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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메이커-9화 (9/227)
  • < 제 3장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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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나는 왜 뿔이 없지?”

    용호의 물음은 단순했다.

    왜 용호 자신에게는 뿔이 없는가.

    마족에게 있어 뿔이 마력의 집약 기관이라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청 중요한 기관이라면 왜 그냥 마족도 아닌 마왕인 용호 자신에게는 뿔이 없는가. 설마 반인반마이기 때문에?

    용호가 묻자 카타리나는 당혹감이 가득 어린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엘리고스 역시 눈물을 훔치며 용호 쪽을 보는데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응? 왜들 그래?”

    “어… 그게… 가주님도 뿔 가지고 계신데요?”

    카타리나의 소심한 대답에 이번에는 용호가 눈을 껌벅였다.

    카타리나는 조심스럽게 양 손을 들어 올리더니 자신의 양쪽 귀 위에 살짝 튀어나온 돌기들을 가리켰다.

    “여기, 저랑 같은 위치에.”

    용호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납득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용호는 마몬 가의 가주 자리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거울’을 본 적이 없었다.

    대충이나마 머리를 감을 때 이질감을 느끼긴 했지만 설마하니 그게 뿔이었을 줄이야.

    ‘이놈의 던전에는 거울도 없으니.’

    용호는 카타리나를 흉내내듯 양 손을 귀 위쪽으로 가져가 보았다.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이게 뿔이라고?

    카타리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용호의 얼굴과 목소리에 워낙 실망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도 마왕인데 뿔이 겨우 두 개 밖에 없어?’

    더욱이 크기도 작았다. 이건 뿔이라기보다는 돌기. 아니, 돌기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그냥 뼈가 좀 튀어나온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간 눈치 채지 못한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직 가주 자리에 오르신 지 얼마 안 되셨으니까요. 더욱이 던전의 힘은 곧 마왕의 힘이기도 합니다. 던전이 성장하면 가주님의 힘 역시 강해지실 겁니다. 그 반대 역시 성립하고요.”

    엘리고스가 서둘러 말했다. 카타리나 역시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처음 만났을 때의 차갑고 냉정한, 하여간 이지적인 얼굴이 되어 말했다.

    “마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뿔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뿔의 개수와 크기가 반드시 강함의 절대적인 지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 이지적인 가면 속에 어떤 허당의 얼굴이 숨어있는지 잘 아는 용호였지만, 그래도 일단 저런 얼굴로 진지하게 말하니 제법 신뢰감이 들었다.

    ‘하기야, 애당초 난 이것저것 진화할게 많은 상태니.’

    엘리고스의 말마따나 앞으로 강해지면 될 일이었다. 실망하긴 너무 일렀다.

    마음을 추스른 용호는 다시 카타리나를 돌아보았다. 말을 잇다보니 새삼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까 평소에는 뿔을 축소시키거나 감추고 있다고 했지?”

    “네.”

    즉답한 카타리나를 용호는 계속 쳐다보았고, 다행히 카타리나는 이내 용호의 뜻을 이해했다. 새삼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흠흠. 그럼 마력을 개방하도록 하겠습니다.”

    말릴 이유가 없었기에 용호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카타리나는 숨을 한 번 크게 고르더니 힘을 발산했다.

    마력의 변화. 개방.

    더욱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좋을 예속 사역마의 마력이었다.

    용호는 분명하게 느꼈다. 마치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카타리나의 마력. 그 영혼. 마력과 영혼의 색과 속성.

    “하아, 하…….”

    약간 달아오른 숨을 토한 카타리나는 자세를 바로하고 섰다. 기다란 두 귀 위로 손가락 검지와 중지를 합쳐놓은 크기의 노란색 뿔이 돋아나 있었다.

    여전히 그리 크다고는 할 수 없었다. 생긴 것은 사슴의 뿔이라기보다는 코끼리의 상아를 연상시켰다.

    힘을 개방했기 때문인지 카타리나 역시 평소와는 제법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예리한 칼날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카타리나의 뿔을 가만히 쳐다보던 용호가 옥좌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저기, 한 번 만져 봐도 돼?”

    “가, 가주님이시라면.”

    카타리나가 얼굴을 붉히며 수락했다. 그런데 왠지 분위기가 묘했다.

    두 주먹을 꽉 쥔 채 고개를 약간 숙였다. 입술은 살짝 깨문 채 눈동자를 굴리는데 긴장과 불안, 약간의 두려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어쩐지 모를 위험한 기분 속에서 용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천천히 손을 뻗어 카타리나의 뿔을 어루만졌다.

    손이 닿는 순간 카타리나가 움찔하며 잠시 어깨를 떨었지만 그것뿐이었다.

    뿔은 차갑고, 부드럽고, 딱딱했다. 마력의 집약 기관이란 말이 정말인지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카타리나의 마력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마 지금 카타리나가 움찔움찔하는 것 역시 민감한 마력의 움직임 때문일 터였다.

    ‘그, 그만해야지.’

    어쩐지 중독될 것 같기도 하고. 남중남고공대 테크를 탄 남자에게는 자극이 너무 셌다.

    용호는 얼른 카타리나의 뿔에서 손을 뗀 뒤 물러섰다. 카타리나는 작게 안도의 숨을 토했다. 뭔가 직위를 이용해 나쁜 짓을 강요한 악덕 상사가 된 기분에 빠진 용호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제 뿔도 한 번 만져보시죠.”

    엘리고스가 머리를 불쑥 내밀며 그리 말했다. 카타리나와 달리 이마에 돋아난 연한 회색 뿔이었는데, 생긴 것이 마치 코뿔소의 뿔 같았다.

    뿔을 만질 때 카타리나가 보여주었던 반응을 떠올린 용호는 엘리고스의 뿔을 만지는 대신 옆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잠시 소외되었던 고블린 두 마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무튼 뿔이 생겼군.”

    “가주님?”

    “이름을 지어줘도 되겠지?”

    이번에도 깔끔하게 엘리고스의 물음을 차단한 용호는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물었다. 던전의 영혼이 대답했다.

    [던전 사역마의 이름을 등록하시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용호는 잠시 고민했다.

    엘리고스의 말대로라면 나중가면 이런 녀석들이 던전에 수십 마리는 돌아다닐 터였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첫 두 마리였으니 좀 특별한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아, 몰라. 그냥 대충 해.’

    부르기 편하고 독립적인 이름이면 되겠지. 더욱이 고블린들이 외워야 할 이름이었으니 쉽고 간단할수록 좋았다.

    “넌 존이고, 넌 론이다.”

    용호의 선언에 고블린들은 눈을 깜박이더니 이내 그 큰 입으로 헤벌쭉 미소를 지었다.

    “존존.”

    “론론.”

    힘 타입이 존, 체력 타입이 론.

    두 마리는 자기들의 이름을 몇 번이나 반복하더니 용호에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주인님. 감사감사.”

    “행복행복.”

    [사역마들이 행복해합니다. 근로 만족도가 높아졌습니다.]

    용호의 얼굴에도 미소가 그려졌다. 이번에는 카타리나가 물었다.

    “저, 가주님.”

    “응?”

    “진화의 권능은 누구에게나 쓰실 수 있는 건가요?”

    당연히 나올 법한 질문이었고, 용호는 대답해줄 용의도 있었다.

    그런데 엘리고스는 달랐다. 순간 엘리고스가 카타리나를 무섭게 노려보았고, 흠칫한 카타리나는 눈을 크게 떴다. 스스로가 했던 질문에 놀라 사색이 되더니 그대로 제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용호 앞에 머리를 숙였다.

    “주제넘은 질문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기다란 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기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용호는 당황했지만 이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했다.

    마왕의 권능은 마왕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지금 카타리나는 감히 예속 사역마 주제에 주인의 가장 큰 비밀을 알려 달라 요구한 것이었다.

    ‘전대 가주가 어지간히 꽉 막힌 놈이었나 보네.’

    한 차례 한숨을 내쉰 용호는 자세를 낮춰 카타리나를 일으켜 세웠다. 여전히 용호와 눈도 못 마주치는 그녀에게 최대한 담담한 투로 말했다.

    “아니, 뭐. 너흰 내 예속 사역마니까. 평범한 사역마들과는 달리 꽤나 특별한 부하들이지. 그러니까 이 정도 질문은 괜찮아.”

    ‘만족도 안 높아지나?’

    호감도가 높아졌습니다-같은 멘트를 기대했지만 던전의 영혼에게 돌아온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엘리고스와 카타리나가 둘 모두 감격한 표정을 지었기에 용호는 만족했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진화의 권능은 너희에게도 사용가능해. 너희는 더 강해질 수 있어.”

    “아, 그래서 그때 그런 질문을 하셨던 거군요.”

    엘리고스가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힘 타입과 체력 타입 중 어느 쪽이 더 좋으냐는 물음을 기억해낸 모양이었다.

    “카타리나, 너도 진화시켜 줄까?”

    용호의 물음에 카타리나의 얼굴이 밝게 변했지만 아주 잠깐 뿐이었다. 급히 눈동자를 굴려 고블린들을 돌아본 카타리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더니 소심하게 답했다.

    “우, 우락부락한 건 좀…….”

    그래도 여자는 여자인 모양이었다. 용호가 장난으로 손을 움직이자 질끈 눈을 감으면서도 물러서지는 않았다. 용호는 유쾌하게 웃으며 카타리나의 이마에 살짝 꿀밤을 먹였다.

    “당장은 어차피 무리야. 네가 조건을 만족시키면 그때 이야기해주지. 그리고… 진화 방향이 꼭 이렇게 근육강화만 있는 건 아니니까.”

    용호의 손이 닿는 순간 움찔 몸을 웅크렸던 카타리나는 눈을 살짝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린 두 귀는 당연히 축 늘어진 상태였다.

    ‘잘못하면 중독되겠네.’

    놀려먹는 맛이 있다고 해야 하나?

    용호는 의식적으로 카타리나에서 엘리고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엘리고스가 입을 열었다. 어쩐지 비장한 얼굴이었다.

    “가주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표정이 하도 심상치 않았기에 용호의 표정 역시 절로 진지해졌다. 용호가 고개를 작게 끄덕여 수락을 표하자 엘리고스가 말했다.

    “사실, 아직 비상금이 남아 있습니다. 마몬 가의 자산이 아니라… 제가 비상시를 위해 모아둔 자산입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엘리고스는 품안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카타리나 역시 전혀 모르고 있었던 일인지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움을 표했다.

    “얼마 안 되는 돈입니다. 하지만 1성급 사역마 정도라면 어떻게든 한 마리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블린 같이 최하급 사역마라면 세 마리… 아니, 네 마리 정도까지 가능할 겁니다.”

    엘리고스가 주머니를 내밀었다.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용호의 손에 쥐어주며 고개를 숙였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이 어리석고 늙은 것이 나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다며 숨겨둔 돈입니다. 하지만 가주님의 권능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가주님이야말로 마몬 가를 다시 부흥시키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눈물 많은 엘리고스답게 어느새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카타리나 역시 눈시울이 붉었다.

    “부탁드립니다. 가주님. 이 돈을 써주십시오. 던전에는 지금 하나라도 더 많은 사역마가 필요합니다.”

    왜 지금 돈을 내놨는지 알 것 같았다.

    용호는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솔직히 말해 이런 신파극은 질색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엘리고스의 마음을 이해했다.

    카타리나와 엘리고스는 처음에 어떤 생각으로 용호 자신을 찾아왔을까?

    마몬 가의 부흥을 꿈꾸며?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이 바란 것은 그저 죽어가는 던전이 얼마간이라도 더 숨을 쉬는 정도였을 터였다.

    하지만 엘리고스는 이제 진정으로 마몬 가의 부흥을 꿈꾸었다.

    솔직히 이런 엘리고스가 부담스러웠다. 더욱이 나름 신중을 기하기 위함이었고, 마몬 가의 것이 아닌 개인 자산이었지만 ‘자원’을 숨긴 것 역시 약간은 괘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앞의 엘리고스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용호는 결국 엘리고스에게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분명히 받았다. 엘리고스.”

    어제에 이어 오늘.

    용호는 마계 인력 시장을 방문하기 위해 옥좌에 앉았다.

    &

    “예상치 못한 방문이시군요.”

    < 제 3장 #3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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