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38화 (38/227)

< 제 11장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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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가 가진 여러 강점 가운데 하나는 생각의 빠른 전환이었다.

난세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공백지의 현황과 마몬 가 던전의 비밀은 충분히 마음을 심란하게 할 만한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용호는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쓸데없는 걱정으로 심력을 소모하는 대신 당장 해야 할 일에 관심을 돌렸다.

현재 용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앞으로의 던전 발전과 이번 던전 방어전에서 가장 효용성이 높을 사역마들을 고르는 것이었다.

의식적인 심호흡으로 머리를 비운 용호는 고개를 들어 빛의 창을 보았다.

2성 사역마 카탈로그는 이전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더욱이 애당초 올 때부터 생각해둔 사역마가 있었기에 선택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택한 것은 2성급 던전 사역마 ‘클레이 골렘’.

용도는 고블린들과 마찬가지로 일꾼 겸 방어용 사역마였다.

힘과 체력이 두루 강한 클레이 골렘은 고블린들이 하기 힘든 ‘힘쓰는 일’에 강점이 있었다.

일전 2성 사역마를 구매하러 왔을 때에 비해 마력 사정이 꽤 좋아진 마몬 가 던전이었기에 클레이 골렘이 소비하는 마력도 그다지 큰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식비도 굳고 좋지. 따로 생활공간을 마련해 주지 않아도 되고.’

더욱이 이렇다 할 의식주 편의를 봐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자아개념이 거의 없다시피 한 클레이 골렘이기 때문에 그만큼 손이 많이 가기도 했다. 딱딱 상황에 맞춰 적절한 명령을 내려주지 않으면 생각지도 못한 일을 벌일 가능성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힘 특화 골렘으로 결정.’

작업 중에는 엘리고스나 고블린 레인저의 두뇌인 준 가운데 하나가 옆에 붙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고, 전투 중에는 용호 자신이나 다른 사역마들이 붙어 있을 터이니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깔끔하게 클레이 골렘에 대한 생각을 마무리 지은 용호는 3성 사역마 카탈로그를 펼쳤다.

빛의 창에 나와 있던 사역마 리스트가 새롭게 갱신되었다. 2성 카탈로그보다 확연히 화려해진 라인업이 용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No 01.]

[종족 : 드워프 (남) - 청년기]

[이계에서 포획한 드워프]

[보유 기능 : 도구 제작 / 병장기 제작 / 간단한 마법 부여 가능]

[장점 : 강한 체력, 뛰어난 손재주]

[단점 : 다소 반항적인 성격, 고집이 강함]

[판매자 : 마왕 안드로말리우스]

두 번째 항목으로 갈 것도 없이 첫 번째 항목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2성급 이하 사역마 카탈로그와는 설명 항목부터가 달라진 것도 달라진 것이었지만, 그 내용이 무척이나 흥미진진했다.

‘드워프? 내가 생각하는 그 드워프?’

북유럽 신화에 기원을 둔 난쟁이 종족.

엘프와 더불어 판타지 계열 서브컬처에서 거의 빠짐없이 얼굴을 내미는 인기 종족이었다.

일단 외형 자체는 상상 속의 드워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굵고 짧지만 다부진 몸에 풍성한 수염, 고집스러워 보이는 눈매와 살짝 뾰족한 귀.

‘이계에서 포획했다?’

엘리고스가 예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때때로 일어나는 던전과 이계의 연결. 그로 인해 생기는 이계와의 마찰.

머릿속에 여러 가정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떠올랐다.

마왕의 던전을 탐사하는 모험가 파티. 그 중에서 탱커 역할을 맡고 있는 드워프 전사.

평화롭게 살고 있는 드워프 광산을 공격하는 사악한 마왕. 마왕의 군단에 굴복하는 드워프 전사들.

어느 쪽이든 당장은 상관없었다. 용호는 장점과 단점 항목을 건너뛰고 판매자 항목을 살펴보았다.

‘마왕 안드로말리우스.’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판매자의 이름이 명시된다는 사실이었다.

‘역시 중고 사역마 거래는 위험해.’

사역마를 진화시킨 뒤에 되팔아 수익을 거둔다는 발상은 역시 시기상조였다.

판매자 명이 명시되는 이러한 시스템 내에서라면 용호 자신의 존재가 금방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진화의 권능으로 능력을 상승시킨 사역마는 그만큼이나 특별한 존재였다.

용호는 다시 드워프를 살펴보았다. 겨우 몇 줄의 문장이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였다.

던전에 전속 대장장이를 둔다. 병장기를 만들고, 부서진 도구들을 고치며 갖가지 필요한 것들을 직접 생산해 낸다.

매력적이었다.

던전 경영은 게임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마력과 자원만 있다고 필요한 것들이 딱딱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용호는 엘리고스가 고문실에 쓸 의자를 직접 만들던 모습을 기억했다. 죽창으로 창살을 댄 감옥 역시 엘리고스의 수작업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던전에 대장간- 아니, 작업실을 만들고…….’

병장기를 만든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생활에 필요한 각종 시설들을 만들어 낸다.

‘목욕탕이라든가, 침대라든가, 제대로 된 옥좌라든가…….’

즐거운 상상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몇 초.

용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쉽지만 드워프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언젠가는 구매할 생각이었다. 던전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당장 급한 것은 의식주의 개선이 아닌 던전 방어력의 강화였다.

언제나와 같이 빠르게 미련을 끊어낸 용호는 카탈로그 페이지를 넘겼다. 다른 사역마들을 살펴보았다.

[No 02.]

[종족 : 락 골렘 (-)]

[단단한 바위로 만들어진 골렘]

[장점 : 높은 물리 방어력, 강한 힘]

[단점 : 느린 움직임 / 명령 필요]

[제조/판매자 : 던전 상회]

[No 03.]

[종족 : 하피 (여)]

[비행 능력을 갖춘 사역마. 지능이 우수하기에 사역마들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길 수 있다]

[장점 : 빠른 몸놀림 / 비교적 높은 지능]

[단점 : 약한 내구력]

[판매자 : 던전 상회]

[No 04.]

[종족 : 오우거 (남)]

[강한 힘과 체력을 갖춘 전투용 사역마]

[장점 : 강한 힘 / 높은 내구력]

[단점 : 대식 / 비교적 낮은 지능]

[판매자 : 던전 상회]

하나하나가 시선을 빼앗았다.

바위로 만들어진 락 골렘은 거대한 로봇을 연상시켰고, 하피는 비록 양 팔이 날개고 하반신이 새였지만 여인의 형상을 한 상반신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식인귀인 오우거는 첫 인상부터가 강렬했다. 분명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물임에도 불구하고 락 골렘보다 훨씬 더 크고 단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식할 정도로 커다란 둔기와 사람이라기 보다는 맹수에 가까운 얼굴 역시 인상적이었다.

세 마리 모두 구매욕구가 끓어올랐다.

용호는 다시 한 번 의식적인 심호흡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아직 반의 반도 보지 못한 3성 사역마 카탈로그였다.

용호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한 채 카탈로그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헬 하운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을 머리 두 개 달린 헬 하운드.

보다 강한 산성액을 생산하는데다가 그 모습을 어설프게나마 변용시킬 수 있는 거대 슬라임.

기본적인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임프 마법사.

아랍 느낌이 물씬 나는 하급 지니.

그리고 용호는 다시 한 번 손을 멈추었다. 빛의 창에 떠오른 사역마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No 13.]

[종족 : 팬텀 스티드 (-)]

[언데드 계열에 속하는 유령마]

[장점 : 빠른 기동력 / 비행 능력 보유]

[단점 : 비교적 낮은 항마력]

[판매자 : 마왕 키메리에스]

새하얀 갈기를 휘날리는 칠흑의 유령마.

던전 내에서 말 탈 일이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탐이 났다. 특히 예시 사진에서 여러 언데드 기사들을 태우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용호는 잠시 눈을 감고 팬텀 스티드 위에 올라탄 스컬을 상상해 보았다.

‘으음.’

스켈레톤 나이트로 승급시킨 다음에 팬텀 스티드에 태우면 꽤 그럴싸한 모습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용호는 이번에도 고개를 내저었다. 나중은 몰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더욱이 용호 자신도 걸어 다니는 마당에 사역마인 스컬이 말을 타고 다닌다니, 용호가 딱히 권위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던전 내의 위계질서를 위해서도 안 될 말이었다.

‘뭐… 어차피 난 나중에 살라멘더 타고 다닐 거지만.’

물론 날개 진화까지 시킨 다음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용호는 다시 연달아 카탈로그 페이지를 넘겼다. 중간에 나온 여자 엘프가 다시 시선을 강탈했지만 이번에도 어찌어찌 뿌리칠 수 있었다. 시트리와 대면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꼬리를 파닥이는 카타리나를 떠올린 것이 유효했다.

대충 한 시간 남짓.

참으로 길고 긴 시간동안 카탈로그를 열람한 용호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No 02.]

[종족 : 락 골렘 (-)]

[특수기 : 스톤 월]

[체격 특화 | ★★☆ (2.5)]

[힘 특화 | ★★ (2)]

[강도 강화 | ★★ (2)]

클레이 골렘과 함께 부릴 락 골렘이었다.

선정 이유는 클레이 골렘과 같았다. 앞으로도 이런저런 힘쓰는 작업이 잔뜩 필요한 던전에는 일꾼이 필요했다.

더욱이 근접전에 강한 오크들로 구성된 포라스의 군단에는 물리 방어력이 높은 골렘들이 특효약이었다.

겨우 구매를 끝마치자 이번에도 제법 큰돈을 썼기 때문인지 던전 상회 측에서 제공하는 사은품 가운데 하나를 선정하라는 메시지가 빛의 창 옆에 생성되었다.

[던전 미어캣 : 던전 입구에서 생활하며 적습을 경보한다.]

[던전 햄스터 : 던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부서지고 망가진 곳을 찾아내 보고한다.]

둘 다 귀엽기 짝이 없는 사역마였다.

심리적으로는 던전 햄스터에 더 끌린 용호였지만 역시 이번에도 실익을 중시했다. 보다 안정적인 방어를 위해 던전 미어캣을 선택했다.

[던전 상회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문하신 상품은 내일까지 배송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용호는 눈을 감았다. 가상공간과의 연결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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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쳤다.

실제로는 두 시간 남짓이었지만 체감 상으로는 몇 시간은 저쪽에 가 있었던 기분이었다.

“가주님, 괜찮으세요?”

눈을 뜨자마자 카타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옥좌 바로 옆에 서 있던 그녀는 시원한 물이 담긴 잔을 용호에게 내밀었다.

그렇잖아도 갈증을 느끼던 차였기에 용호는 기쁜 마음으로 잔을 받았다. 새삼 기분 좋게 흔들리는 카타리나의 꼬리를 보다가 말했다.

“고맙다. 오늘 덕 많이 봤다.”

“네?”

카타리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껌벅였지만 딱히 설명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저 키득 웃으며 물을 마셨다.

“엘리고스는?”

“사역마 생활관에서 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간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온 것 같습니다.”

카타리나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요 며칠 급하게 공사를 진행하느라 이래저래 고생한 엘리고스였다. 더욱이 식사 같은 자질구레한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으니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닐 터였다.

어쩌면 엘리고스에게 필요한 것은 드워프 장인이 아니라 이런저런 일을 보조해줄 던전 메이드일지도 몰았다.

“배달이 오는 건 어차피 내일이니까. 오늘 하루만이라도 푹 쉬게 해주자고.”

“예, 가주님. 오늘 식사는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따라 눈치가 빠른 카타리나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용호는 칭찬하듯 카타리나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준 뒤 침실로 향했다. 휴식이 필요한 것은 용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내일.’

던전 상회의 택배가 도착하는 것은 내일이었다.

가주 포라스의 공격이 예상되는 시점 역시 내일 부터가 시작이었다.

가주 포라스는 언제, 어느 정도의 군단을 이끌고 쳐들어 올 것인가.

용호는 짚단 침대 위에 몸을 묻었다. 시트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진정한 탐욕의 미궁은 건재합니다.’

탐욕의 왕 마몬.

그가 남긴 유산들.

용호는 눈을 감았다.

수마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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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 포라스는 인정했다.

마몬 가의 던전을 접수하기 위해 떠났던 테라크는 죽었다.

다른 가주나 떠돌이 마족의 소행일 것인가, 아니면 마몬 가의 던전이 생각 이상의 방어력을 보여준 것일까.

어쩌면 카이완- 그 맹랑한 년이 남긴 최후의 한 수가 남아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좋았다.

북부의 상황이 나날이 바뀌어갔다. 지금은 모험을 해서라도 힘을 길러야만 할 때였다.

던전을 먹고 던전을 키운다.

카이완이 남긴 모든 것들을 손에 넣는다.

포라스는 명령했다. 던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병력만을 남긴 채 전 병력을 동원하였다.

무장한 오크들을 잔뜩 태운 전투 마차 여럿이 황야를 달렸다.

향하는 곳은 마계의 남쪽 끝.

마몬 가의 던전이었다.

제 11장 - 재정비 끝, 제 12장 - 던전 방어전으로 이어집니다.

< 제 11장 #4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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