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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39화 (39/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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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2장 - 던전 방어전

    날이 밝았다.

    던전의 영혼이 깨워줄 것도 없이 잠에서 깨어난 용호는 바로 침실 밖으로 나섰다.

    “좋은 아침입니다, 가주님.”

    마왕의 방에는 언제나와 같이 엘리고스가 서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인사에 용호가 씩 웃었다.

    “확실히 달라졌네.”

    “가주님 덕분입니다.”

    행동은 그대로였지만 외양이 달라졌다.

    엘리고스는 젊어졌다.

    진짜 회춘을 했다고 하기에는 미묘했지만, 그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본래부터 곧았던 허리 위로는 근육이 붙었다. 말랐다는 느낌을 주던 상체는 이제 단단한 바위 같았고, 얼굴에 가득하던 잔주름도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이름 : 엘리고스 (남)]

    [종족/직위 : 레드 데몬]

    [분류 : 마인 (하급)]

    [속성]

    [불꽃 0레벨 / 어둠 1레벨]

    [주요 종족치 : 힘 / 체력]

    [진화 숙련치 : 0/100]

    [힘 특화 0레벨| ★★☆ (2.5)]

    [체력 특화 1레벨| ★★☆ (2.5)]

    [기량 특화 0레벨| ★☆ (1.5)]

    [마력 특화 0레벨| ★☆ (1.5)] -> 진화시 승급 루트 개방

    [현재 승급 가능 종족/직위]

    [레드 데몬 | 비스트]

    고블린들만큼이나 황량하던 엘리고스의 진화 정보 역시 이전보다는 볼거리가 많아졌다.

    각 진화 루트의 잠재력 수치가 전부 조금씩 높아졌고, 기량 특화가 새로이 생겨났다.

    그리고 승급 루트인 ‘레드 데몬 비스트’.

    실루엣뿐이긴 했지만 승급 후의 외양 변화를 짐작하기에는 충분했다. 지금보다 더 전신 근육이 발달하고 뿔이 커졌다. 비스트라는 이름에 걸맞는 육체파 사역마로 변모할 가능성이 컸다.

    현재 엘리고스는 코볼트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비전투 사역마였다. 하지만 진화와 승급을 거듭하면 충분히 전투 멤버로도 활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씻고 올게. 일찌감치 아침 먹고 시작하자고.”

    “알겠습니다, 가주님.”

    현재 마몬 가의 던전에는 제대로 된 수도 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다. 던전의 발전 단계 자체가 높아지면 건설할 수 있다고는 하는데, 이 역시도 아직은 요원한 일이었다.

    용호는 마왕의 방구석에 놓여 있는 항아리에서 물을 퍼 적당히 세면을 끝마쳤다. 코볼트가 눈치 빠르게 가져다 준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있자니 아침잠이 많은 카타리나가 비몽사몽인 채로 침실에서 걸어나왔다.

    “안녕히, 주무, 셨습니까.”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카타리나를 손수 항아리까지 인도한 용호는 다시 마왕의 방 한 가운데로 향했다. 넓게 깐 돗자리 위에서 엘리고스와 고블린들이 아침 준비로 분주했다.

    마왕의 방 바로 앞 방에 뿌리를 내린 트리엔트와 마찬가지로 그 옆에 몸을 눕힌 살라멘더는 둘 다 던전의 마력을 흡수하는 것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언제나 마왕의 방 어딘가를 굴러다니는 스컬 역시 마력이면 충분했기에 식사 때면 늘 문 근처를 뒹굴 거렸다.

    잡식성인 공주개미에게 먹일 팬케이크를 코볼트에게 건네주는 것으로 아침식사를 끝마친 용호는 잠깐이지만 정리 시간을 가진 뒤 바로 마왕의 방을 나섰다.

    던전 상회의 택배가 도착하는 것은 오늘.

    가주 포라스가 던전 상회의 택배보다 먼저 공격해오면 낭패였다. 택배가 온 직후라 해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몇 시간. 가능하다면 하루 이상.

    시간이 필요했다. 겨우 몇 시간 차이가 명암을 가를 수 있었다.

    마왕의 방에서 던전 출입구까지의 거리는 ‘이전보다 꽤나 멀었다’. 직선상의 거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다른 수를 써두었기 때문이다.

    던전 출입구 방에서 대기한 지 몇 분. 마치 타이밍을 재기라도 한 것처럼 던전 상회의 택배기사가 마몬 가의 던전 문을 두드렸다.

    던전 상회 택배 기사는 붉은 피부를 가진 젊은 마족이었다. 하얀 작업복과 야구모자가 무척이나 눈에 띄었는데, 저 복장이야말로 던전 상회 택배기사의 상징이라 할 수 있었다.

    던전 상회의 택배기사를 공격하는 행위는 곧 던전 상회 자체를 공격하는 것과 동일시되었다. 마계 경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던전 상회와의 일전은 마계를 지배하는 여섯 왕들에게도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일이었으니, 어찌 보면 저 택배 작업복은 무적의 갑옷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수령인에 서명 부탁드립니다.”

    이미 몇 번이나 마몬 가를 방문했기에 얼굴이 익숙한 택배 기사였다. 용호는 택배 기사가 내민 서류에 서명한 뒤 뒤로 크게 물러섰다.

    택배 기사가 약간은 권태로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어떤 원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공간을 도약해온 택배 수하물들이 출입구 방에 텅텅 소리를 내며 쌓이기 시작했다. 이전에 트리엔트를 받았을 때만큼이나 커다란 상자가 몇 개나 연이어지니 금방 방이 비좁게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배달을 마친 택배 기사는 의례적인 인사를 마친 뒤 마몬 가의 던전을 나섰다.

    용호와 사역마들의 시선은 이미 택배 기사에서 택배 수하물들로 옮겨간 뒤였다.

    “개봉하겠습니다.”

    택배 박스를 뜯을 때는 누구나 흥분하는 모양이었다. 카타리나와 엘리고스 뿐만 아니라 고블린들도 꽤나 흥분한 얼굴이었다. 변함없이 무심한 건 스컬 하나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상자에서 나온 것은 클레이 골렘과 락 골렘이었다. 고릴라처럼 상체를 숙이고 있는 자세였음에도 불구하고 트리엔트와 호각을 이룰 정도로 덩치가 컸다.

    고블린들은 눈을 크게 뜨며 신기해했고, 엘리고스는 보기만 해도 흐뭇한 지 연신 미소를 지었다.

    나머지 상자에 들어 있는 것은 식료품과 각종 자재가 들어 있는 상자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주문형 함정의 재료들이었다.

    용호가 클레이 골렘과 락 골렘의 사역마 등록을 끝마치자마자 엘리고스가 말했다.

    “바로 작업에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시가 급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용호가 허락하자 엘리고스는 골렘들과 고블린들에게 짐을 나눠들게 한 뒤 가까운 방부터 바로 함정 추가 설치 작업에 들어갔다. 워낙 짐이 많았기에 트리엔트와 살라멘더 뿐만 아니라 스컬까지 작업에 투입되어야 했다.

    사역마들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자 출입구 방에는 용호와 카타리나만이 남게 되었다. 용호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고, 카타리나는 용호의 호위 기사였기에 자리를 지켜야 했다.

    “이게 던전 미어캣이군.”

    가로 세로 50cm나 됨직한 상자를 개방하자 어른 팔뚝 크기만한 미어캣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발로 발딱 일어서서 용호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본 거랑 비슷하네.’

    차이점이라면 인계의 미어캣과 달리 귀가 동그랗지 않고 뾰족하다는 것 정도였다.

    던전 미어캣 한 쌍을 던전 사역마로 등록한 용호는 새삼 진화의 권능으로 미어캣들을 살펴 보았다.

    [종족/직위 : 던전 미어캣]

    [분류 : 마수 (최하급)]

    [주요 종족치 : 민첩]

    [진화 숙련치 : 0/100]

    [민첩 특화 0레벨| ★☆ (1.5)]

    [현재 승급 가능 종족/직위]

    [하이 미어캣]

    잠시 승급명을 본 용호는 참으로 미묘한 기분에 빠졌지만 잠깐 뿐이었다.

    진화나 승급 후의 실루엣을 보니 외양상으로는 그리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았다.

    “던전 미어캣은 평소에는 던전 밖에서 생활을 하다가 밤이 되면 던전 입구에 만든 굴속에 들어가 잠을 잔다고 쓰여 있습니다. 으음… 밤에는 제대로 경비가 안 되는 것 같네요.”

    상자에 동봉되어 있던 설명서를 읽으며 카타리나가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이번에도 용호는 꽤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적어도 해가 떠 있을 동안은 경보를 울릴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지금까지 아무런 사전 경보 수단이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럼 일단 데리고 던전 밖으로 나가 보겠습니다.”

    설명서를 품안에 잘 챙겨 넣은 카타리나가 미어캣 두 마리에게 팔을 뻗었다. 미인을 알아보기라도 했는지 두 마리 모두 길이 잘든 애완동물마냥 카타리나의 품에 안겼다.

    꽤나 보기 좋은 광경이었지만 용호는 카타리나와 미어캣들 대신 커다란 던전 입구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모양도 없는 그저 커다랗기만 한 문.

    용호가 문득 지나가듯 말했다.

    “나도, 나가볼 수 있을까?”

    마몬 가의 가주로 즉위하고 지금까지.

    용호는 단 한 번도 던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다. 반인반마인 용호에게 마계의 공기가 해로울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용호는 과거와 달랐다. 마왕으로 각성하였고, 이미 두 번이나 진화와 정수 흡수를 마쳤다. 육체와 마력 모두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어… 확실히 지금의 가주님이시라면…….”

    카타리나 역시 동의를 표했지만 그래도 아직 불안한지 말꼬리를 흐렸다. 기다란 귀와 꼬리 역시 축 쳐져 있었다.

    씩 웃은 용호는 그런 카타리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뒤 의식적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며 말했다.

    “잠깐 정도로 큰 일이 나지는 않겠지. 가자.”

    고개를 끄덕인 카타리나는 용호보다 한 발 앞서 문 쪽으로 달려나갔다. 용호의 명령을 받은 던전의 영혼이 던전의 문을 개방했다.

    붉은 하늘과 마른 바람이 부는 황무지.

    과거는 마몬 가의 영지였던 마계의 남부.

    용호는 숨을 크게 삼켰다. 카타리나와 더불어 마몬 가의 던전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마계의 하늘과 땅을 마주하였다.

    &

    던전 전투는 방어하는 쪽이 공격하는 쪽보다 몇 배나 더 유리했다.

    그리고 그 유리함은 일반적인 수성전의 우위조차도 능가할 정도였다.

    던전 공격자는 수비자의 던전이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을 지 알 수 없었다. 그 안에 어떤 함정이 있는지, 어떤 사역마들이 숨어 있는지 역시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외양을 관찰하는 것이 가능한 성곽과도 달랐다.

    던전은 미궁 그 자체.

    던전 전투의 공격자는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과 같은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공격자에게 무조건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던전의 형태가 천태만상이라 하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던전 전투의 무대가 되는 것은 방어자의 던전이었다.

    수성전에 비유하자면 공격자측이 바로 성곽을 넘어 내성에 진입했다고 해도 좋았다.

    던전 공격자 측에 필요한 것은 수비 병력을 압도하는 공격 병력과 함정을 간파하고 파괴할 수 있는 지혜와 경험이었다.

    포라스가 가주 자리에 오른 지도 벌써 칠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 긴 세월동안 포라스는 가문의 던전을 잘 지켜냈고, 몇 번이나 되는 외부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본격적인 던전 전투 경험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포라스의 사역마들을 태운 전투 마차가 황야를 달렸다. 선두마차에 탑승한 포라스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포라스는 늙었다.

    마력에 기반을 둔 마계의 존재들은 외형과 수명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기에 섣불리 그 젊고 늙음을 추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포라스는 늙었다.

    얼굴에 약간의 잔주름이 있고 수염이 하얗게 새었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노화의 흔적이 없었지만 다른 누구보다 포라스 자신이 그 사실을 제일 잘 알았다.

    다음 대에 가문을 물려주는 것. 던전을 잘 지켜내는 것.

    그럴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것.

    지금은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포라스는 맨손 전투를 장기로 하는 무투파였다. 거느리고 있는 전투 사역마들 역시 대부분이 근접전에 강점을 둔 오크 전사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포라스는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최대한 많은 수의 사역마들을 전투 마차에 태웠다. 던전 전투에 필수라 할 수 있을 마법사들의 숫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마몬 가에 분명 무언가 변화가 있었음에 분명했다.

    카이완 이후 마몬 가를 물려받은 두 가주는 몸과 마음이 모두 유약하기 짝이 없었다. 설사 소문과 달리 가주가 자살하지 않고 살아있다 하더라도 테스크를 비롯한 정찰 부대를 쓰러트리는 것은 무리였다.

    카이완이 남긴 무언가.

    혹은 새로운 가주의 등극.

    어느 쪽이든 극복 못 할 문제는 아니었다. 카이완이 실종된 지는 수십 년이 넘었고, 그 사이에 던전은 쇠락했다. 새로운 가주가 등극했다 하더라도 던전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시키기에는 시간과 자원이 모두 부족했다.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른다.’

    빈껍데기나 다름없는 마몬 가였지만 던전의 역사 자체는 무척이나 오래 되었다. 잘하면 던전의 발전 단계를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정도의 정수를 손에 넣을 수도 있었다. 카이완이 남겼을 유산들 역시 아직은 꽤 남아 있을 공산이 높았다.

    카이완의 동생인 전전대 가주도, 그 자식인 전대 가주도 모두 잿더미에서 피어난 부활의 싹인 카이완을 거의 숭배하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섣불리 카이완의 유산들을 팔아치우는 짓 따위는 생각도 못했으리라.

    마른 바람이 불었다.

    던전 전투에 앞서 잠시 휴식을 취할 시간을 고려해도 이제 몇 시간 뒤면 던전 전투가 시작될 터였다.

    포라스는 눈을 떴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했다.

    &

    < 제 12장 - 던전 방어전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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