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36화 (36/227)
  • < 제 11장 #2 >

    [이름 : - (여)]

    [종족/직위 : 크레이지 앤트 / 공주개미]

    [분류 : 마수 (하급)]

    [매력 특화 0레벨 | ★★ (2)]

    [감성 특화 0레벨 | ★☆ (1.5)]

    [마력 특화 0레벨 | ★★ (2)]

    [체력 특화 0레벨 | ★ (1)]

    [속성 강화 0레벨 | ★☆ (1.5)]

    아직 정식으로 등록한 사역마가 아니기 때문인지 처음 던전 상회 가상공간에서 고블린들을 보았을 때처럼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꽤 있었다.

    ‘확실히 아직 애네.’

    어린 공주개미이기 때문인지 진화 관련 잠재력이 꽤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진화 가능한 루트가 많았고, 현재 능력이 워낙 바닥이다 보니 그만큼 초반의 성장 폭 역시 크게 나타날 터였다.

    ‘감성 특화는 뭐지?’

    뭔지 대충 짐작은 갔지만 확 와 닿지는 않았다.

    용호는 가만히 허공에 손가락을 놀려 공주개미의 진화 루트를 하나씩 확인해 보았다. 조금씩 차이가 나긴 했지만 열 한, 두 살 정도로 보이던 공주개미 위로 아주 약간 더 성숙한 소녀의 실루엣이 그려졌다.

    ‘승급을 하면 확 크려나?’

    진화 후에 선택할 수 있는 승급 루트가 있긴 있는지 ‘???’로 표기된 빛의 상자 두 개가 공주 개미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었다. 정식 사역마로 등록한 뒤에는 확인이 가능할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잠시 여왕개미의 모습을 떠올린 용호는 일단 진화의 권능을 해제했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났기 때문이다.

    “부르셨습니까, 가주님.”

    “너무 오래 뻗어있었지?”

    용호가 돌아서며 약간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엘리고스는 특유의 푸근한 미소로 화답했다.

    “딱 맞춰 돌아오셨습니다. 그간 무리하셨으니 푹 쉬시기도 해야죠.”

    부드러운 흐름이었다. 용호는 간수역인 코볼트에게 다시 한 번 손을 흔들어준 뒤 엘리고스와 함께 감옥을 나섰다. 옥좌가 있는 마왕의 방으로 향하며 말했다.

    “공사 진행은 어때?”

    “기본적인 함정 설치는 모두 다 끝났습니다. 자재가 없어서 설치하지 못한 고급 함정들도 일단 터를 닦아두었으니 자재만 준비된다면 설치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던전 방어의 두 축은 함정과 사역마였다.

    수성전에 비유하자면 각종 던전 시설과 함정은 성벽, 사역마는 성을 지키는 병사라 할 수 있었다.

    용호는 이번 방어전의 무게중심을 함정과 던전 시설에 두었다.

    성벽이 높고 두터우면 적은 병사로도 다수의 병사를 막아낼 수 있는 법이었다.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다시 마왕의 방이었다. 마왕의 방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카타리나가 문을 열어주었다.

    드넓은 마왕의 방을 가로질러 옥좌에 앉은 용호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옥좌 옆에 시립한 엘리고스에게 물었다.

    “뭘 사오면 되지?”

    “일단… 가주님께서 지시하셨던 함정들 위주로 예산 표를 뽑아보았습니다.”

    엘리고스가 품 안쪽에서 미리 준비해둔 서류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각종 함정을 구동시키기 위한 필수 재료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리스트였다.

    “그리고 이건 제가 나름대로 추정해본 금광의 현재가치입니다.”

    두 번째 서류에는 금광의 깊이, 현재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금의 매장량, 한달동안 채취할 수 있는 금의 수량 등이 적혀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 현재가치의 총합이 계산되어 있었다.

    던전의 금광은 인계의 금광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금이 매장되어 있다는 점은 똑같았지만, 채굴 방식이 달랐다.

    인계에서는 금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고 들어가서 직접 금을 캐내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던전의 금광은 채굴에 마력을 이용하였다.

    ‘던전 시설 : 금광’으로 일단 등록을 하면 자유롭게 활성화와 비활성화를 선택할 수 있었다. 활성화 된 금광에는 던전이 지속적으로 마력을 주입, 자동으로 금을 채굴해냈다.

    마력을 주입받은 금광의 지면에서는 마치 수정이 생기듯이 금덩어리가 생겨났다. 이러한 자동채굴은 매장량이 다할 때까지 아주 느리게 반복되었다.

    때문에 던전의 금광에서 필요한 것은 ‘채굴’이 아닌 ‘채취’ 작업이었다.

    3대 전 가주 시절에 미처 채취하지 못했던 금덩어리들은 마력과 각종 광석들을 섭취하는 크레이지 앤트의 여왕이 이미 다 먹어치운 터라 이제부터 금을 새로 생산해야만 했다.

    엘리고스의 보고서를 천천히 검토해본 용호는 앞의 구매 리스트와 더불어 각종 사항들을 던전의 영혼에게 기억시켰다. 잠시 후에 있을 시트리와의 ‘교섭’을 위한 필수재료들이었다.

    ‘마나 포션.’

    시트리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양질이라 해도 마법 하나 걸리지 않은 보통 무기 20개로는 한 병도 제대로 사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마력을 단숨에 회복시키는데다가 ‘강화’까지 해주는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시트리는 그런 마나 포션을 무려 네 병이나 용호 자신에게 선뜻 건네주었다.

    시트리는 ‘정당한 거래’라고 했지만 용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종의 빚이었다.

    “내가 처음 가주 자리에 올랐을 때 말이야.”

    “예, 가주님.”

    엘리고스와 카타리나가 모두 용호에게 주목했다. 용호가 엘리고스에게 물었다.

    “그때 입회인으로 시트리가 온 건 우연이었나?”

    가주 즉위를 위해서는 세 사람이 필요한데 마땅히 부를 다른 가주가 없어 던전 상회에 사람을 요청했다.

    처음 가주 자리에 오를 때 카타리나에게 들었던 설명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시트리의 행동을 보면 우연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마몬 가의 3대 전 가주인 카이완과도 친밀한 사이였었다.

    엘리고스는 아주 잠깐이지만 뜸을 들이다 답했다.

    “전전대 가주님의 유언이셨습니다. 가문이 존폐의 위기에 몰렸을 때 찾아가라. 적어도 한 번은 도와줄 것이다…….”

    역시 애당초 마몬 가와 왕래가 있던 인물이었다. 용호가 재차 물었다.

    “전전대 가주나 전대 가주 시절에는 시트리를 본 적이 없고?”

    “전전대 가주님과 전대 가주님이 즉위하실 때 각기 한 번씩 던전을 방문했었습니다.”

    현재 맥락대로라면 카이완의 즉위식에도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용호는 턱을 어루만졌다.

    “전전대나 전대는 그녀를 어떻게 대했지?”

    “딱히 특별하지는 않았습니다. 던전 상회 가상공간에서 거래를 하실 때도 시트리 씨와 마주하신 적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전전대 가주와 전대 가주는 말 그대로 순조롭게 몰락의 길을 걸었다.

    두 사람에게는 시트리가 도움을 주지 않았던 걸까?

    시트리는 3대 전 가주인 카이완에 대해서만 감정을 피력했다. 용호 자신이 보기에 그 감정은 일종의 애착이었다.

    카이완. 전전대와 전대 가주. 용호 자신.

    용호는 생각을 정리했다. 의식적으로 옥좌 손잡이를 탁 소리나게 치며 말했다.

    “좋아,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고 했으니까. 바로 시작해 볼까?”

    짐짓 경쾌하게 말하자 카타리나와 엘리고스 모두 밝은 표정을 지었다. 용호는 그런 두 사람 중 엘리고스 쪽에 시선을 두었다.

    “하지만 그 전에.”

    용호는 눈을 감고 던전 상회 가상공간에 접속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엘리고스의 어깨 위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다녀오면 진화하기로 했지?”

    용호는 진화의 권능을 발동시켰다. 참으로 느리게 차오르던 엘리고스의 진화 숙련치가 드디어 100에 도달해 있었다.

    엘리고스는 다소 긴장한 얼굴로 용호를 마주하더니 이내 약간은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체력 특화로 부탁드립니다.”

    “이유는?”

    “요즘 삭신이 좀 쑤셔서…….”

    참으로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이유에 용호는 씩 웃었다. 이미 두 번이나 진화를 경험해본 카타리나는 꽤나 흥미진진한 눈으로 엘리고스를 보았다.

    “눈을 감고 심신을 편하게 해.”

    엘리고스는 눈을 감고 몸을 살짝 늘어트렸다. 용호는 그대로 엘리고스의 어깨를 붙잡은 채 마력을 그러모았고, 흥미로 눈을 반짝이던 카타리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용호는 그 시선을 외면하듯 눈을 감았다. 엘리고스에게 진화의 권능을 불어넣었다.

    &

    용호는 눈을 떴다. 벌써 몇 번이나 방문한 던전 상회 가상공간은 이제 제법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

    “어…….”

    그런데 주변을 둘러봐도 시트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하얗고 하얀 공간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던전 상회 가상공간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원하시는 거래를 선택해 주세요.]

    이제까지 방문했을 때는 보지 못했던 빛의 문자가 정면에 펼쳐져 있었다.

    은행 ATM 멘트를 마주한 기분에 빠진 용호는 약간은 주저하다가 빛의 문자 아래에 쭉 나열된 목록들에 시선을 두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빛의 문자가 둘로 갈라지며 새카만 어둠이 드러났다. 마치 하얀 창호지를 날카로운 맹수의 발톱으로 가른 것 같은 그런 흔적이었다.

    검고 검은 공간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시트리가 하얀 공간에 완전히 들어서자 검은 흔적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깔끔히 사라졌다.

    “사랑하는 고객님, 미리 연락 좀 주시지 그러셨어요.”

    시트리의 타박 아닌 타박에 용호가 쓰게 웃었다.

    “연락할 방법은 있나요?”

    “글쎄요, 제가 마몬 가 전담이라면 뭔가 연락수단이라도 드렸을 텐데.”

    여유롭게 화답한 시트리는 손가락을 튕겼다. 용호와 시트리의 등 뒤로 각각 편안한 의자가 만들어졌다.

    “무사하신 걸 보니 좋군요. 금광을 탈환하셨나요?”

    “덕분에 성공했습니다.”

    “그럼 오늘은 거래를 위해 오셨겠군요.”

    자연스러운 대화의 흐름이었다. 벌써 몇 번이나 마주했기 때문인지 용호도 이제는 시트리 앞에서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금광을 담보로 물건을 매입하고 싶습니다. 그와 더불어…….”

    “더불어?”

    “마나 포션의 값도 제대로 치루고 싶고요.”

    시트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용호의 속을 꿰뚫어 보듯이 평소보다 약간은 가늘게 뜬 눈으로 용호를 바라보았다. 이내 엷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굉장히 마음에 드셨나 보군요.”

    용호는 부정하지 않았다. 마나 포션의 효용은 실로 굉장했다. 마력 강화는 둘째 치더라도 마력을 단숨에 회복시킬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마력을 많이 주입하면 할수록 더 강한 화력을 내뿜는 아몬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마나 포션은 용호의 전투력을 몇 배나 증가시킬 수 있는 특급 아이템이었다.

    그런 것을 네 병이나 받았다.

    시트리와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지금 그 네 병의 마나 포션은 일종의 빚이었다.

    시트리는 어깨를 늘어트렸다.

    “물건의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는 것 역시 중요하죠. 그저 탐심에 빠져 마구잡이로 취하려고만 한다면… 그건 제대로 된 탐욕이라 할 수 없을 거예요. 처음에도 그랬지만 우리 고객님이 더 마음에 드네요.”

    카이완도 그랬다. 그 앙칼진 아이 역시 다르지 않았다.

    시트리는 추억에 빠져들지 않았다. 현실의 용호를 보았다.

    “하지만 그날 말했듯이 그건 정당한 거래였습니다. 그리고 용호 님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정보이기도 했고요. 그러니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앞으로는 마나 포션을 구해드리는 일도 없을 테니까요.”

    딱 잘라 말한 시트리는 허리를 곧이 세웠다. 바로 화제를 전환시켰다.

    “금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금광의 현재가치는 구해 오셨겠죠?”

    “현재는 이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용호 역시 미련을 보이지 않았다. 허공에 손가락을 놀려 던전의 영혼에게 기억시켰던 정보들을 시트리에게 보여주었다.

    “흐음. 생각보다 꽤 많이 남아 있군요.”

    3대 전 가주인 왜곡의 마왕 카이완은 금광을 발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종되었다.

    카이완의 동생이었던 전전대 가주는 즉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광을 크레이지 앤트들에게 빼앗겼으니 매장량이 많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추산하신 현재가치는 꽤 타당합니다. 하지만 이 가치 그대로 물건을 구매할 수는 없습니다. 약간의 계산이 더해지죠. 실제로 저희 측에서 검사도 해봐야 하고요.”

    물건의 가치 그대로 돈을 빌려주는 전당포는 존재하지 않았다.

    더욱이 현재 마몬 가의 금광은 안정성 면에서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었다. ‘던전 방어전’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순식간에 엘리고스가 계산했던 현재 가치가 거의 절반 가까이 추락했다. 하지만 용호는 개의치 않았다. 예상 범위 안이라는 듯 차분하게 받아들인 뒤 다시 한 번 손가락을 놀렸다.

    “구매하고 싶은 물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엘리고스가 요구했던 함정의 자재들과 던전의 생계를 위한 각종 물품들이었다.

    “돈이 꽤 남네요. 남는 돈으로는 사역마를 구매하실 건가요?”

    물론 사역마도 구매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구매해야만 할 것이 있었다.

    용호는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였다. 시트리와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히며 말했다.

    “정보를 사고 싶습니다.”

    “포라스의 정보 말씀이신가요?”

    시트리가 흥미롭다는 듯 바로 되물었다.

    용호는 다시 내밀었던 상체를 의자 등받이 쪽으로 당겼다.

    포라스와 그 사역마들에 대한 정보라면 물론 알고 싶었다. 하지만 용호가 원하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것이었다.

    “포라스가 어째서 마몬 가를 치려고 하는가. 그가 왜 움직이게 되었는가.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전전대와 전대 가주 시절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그가 지금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가주가 죽은, 방어막이 약해진 던전을 취하기 위해서?

    임프는 말했었다.

    오크들이 실패하면 제대로 군대를 이끌고 마몬 가의 던전을 공격할 것이라고.

    가주 포라스의 의지는 굳건했다. 그리고 그 같은 움직임에는 분명 무언가 이유가 존재할 터였다.

    시트리의 눈이 다시 가늘게 변했다. 용호를 마주하며 엷고 긴 미소를 머금었다.

    < 제 11장 #2 > 끝

    ⓒ 취룡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