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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22화 (22/227)
  • < 제 7장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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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광으로 이어지는 갈림길까지는 이미 한 번 진출했던 길이기에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던전 몬스터들 역시 한 차례 청소를 한 구역이라 그런지 슬라임 두 마리가 모습을 보인 것이 전부였다.

    “좋아. 여기서부터는 아직 가보지 않은 영역이다. 다들 긴장하도록.”

    용호의 말에 죽창을 쥐고 있던 존이 눈에 띄게 긴장했다. 조금 앞서서 걷고 있던 코볼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타리나는 말없이 용호와의 거리를 조금 더 좁혔고, 스컬은 여전히 자연체인 상태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용호가 계속해서 말했다.

    “코볼트가 첨병으로 나선다. 존과 스컬은 측방을 맡도록. 나와 카타리나는 중앙에서 모두를 받친다.”

    스컬과 존은 제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코볼트는 아예 첨병으로 나서라는 말에 움찔하며 싫은 기색을 보였지만 용호와 카타리나가 빤히 바라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몇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대형을 정비한 용호는 금광으로 이어지는 문의 오른편- 즉 정면 방향으로 탐사를 계속했다.

    연달아 다섯 개의 방을 나아가는 동안 던전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코볼트와 존은 꽤나 안심했는지 걸음걸이에 제법 여유가 생겨났다.

    용호는 허공에 던전 지도를 펼쳤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크레이지 엔트와 슬라임 모두 금광에 뿌리를 두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금광에서 멀어진 이곳에 크레이지 엔트와 슬라임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이쪽으로 가면 무기고가 있었다. 그런데도 던전 몬스터들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무기고를 점령한 던전 몬스터는 크레이지 엔트나 슬라임처럼 개체수가 많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가주님?”

    용호가 가만히 멈춰 서서 던전 지도를 가만히 바라보니 카타리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용호는 바로 답하는 대신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눈을 살짝 감으며 답했다.

    “확실히. 이쪽도 반응이 오네.”

    금광에 보다 강한 욕구를 보이던 탐욕이 새로운 먹잇감을 탐하기 시작했다.

    정면.

    그리 멀지 않은 곳.

    방 한 칸을 더 이동했다. 그리고 용호는 직감했다. 손을 들어 사역마 모두를 멈춰 세웠다.

    “잠시 대기. 아마도 다음 방이다.”

    눈치 빠른 코볼트와 존은 용호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바로 알아차렸다. 지금까지의 여유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다시 바짝 긴장해서 마른침을 삼켰다.

    카타리나는 말없이 용호를 보았다. 잠시 그런 카타리나와 시선을 교차한 용호는 아몬을 움켜쥔 채 벽 쪽으로 이동했다. 문 바로 옆에서 사역마들과 대기한 뒤 코볼트에게 눈짓으로 문을 열라 명령했다.

    코볼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주저했지만 뒤에서 존이 죽창을 찔러대니 별 수 없었다. 약간은 충혈 된 눈으로 문을 바라보더니 재빨리 몸을 날려 문을 열었다.

    [방을 활성화 합니다!]

    코볼트가 문을 연 직후 던전의 영혼이 비활성화 되어 있던 방에 마력을 공급하였다. 빛이 어둠을 몰아냈다.

    그리고 아주 잠깐의 시간.

    방 안쪽에서 이렇다 할 반응이 없자 용호는 카타리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후드를 걷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카타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쪽에서 이렇다 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카타리나가 다시 후드를 뒤집어 쓸 때까지 기다린 용호는 문을 마저 열었다. 스컬, 존과 더불어 방안으로 들어섰다.

    기존의 평범한 방들과 달리 제법 규모가 있는 방이었다. 폭도 일반적인 방에 세 배에 달했고, 안쪽으로도 무척이나 길었다. 방의 끝에는 커다란 철제문이 달려 있었다.

    “기록에 남아 있는 무기고의 문과 동일합니다.”

    달을 삼키는 늑대의 조각이 양각된 문을 보며 카타리나가 말했다. 연이어 던전의 영혼이 용호에게 속삭였다.

    [문 너머에서 강력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조심하세요, 주인님.]

    용호 역시 감지했다. 그렇기에 마력의 흐름에 집중해 보았다. 용호의 두 눈에 마치 진화의 권능을 사용할 때처럼 녹색의 귀화가 피어올랐다.

    마계는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주 작은 미물에서 강대한 마왕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각각의 마력이 가지는 특성.

    그 색과 속성.

    용호는 진화의 권능으로 사역마의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었다. 사역마가 가지고 있는 마력의 색과 속성 역시 용호의 권능으로 밝혀낼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렇기에 용호는 단순히 마력의 흐름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 흐름에 색과 속성을 더해 보다 정밀한 관찰이 가능하였다.

    철제문 너머.

    던전의 영혼의 말대로였다.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일전 상대했던 덩치 큰 마족보다도 더 강한 마력이었다.

    열기. 불꽃. 선명한 노랑.

    철제문 사이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소용돌이 쳤고, 그 흐름이 빠르게 커졌다.

    용호가 벼락같이 외쳤다.

    “옆으로!”

    바짝 긴장해 있던 코볼트와 존은 즉각 몸을 우측 벽 쪽으로 날렸다. 용호는 카타리나의 허리를 끌어안고 왼쪽 벽으로 몸을 날렸고, 그 와중에 카타리나는 손을 쭉 뻗어 멍하니 서 있던 스컬을 잡아당겼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빈 공간.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

    폭염이 질주했다. 쾅 소리와 함께 무기고의 철문이 우그러졌고, 선명한 노랑이 대기를 불살랐다.

    불꽃의 기둥.

    코볼트와 존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스컬은 멍하니 턱을 벌렸고, 용호는 활짝 열린 철문 안을 주시했다. 카타리나가 소리쳤다.

    “살라멘더!”

    용호 또한 볼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불타는 그것은 거대한 도마뱀을 닮았다. 선명한 노랑 불길이 육신 전체를 뒤덮고 있었기에 생명체라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불꽃같았다.

    용호가 급히 물었다.

    “설마 정령 같은 건가? 실체가 없는?”

    용호가 즐겨하던 게임에서 살라멘더는 보통 ‘불꽃의 정령’으로 등장했다. 카타리나가 빠르게 답했다.

    “완전한 정령은 아닙니다. 그에 가까운, 마력을 먹고 사는 불의 마수입니다!”

    마지막에 목소리를 높인 카타리나가 지면을 박찼다. 용호 역시 서둘러 몸을 일으켜 세웠다. 살라멘더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적은 하나!’

    여럿이 아니었다. 하나였다. 분명 허공을 불태운 불줄기는 무시무시했지만 놈의 무기가 불꽃이라면 아예 맞상대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용호는 아몬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키아아!”

    불꽃의 마수답게 광폭하기라도 한 것인지 살라멘더가 괴성과 불꽃을 한 번에 토하며 무기고를 빠져나왔다.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길이가 근 4미터는 됨직했다.

    상대가 저런 괴물이면 존과 코볼트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용호는 다시 한 번 카타리나와 시선을 교환했다. 예속 사역마와 그 주인답게 눈빛만으로 서로의 뜻을 이해하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이쪽이다!”

    카타리나가 도발하듯 소리치며 지면을 박찼다. 용호를 등에 업고 벽을 박찼던 몸놀림으로 벽과 천장, 바닥을 박차며 실로 입체적인 기동을 해보였다.

    카타리나의 현란함이 살라멘더의 주의를 빼앗았다. 살라멘더는 카타리나 쪽으로 질주하며 불꽃을 토했다. 진짜 도마뱀이기라도 한 것인지 그 이동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카타리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평소 호구 기사라 불리는 그녀였지만 엄연히 가주의 호위 기사였고, 마몬 가 던전의 가장 든든한 전투 병력이었다. 두려움에 떠는 대신 살라멘더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연달아 손 쇠뇌를 발사해 살라멘더를 공격했다.

    하지만 살라멘더는 카타리나의 공격을 아랑곳 않고 속도를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몇 발이 살라멘더에게 적중하긴 했지만 두터운 가죽을 뚫기에는 무리였다.

    “카타리나!”

    용호가 소리쳤다. 카타리나는 주저 없이 벽을 박차 살라멘더와 거리를 벌렸다. 오직 살라멘더에게만 집중했던 시선을 용호에게 돌렸다.

    “가주님!”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용호가 살라멘더에게 돌진했다. 마치 랜스 차징을 하듯 곧이 세운 아몬으로부터 진녹의 불꽃이 난폭하게 피어올랐다. 절제되지 않은, 마치 야수와도 같은 불꽃이었다.

    “키아아!”

    살라멘더가 그런 용호에게 고개를 돌리며 불꽃을 토했다. 거리가 무척이나 가까웠기에 피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용호에게는 애당초 피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우오오오오!”

    동시에 마주 고함을 질렀다. 아몬으로부터 일어난 폭염의 야수가 살라멘더가 토한 불꽃에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불꽃이 불꽃을 먹어치웠다.

    일종의 도박이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용호와 살라멘더 사이의 거리는 순식간에 0으로 수렴하였다. 아몬이 살라멘더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크아악!”

    살라멘더가 비명을 지르며 요동쳤다. 입에서뿐만 아니라 온몸에서 불꽃을 발산했다.

    뜨거웠다. 그야말로 강철조차 녹일 것 같은 무시무시한 열기였다. 하지만 용호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몬의 불길이 용호의 정면을 가로막았다. 불타는 열기 속에서 용호는 다시 한 번 아몬을 비틀며 살라멘더를 밀어붙였다.

    ‘움직여!’

    마왕이 되며 강해진 육신으로도 힘겨웠다. 용호는 전력을 다해 밀었고, 마침내 수백 kg에 달할 것 같은 살라멘더가 고통스런 비명을 토하며 옆으로 밀려났다.

    “스컬컬!”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조력이 당도했다.

    크고 단단한 망치가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다. 수직으로 쏟아진 그것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살라멘더의 머리를 후려쳤다.

    살라멘더는 불꽃의 마수. 실체가 없는 정령이 아니었다. 두개골을 강타하는 충격에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더욱이 망치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스컬컬컬!”

    스컬이 미친듯이 망치를 휘둘러 살라멘더의 머리를 집중 타격했다. 살라멘더를 벽에 몰아붙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에만 신경 쓰던 용호조차도 나중에는 멍한 얼굴로 스컬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카, 카타리나보다 스컬이 더 도움이 된다?!”

    용호가 저도 모르게 흘린 목소리에 카타리나가 흠칫했다. 어떻게든 도움이 되기 위해, 스컬보다는 우위에 서기 위해 지면을 박찼다.

    하지만 카타리나가 할 일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불꽃을 용호에게 봉쇄당한 것만으로도 모자라 불의의 일격에 머리를 집중 난타 당한 살라멘더는 이미 그로기 상태였다. 꼬리를 휘두른다거나 불길을 발산한다는 것도 이제는 무리였다.

    용호 곁에 다가선 카타리나가 단검을 뽑아들었지만 이제 와서 어딜 찌르는 것도 참 모양새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친 그런 카타리나에게 들으라는 듯 스컬이 망치를 높이 들어 올리며 포효했다.

    “스컬컬! 스컬컬!”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용호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살라멘더의 불꽃을 압도하느라 아껴두었던 마력을 한 번에 소진하긴 했지만 스컬 덕분에 생각보다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제 마무리를 가할까?’

    살라멘더의 옆구리에서 아몬을 뽑아든 용호는 축 늘어진 살라멘더를 바라보았다. 살라멘더가 그로기 상태에 빠졌기 때문인지 불꽃이 매우 약해져 이제는 그저 거대한 도마뱀으로 보일 뿐이었다.

    거한의 정수를 흡수했듯이 살라멘더의 정수를 흡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살라멘더를 죽여야만 했다.

    용호의 눈이 차가워졌다. 산 것을 죽여야만 한다는 거부감보다는 정수에 대한 탐심이 더 컸다.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정수를 흡수 했을 때 느꼈던 쾌감. 정수 흡수로 커진 마력.

    용호가 역수로 쥔 아몬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내찌르기 직전, 돌연 카타리나가 용호의 팔을 붙잡았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가주님.”

    목소리를 토한 카타리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공격을 제지당한, 정수 흡수를 방해당한 용호의 눈이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이내 이성을 회복한 용호는 의식적으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고개를 한 번 크게 내저은 뒤 다시 말했다.

    “말해, 카타리나.”

    평상시의 용호였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사역마 주제에 가주의 팔을 붙잡아 말린 카타리나 자신의 행동도 분명 무례에 가까웠다.

    이래저래 안도의 숨을 내쉰 카타리나는 침을 한 번 삼켰다. 살라멘더를 가리키며 말했다.

    “살라멘더는 무척이나 유용한 마수입니다. 제대로 길들인다면 3성 사역마 역할은 충분히 해낼 겁니다. 이미 한 번 패했고, 가주님의 성스럽고 위대한 불꽃에 자신의 미약한 불꽃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길들이는 것이 가능할 겁니다.”

    중간 중간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수식어가 붙어있긴 했지만 맥락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엘리고스도 감옥에 대해 설명하면서 던전 몬스터를 길들인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았다.

    용호는 다시 살라멘더에게 시선을 돌렸다.

    살라멘더는 분명 강력한 마수였다. 용호 자신에게 아몬이 없었다면 이기기는커녕 맞상대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전대와 전전대 가주가 이 녀석 하나에 밀려 무기고를 포기한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 살라멘더를 수하로 부린다.

    용호는 아몬을 거두었다. 예속 사역마인 카타리나의 바람을 이루어 주었다.

    “잘했어, 카타리나. 아까 살라멘더의 주의를 완전히 끈 것도 그렇고. 과연 내 호위 기사다워.”

    칭찬하며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카타리나의 두 귀가 날개처럼 펄럭거렸다.

    “아닙니다. 호위 기사로서 당연한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스컬 쪽을 살피는 모습이 귀여웠다.

    애써 웃음을 참은 용호는 방구석에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존과 코볼트를 불렀다. 이제 무기고를 찾아온 진짜 목적을 이루어야 할 시간이었다.

    “자, 이제 무기고를 털어보… 아니, 확인하자.”

    용호가 명했고, 카타리나를 선두로 한 사역마들은 가주의 명을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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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7장 #2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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