던전의 영혼이 말했다.

[주인님이 많이 강해지신 덕분에 저 역시 성장의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성장에 필요한 마력 자체는 충전해두었으니 허가만 해주시면 돼요.]

[제 본체 위에 두 손을 올려 주세요.]

던전의 영혼의 말을 따라 용호는 던전의 심장- 에메랄드빛을 내뿜는 구슬 위에 두 손을 올렸다.

따스했다. 마치 체온 같았다.

용호는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물음에 답했다. 던전의 영혼의 성장을 허락했다.

순간 용호는 손바닥이 던전의 심장에 빨려드는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다. 던전의 심장에서 발생하던 빛이 더욱 더 커졌고, 급기야는 방 전체가 녹색 빛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몇 초.

빛이 다시 잦아들었다. 용호의 머릿속에 밝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던전의 영혼이 성장했습니다!]

[던전 관리 능력이 상승했습니다. 새로운 던전 시설들의 설치, 운용이 가능합니다!]

틀에 박힌 멘트이긴 했는데, 성장한 본인이 저런 말을 하니 어쩐지 모르게 우스웠다.

용호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던전의 영혼이 당황해서 말했다.

[다, 다들 이런다고요. 던전 상회에서 입력해준 기본 양식이 이런 걸요.]

용호는 그냥 웃고 말았다. 예속 사역마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연결된 상태이기 때문인지 던전의 영혼이 약 올라 하는 것이 느껴졌다.

던전의 심장은 분명 성장했다.

사람 머리만한 크기였던 구슬은 거의 1.5배 이상 덩치가 커졌고, 아무 모양 없이 투박하기만 하던 직사각형 제단도 사다리꼴로 그 형태가 바뀌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던전의 심장이 들어있는 방 그 자체였다. 어둡고 딱딱하던 돌방 전체에서 미미하게나마 따스한 마력이 느껴졌다.

“새로 설치 가능한 시설들은 어떤 것들이 있지? 새로 가능하게 된 것들이랑.”

용호의 물음에 던전의 영혼은 바로 답하지 않고 약간이지만 뜸을 들였다. 토라진 티를 내는 것도 같았지만, 역시 잠깐 뿐이었다. 이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던전의 일일 마력 생산량과 최대 마력 저장량이 증가했습니다. 또한 이전보다 효율적으로 던전 내에 마력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정도일 것 같지만, 주인님의 방을 비롯해 던전 내의 시설들을 완전히 재배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배치? 아예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건가? 지금까지 이상으로?”

던전은 고정된 건물이 아닌 거대한 사역마라 할 수 있었다. 이전에도 이미 마왕의 방과 입구 사이의 거리를 조금 더 늘리는 재배치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로 거리를 약간 늘리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던전의 영혼은 그 이상을 말하고 있었다.

[예, 시설들의 재배치 자체는 마력 소모가 커서 그렇지 다른 평범한 던전들 역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만 마몬 가의 던전은 조금 특수한 사항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던전의 영혼이 말을 마치자 한쪽 벽을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빛의 창이 형성되었다. 아마도 던전 현황도를 보여줄 모양이었다.

갑자기 빛의 창이 펼쳐지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카타리나가 새삼 눈을 깜박였다. 인기척을 느껴 뒤를 돌아봤던 용호가 던전의 영혼에게 물었다.

“카타리나도 네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

[가능합니다.]

여전히 대답은 용호의 머릿속에서 울렸지만 빛의 창 한 구석에 빛으로 된 문자들이 마치 자막처럼 나열되었다.

던전의 영혼이 설명을 시작했다.

[마몬 가의 비활성화 지역은 바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활성화된 공간들은 섬에 비유할 수 있고요.]

푸른 바다 한 가운데 섬이 하나 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축적을 줄이자 섬 주위에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무인도와 닻을 내리고 서 있는 커다란 범선, 오히려 가운데 있던 섬보다 더 커다란 섬들.

[비활성화 구역에 남아 있는 선대 가주님들의 ‘유산’들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 혹은 표류선에 가까울 겁니다.]

홍련의 마창 아몬, 카이완의 문장이 박힌 금광 표시 등이 표류선과 무인도 위에 각기 표시되었다.

[전전대와 전대 가주님이 남기신 던전 시설들은 던전의 생존을 위해 예속 사역마 엘리고스가 다시 던전에 환원시켰습니다. 하지만 ‘유산’들은 지금도 마몬 가의 던전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축적이 조금 더 작아졌다. 바다에 떠 있는 섬과 표류선의 숫자 역시 늘어났다.

[던전 재배치는 본래 던전의 전체 영역을 그 범위로 합니다만, 마몬 가의 던전은 제 통제 범위 내의 영역만이 가능합니다.]

“그 통제 범위는 현재까지 내가 활성화시킨 곳들이고?”

[바로 그렇습니다.]

[더불어 던전 시설들 가운데 금광은 그 위치를 변경할 수 없습니다. 이 점 유의해 주세요.]

빛의 창에 펼쳐져 있던 바다 영상이 사라지고 눈에 익은 던전 현황도가 나타났다.

잠시 던전 현황도를 바라보던 용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입구에서 이어진 통로를 재배치해야 하는 상황이니 잘 되었다.

이 김에 던전의 심장과 마왕의 방도 좀 더 안쪽으로 옮기고 무기고 등 다른 시설들도 마왕의 방 근처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잘 구성된 던전 구조야말로 던전 방어의 기본이었다.

“새로 추가 가능한 던전 시설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지?”

[던전 시설들은 전대의 가주님들이 개발하셨거나, 던전 상회에서 주입해준 설계도에 따라 구축이 가능합니다.]

[현재 제 능력으로 구축할 수 있는 시설은 던전 감옥과 던전 수로, 사역마 생활관과 던전 기초 작업장, 마지막으로 던전 기초 훈련장이 있습니다.]

[던전 감옥은 기존의 감옥과 달리 마력으로 운용이 됩니다. 던전에 갇힌 이들로부터 체력과 마력을 흡수할 뿐만 아니라 저항 의지 자체를 조금씩 깎아내는 시설입니다.]

빛의 창에 감옥의 예시 화면이 떠올랐다.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에 마력을 빼앗겨 축 늘어진 오크 죄수의 모습이 꽤나 사실적이었다.

[던전 수로를 설치하면 던전 내에 물의 공급이 가능합니다. 마몬 가의 던전의 경우 선대 가주님들 시절에 사용하던 지하수원에서 물을 끌어 쓰면 될 것 같습니다.]

[수로를 설치하실 때는 던전 시설들과의 동선을 고려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번에는 수로에서 물을 떠 마시며 밝게 웃는 엘리고스의 영상이 떠올랐다.

매일 아침 물을 뜨러 던전을 나서야 했던 엘리고스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가슴이 짠해지는 영상이었다.

‘수로가 있으면 확실히 유용하겠네. 잘하면 목욕탕 같은 걸 만들 수도 있겠고. 아예 부엌 같은 걸 따로 설치할 수도 있겠어.’

상상만으로도 던전 생활의 윤택함이 더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용호가 연달아 물었다.

“사역마 생활관도 감옥처럼 특수한 기능이 있나?”

[사역마들의 피로를 보다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마력 지원이 가해집니다. 냉난방도 가능하고요.]

냉난방이라는 말에 카타리나의 귀와 꼬리가 동시에 파닥거렸다.

[던전 기초 작업장은 던전에 필요한 각종 물건들을 생산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기초 작업장이기 때문에 모루와 소형 용광로 등 기초적인 생산 시설들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자동으로 만들어지진 않고?”

[제조 기능을 갖춘 사역마를 고용하심이…….]

하기야 자동으로 물건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것은 너무 과한 욕심이었다.

머릿속으로 이전에 보았던 드워프 사역마를 떠올린 용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기초 훈련장은 사역마들을 훈련시키는 공간인가?”

[네, 그렇습니다.]

[마력으로 전투 훈련의 효과를 높여주는 공간입니다.]

[실전만큼은 못하겠지만 진화 숙련치를 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주인님의 방 이상으로 넓은 공간을 요하는 장소이니 유의해 주세요.]

빛의 창에는 허수아비 인형들을 상대로 죽창을 휘두르는 고블린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엘리고스 같은 비전투 사역마들의 진화 숙련치를 쌓기에 좋을 것 같았다.

“좋아, 대충 각이 잡히네. 고마워. 역시 말을 듣길 잘했어.”

[주인님이 기뻐하시니 저도 기쁩니다.]

[지금까지 설명 드린 시설들은 마력이나 기타 자재를 활용해 보다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 점도 잊지 말아주세요.]

해맑게 답한 던전의 영혼은 용무가 끝났는지 빛의 창을 해제했다.

그러다 문득 용호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이름… 내가 지어줘도 되나?”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몇 번이나 눈을 깜박였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어… 혹시 제 이름 말씀이신가요?]

“응, 네 이름.”

던전의 영혼은 이번에도 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뻐하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기에 용호는 키득 웃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루시아 어때?”

용호가 꽤나 열심히 했던 게임에 등장하는 NPC 이름이었다.

던전의 영혼이 이번에는 바로 화답했다.

[좋아요. 외모도 마음에 들고요. 주인님께 저는 이런 이미지인가요?]

용호와 기억을 공유하는 던전의 영혼이니 만큼 바로 이름의 연원을 찾아냈다.

하늘색 머리칼을 길게 기른 귀여운 소녀.

“좋아, 루시아. 그럼 바로 던전 상회에 다녀올게.”

[네, 주인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기분 탓인지 평소보다 훨씬 밝고 활기찬 던전의 영혼- 루시아의 대답이었다.

&

던전의 심장이 성장하면서 변한 것은 심장이 놓여 있는 제단만이 아니었다.

용호의 지정석인 마왕의 옥좌역시 변했다. 그냥 딱딱하기만 하던 네모반듯한 돌 옥좌에 제법 모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생겨났다.

‘여전히 딱딱하긴 하지만.’

기분 좋게 투덜거린 용호는 옥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엘리고스가 만들어준 보고서는 던전 상회의 인식 마법진 위에 올려둔 상태였다.

“다녀올게.”

눈을 감기 직전에 용호가 말했고, 옥좌 앞에 서 있던 카타리나는 귀를 살짝 파닥이며 답했다.

“네, 가주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루시아가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설마 스컬에 이어 루시아에게도 질투를 하는 걸까?

용호는 구태여 지적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살짝 움츠러진 카타리나의 입술을 약간은 짓궂게 쳐다보다가 눈을 감았다.

던전 상회 가상공간에 접속했다.

&

하늘과 땅이 모두 하얀 가운데 커다란 침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침대 위에는 붉은 머리칼의 미녀가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용호는 당황했다.

정확히 말하면 다소 뻘쭘한 얼굴로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잠든 시트리를 보았다.

이건 또 어떤 방식의 접객이란 말인가.

시트리는 평소처럼 시원시원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랬기에 참으로 눈 둘 곳이 민망했고, 오랜만에 남중 남고 공대라는 기적의 테크트리를 탄 남자의 본능이 발동한 용호는 어색함 속에 헛기침을 연달아 터트렸다.

다행히 잠귀는 밝은 지 시트리가 퍼뜩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멍한 얼굴로 눈을 깜박이다가 용호를 보더니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식간에 침대가 사라지고 대신 고급스런 느낌의 소파가 나타났다.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것으로 머리까지 완벽하게 정돈한 시트리가 뒤늦게나마 우아한 자세로 소파 위에 앉았다.

하지만 역시나 늦었다.

용호는 여전히 뻘쭘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고, 결국 마찬가지로 민망해진 시트리는 뺨을 발갛게 붉혔다.

“제가 평소에 좀 잠이 많아서…….”

이제까지의 시트리와는 다른, 마치 카타리나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시트리는 시트리였다. 어느새 민망함을 수습한 그녀는 용호의 등 뒤에도 소파를 만들어 주었다. 마치 방금까지의 일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다시 오신 걸 보니 던전 방어전에서 승리하셨군요. 승리 축하드립니다. 사랑하는 고객님의 승리를 믿고 있었답니다.”

아무래도 맞춰 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저도 시트리를 다시 보니 기쁘군요.”

“전담은 아니지만 그래도 벌써 몇 번이나 뵌 사이니까요. 오늘은 어떤 거래를 하러 오셨나요? 역시 전리품의 환금과 던전 재정비를 위한 구매신… 어머나, 세 번째 뿔이 생기셨군요?”

시트리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용호는 제법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위화감이 드는 세 번째 뿔을 만지작거리는 대신 짐짓 여유로운 자세로 소파 팔걸이에 손을 올렸다.

“우선은 전리품을 팔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물건을 보도록 하죠.”

시트리는 괜히 이야기를 지체하지 않았다.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고, 그러자 용호와 시트리 사이에 커다란 전투마차가 나타났다.

< 제 15장 - 던전 개편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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