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장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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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지? 여기서 대기하다가 놈이 깨어날 것 같으면 다시 머리를 쳐서 기절시켜."
기절한 채 꼼짝도 않는 살라멘더를 내려다보며 용호가 말했다. 스컬이 망치를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스컬이 아니라 살라멘더가 걱정되었다. 머리를 너무 맞아서 영구적인 장애가 남는 것은 아닐까.
‘그리 일찍 깨어날 것 같지는 않으니 뭐, 잘하면 안 맞고 그냥 끝나겠지.’
그리고 괜히 살라멘더를 얻겠다고 추가적인 피해를 발생시키는 쪽이 더 손해였다. 이런 쪽으로는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용호였다.
“좋아, 다음으로… 코볼트는 스컬과 함께 있도록.”
용호의 명에 무기고 쪽을 보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던 코볼트가 흠칫했다.
고블린과 더불어 최하급 사역마에 속하는 코볼트는 무척이나 본능에 충실한 녀석이었다. 견물생심이라고 물건이 앞에 있으면 충동적으로라도 도둑질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용호의 명령에 코볼트는 약간은 불만스러운 기색을 보였지만 카타리나가 한 번 무섭게 노려보니 이내 낑낑 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살라멘더를 쓰러트리고도 몇 분.
겨우 교통정리가 끝난 용호는 카타리나와 존을 이끌고 무기고로 향했다.
거의 찌그러지다시피 한 철제문 안쪽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용호는 들어가기에 앞서 던전의 영혼을 호출하였다.
[던전 시설 : 무기고를 장악하도록 하겠습니다. 활성화를 위해서는 주인님의 잔여 마력을 거의 다 소모해야 합니다.]
[약간의 빈혈기를 느끼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정말로 걱정이 된다는 투였지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고지가 바로 눈앞이지 않은가.
“얼마든지.”
용호가 수락하자 던전의 영혼은 더 망설이지 않았다. 용호의 남은 마력을 모두 쥐어짜 무기고를 활성화시켰다.
‘큿.’
던전의 영혼이 괜한 말을 한 게 아니었다. 순간 다리가 풀린 용호는 잠시 비틀거리다가 겨우 균형을 잡았다.
“괜찮아. 그냥 좀 많이 피곤하네.”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카타리나에게 선수를 친 용호는 정신을 집중했다. 무기고 안의 어둠을 주시했다.
던전의 영혼이 말했다.
[무기고의 장악이 끝났습니다. 어둠을 몰아내겠습니다.]
말이 끝난 직후 여느 활성화 된 방들과 마찬가지로 무기고 천장에 빛의 구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살라멘더 놈은 여기서 수십 년을 죽치고 있었던 건가?”
어둠이 걷히는 와중에 용호가 작게 중얼거리자 카타리나가 즉답했다.
“전투 중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정령은 아니지만 정령에 가까운 마수입니다. 마력을 먹고 사는 녀석이니… 아마 겨울잠 자는 곰처럼 내내 잠들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였기에 용호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몇 초. 마침내 무기 고 안의 어둠이 모두 걷혔다.
무기고 내부는 생각 이상으로 넓었다. 양 벽에는 선반이 죽 늘어서 있었고, 그 위에는 검이나 창 같은 무기들뿐만 아니라 갑옷 같은 방어구들도 놓여 있었다. 대충 헤아려도 수십 개가 넘을 것 같았다.
용호의 얼굴에 자연스런 미소가 그려졌다.
3대 전 가주가 수집한 무기들. 당시에 존재했던 사역마들을 위한 무구들.
당연히 이 중에도 옥석이 가려질 터였다. 마력을 모두 소진했음에도 용호의 영혼에 자리한 탐욕이 벌써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무기고 내에 함정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혹여 저주가 걸린 마법 장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착용에는 주의를 기해 주십시오.]
용호는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탐욕이 용호를 인도했다.
‘무기보다는 일단 방어구.’
용호는 탐욕을 의식적으로 제어해보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더 갈망하는 것. 지금의 자신에게 더 필요한 것.
무기는 아직 그 본래 성능의 반의반도 못 이끌어내고 있는 아몬이 있었다.
용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기가 아닌 방어구였다.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던 감각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탐욕은 용호의 의지를 거스르지 않았다. 용호의 의지를 받아들여 길을 인도했다.
용호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살라멘더가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기라도 했는지 그을린 자국이 잔뜩 남은 바닥을 지났다. 선반에 걸려 있는 창이나 칼 같은 무기들에 시선을 두는 대신 똑바로 나아갔다.
자잘한 마력의 흐름들이 느껴졌다. 아마도 무기고 내에 있는 마법 무기들이 발산하는 크고 작은 마력들일 터였다. 하지만 탐욕은 그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용호의 욕망을 가장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을 향해서만 촉각을 곤두세웠다.
용호의 시야에 잘 만들어진 사슬 갑옷이 들어왔다. 아주 작은 사슬들을 꼼꼼히 엮어 만든 물건이었는데, 수십 년 세월을 무기고에서만 보냈을 터인데도 마치 어제 정비한 것처럼 말끔한 자태를 자랑했다.
하지만 이것도 아니었다. 용호는 사슬 갑옷을 지나쳤다. 그리고 마침내 무기고 가장 안쪽에 위치한 선반 앞에 멈춰 섰다.
기대했던 투구나 갑옷은 보이지 않았다. 고급스런 느낌의 작은 나무함이 선반 위에 홀로 올라가 있었다.
달을 삼키는 늑대의 문양.
3대 전 가주의 상징이 보석함 뚜껑에도 양각되어 있었다. 용호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 보았다.
‘반지?’
붉은 천으로 안을 댄 보석함 안에는 은색 반지 하나가 달랑 놓여 있었다. 보석이라도 하나 붙어 있을 것 같은 자리에는 작고 동그란 판이 있었는데, 그 안에도 달을 삼키는 늑대의 머리 부분이 아주 작게 음각되어 있었다.
마법이 걸린 반지였다. 아직 손에 끼지 않았음에도 그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왜일까.
익숙했다. 결코 낯설지만은 않았다.
처음 보는 마법 무구를 장비하는 것은 던전의 영혼이 경고했던 것처럼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용호는 자연스럽게 반지를 들어올렸다. 탐욕이 발하는 욕망에 현혹되어 이성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 반지는 결코 자신을 해하지 않는다.
알 수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여성용이라도 되듯 구멍이 작은 반지였지만 손가락에 가져다대자 자동으로 구멍이 넓어졌다. 짧게나마 심호흡을 한 용호는 반지를 손가락에 밀어 넣었다. 반지가 품고 있는 마력을 받아들였다.
회색의 머리칼.
백색에 가까운 카타리나의 것과는 다른 잿빛의 그것.
하얗고 아름다운, 하지만 표독스러워 보이는 여인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오래지 않아 연기처럼 사라졌다.
낯설지만 동시에 익숙한 마력이었다.
용호는 이해했다. 이것은 3대 전 가주의 마력이었다. 그의- 아니, 그녀의 권능이 일부나마 깃들어 있는 기물이었다.
왜곡의 마왕 카이완.
용호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그녀도 탐욕의 왕 마몬의 후예였다. 잔영처럼 남아 있는 마력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용호는 반지에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주입했다. 카이완의 권능을 발현시켰다.
반지를 낀 왼손 위로 빛이 굴절되었다. 작은 쟁반만한 크기의 ‘왜곡장’이 형성되었다. 왜곡의 권능이 만들어낸 ‘왜곡의 방패’였다.
방패는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용호에게는 더 이상 권능을 유지할 마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마력 소모가 커.’
하지만 그 효과는 무시할 수 없었다. 아직 시험해보진 않았지만 용호는 알 수 있었다. 왜곡의 권능은 다른 무엇도 아닌 공간을 왜곡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방패는 과연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크기가 작지만 과연. 탐욕이 갑옷 대신 이걸 택할 만도 하네.’
어찌보면 용호가 딱 원하던 방어구였다. 무게가 거의 나가지 않았고, 마력을 주입하면 언제든지 발동시킬 수 있었다. 아몬을 들고 싸우는 와중에도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3대 전 가주.’
여자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쓰게 웃은 용호는 함을 닫고 돌아섰다. 존과 카타리나가 무기고 안을 돌아다니며 장비들을 살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서 사슬 갑옷을 살펴보는 카타리나에게 용호가 물었다.
“카타리나, 혹시 아이템 감정 같은 거 할 수 있어? 어떤 마법이 걸려있는지 확인한다든가.”
3대 전 가주- 카이완의 반지는 용호 자신이 확인할 수 있었지만 다른 매직 아이템들까지는 무리였다. 설마하니 이 방에 있는 마법 아이템 모두가 마몬 가의 마력이 깃들어 있을 리는 없었으니 말이다.
카타리나는 미리 생각이라도 해둔 것처럼 즉답했다.
“매직 아이템의 확인이라면 엘리고스 집사장이 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해석은 무리더라도 저주의 유무 정도는 쉬이 밝혀낼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용호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우선적으로 마법이 걸린 장비들을 챙기도록 하자. 나중에 또 와도 되지만 그래도 들고 갈 수 있을 만큼은 들고 가자고.”
“예, 가주님.”
카타리나 역시 신이 나서 대답했다. 저만치 서 있던 존 역시 괜히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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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7장 #3 > 끝
ⓒ 취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