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장 #2 >
[종족 : 고블린 (남)]
[주속성 : 대지]
[주요 종족치 : 힘 / 체력]
[진화 숙련치 : 100/100]
[힘 특화 | ★☆ (1.5)]
[체력 특화 | ★☆ (1.5)]
정식 사역마로 등록하니 던전 상회에서는 보이지 않던 항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더욱이 반갑게도 두 마리 모두 진화 숙련치가 이미 100이었다. 더 이상 바닥을 찾을 수 없는 최하위 사역마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엘리고스와 카타리나는 마른 침을 연신 삼키며 용호를 바라보았다. 용호는 이번에도 두 사람에게 설명하는 대신 손을 놀렸다. 고블린 두 마리의 머리 위에 각각 떠오른 빛의 상자들을 어루만지며 소망했다.
진화의 권능은 마왕의 힘.
용호의 영혼으로부터 깨어난, 용호 그 자체라 해도 좋을 권능.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발동하였다. 용호의 초롯빛 눈동자로부터 귀화가 피어올랐고, 손끝을 통해 마력이 방출되었다.
고블린들이 몸을 떨었다. 엘리고스는 숨을 멈춘 채 고블린들에게 주입되는 용호의 마력을 느꼈다. 카타리나는 불안한 얼굴로 용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초록빛 광채가 고블린들의 뒤덮었다. 고블린들의 괴성이 마왕의 방에 울려 퍼졌다.
“커헉!”
용호는 거친 숨을 토하며 뒷걸음질 쳤다. 힘들었다. 온 몸에 기력이 다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용호는 웃었다. 엘리고스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평소처럼 눈시울을 붉혔고, 카타리나는 재빠르게 용호를 부축했다. 뒤늦게 고블린들을 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고블린들이 변모했다.
힘 특화로 진화시킨 고블린은 그 키가 못해도 15cm 이상 자랐다. 왜소하기 짝이 없던 어깨는 이전보다 두 배는 더 크게 변했고, 상체 역시 완벽한 역삼각형을 그렸다.
다리는 짧고 볼품없었지만 그 대신이라도 되듯 두 팔은 무척이나 크고 튼튼했다. 마치 고릴라 새끼를 보는 것 같았다.
체력 특화로 진화시킨 고블린은 또 달랐다. 상체와 하체가 모두 균형 있게 발달했고, 앙상한 팔 다리에는 제법 건장한 근육이 붙었다.
힘 특화로 진화시킨 고블린보다 키가 작았지만, 굽었던 허리가 펴져서 그런지 가만히 서 있으면 오히려 힘 특화 고블린보다도 더 커 보였다.
“이, 이것이 진화의 권능!”
엘리고스가 온 몸으로 감격을 표했다. 카타리나는 여전히 놀란 얼굴로 고블린들만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용호는 씩 웃으며 마지막 남은 마력을 긁어모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져 잠들고 싶었지만 다시 한 번 진화의 권능을 발동시켜 힘 특화 고블린을 보았다.
[종족 : 고블린 (남)] [1성 사역마]
[주속성 : 대지]
[주요 종족치 : 힘 / 체력]
[진화 숙련치 : 0/100]
[힘 특화 | ★☆ (1.5)]
[체력 특화 | ★ (1)]
[지력 특화 | ☆ (0.5)]
이전에는 없던 지력 특화가 생겼다. 더욱이 변하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진화 테크 트리를 의미하는 두 개의 상자 위로 커다란 빛의 상자가 보였다. 그 안에 들어있는 글자가 용호를 흥분시켰다.
[승격 : 홉 고블린]
승격. 초월. 클레스 체인지- 아니, 클레스 업!
뭐든지 좋았다. 한 번 더 진화하면 눈앞의 고블린들은 고블린을 ‘초월’할 터였다. 존재의 격 자체가 상승한다 해도 좋았다.
‘그래봐야 고블린이 홉 고블린이 되는 것뿐이지만.’
머릿속으로 스스로에게 태클을 걸었지만 그래도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홉 고블린 다음은 무엇일까? 고블린 킹? 하이 고블린? 카타리나나 엘리고스도 저렇게 승격이 가능할까?
‘그러고보니.’
용호는 그제야 자신을 반쯤 끌어안고 있다시피 한 카타리나에게 신경이 쓰였다. 의식했기 때문인지 새삼 팔과 허리, 가슴 등을 통해 느껴지는 카타리나의 존재가 크게 다가왔다.
마왕이 되어 다시 태어났지만 아직 여자에게는 충분한 내성을 쌓지 못한 용호였다.
‘좋긴 한데.’
그리고 힘도 없었다. 그러니 이대로 몸을 기대는 것은, 좀 더 몸을 밀착시키는 것은 자연의 섭리였다.
용호는 스스로에게 말했고, 납득했다. 그래서 주저 없이 카타리나 쪽으로 몸을 좀 더 기댔다. 그 순간 카타리나가 소리쳤다.
“오, 맙소사! 저거, 저거 설마 뿔인가요?”
카타리나의 갑작스런 외침에 용호가 움찔한 순간 엘리고스 역시 소리를 질렀다.
고블린들의 이마에 돋아난 작은 뿔- 거의 돌기라 해도 좋을 그것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감격에 겨워 울먹였다.
“오오… 오오 마몬이시여.”
이제 울먹이는 수준을 넘어 엉엉 울 지경이었다. 때문에 용호는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파트너로 카타리나를 선택했다.
“카타리나, 고블린들에게 뿔이 생긴 게 대단한 건가?”
용호의 물음에 카타리나는 멍청한 얼굴로 용호를 돌아보았다. 서로 밀착해있었기에 지나칠 정도로 가까웠고, 그래서 카타리나의 예쁘장한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카타리나는 숨을 거칠게 쉬었다. 멍청한 얼굴로 용호를 바라보더니 이내 크게 소리쳤다.
“대, 대단하죠! 대단해요! 아, 아니. 대단합니다.”
흥분해서 잔뜩 소리치다가 급 표정과 말투를 수습하려는 게 역시나 허당기사 카타리나다웠다. 용호는 그녀를 놀리거나 타박하는 대신 다시 한 번 물었다.
“왜 대단하지?”
카타리나는 다시 한 번 멍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잠깐뿐이었다. 마족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었지만, 이제 마족이 된 지 삼일 째인 용호에게는 너무나 낯선 미지의 지식이라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카타리나는 용호를 부축해 옥좌에 앉힌 뒤 숨을 골랐다. 최대한 침착함의 미덕을 떠올리며 설명했다.
“마족에게 있어 뿔은 힘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마족의 뿔은 세상에 존재하는 마력을 끌어 모으는 일종의 집약기관입니다. 마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크고 많은 뿔을 보유하게 됩니다. 물론 뿔이 너무 크고 많으면 불편하니 보통은 마법을 사용해 감춰두거나 축소시켜 둡니다만… 어, 어찌되었든 그만큼 뿔은 중요한 기관입니다. 뿔의 개수만 봐도 마력의 강약을 대충 짐작하는 게 가능합니다.”
흥분을 많이 가라앉히긴 했지만 여전히 목소리가 빨랐다. 거의 쏟아내듯이 말한 터라 숨이 막혔는지 카타리나는 잠시 말을 끊고 호흡을 골랐다. 침을 몇 번이나 삼킨 뒤 설명을 재개했다.
“뿔은 쉽게 그 숫자를 늘리거나 강화할 수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마족들이 타고난 뿔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죠. 뿔을 강화하거나 늘리기 위해서는 마력 그 자체가 강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현격한’이란 수식어를 붙여야 할 정도로요. 그, 그런데.”
“그런데?”
용호의 되물음에 카타리나는 눈을 한 번 꾹 감았다.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더니 비교적 안정된 얼굴로 말했다.
“고블린들은 본래 뿔이 없습니다. 가끔 작은 뿔 하나 정도를 가진 특이체가 태어나긴 합니다만 극히 드문 경우죠. 고블린들은 애당초 가지고 있는 마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터라 뿔을 늘리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가주님께서 뿔이 돋아나게 하신 겁니다. 저 고블린들에게서 뿔을…….”
마지막 말은 엘리고스였다. 여전히 눈물을 쏟고 있었던 터라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했다.
대충 알 것 같았다.
카타리나가 왜 그렇게 놀랐는지, 엘리고스가 왜 저리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졌는지.
‘진화의 권능.’
이채가 어려 있던 시트리의 눈이 떠올랐다. 스스로를 거물이라 소개했던 그녀가 왜 자신에게 호감을 보였는지도 왠지 알 것 같았다.
용호는 다시 고블린들을 보았다. 진화의 효과인지, 아니면 뿔이 돋아났기 때문인지 아까보다는 제법 총기가 있어 보이는 눈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놈들은 엉거주춤 제자리에 무릎을 꿇더니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주인님주인님.”
“우리우리. 충성. 바친다.”
카타리나는 이번엔 입을 크게 벌렸다. 엘리고스는 다시 감동의 눈물을 흘릴 준비를 했다.
둘의 반응을 보니 일꾼 고블린이 말을 하는 것은 꽤나 대단한 일인 모양이었다.
용호는 다시 옥좌에 몸을 묻었다. 넋이 나간 카타리나에게 다른 것을 물었다.
뿔에 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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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장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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