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메이커-19화 (19/227)
  • < 제 6장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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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는 말이 있었다.

    하물며 마몬가는 단순한 ‘부자’ 수준이 아니었다. 저 탐욕의 왕 마몬 시절에는 드넓은 마계의 4분의 1을 지배한, 명실공히 ‘왕가’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거대하고 강력한 가문이었다.

    때문에 마몬가의 ‘몰락’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그 와중에 제법 두각을 드러낸 가주들도 있었다.

    3대 전 가주, 왜곡의 마왕 카이완이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3대 전 가주님께서는 무척이나 진취적인 성격의 소유자셨다고 합니다. 던전 탐사에 무척이나 공을 들이셨다고 하고, 실제로 꽤나 큰 성과를 거두셨습니다. 3대 전 가주님의 시대에는 마몬 가의 던전 1층 가운데 8할 가량이 활성화 되어 있었죠.”

    첫 공격으로부터 하루가 지난 날.

    사역마들을 격려하는 한 편 - 그냥 잘했다고 한 마디씩 해준 것뿐이었는데 죄다 엘리고스처럼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 감옥에 갇혀 있는 코볼트들을 돌아보고 돌아온 용호에게 엘리고스가 꺼낸 말이었다.

    카타리나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 용호가 되물었다.

    “3대 전 가주라면 그 ‘투기장’을 발견했다는 가주 말인가?”

    “오, 이미 알고 계시는군요.”

    “카타리나에게 들었어. 어디 있는지 까지는 모른다더군.”

    용호의 말에 엘리고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한 번 빠르게 살펴보더니 약간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예, 3대 전 가주님께서는 투기장의 위치를 비밀에 붙이셨죠. 아마 던전 내의 사역마들이 함부로 투기장에 도전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가주와 그 측근의 회담이었지만 어차피 따로 엿들을 사람도 없는 던전이었다. 용호는 좀 더 편하게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옥좌에 털썩하고 앉았다.

    “어찌되었든 그래서?”

    엘리고스는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용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며 비밀스럽게 말했다.

    “3대 전 가주님께서 모든 발견들을 숨기신 것은 아닙니다.”

    말을 마치며 씩 웃는 모습이 묘하게 음흉했다. 하지만 엘리고스의 표정은 둘째치고 무척이나 흥미가 동하는 이야기였다.

    용호가 약간은 빠르게 물었다.

    “어떤 시설들이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무기고’와 ‘금광’이겠죠.”

    “금광?! 던전 내에 금광이 있다고?!”

    눈을 번쩍 뜬 용호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엘리고스는 주변을 둘러보는 대신 기분 좋게 웃으며 대꾸했다.

    “예, 그렇습니다. 인계의 금광과는 다소 다릅니다만, 그래도 분명한 금광이죠. 제 생각이 맞다면 아직 꽤 채굴할 금이 남아 있을 겁니다.”

    대체 이놈의 던전 안에는 없는 게 뭔지 궁금할 지경이었지만 용호는 일단 침착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금광.

    금이 나오는 광.

    좋았다. 발견하면 일확천금은 무리더라도 던전 사정이 꽤나 나아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기도 하였다.

    “왜 전전대와 전대 가주 시절에는 비활성화가 된 거지?”

    마몬의 사역마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3대 전 가주가 이미 찾아서 활성화시킨 금광이 아니었던가.

    설마 금광을 지배하는 마몬의 사역마가 전전대와 전대 가주를 인정하지 않기라도 한 것이었을까?

    엘리고스는 미간을 한 차례 좁혔다. 용호의 예상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던전 몬스터들 때문입니다.”

    던전 몬스터.

    던전에 자생하는 마계의 괴물들.

    마계는 인계처럼 ‘확고한 세상’이 아니었다. 마력 밀도가 무척이나 높은 마계는 유동적이었고, 그렇기에 던전은 물론이고 하늘과 땅, 때로는 공간마저도 예상치 못한 뒤틀림을 보일 때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마계에 존재하는 마력은 때때로 작은 벌레나 동물들을 마물로 변화시키기도 하였다.

    던전 몬스터는 그렇게 태어난 존재들이었다.

    뒤틀림을 통해 외부에서 던전 내부로 유입된 괴물들, 마력으로 인해 자연발생하게 된 마물들.

    굳이 인계와 비유하자면 집안에 생긴 벌레나 쥐와 같았다.

    보통 여간한 가주들은 이렇게 발생한 던전 몬스터들을 쉽게 처리했다. 도저히 처리하지 못할 수준이면 던전 상회에서 ‘던전 청소부’를 요청해 해충들을 박멸했다.

    하지만 마몬 가는 둘 중 어느 하나도 하지 못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마몬가 던전의 특수성이었다.

    일반적인 던전은 마몬 가처럼 비활성화 된 공간이 많지 않았다. 평범한 던전의 경우엔 던전 내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 마력을 주입해 활성화 된 방 - 제대로 된 입구와 마력에 의한 조명이 공급되는 - 을 생산하는 식으로 공간을 넓혀 나갔다.

    하지만 과거에 엄청나게 넓은 영역을 자랑했던 마몬 가의 던전은 평범한 던전들과 달리 비활성화 된, 즉 마력이 공급되지 않는 빈공간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이 비활성화 된 공간은 인계로 치자면 매우 깊은 동굴이나 지하 공동이나 다름없었다. 각종 자잘한 마물들이나 던전 몬스터들에게 있어서는 최적의 생활공간이었다. 자연 서식하는 던전 몬스터의 숫자도 많았고, 개중에는 정말 강력한 녀석들도 있었다.

    둘째, 던전 청소부를 부르기에는 전전대 가주나 전대 가주나 자금에 여유가 없었다.

    어찌되었든 결론은 하나.

    전전대 가주와 전대 가주는 던전 몬스터들에게 밀려 금광과 무기고를 포기해야만 했다.

    “집주인이 집에 생긴 해충에 쫓겨난 거냐…….”

    허탈하기까지 한 용호의 목소리에 엘리고스가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지 않아도 붉은 얼굴이 부끄러움 때문에 더욱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변명은 아닙니다만, 금광에 나타난 던전 몬스터는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숫자도 많고 매우 강력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용호는 일단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던전 몬스터들에게 금광을 빼앗긴 것이 엘리고스의 잘못은 아니었다.

    용호의 눈치를 살피던 엘리고스가 다시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당장 금광을 확보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무기고라면… 무기고만 확보해도 상당한 전력 증강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전대와 전전대 가주님의 소망이셨던 금광 탈환에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고요.”

    사역마들을 진화시키고 무기고의 장비들로 무장시킨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당장 저번 전투만 해도 고블린들은 함정을 만들다 남은 죽창을 들고 싸우지 않았던가.

    ‘3대 전 가주가 투기장에서 얻었다는 장비들도 호기심이 생기고.’

    용호는 마음을 정했다.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고 자리에서 바로 일어섰다.

    “카타리나를 데려와. 바로 탐색을 시작한다.”

    엘리고스가 눈을 빛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하루 뒤인 현재.

    눈을 뜨는 것으로 회상에서 벗어난 용호는 숨을 한 번 길게 토했다.

    비활성화 되어 있는 방을 활성화시키는 데는 10의 마력이 필요했다. 현재 용호의 최대 마력치는 180이었고, 던전의 일일 마력 생산량은 50이었으니, 작정하고 마력을 쏟아 부으면 하루에 최대 23개의 방을 활성화시킬 수 있었다.

    물론 용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던전 시설 개수는 물론이고 전투를 위해서도 마력을 어느 정도는 아껴두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하루에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의 개수는 생각보다 줄어들었고, 도중에 전투까지 하게 되니 탐사 속도 역시 더뎌졌다.

    ‘그래도 경험치는 쭉쭉 올라서 다행이네.’

    용호는 잠시 진화의 권능을 발동시켜 자신을 돌아보았다. 50이었던 진화 숙련치가 80까지 차올랐다. 조금만 더 하면 진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표본이 제법 여러 개 생기니 진화의 권능의 메커니즘도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해졌다.

    진화 숙련치는 게임속의 레벨 업 경험치와 거의 흡사했다.

    강한 사역마일수록 진화 숙련치 쌓기가 어려웠고, 약한 사역마일수록 작은 일에도 진화 숙련치가 올랐다.

    용호는 바닥에 돌멩이처럼 나자빠져 있는 스컬을 보았다.

    [이름 : 스컬]

    [종족/직위 : 스켈레톤 솔져]

    [주속성 : - ]

    [진화 숙련치 : 40/100]

    [뼈 강도 특화 0레벨 | ★ (1)]

    [체격 특화 0레벨 | ★ (1)]

    [지력 특화 0레벨 | ★ (1)]

    ‘승급 가능한 루트는 [스켈레톤 워리어]와 [스켈레톤 아처]라.’

    진화의 권능을 해제한 용호는 바로 옆에 앉아 휴식 중인 카타리나를 돌아보았다. 용호의 시선을 눈치 챈 그녀는 얼른 품에서 지도를 꺼내 바닥에 펼쳤다.

    “무척이나 죄송한 말씀이지만 3대 전 가주님의 기록이 완벽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대충 이 부근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가주님이시라면 분명 찾아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처음에는 혼날까봐 걱정하는 아이 같은 말투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아무래도 용호의 능력 가운데 하나인 ‘재물 운’을 믿는 눈치였다.

    “가주를 너무 부려먹는단 말이지?”

    용호가 짐짓 혀를 차며 말하자 카타리나는 예상대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딱 기대했던 반응이었기에 용호는 키득 웃으며 카타리나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쉬었으니까 다시 가봐야지. 대충 직진 아니면 왼쪽이라 이건데.”

    작게 중얼거린 용호는 방을 한 차례 돌아보았다. 눈을 감고 양 손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었다.

    ‘의식하지 말고 본능을 좇는다.’

    재물 운을 자극하는 것.

    보다 명확히 말하자면 용호 자신의 ‘탐욕’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

    용호가 눈을 떴다. 왼쪽을 돌아보았다.

    “저쪽으로.”

    말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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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가 카타리나, 스컬과 더불어 던전을 탐사하고 있을 때.

    마몬 가 던전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집사장 엘리고스는 고블린들을 이끌고 건설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마계의 던전은 엘리고스가 용호에게 몇 번이나 설명했듯이 단순한 지형지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사역마였다.

    때문에 던전 내의 여러 시설들은 던전이란 '생명체'의 '내부기관'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마력을 사용해 방을 공간을 활성화 시키고 던전의 마력과 실존하는 재료들을 더해 시설물들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설물들은 적절한 마력의 운용으로 던전 내에서 그 위치를 변경하는 것이 가능했다.

    첫 전투 이후 용호는 사역마들의 진화 대신 던전 시설의 확충과 내부구조 변경을 선택했다.

    던전 입구와 마왕의 방 사이의 거리를 더 길게 만들고, 보다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한다. 이미 설치된 시설들 역시 동선의 유연화와 방어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위치를 변경한다.

    엘리고스는 던전의 척추라 할 수 있을 ‘중앙로’와 감옥 사이의 거리를 조금 더 벌렸다. 염원하던 ‘고문실’이 새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감옥도 더 크게 확충하고 싶었다.

    던전에서 ‘감옥’의 역할은 단순히 적을 가두고 아군 사역마들을 벌주기 위한 장소만이 아니었다.

    많은 마력과 여러 재료를 투자해 만들 수 있는 고급 감옥은 수감자들의 마력을 강제로 뽑아낼 수 있었다. 감옥이 곧 던전의 보조 발전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더욱이 던전 몬스터들을 사역마들로 재교육하기 위한 사육장 역할을 맡는 것 역시 감옥이었다.

    그런 감옥이야말로 던전의 꽃. 다재다능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감옥의 꽃은 고문실이지.’

    엘리고스는 즐거운 얼굴로 고문 도구들을 만들었다. 재료가 워낙 변변치 않다보니 아이언메이든 같은 멋들어진 물건은 만들 수 없었지만, 애당초 고문은 의자 하나와 나이프 하나만 있어도 가능한 기술이었다. 엘리고스는 일단 작은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집사장집사장. 기분 좋다. 기분.”

    고문실에 쓸 자재를 나르던 존이 엘리고스를 보고 말했다. 엘리고스는 온화한 미소로 화답했다.

    “허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겠느냐. 던전이 나날이 발전해나가는데.”

    말을 마치며 엘리고스는 첫 전투 당시의 용호를 떠올려 보았다.

    “후훗. 훗날 탄생하실 후계자님을 위해서라도 가주님의 침실을 빨리 만들어야겠어.”

    “후계자? 침실실? 무슨 연관?”

    존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엘리고스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혼자만의 망상을 가슴에 품고 감옥에 갇혀 있는 코볼트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들도 너무 걱정 말거라. 고문실이 완성 되면 곧 고문을 받을 수 있을 테니. 고문으로 네 녀석들의 진심을 확인한 뒤 마몬 가의 충복이 될 수 있도록 해주마.”

    그리 말하며 못을 잔뜩 박은 각목을 들어올렸다. 눈치 빠른 코볼트들이 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왈왈!”

    “멍멍!”

    “컹컹!”

    지금 당장 충성을 바치겠다는 뜻이었지만 그래봐야 개소리였고, 엘리고스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니, 간절한 눈빛을 보고 알아차렸지만 일부러 모른 척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허허허. 그래그래. 조금만 기다리면 된단다.”

    다시 온화하게 웃은 엘리고스는 못 박힌 각목을 내려놓았다. 훈훈한 얼굴로 시선을 먼 곳에 두었다.

    “가주님께서 빨리 돌아오셔야 할 텐데.”

    용호라면 반드시 3대 전 가주의 무기고를 손에 넣으리라.

    생각하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그려지는 가주를 떠올린 엘리고스는 이번엔 날이 시퍼렇게 선 나이프를 들어올렸다. 감옥 안의 코볼트들이 낑낑거리는 소리를 음악 삼아 다시 작업에 몰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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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6장 #2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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