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장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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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마몬의? 7대 죄악 가운데 하나인… 그러니까 내 조상님의?”
“그렇습니다. 마왕 마몬님이 직접 거두신 그분의 사역마들입니다.”
카타리나의 표정은 진지했고, 목소리에는 긴장이 어려 있었다.
용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마른 침을 한 번 삼킨 뒤에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결국 너나 엘리고스처럼 마몬 가의 가신들이라는 이야기 아냐?”
“그것이…….”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러니 ‘마몬 가의 사역마’가 아닌 ‘마몬의 사역마’라 따로 불렀던 것이겠지.
“너무 오랫동안 처박혀 있어서 미쳐버렸다든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이런 어두컴컴한 던전 어딘가에 갇혀서 혼자 수백 년을 보내면 미치는 것이 당연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닌 모양이었다.
카타리나는 입술을 한 번 깨물더니 입술을 달싹거렸다. 무척이나 말하기 힘든 지 몇 번이나 단어를 고른 끝에 겨우 말문을 열었다.
“그런 경우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용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카타리나가 답답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뜸을 들이는 시간 동안 용호는 생각했고, 카타리나의 어려워하는 표정을 보고 확신했다.
“가주들을 인정하지 않는군. 마몬의 사역마들이.”
카타리나는 차마 말로 못하고 표정과 몸짓으로 긍정했다.
잠시 시간을 가진 뒤 입을 열어 말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실제로 ‘마몬의 사역마’에게 살해당하신 가주님도 계십니다. 마몬의 사역마가 제시한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용호는 눈을 감았고, 아주 자연스럽게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그 상태로 더운 숨을 토했다.
왜 전대 가주들 가운데 그 누구도 마몬 가의 던전을 완전 가동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마몬의 사역마들.
7대 죄악 가운데 하나이자, 과거 마계의 4분지 1을 지배했던 탐욕의 왕 마몬의 직속 수하들.
“그런데 어떻게 다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거지? 고위 마족이 되면 불로영생이라도 하나?”
질문을 하고 보니 그것도 이상했다. 만약 고위 마족이 불로영생 한다면 애당초 마몬부터가 죽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카타리나가 대답했다.
“고위 마족이 장수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불로영생까지는 아닙니다. 마몬의 사역마들은 현재 대부분 봉인 당한 상태입니다. 평소에는 잠들어 있다가 누군가 다가오면 깨어나는 식이죠. 아예 육신은 죽고 영혼만이 복속되어 있는 사역마도 있고요. 다시 한 번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마왕 마몬님께서는 소유욕이 무척이나 강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니까 대충, 넌 죽어서도 영원히 내 부하다!-라는 건가.
파라오의 무덤이라든가, 여러 순장 문화를 떠올린 용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좋아, 좋아. 긍정적으로 보자고. 시험을 통과하면 그 마몬의 사역마들을 수하로 부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되니까. 내 말이 맞지?”
“예, 맞습니다. 가주님이시라면 꼭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믿고 있습니다.”
카타리나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지만 동시에 약간은 부담되기도 하였다.
엘리고스도 그렇지만 카타리나도 용호 자신을 진심으로 믿고 따랐다. 진짜로 할까봐 무서워서 실험을 못하지만, 죽으라고 하면 정말 죽기라도 할 것 같았다.
계속 서서 이야기만 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용호는 옥좌를 기준으로 오른편 벽 끝으로 이동한 뒤 비활성화 되어 있던 방 하나를 활성화 시켰다.
카타리나와 함께 이동하며 말했다.
“나는 시설도 보물창고나… 뭐 그런 걸 기대했는데 말이야. 던전의 규모가 그 정도로 크다면 좀 다른 것들도 있겠지? 뭔가 아는 것 없어?”
“전대 호위기사에게 투기장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투기장?”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했던 시설이었기에 용호는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용호와 딱 맞추어 걸음을 멈춘 카타리나가 설명했다.
“3대 전 가주님이 실제로 발견하신 장소입니다. 비밀리에 오가셨기 때문에 위치 정보는 남아 있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자체는 확실합니다.”
용호는 다시 발걸음을 내딛었다. 머릿속으로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어떤 곳인데?”
“‘마몬의 사역마’ 가운데 하나가 관리하는 장소입니다. 투기장에 도달한 자는 힘을 시험받고, 자신의 힘을 증명해내면 마몬님이 모아두신 재화 가운데 하나를 보상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새로 방문할 때마다 시험의 난이도는 높아지고, 그에 따라 보상 역시 커진다고 들었습니다.”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이기는 했다. 텅 빈 방을 가로지른 용호는 다시 방 하나를 활성화 시켰다.
“시험이란 건 역시 싸움?”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3대 전 가주님께서 제대로 된 기록을 남기시지는 않았지만 이름부터가 투기장이니까요.”
마몬의 사역마에게 전투로 시험을 받고 보상을 받는다.
다시 도전하면 난이도가 상승하는 만큼 보상 역시 좋아진다.
‘진짜 투기장이네.’
RPG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투기장과 거의 같은 구조였다. 이제와서 마몬의 생각을 엿보는 것은 무리였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기 던전 안에 그런 시설을 만들어둔 것일까?
후진 양성을 위해? 사역마들을 훈련시키려고?
“잠깐.”
네 번째로 활성화시킨 방을 가로지르던 도중 용호가 돌연 멈춰 섰다. 이번에는 카타리나도 예측하지 못했던 돌발행동이었던 터라 다소 놀란 눈치였다.
“가주님?”
용호는 대답하는 대신 왼쪽 벽을 돌아보았다. 아무 것도 없는 그냥 벽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모르게 느낌이 이상했다.
위화감.
이런 느낌을 최근에 느낀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손과 발이 절로 움직였다.
7대 죄악 가운데 하나인 탐욕. 탐욕에 내재된 부가효과 가운데 하나.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발걸음을 내딛은 벽 앞에 바짝 붙어 섰다. 벽을 어루만졌고, 이내 위화감의 정체를 간파해냈다.
마력의 흐름.
다른 곳과 달랐다.
용호는 자연스럽게 손바닥을 통해 마력을 방출했다.
그러자 이변이 일어났다. 벽이 가볍게 떨리는가 싶더니 덜컹 소리와 함께 덩치 큰 사람 하나가 겨우 드나들 것 같은 크기의 문이 생겨났다. 소위 말하는 비밀 문이었다.
이 안에 들어가면 뭔가를 얻을 수 있다.
용호의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 번 살펴볼까?”
용호가 말했고, 카타리나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용호의 곁에 다가서며 말했다.
“그럼 제가 먼저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주의 안전을 책임지는 호위 기사다운 판단이었다. 하지만 용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 아무래도 내 느낌을 따라가야 할 것 같아서. 내가 앞장 설 테니까 바로 뒤에서 보조해줘. 혹시 안을 밝힐만한 것이 있을까?”
용호의 물음에 카타리나는 잠시 갈등했지만 이내 용호의 뜻을 받아들였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가죽 주머니에서 작은 막대를 꺼내더니 마력을 주입했다. 마계의 손전등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불빛이 약해지면 마력을 주입하시면 됩니다.”
“편리한데?”
씩 웃으며 손전등을 받아든 용호는 비밀 문 쪽으로 돌아섰다. 손전등으로 안을 한 차례 비춘 뒤 발걸음을 내딛었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세 걸음 째.
바닥이 없었다. 갑자기 사라졌다.
중력을 거스를 재주 따위 용호에게는 없었다. 용호는 갑자기 추락했고, 발밑이 쑥 빠진 사람이 대개 그러하듯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가주님!”
카타리나가 연이어 소리쳤다. 용호는 그런 카타리나를 올려다볼 수 없었다. 손전등으로 급히 바닥을 비춰보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좁은 틈으로 보이는 것은 벽과 돌, 해골, 벌레.
“가주님!”
바로 머리 위에서 카타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용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고, 공중에서부터 자신을 덮치는 카타리나를 보았다.
카타리나가 용호를 붙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에게 바닥이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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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이 다 아팠다.
잠깐이지만 의식이 끊기기라도 한 것인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어쩌면 생각보다 오랫 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용호는 숨을 토했다. 숨을 쉬기 위해 노력했다. 보이는 것은 없었다. 너무 어두웠다.
‘카타리나.’
생각이 미쳤다.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카타리나!”
아팠다. 소리를 지르기 위해 온몸의 잔근육이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웠다. 하지만 용호는 그 아픔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렸다.
“흐끄으윽.”
기묘하다면 기묘할 신음 소리에 용호는 집중했다. 목소리가 가까웠다.
“카타리나?”
“가…주님.”
용호는 이제 목소리가 어디서 들렸는지 바로 인식할 수 있었다. 용호 자신의 밑이었다.
화들짝 놀란 용호가 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덕분에 용호 밑에 깔려 있던 카타리나는 다시 한 번 흐끄으윽 하는 신음을 토하고 말았다.
“큿.”
급히 일어서는 와중에 용호 또한 신음을 토했다. 정말로 온 몸에 성한 구석이 없었다. 어디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았지만 몸 여기저기 피멍이 든 것 같았다.
겨우 일어선 용호는 카타리나의 신음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방안이 너무 어두웠다.
“괜찮아? 일어설 수 있겠어?”
일단 되는대로 목소리를 내보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신음 소리가 아닌 대답이 돌아왔다.
“가주님.”
“그래, 카타리나.”
용호는 일단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진정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저만치에 손전등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여전히 빛을 내고 있는 걸 보면 떨어진 지 그렇게 오래 지나진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있다가.’
바로 가지러 가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용호가 다시 숨을 고르는 사이 앞쪽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타리나가 몸을 일으켜 세우는 소리였다.
“감사합니다. 가주님. 가주님이 절 구해주셨습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듣던 용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약간이지만 바보 같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
“기억… 안 나세요? 바닥에 닿기 직전에 절 품에 안으셨습니다.”
카타리나가 조심스럽게 말했고, 용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금 카타리나의 목소리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잠깐. 그럼 왜 네가 밑에 있고 내가 위에 있었지?”
“추, 추락한 다음에 굴러서?”
카타리나의 추측에 용호는 결국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어쩐지 온 몸이 다 아프다 했다.’
무척이나 아쉽게도, 워낙에 경황이 없었던 터라 카타리나의 부드러운 감촉~ 같은 것은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잠시 숨을 돌린 용호는 끙끙 거리며 일어나 손전등을 주워들었다. 카타리나를 비춰 무사한 것을 한 번 확인한 뒤 천장 쪽을 비춰보았다.
“위에서 추락한 건가.”
손전등의 미약한 빛으로는 끝을 확인하는 것조차 무리였다. 정확한 추산은 무리였지만 못해도 수십 미터는 추락한 것 같았다.
카타리나가 말했다.
“어떻게든 추락 속도를 줄여보려고 했습니다만… 완벽히 해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수십 미터 위에서 추락했음에도 용호가 살아남은 것은 마왕의 몸이 그만큼 단단해서가 아니었다. 추락 중인 용호를 붙잡은 카타리나가 벽에 칼을 박는 듯 온갖 수단을 동원해 추락 속도를 줄인 덕분이었다.
“아냐. 오히려 네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정말 잘했어.”
감사와 칭찬을 동시에 표한 용호는 허공에 손가락을 놀렸다. 카타리나의 공훈을 대충 넘길 생각은 없었지만 이야기를 길게 하기에는 상황이 안 좋았다.
예상대로 던전의 영혼과 연결이 되지 않았다.
“문제의 지하층인가.”
그렇다면 대체 몇 층인 것일까. 1층의 천장이 제법 높았으니 같은 식으로 계산하면 못해도 지하 5층? 6층?
“엘리고스 집사장이 분명 도우러 올 것입니다.”
카타리나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준 용호는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느낌’이 왔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르겠군.”
“가주님?”
용호는 대답하는 대신 느낌에 집중했다.
애당초 비밀통로를 찾게 된 이유. 용호를 인도한 특유의 어떤 느낌.
여전히 이어졌다. 끊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용호의 본능을 자극했다.
손전등으로 빠르게 주변을 비춰보았다. 작고 좁은 방이었다. 1층의 방들과는 달리 벽에도 이런 저런 장식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한 방향.
용호의 ‘탐욕’을 자극하는 존재.
용호가 손전등을 비췄다. 카타리나 역시 침을 꿀꺽 삼킨 뒤 일어나 용호와 같은 방향을 보았다.
방 끝에 위치한 작은 제단과 그 위에 꽂혀있는 무언가.
용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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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장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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