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20화 (20/227)
  • < 제 6장 #3 >

    &

    용호는 왼쪽으로 이동했다.

    방 끝에 도달할 때마다 새로운 방을 활성화시켰고, 어느 순간부터는 오로지 직진만을 하였다.

    ‘탐욕’의 부가능력인 ‘재물 운’은 의식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저 느낌.

    자기도 모르게 선택하게 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용호도 카타리나나 스컬에게 직진하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왠지 모르게 이쪽으로 가면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탐사를 시작한 지 몇 시간이 흐르자 카타리나는 물론이고 슬슬 용호 본인까지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길이 맞는가.

    아니, 설사 이쪽 길로 가면 뭔가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게 ‘무기고’가 맞는가.

    완전히 소득 없는 탐사는 아니었다. 이동하는 와중에 마주친 크레이지 엔트들과의 전투로 진화 숙련치도 높였고, 조금씩이지만 마력도 흡수했다. 하나하나가 실전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꽤 적당한 전투 훈련이었다.

    하지만 용호의 이번 탐사 목적은 3대 전 가주의 무기고를 찾는 것이었다. 서브 퀘스트를 아무리 수행해도 메인 퀘스트를 못 깨면 말짱 황인 게임과 마찬가지로 주된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어, 음… 가주님?”

    카타리나가 아주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꺼냈다. 대충 무슨 이유로 자신을 불렀는지 아는 용호는 돌아보기 앞서 표정을 정돈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용호는 가주였고, 현재 탐사대의 리더였다. 용호가 불안함을 보이면 카타리나와 스컬 - 과연 스컬이 지금 불안함을 느끼긴 할 지 의문이었지만 - 역시 크게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느낌은 이쪽이 분명해. 조금만 더 가보자.”

    “예, 가주님.”

    충성스런 심복답게 카타리나는 즉답했다. 스컬은 여전히 멍한 얼굴로 한 걸음 뒤쳐진 곳에서 용호와 카타리나를 따랐다.

    용호는 홍련의 마창 아몬을 얻었을 때를 생각해보았다. 아몬을 얻은 것은 분명 큰 행운이었다. 소위 말하는 대박이라 해도 좋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카타리나가 적절한 행동으로 추락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번 역시 그럴 수 있었다.

    멋들어진 보물을 지키는 마몬의 사역마가 나타날 수도 있었고, 예기치 못한 함정이 등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쪽으로 가라.

    이쪽으로 가면 탐욕을 충족시킬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한 칸. 딱 한 칸만 더 가보자.’

    뭔가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일단 오늘의 던전 탐사는 여기서 끝낸다. 마력과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도전한다.

    마음을 정한 용호는 던전의 영혼에게 다음 방을 활성화시킬 것을 명령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조심하세요. 무언가 심상치 않습니다.]

    던전의 영혼의 경고대로 이제까지의 방들과는 달랐다. 방문을 열자마자 내부 공간의 넓음을 드러내듯 음산한 바람이 밀려왔다. 더욱이 방안이 어두웠다.

    활성화 시킨 방 천장에는 마력으로 만들어진 빛이 어둠을 밝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 방은 던전의 영혼이 방을 활성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웠다.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지만 광량이 보통 방의 반의 반도 되지 못했다.

    “카타리나.”

    용호가 말했고, 카타리나는 바로 반응했다.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손전등을 꺼내 용호에게 내밀었다.

    “가주님.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아니, 뒤를 받쳐줘. 내가 앞장선다.”

    아몬을 얻었을 때와 같았다. 느낌이 강했다. 이 방에 용호의 ‘탐욕’을 자극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죄송해요. 이 방을 전부 파악할 수 없습니다. 던전의 심장에서 너무 먼데다가… 다른 어떤 힘이 장악을 방해하고 있어요.]

    던전의 영혼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용호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뒤 손전등으로 주변을 밝혀 보았다. 텅 빈 방인 듯 따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무척이나 큰 방 같습니다. 거의 마왕님의 방에 필적하는 공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방을 반쯤 가로질렀을 때 카타리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용호는 그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느낌이 강했다. 정면. 저 어둠 너머에 있을 무언가.

    용호는 본능적으로 손전등을 들어올렸다. 방안의 미미한 빛에 손전등 빛이 더해지자 어둠 너머를 살펴볼 수 있었다.

    “갱도… 입구?”

    지하로 이어질 것이 분명한 거대한 문.

    그 순간 용호는 직감했다. 탐욕이 반응한 것은 무기고 때문이 아니었다.

    ‘금광!’

    그것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용호의 영혼에 자리한 탐욕이 강한 탐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가주님!”

    기다린 귀를 흠칫거리며 카타리나가 낮게 말했다. 용호 역시 이제는 느낄 수 있었다.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뿐만 아니라 천장에서 무언가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스컬컬?!”

    둔한 스컬조차도 위기를 감지했다. 카타리나는 즉각 단검을 뽑아들고 용호와 등을 맞댔다. 어둠을 꿰뚫는 다크 엘프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용호는 아몬을 움켜쥐었다.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대강 알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와중에 질리도록 들은 그 소리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천장에서 떨어지고 있는 무언가 역시 그러했다.

    용호는 주저하지 않았다. 일갈하며 천장을 향해 아몬을 내뻗었다.

    “밝혀!”

    소리침과 동시에 아몬의 창끝에서부터 녹색의 불꽃이 일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녹염이 천장을 뒤덮고 있던 슬라임을 불살랐고, 던전의 영혼이 용호의 외침에 응답했다. 집중시킨 마력을 한 번에 쏟아 부어 방안의 어둠을 몰아냈다.

    “키에엑!”

    “키아아!”

    방 여기저기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스컬 역시 깜짝 놀라 경악성을 토했다.

    크레이지 엔트 수십 마리가 벽을 뒤덮고 있었다. 꿈틀 거리며 기괴한 소음을 토하는 모습이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갱도 입구. 그곳에서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들이 머리를 내밀었다. 일반적인 크레이지 엔트보다 세 배에서 네 배는 거대한 ‘병정개미’들이었다.

    “일단 빠져!”

    급히 소리친 용호는 다시 한 번 아몬을 크게 휘둘렀다. 정면에 불꽃을 쏟아낸 뒤 급히 뒤돌아서서 달렸다.

    금광.

    엘리고스의 말대로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크레이지 엔트가 금광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전전대 가주와 전대 가주를 쫓아냈던 던전 몬스터들은 용호의 대에도 건재했다!

    “스컬스컬!”

    스컬이 뼈를 달그락 거리며 망치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크레이지 엔트들 가운데 대부분이 벽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없었다. 일행이 빠져나가야 할 출구도 결국엔 벽에 붙어 있었다.

    “꺄악!”

    용호와 속도를 맞춰 달리던 카타리나가 돌연 비명을 질렀다. 천장에서 체액을 흘리던 슬라임 몇 마리가 통째로 카타리나를 덮쳤다.

    불의의 일격이었기에 아무리 날쌘 카타리나라 해도 회피할 수 없었다. 병정개미들이 불길을 꿰뚫었다. 무언가 명령이라도 받은 듯 일반 크레이지 엔트들 역시 지금보다 더 큰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스컬스컬!”

    스컬이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동시에 용호가 반전했다. 아몬을 움켜쥐고 슬라임 떼에게 뒤덮인 카타리나를 보았다.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그저 본 순간 떠올랐다.

    슬라임의 육신은 강한 산성을 띤 액체였다. 병장기조차 녹이는 슬라임 안에서 카타리나가 버틸 재간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찰나. 쪼개지고 쪼개진 시간의 틈새.

    용호와 카타리나의 시선이 교차했다. 카타리나는 말했다. 말로는 전부 전할 수 없는 생각을 그 눈동자에 담았다.

    ‘도망가요!’

    버리고 가라. 그게 최선이다. 어차피 이것이 호위기사의 역할이다.

    카타리나만이 아니라 용호의 머릿속에서도 그러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마치 누군가가 명령하는 것만 같았다.

    찰나가 다시 쪼개졌다. 병정개미들이 다가옴이 느껴졌다. 천장에서 또 다른 슬라임들이 떨어질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용호는 선택했다.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카타리나를 에워싼 슬라임들을 향해 아몬을 찔러 넣었다.

    육신은 물론이고 마력과 영혼까지 불사르는 아몬의 불길 앞에서 슬라임은 한낱 불쏘시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은 카타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몬의 창끝에서 녹색의 불길이 피어올랐다. 폭발하듯 번져 슬라임들을 집어삼켰다. 불길 속에서 카타리나는 눈을 꽉 감았다.

    그리고 용호는 갈망했다.

    탐욕을 버리지 않았다. 아몬에게 명령했다.

    자신의 것이다.

    그 머리칼 한 올은 물론이고 피 한 방울까지 용호 자신의 소유물이다!

    아몬의 불길은 탐욕의 불길.

    육신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집어삼키는 욕망의 겁화.

    슬라임들을 불살랐다. 용호는 무시무시한 아몬의 불길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진녹의 화염 속에서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은 카타리나를 붙잡았다.

    “가라!”

    용호가 명했다. 불길에서 끌려나온 카타리나는 명령에 충실했다. 생각하는 대신 용호의 명을 따라 지면을 박찼다. 스컬이 열어놓은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한 번 더!”

    용호가 마력을 쥐어짜냈다. 아몬을 크게 휘두르며 불꽃의 파도로 대기를 불살랐다.

    “키에엑!”

    갑자기 일어난 불길에 놀란 병정개미들이 기괴한 소리를 토했다. 용호는 그것들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거의 스스로를 내던지듯이 해서 문을 통과했고, 동시에 던전의 영혼에게 명령했다.

    [방을 비활성화 합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카타리나가 용호를 재빨리 일으켜 세웠다. 어느새 방을 가로지른 스컬이 다시 방문을 열었다.

    용호는 연달아 방을 두 개나 가로질렀다. 그때마다 던전의 영혼이 방을 비활성화 시켰다.

    그리고 세 개째 방을 가로질렀을 때.

    비로소 멈춰선 용호는 거친 숨을 토했다.

    온몸이 땀에 절어 있었다. 죽다 살아난 카타리나 역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새삼 아몬의 불길이 자신을 뒤덮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스스로의 양 어깨를 끌어안았다.

    용호는 눈을 감았다.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3대 전 가주가 발견했다는 금광.

    존재했다. 지금도 금맥이 남아 있었다. 용호 자신의 탐욕이 반응했으니 분명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금광에 자리를 잡은 크레이지 엔트의 군락. 규모를 보니 금광 내부에 ‘여왕개미’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무기고, 반드시 찾아야겠다.”

    용호가 불쑥 말했고, 세 번째 방문을 열고 멍하니 있던 스컬이 반응했다. 축 늘어져 있던 카타리나 역시 고개를 들어 용호를 보았다.

    금광을 찾았다. 그리고 덕분에 무기고로 이어질 거라 예상되었던 두 길 중 하나의 확인이 완료되었다. 남은 다른 길로 가면 무기고에 도달할 수 있을 터였다.

    무기고에서 장비를 얻는다. 보다 강화된 전력으로 금광을 탈환한다.

    ‘그리고 그 전에.’

    용호는 허리를 곧이 세웠다. 마지막 남은 마력을 그러모아 아몬을 쥐지 않은 왼손에 모았다. 진화의 권능을 발동시켜 스스로를 보았다.

    진화의 마왕 천용호.

    진화 숙련치 100/100.

    카타리나에게 달라붙었던 슬라임들을 처리하고 획득한 진화 숙련치.

    용호는 더 기다리지 않았다. 왼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렸다.

    [마력 특화 진화]

    진화의 권능이 발동했다. 선명한 녹색의 마력이 용호의 육신 내부에서부터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제 6장 - 가주의 무기고 끝, 제 7장 - 무장하다로 이어집니다.

    < 제 6장 #3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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