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장 - 가주의 무기고 >
제 6장 - 가주의 무기고
던전 상회가 마계에 출현한 시기를 정확히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천년이라 말하는 자도 있었고,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옛날이라 말하는 자도 있었다.
부질없는 논란이었다.
던전 상회의 역사가 어찌되었든 현 시점의 마계에서 던전 상회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다.
하늘과 땅, 모든 것이 새하얀 여느 가상공간과는 달랐다.
하늘은 불타고 있었고,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것 같은 지면은 검고 검은 칠흑이었다.
오망성 의회.
던전 상회를 움직이는 다섯 명의 거인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최고위 이사회.
그 이름처럼 바닥에 용암으로 그려진 오망성 각 모서리 끝에는 의자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당연히 그 의자 위에 앉은 것은 던전 상회의 최고위 이사들이었다.
“오만의 왕이 병력을 모으고 있소. 아무래도 조만간에 북동쪽 땅에서 큰 전투가 있을 것 같구려.”
붉고 거대한 오로바스가 오망성 한 가운데에 입체로 형성되어 있는 마계 전도를 가리키며 중후한 목소리를 토했다.
마계의 여러 ‘데몬프린스’ 가운데 하나인 그는 던전 상회가 보유한 ‘최강의 괴력’이었다.
잘 정돈된 검은 턱시도에 어울리지 않는 돼지 머리와 비대한 몸은 일견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놀랄 만치 잘 어울리기도 하였다.
여섯 개의 뿔을 가진 오로바스는 마계 북쪽의 던전 상회를 관리했다. 그의 말을 받듯이 오른편에 앉아 있던 거미 머리의 남자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질시의 왕 또한 병력을 모으고 있더군. 아무래도 오만의 왕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이야. 당장 이번 달만 해도 벌써 스켈레톤 워리어를 2만 마리나 구매 했다네.”
던전 상회 ‘최고의 지력’인 그는 머리뿐만 아니라 온 몸이 거미와 같았다. 지금은 비록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본 모습은 산보다 더 큰 거미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최고의 지력의 이름은 비프론즈. 오로바스와 더불어 마계 북쪽을 관리하는 자였다.
질시의 왕이 스켈레톤 워리어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있다.
민감하기 짝이 없는 정보에 오로바스 왼편에 앉아있던 자가 키득거렸다. 마계 서쪽의 던전 상회를 관리하는 ‘최강의 마력’ 아브라삭스였다.
일곱 개의 뿔이 달린 수탉의 머리를 가진 그의 두 다리는 각기 다른 독을 품은 거대한 뱀이었다.
그가 다시 한 번 비꼬듯 말했다.
“하는 짓이 질시의 왕 답네. 질보다는 양인가?”
“속단하기는 이르다네. 더욱이 왕들의 싸움 아닌가. 2만은 결코 많은 숫자라 할 수 없다네.”
비프론즈가 아브라삭스의 속단을 경계했다. 오로바스가 다시 마계 전도를 바라보며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물었다.
“다른 왕들의 움직임은 어떻지?”
“격노의 왕은 그녀답지 않게 웅크리고 있습니다. 색욕의 왕은 여전히 마녀들과의 사바트로 바쁘고요.”
대답한 것은 비프론즈 오른편에 앉아 있던 ‘최속의 날개’ 사마엘이었다. 하피들의 여왕이기도 한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에 어울리는 황금빛 머리칼과 그에 대비되는 칠흑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오로바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식탐은?”
“구경만 할 생각은 아닌 것 같더군요. 조용히 고급 사역마들의 숫자를 늘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대리인을 통해 ‘본 드래곤’을 사간 것도 식탐의 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7대 죄악의 힘을 가진 마왕들.
마계를 지배하는 여섯 왕들은 여전히 수면 아래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브라삭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죄악의 힘을 가지지 않은 유일한 왕… 폭력의 왕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는 지금도 수면기인 모양이니까.”
마계를 지배하는 여섯 왕 가운데 7대 죄악의 힘을 가지지 않은 것은 오직 폭력의 왕 하나뿐이었다.
오로바스가 후덕한 턱을 어루만졌다.
“그럼 이제 경계할만한 존재는 나태의 왕만 남은 건가?”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나태하죠.”
나름 농담이기라도 했는지 사마엘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오로바스는 사마엘의 대답에 만족했다. 의자 등받이에 그 비대한 몸을 깊이 묻으며 나직이 말했다.
“여섯 왕들의 세력은 백중세야. 때문에 지금의 균형은 참으로 조화롭지. 오만의 왕이 균형을 깨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그도 무리한 돌발행동은 하지 못해. 아무리 그가 강하다 해도 나머지 다섯 왕들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좋은 일이지. 어디서 돌덩이가… 그것도 육대 왕 중 하나를 밀어버릴 정도로 무지막지한 돌덩이가 굴러오지 않는 한 이 아름다운 균형은 지속될 거야.”
던전 상회는 하나의 왕을 원하지 않았다. 여섯 왕들의 끝없는 대립과 견제야말로 지금의 던전 상회를 만들어낸 최고의 공신이었다.
비프론즈와 아브라삭스도 공감했다. 오망성 의회의 이사들은 비슷한 감정을 담은 미소들을 머금었다.
하지만 한 명. 조금 다른 미소를 짓는 자가 있었다.
“시트리 님?”
사마엘이 작은 목소리로 물으며 오망성 의회의 마지막 최고 이사를 돌아보았다.
붉은 머리칼의 시트리.
아름다운 그녀는 턱을 괸 채로 사마엘의 말을 받았다. 시선은 여전히 마계 전도를 향해 있었다.
“아니, 그냥. 재미있어서.”
의뭉스런 대답에 사마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시트리의 의중을 살피려는 듯 마찬가지로 마계 정도를 바라보았다.
시트리의 시선이 가 닿은 곳은 남부 공백지.
과거 마계의 사분의 일을 지배했던 마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존재- 탐욕의 왕의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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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던전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크레이지 엔트 두 마리와 슬라임 한 마리!]
던전의 영혼이 기운 찬 목소리를 들으며 당대 마몬 가의 가주- 탐욕의 왕 용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정면.
던전의 영혼의 말처럼 ‘몬스터’라 불러야 할 괴생명체들이 눈앞에 있었다.
여간한 대형견과 비슷한 크기의 붉은 개미 두 마리와 나무 수액을 연상시키는 동그랗고 넓적한 슬라임이었다.
몬스터와의 조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전투 자체도 진화 숙련치를 올릴 수 있으니 환영이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사실이 용호의 신경을 거슬렀다.
‘왜 내 던전 안에 몬스터가 있는 거야!’
남들이 들었다가는 말한 용호를 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말이었지만 용호는 당당했다.
눈앞의 괴물들은 사역마들이 아니었다.
주인 없는 괴물들. 용호와 지식 일부를 공유하는 던전의 영혼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에 있는 개미나 바퀴벌레와 같은 존재들.
한 마디로 던전에 기생하는 잡다한 괴물들이었다.
일반적인 던전에는 저런 괴물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설사 발생한다 할지라도 금방 격퇴되어 뿌리가 뽑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거대하고, 그 대부분이 봉인되어 있는 마몬 가의 던전은 예외였다.
‘제일 끔찍한 건 개미가 있다는 거지.’
개미를 특히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솔직히 바퀴벌레보다는 훨씬 더 나았다. 하지만 문제는 개미라는 종의 생활 특성이었다.
마계의 개미 역시 인계의 개미들과 마찬가지로 무리 생활을 했다. 어쩌면 던전 지하에는 거대한 ‘개미 군락’이 존재할지도 몰랐다.
“가주님! 집중해 주세요!”
카타리나의 엄격한 목소리에 용호는 잡념을 지웠다. 정면을 똑바로 주시하는 한 편 아몬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명령했다.
“내가 슬라임을 맡는다. 카타리나와 스컬은 개미들을 상대해줘.”
“알겠습니다.”
“스컬스컬.”
카타리나와 ‘스켈레톤 솔져’ 스컬이 즉답했다. 제각기 개미들을 향해 돌진했다.
이틀 전. 용호는 던전 방비를 위해 사역마 진화보다는 일단 던전 시설 확충과 진입로 개조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의 권능을 사용해 딱 한 마리의 사역마를 진화시켰으니, 그게 바로 스켈레톤 솔져 스컬이었다.
최하위 사역마이자 일꾼인 스켈레톤은 고블린들에게도 있는 특화 진화가 없었다. 하지만 대신이라도 되듯 첫 진화를 시키자마자 승급해서 스켈레톤 솔져가 되었다.
던전을 공격했던 마족의 무기인 망치로 무장한 스켈레톤 솔져에게 용호는 ‘스컬’이란 이름을 하사했다. 스켈레톤 계열 사역마들 중 최고급으로 취급되는 ‘데스 나이트’까지 키울 생각이었기에 특별한 이름을 하사하고자 했지만, 역시 간단한 것이 최고였다.
카타리나는 호위 기사답게 단 일격으로 크레이지 엔트를 제압했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다른 괴물들에게 달려드는 대신 스컬의 싸움을 주시했다. 스컬 역시 전투를 통해 진화 숙련치를 쌓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용호는 바닥에서 꾸물꾸물 거리는 슬라임을 노려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한 번 휘두르면 천지를 불태우고 바다를 증발시킨다는 홍염의 마창 아몬.
지금의 용호에게 그 정도 역사를 일으키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아몬의 힘을 조금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 방, 한 방만 꽂으면!’
순간 용호는 지면을 박찼다. 자신을 향한 적의를 포착했는지 슬라임이 산성 체액을 발사했다. 빠르고 강했다. 제대로 맞으면 살은 물론이고 뼈까지 녹여버리는 슬라임의 산이었다.
하지만 용호는 무척이나 가볍게 놈의 공격을 피했다. 옆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지면을 연달아 박차 슬라임과의 거리를 좁혔다.
“하앗!”
기합과 동시에 역수로 쥔 아몬을 내리꽂았다. 슬라임의 몸체 한 가운데를 꿰뚫자마자 마력을 발산했다.
슬라임 내부에서부터 불꽃이 폭발했다. 녹색의 불꽃이 산은 물론이고 슬라임의 육신 전체를 집어삼켰다.
강력한 산성과 점액이라 해도 좋을 신체 덕분에 대부분의 물리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슬라임이었지만 역시 아몬의 불꽃 앞에서는 한낱 불쏘시개에 불과했다.
보란 듯이 씩 웃으며 아몬을 회수한 용호는 허리를 곧이 세웠다. 기분 좋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카타리나와 한 차례 시선을 교환한 뒤 여전히 크레이지 엔트와 악전고투 중인 스컬을 돌아보았다.
첫 공격으로부터 이틀이 지난 지금.
용호는 3대 전 가주의 ‘무기고’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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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6장 - 가주의 무기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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