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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21화 (21/227)

< 제 7장 - 무장하다 >

제 7장 - 무장하다

부수고 관통했다.

틀이 깨졌다. 폭발하듯 피어오른 힘이 출구를 찾아 용솟음쳤다.

그것은 격류였다. 태어나 처음 겪는 힘의 분출이었다.

비명을 질렀다.

아니, 비명 같은 것이 아니었다.

다른 무언가.

혼의 외침. 모든 것을 게걸스레 집어삼키는 불꽃의 격류.

시간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저 어느 순간.

눈을 떴다. 녹색의 귀화가 피어올랐고, 또다시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용호는 비틀거리지 않았다. 똑바로 서서 변화된 자신을 느꼈다.

마력을 담는 그릇 자체가 확장되었다.

굳이 마력을 회전시켜보지 않아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온몸에 힘이 없었다. 마력도 거의 전부 다 소진해 텅 빈 그릇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보다 분명하게 느껴졌다.

“카타리나.”

용호가 말했다. 용호의 시야 정면에 주저앉아 있던 카타리나가 퍼뜩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용호를 보았고, 특유의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로 울상을 짓다가 환희에 차 말했다.

“가, 가주님. 뿔이…….”

용호는 손을 들었다. 거울 같은 것이 없어도 어디에 뿔이 자라있는지 알 수 있었다.

뿔은 온 세상에 존재하는 마력을 받아들이고 집중시키는 일종의 송신기였다.

카타리나와 똑같은 위치에 두 개의 뿔이 솟아 있었다. 작은 돌기라고밖에 부를 수 없었던 이전의 것과 달리 손가락 중지와 검지를 합친 것보다도 크고 두꺼웠다.

이제야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춘 두 개의 뿔.

던전의 영혼이 참고 참았던 숨을 토하듯 말을 쏟아냈다.

[던전의 일일 마력 생산량이 50에서 80으로 증가했습니다!]

[주인님의 최대 마력이 180에서 280으로 증가하셨어요! 더욱이 뿔 덕분에 마력의 회복 속도 역시 100% 증가하셨고요!]

마족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존재.

그 육신도, 영혼도 모두 마력의 덩어리.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반인반마이기에 둔감할 수밖에 없었던 마력에 대한 감각이 마족의 그것으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용호는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마력을 모두 소진한 터라 느껴지는 무거운 피로감마저도 즐겁게 느껴졌다.

“카타리나, 몸은 괜찮아?”

용호가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물었고, 카타리나는 어깨를 늘어트리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뿔이 생겨난 가주님. 분명 마력이 강해지신 가주님.

하지만 불안했다.

고작 며칠 모셨을 뿐이지만 저분이 자신이 아는 그 가주님이 맞으신 걸까. 어딘가 변하신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대로였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찔끔한 카타리나는 새삼 용호의 시선을 느꼈다. 슬라임 여러 마리에 덮쳐진 탓에 의복이 엉망이었다. 용호의 대처가 워낙 빨랐던 덕분에 크게 상한 곳은 없었지만 맨살이 드러난 부분에는 약하게나마 그을린 상처가 나기도 했다.

“이, 이런 건 침 바르면 낫습니다.”

카타리나가 허둥거리며 답했고 용호는 다시 웃었다. 스스로의 대답에 이미 얼굴이 발개진 카타리나를 더 곤란하게 하는 대신 짐짓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돌아가자. 재정비를 해야 할 테니.”

“알겠습니다. 가주님.”

“스컬스컬.”

카타리나의 시원한 대답에 스컬이 끼어들었다. 용호는 출발하기에 앞서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지금은 비활성화 된 방들 너머. 분명히 존재하는 3대 전 가주의 금광.

‘반드시 되찾는다.’

용호는 다시 돌아섰다. 발걸음을 내딛었다.

&

“가주님!”

마왕의 방에 돌아오자마자 마주한 것은 역시 엘리고스였다. 엉망이 된 용호와 카라티라의 행색에 깜짝 놀랐는지 평소보다 훨씬 더 허둥거렸고, 그 허둥거림은 용호의 뿔을 발견 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용호는 일단 마왕의 방의 유일한 가구라 할 수 있을 옥좌로 자리를 옮겼다. 딱딱한 돌 위에 몸을 묻으며 말했다.

“금광을 찾았어. 뿔은 진화의 권능을 나 스스로에게 사용했기 때문이고.”

엘리고스는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다. 물 주전자를 가지러 간 카타리나가 돌아오고 나서야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금, 금광 말씀이십니까?! 3대 전 가주님의?!”

“그래. 엘리고스 네 말대로 던전 몬스터들이 점령하고 있더군. 거대한 개미 형태야. 아무래도 놈들이 금광에 둥지를 만든 것 같아.”

용호의 대답에 엘리고스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크레이지 엔트의 군락. 이는 분명 던전 확장은 물론 유지에 있어서도 중대한 위협이었다.

용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은 예정대로 3대 전 가주의 무기고를 손에 넣는다. 금광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전력을 강화해야 해.”

전전대 가주나 전대 가주처럼 던전 몬스터를 피해 웅크리고 있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탈환한다. 마몬 가의 것을 되찾는다. 용호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선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 침실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침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였기에 이번에는 용호가 다소 당황했다. 엘리고스는 여유로운 얼굴로 답했다.

“부끄럽습니다만, 아직은 방을 하나 새로 마련한 정도입니다. 조만간에 침대를 비롯한 가구들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명색이 마왕, 던전의 주인인 가주가 밟고 다니는 것이 목적인 융단 위에서 자는 모습을 사역마들에게 계속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주의 위신을 위해서라도 침실은 꼭 마련해야 할 시설이었다.

“그럼 침실로 모시겠습니다.”

“어, 그래.”

뭔가 말리는 기분이었지만 용호는 일단 수락했다. 사실 마력을 너무 소진한 탓에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카타리나도 푹 쉬어. 스컬도.”

“네, 가주님.”

“스컬컬.”

카타리나가 즉답했고, 이미 바닥에 돌멩이처럼 나자빠져 있던 스컬 역시 대답했다.

용호는 엘리고스와 함께 침실로 향했다.

&

눈을 감았다 떴더니 시간이 흘러 있었다.

그야말로 워프. 아니, 타임머신. 수험생 생활 할 때 종종 느꼈던 감각과 비슷했다.

목이 완전히 잠겨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일 정도로 머릿속은 맑았다. 크게 돋아난 뿔 덕분인지 마력 역시 충만했다.

‘대체 얼마나 잔 거지.’

용호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천장이 낮고 벽도 평소보다 좁았다. 늘상 자던 마왕의 방 카펫 위가 아닌 짚단을 깔아 푹신하게 만든 잠자리 위였다.

엘리고스가 급히 마련했다는 미완성 침실.

비로소 기억이 이어진 용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엘리고스가 떠둔 것으로 추정되는 대야 물로 대충 세수를 한 뒤 망토를 두르고 침실을 나섰다.

‘여전하네.’

아무래도 생각처럼 오래 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넓은 마왕의 방에는 던전 내의 사역마 거의 대부분이 모여 있었다.

던전의 듬직한 일꾼들인 고블린 사인방은 입구와 가까운 카펫 위에 나란히 누워 있었고, 스켈레톤 스컬은 언제나처럼 바닥 어딘가에 돌멩이처럼 뒹굴고 있었다. - 사실 던전 어디에 나자빠져 있어도 위화감이 들지 않는 스컬이었다. - 카타리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옥좌 부근에서 망토를 둘둘 만 채로 쓰러져 있었다. 얼핏 보면 무슨 번데기 같은 게 오늘따라 측은해 보였다.

‘복지 수준이 최악이군.’

새삼 고용주의 책임감을 느낀 용호는 사역마들의 단잠이나마 유지시켜주고자 아주 조용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물을 마셔 잠긴 목을 달래고 마왕의 방을 나서자 트리엔트에게 물을 주고 있는 엘리고스가 보였다.

“나무는 나무구나.”

“오, 가주님 일어나셨습니까. 일찍 일어나셨군요.”

“그래, 무기고로 이어질 길을 찾았으니 서둘러야지.”

“오오, 역시 가주님다우십니다.”

환히 웃는 엘리고스 옆에서 트리엔트가 엉거주춤 몸을 숙여 용호에게 예를 표했다. 그러고 보면 아직 트리엔트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트리엔트니까 엔트라고 부를까?’

심플 이즈 베스트를 신봉하는 용호였지만 아무래도 엔트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고민해보자.’

이름을 짓는 일이 급한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그보다 더 급한 일은 따로 있었다.

“엘리고스 사역마들을 위한 침실도 하나 마련할 수 있을까? 카타리나도 따로 방을 하나 내줘야 할 것 같은데.”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용호 자신 역시 마왕의 방 카펫 위에서 잠을 청했지만 역시 이건 아니었다. 아무리 던전이라지만 적어도 의식주 정도는 제대로 보장을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용호의 가주다운 명령에 언제나처럼 감복한 엘리고스가 서둘러 답했다.

“가능합니다. 던전의 일일 마력 생산량도 가주님 덕분에 크게 늘었고요. 일반 사역마들을 위한 합동 숙소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맡겨두지.”

거기까지 말한 용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새삼 감옥으로 이어지는 통로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코볼트들의 포섭 작업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아직 고문실이 완성이 안 되어서…….”

엘리고스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 용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우리 밑으로 들어오겠다는 녀석은 없고? 그날 눈치 보니까 딱히 이전 주인에게 충성심이 강해보이진 않던데.”

“네 마리 모두 그런 눈치이긴 합니다만 역시 고문 없이는 믿을 수가…….”

용호는 바로 답하는 대신 잠시 엘리고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래도 넷이나 있으면 개중에 더 나은 녀석이 있겠지. 아침 먹고 출발하기 전에 한 녀석을 골라줘.”

“던전 탐사에 동행시키실 생각이십니까?”

“전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용호 역시 코볼트들에게 그리 깊은 충성심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현재 필요한 것은 즉시 활용 가능한 병력. 대놓고 화살받이나 칼받이로 쓸 생각은 없었지만 대충 비슷한 역할을 맡길 여지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코볼트보다는 카타리나나 스컬이 더 소중했으니 말이다.

용호의 의중을 읽기라도 했는지 엘리고스가 진지한 얼굴로 뜻을 받들겠다 답했다.

그리고 그날 아침 식사 직후.

카타리나와 스컬에 더불어 죽창으로 무장한 존과 코볼트 한 마리를 대동한 용호는 다시 한 번 던전 탐사에 나섰다.

목표는 북쪽에 위치한 방.

3대 전 가주의 무기고였다.

&

< 제 7장 - 무장하다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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