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34화 (34/227)

< 제 10장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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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족은 마력에 근본을 둔 생명이었다.

마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생명들은 저마다 마력을 품고 있었고, 이러한 마력을 강탈하는 행위를 정수 흡수라 불렀다.

정수 흡수 자체는 일반적인 마족들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정수 흡수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효율이 좋지 못했다.

정수 흡수를 통해, 포식을 통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은 ‘마왕’이라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이들 역시 자신과 마력 격차가 큰 존재에게서는 정수 흡수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제약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등하거나 더 강한 존재에게서라면 얼마든지 그 정수를 취해 자신의 힘을 늘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왕이었다.

약육강식의 세계인 마계에서 더 높은 곳을 노릴 수 있는 존재들.

마왕은 소수가 아니었다. 가장 많았던 시기에는 심지어 수백 명이 넘는 마왕이 존재하기도 하였다.

마왕이라 하여 모두 강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는 일반적인 마족보다도 못한 힘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마왕에게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이 왕이라 불리는 것은 누구나 왕의 자리에 오를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용호가 손바닥을 펼쳤다. 마력이 바닥났지만 상관없었다.

죽은 여왕개미의 이마에 푸른빛을 띤 마력이 집중되었다. 주먹 만한 크기의 구슬처럼 응집된 그것은 아름답게 빛났고, 이내 거짓말처럼 용호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것으로 세 번째.

앞의 두 번과는 달랐다. 짜릿한 쾌감이 등줄기를 꿰뚫은 것 까지는 같았지만 그것 외에도 다른 느낌들이 들었다.

강렬했다. 앞의 두 번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품고 있는 정수였다. 순수한 마력의 양만을 논한다면 거의 용호 자신과 비등할 정도였다.

완벽한 흡수는 있을 수 없었다. 때문에 이번 정수 흡수를 끝낸다 하여 마력이 갑자기 두 배가 되는 일은 없을 터였다. 더욱이 앞의 두 번보다 강력한 것만은 분명했지만, 마력이 거칠고 탁했다. 불순물이 섞여 있다는 표현이 가장 근접한 설명일 터였다.

용호는 눈을 감고 신음과 탄성을 동시에 토했다. 여왕개미의 정수를 용호 자신의 마력으로 받아들이면서 다시 한 번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이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간파했다.

정수가 품고 있는 속성.

용호의 것과는 너무나 이질적이기에 본래는 버려졌어야 마땅한 힘.

하지만 탐욕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용호에게 무리를 강요했다. 억지로라도 정수의 힘을 집어삼켰다.

쾌감에 연이은 격통이었다. 용호는 고통스런 신음을 토하며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탐욕은 멈추지 않았다. 용호 역시 멈출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 여왕개미의 정수를 받아들였다.

무엇 하나 놓치지 않는다.

버리지 않는다.

끝끝내 손에 넣고 만다!

“크헉!”

숨을 토하며 뒷걸음질 쳤다. 눈을 번쩍 떠 정면을 보았다.

“가주님?!”

카타리나의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렸다. 넘어지지 않은 것은 그녀가 용호 자신의 몸을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용호는 대답하는 대신 카타리나에게 몸을 기댔다. 카타리나의 어깨와 가슴에 의존한 채 숨을 골랐고, 몇 분이나 지난 뒤에야 간신히 혼자서 몸을 가누었다.

“가주…님?”

“괜찮아. 괜찮아, 카타리나.”

카타리나에게 대답한 용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당장 졸도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욕구가 있었다. 그렇기에 용호는 정수 흡수로 아주 약간 회복된 마력을 끌어 모았다. 진화의 권능을 발휘해 스스로를 보았다.

[진화의 마왕]

[이름 : 천용호 (남)]

[종족 : 반인반마]

[분류 : 마왕]

[속성]

[불꽃 2레벨 / 어둠 0레벨 / 냉기 1레벨]

[진화 숙련치 : 78/100]

[힘 특화 1레벨 | ★★ (2)]

[체력 특화 1레벨 | ★★☆ (2.5)]

[마력 특화 3레벨 | ★★★ (3)]

[매력 특화 0레벨 | ★★ (2)]

[민첩 특화 0레벨 | ★☆ (1.5)]

[기량 특화 0레벨 | ★★☆ (2.5)]

[7대 죄악 | 탐욕]

여왕개미의 정수를 흡수한 덕분인지 불꽃 속성이 1레벨 올라갔고, 마력 특화의 잠재력이 이전보다 조금 더 강해졌다.

하지만 이 두 가지보다 더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냉기.’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속성이 생겨났다. 더욱이 냉기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용호가 본래 지니고 있던 속성은 불꽃이었다. 너무 게임적인 발상일지 모르겠지만 불꽃과 냉기는 상극이었다. 그런데 지금 용호의 몸에 서로 상반된 두 속성이 모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탐욕.’

끝끝내 정수에 담긴 냉기를 집어삼키고자 했던 그것.

용호는 어깨를 늘어트리고 웃었다. 마력이 거의 안 남은 상태였기에 진화의 권능은 자연스럽게 해제 되었다.

[던전의 일일 마력 생산량이 120에서 140으로 증가 했습니다.]

[가주님이 강해지심에 따라 예속 사역마인 카타리나 (여), 엘리고스 (남), 스컬 (-)의 각종 능력치가 조금씩 상승했습니다.]

[가주님의 뿔이 보다 크고 아름답게 변했습니다!]

[축하드려요, 주인님.]

지금까지 참고 있었다는 듯 던전의 영혼이 빠르게 말했다.

용호는 그런 던전의 영혼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한 뒤 여왕개미의 시신과 아직도 방 곳곳에 남아 있는 크레이지 앤트의 알들을 돌아보았다.

카타리나가 말했다.

“아무래도 크레이지 앤트의 알들은 모두 파괴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개미들처럼 여왕의 통제를 벗어났으니… 사실상 유해한 던전 몬스터들일 뿐입니다.”

여왕을 복속시키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해 엘리고스가 미리 정해준 지침이었다.

용호 역시 동의했기에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약간은 지나가듯이 말했다.

“그럼 이제 저건 어떻게 하지?”

“네?”

“저거.”

용호가 눈짓으로 여왕개미의 시신- 정확히는 거대 개미의 등 부분을 가리켰다.

예속 사역마답게 카타리나는 금방 용호의 의중을 파악했다. 용호가 본 것은 거대 개미의 시신 위에 짐짝처럼 늘어져 있는 공주개미였다.

반투명한 진물 같은 것으로 몸 곳곳이 결박당한 상태였다.

더욱이 단순히 기절한 게 아니었다. 무슨 약물에 취한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온몸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다른 공주개미가 잡아먹히는 와중에도 조용했던 것은 먹히는 것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몸이 마비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용호는 공주개미를 좀 더 자세히 살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마냥 소녀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평범한 소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여왕개미의 본체처럼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이기는 했지만 머리에는 더듬이가 뿔처럼 돋아나 있었고, 팔과 다리에도 피부 위에 갑각이라 부를만한 것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굳이 사람에 비하자면 1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의 외형.

겉모습부터가 일반적인 크레이지 앤트들과 다른 것을 보면 여왕개미로 성장이 가능한 공주개미가 분명했다.

여왕개미는 전투 도중 공주개미를 먹는 것으로 마력을 회복했다. 아마 전투가 길어졌다면 저 공주개미 역시 여왕개미의 마력 배터리로 생을 마감했을 터였다.

용호는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투를 위해 자식조차 먹어치우는 마계의 비정함이라든가, 여왕개미와 공주개미- 정확히는 암캐미라 불러야 할 존재 사이의 모정 같은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실리적인 판단 하에 물었다.

“던전 몬스터인 공주개미를 사역마로 등록하는 것이 가능할까?”

여왕개미를 복속시킨다는 계획은 물 건너갔다.

하지만 공주개미라면 어떨까. 그리고 언젠가 공주개미가 용호의 통제 하에 크레이지 앤트 군락을 만들어낸다면 던전 운영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실 용호는 몰랐지만 크레이지 앤트를 복속시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군락을 지배하는 여왕개미들은 무척이나 독립심이 강한 존재들이었다. 대부분의 여왕개미들은 죽으면 죽었지 결코 복종을 택하지 않았다.

실제로 크레이지 앤트를 비롯한 개미 관련 던전 몬스터를 사역마로 거둔 마왕은 드넓은 마계에서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그래서 군락을 지배해본 경험이 없는 공주개미라면 가능할 것인가.

던전의 영혼이 대답했다.

[과정이 살라멘더 이상으로 복잡하긴 합니다만 시도 자체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재 주인님께서는 무척이나 지친 상태이십니다. 사역마 등록 과정을 위한 충분한 마력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마몬 가의 던전인 저 역시도 현재는 잔여 마력이 없는 상태입니다. 일단은 공주개미를 포획해 간 뒤, 추후에 등록을 시도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성공여부는 둘째 치고 어쨌든 일단 해볼 수는 있다는 소리였다.

만족한 용호는 고개를 돌렸다. 지친 가운데도 꿋꿋이 서 있는 카타리나를 보았다.

“카타리나.”

“예, 가주님.”

카타리나가 즉답했다. 승리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금광을 탈환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그야말로 감개무량한 얼굴이었다. 엉덩이의 꼬리 역시 신나게 파닥거렸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웠던 터라 실없이 웃고 만 용호는 머릿속으로 단어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이내 때려 쳤다. 그럴싸한 말을 만들어내기에는 체력이 너무 부족했다. 그렇기에 그냥 직설적으로 말했다.

“고마워. 오늘 정말 잘했어. 역시 가주의 호위기사야.”

“제 임무를 다 했을 뿐입니다.”

카타리나가 애써 침착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펄럭거리는 귀와 파닥거리는 꼬리는 둘째 치고, 자꾸만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만으로도 이미 대 실패였다.

용호는 눈을 감았다. 이제는 정말 한계였다.

“뒷일은 맡길게.”

카타리나가 대답할 새도 없이 용호는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대로 마음 편히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카타리나는 잠시 그런 용호를 쳐다보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가운데 혼자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조심스럽게 용호에게 다가갔다.

무척이나 가까웠다. 하지만 용호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카타리나는 그런 용호를 조금 더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지치기는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힘을 내 용호를 등에 업었다. 무겁기 짝이 없었지만 어쩐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스컬컬!”

입구 너머에서 스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입구 방의 개미들이 도망친 것을 보고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카타리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용호를 업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뺏기지 않겠다는 각오를 품은 뒤 스컬과 살라멘더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어차피 공주개미를 데려가고 개미 알을 불태우기 위해서는 둘의 도움이 필요했다. 여왕개미의 몸에 박혀 있는 아몬 역시 회수해야 했고 말이다.

‘홍련의 마창 아몬.’

저 탐욕의 왕 마몬의 오른팔이라고도 불렸던 무구.

마몬의 열두 사역마 가운데서도 이름 높은 최고위 마족.

한 번 휘둘러 천지를 불태우고 바다를 증발시키니.

전설대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단했다. 아몬이 없었더라면 아무리 용호라 해도 이 모든 위업을 이루지 못했을 터였다.

‘아니, 그래도.’

용호가 아몬의 주인이었다. 용호가 아몬을 찾아냈고, 아몬이 용호를 주인으로 인정했다.

그러니 그것은 분리해서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마침내 돌아온 탐욕의 왕.

마몬 가를 다시 일으켜 세울 진화의 마왕.

용호의 숨결이 가까웠다. 어깨너머에서 불어온 뜨거운 숨결이 목을 간지럽혔다.

카타리나는 스컬을 기다리며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 다시 한 번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제 10장 - 금광 탈환전 끝, 제 11장 - 재정비로 이어집니다.

< 제 10장 #3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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